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읽기 63


《노태우 선언, 꿈도 아픔도 국민과 함께》

 노태우 글

 민주정의당

 1987.8.



  파란빛 손글씨로 쓴 글월을 떠서 ‘6·29선언 설문지’까지 끼워넣고서 열여섯 쪽짜리로 엮은 《노태우 선언, 꿈도 아픔도 국민과 함께》에는 들꽃물결을 누그러뜨리려는 벼슬아치(정치권력) 속셈이 환히 드러납니다. 1987년 여름날, 마을 ‘통장’이 집집마다 이 꾸러미를 돌립니다. “저녁에 설문지 내세요!” “네.” 어