[함께 살아가는 말 73] 발빨래

 두 아이와 살아내며 날마다 하는 기저귀 빨래는 손으로 합니다. 두 손으로 신나게 비빔질을 하고 헹굼질을 합니다. 네 식구 옷가지와 베갯잇 또한 손으로 빨래합니다. 가방이나 걸레나 행주도 손으로 빨래합니다. 이불만큼은 손으로 빨래하기에 벅차 큰 통에 물을 받고 가루비누를 넣어 발로 밟으며 빨래합니다. 한창 이불빨래를 하며 생각합니다. 손으로 빨든 발로 빨든 빨래입니다. 옛날부터 빨래는 빨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빨래를 맡아 해 주는 집이 생겨 ‘가게빨래’와 ‘집빨래’로 나눌 만할 테고, 집에서 빨래를 하더라도 기계가 빨래를 해 주니까 ‘기계빨래’와 ‘손빨래’로 나눌 만합니다. 그러면, 집에서 손으로 빨래를 하다가도 이불처럼 덩이가 큰 녀석은 도무지 손으로 빨래할 수 없으니, ‘발빨래’라고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이불을 발로 밟으면서 “네, 이불도 손빨래로 해요.”처럼 말하자니 어딘가 어울리지 않거든요. 씻는방 문턱에 놓은 닦개는 ‘손닦개’가 아닌 ‘발닦개’입니다. 발을 닦도록 놓은 마른천이니까요. 굳이 새 낱말을 만들지 않아도 될 만한 집일이거나 집살림일 수 있습니다만,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는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따숩게 사랑하자면, 크고작은 일거리를 알맞고 즐거이 일컬으면 한결 나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는 빨래하며 내 마음 또한 맑게 갈무리한다고 느낍니다. (4344.9.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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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2] 빨래씻기

 나를 낳은 어버이하고 함께 살아가던 때에는 집에서 손수 빨래할 일이 없었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신을 내 손으로 빨았으나, 집에 빨래기계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빨래기계가 도맡았거든요.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집에서 나와 혼자 살림을 꾸린 때부터 내 옷가지를 내 손으로 빨래합니다. 스물한 살이던 1995년부터 늘 손빨래입니다. 혼자 살림을 꾸리던 이때부터 혼인하여 아이를 둘 낳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빨래기계를 들이지 않아요. 빨래기계 장만할 살림돈이 없기도 했고, 빨래기계 놓을 자리가 없기도 했으며, 이제는 빨래기계를 써서 내 옷가지를 다루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 몸을 씻을 때에 빨래를 합니다. 땀을 많이 흘리니 저녁에 하루를 마감하기 앞서 몸씻이를 하고, 몸씻이를 할 때에 씻는방 바닥에 옷가지를 죽 펼칩니다. 몸을 씻으며 튀기는 물이 빨래할 옷가지에 떨어지도록 합니다. 몸에 한두 차례 물을 끼얹어 옷가지가 웬만큼 젖으면 알몸으로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다 비볐으면 내 몸에도 비누를 바르거나 마저 물을 끼얹습니다. 이러면서 빨래를 발로 꾸욱꾸욱 밟아 애벌헹굼을 합니다. 몸을 다 씻고 마무리헹굼을 해요. 이러면, 빨래를 하는 동안 몸에 묻은 물기와 머리카락에 깃든 물기가 제법 마릅니다. 내 빨래질과 몸씻기는 한 마디로 빨래씻기입니다. (4344.9.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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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1] 봉숭아물

 몹시 힘든 몸으로 옆지기가 첫째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입니다. 봉숭아 잎과 꽃은 이달 첫머리부터 꾸준히 따서 갈무리했지만, 막상 봉숭아물을 들일 겨를을 내지 못해 그동안 모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성 할머니 댁에서 봉숭아 잎과 꽃을 잔뜩 얻어 드디어 곱게 빻아 예쁘게 물을 들입니다. 이동안 갓난쟁이는 젖 달라 재워 달라 앙앙 웁니다. 그렇지만 어쩌는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다 마무리를 지어야 갓난쟁이를 곱다시 재울 수 있습니다. 고단한 집식구가 모두 잠든 깊은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꿈결을 헤매다가 어릴 적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鳳仙花)” 노래를 배웠습니다. 동무나 동네 어른은 누구나 ‘봉숭아’라 했지만, 교과서에는 봉숭아가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봉선화’였습니다. 동무들은 봉숭아와 봉선화가 다른 꽃이라 여기며 말다툼을 했고, ‘봉선아’나 ‘봉숭화’처럼 잘못 쓰는 아이가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였나, 누군가 “울 밑에 선 봉숭아야.” 하고 잘못 불렀다가 음악 선생한테 흠씬 엊어맞았습니다. 고즈넉한 노래에 ‘봉선화’라 해야지, 어울리지 않게 ‘봉숭아’가 뭐냐고 다그쳤습니다. 내 어릴 적 고향동무들은 아직도 두 가지가 다른 꽃이라고 여깁니다. 옆지기는 손가락에 봉숭아물 들이면 봉숭아 내음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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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70] 온날떡

 둘째가 태어난 지 백날이 지납니다. 백날째를 맞이해서 흰떡을 합니다. 이 흰떡을 누구한테 돌릴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읍내 가게 어디어디를 들러 인사를 하라 이야기할 때에 비로소, 아하, 이 흰떡은 이곳저곳에 많이 돌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떡 한 가득 담은 상자를 수레에 실어야 하니 첫째를 태울 수 없습니다. 백‘날’을 맞이했기에 백날떡이지만, 백‘일’을 맞이했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백일떡일 테지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살짝 대학교에 발을 담그는 동안 어느 학교에서도 ‘온’이라는 낱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즈믄’이라는 옛말을 옛문학을 배우며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뿐입니다. 옛문학에 나오는 옛말 ‘즈믄’이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바로 이곳 이때에 쓸 만한 낱말로 여기지 않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무렵 ‘즈믄둥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쓰였으나,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즈믄’을 쓰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막 낳아 갓 보살피던 세이레를 놓고도 ‘이레’를 알아듣는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는 없었습니다. 수레에 떡을 싣고 수박까지 한 통 사서 싣습니다. 아주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으로는 ‘온날떡’을 해서 둘째와 옆지기하고 나눈다고 생각합니다. (4344.8.3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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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31 11:49   좋아요 0 | URL
온날떡...
이름이 너무 곱네요, 백일떡 보다 훨씬 좋습니다.
앞으로 온날떡이라 부르겠어요.

숲노래 2011-08-31 12:1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 님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다문 한 사람이라도 입에 가만히 굴리면
좋은 사랑이 널리 퍼질 수 있으리라 믿어요~
 

[함께 살아가는 말 69] 범나비

 서울에서 올림픽이 있던 1988년을 앞두고 ‘호돌이’라는 상징이가 널리 퍼졌습니다. 이무렵 국민학교에서는 올림픽 표어와 포스터를 노상 그리도록 했고, 호돌이를 예쁘게 여기도록 하는 온갖 인형이며 상품이며 나돌았습니다. 라면이건 무어건 겉에 호돌이 그림이 깃들곤 했습니다. 철없이 놀며 깊이 생각하지 않던 어린 나날이기에, 〈상계동 올림픽〉 같은 이야기는 아예 알지 못했는데, 둘레 어른들 가운데 할머니나 할아버지, 또 시골 어르신들은 “왜 ‘호돌이’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셨습니다. 당신들한테는 ‘虎狼돌이’를 줄인 ‘호돌이’가 아닌 ‘범돌이’여야 옳으니까요. 어른들은 우리 띠를 일컬을 때에 언제나 ‘범띠’라 말했지 ‘호랑이띠’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띠(호랑띠)’라 말하거나 ‘호랑나비’라 말하면, 으레 ‘범띠’와 ‘범나비’로 바로잡았습니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짐승은 ‘범’이요, 누런 빛깔이 아닌 하얀 빛깔일 때에는 ‘흰범’이라 했어요. 네 살 아이 손을 잡고 한 살 아이는 품에 안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나비 한 쌍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첫째한테나 둘째한테나 이렇게 서로 예쁘게 팔랑거리는 나비를 바라보며 “이야, 범나비로구나.” 하고만 가리키리라 생각합니다. 무늬가 있는 범은 ‘무늬범’입니다. (4344.8.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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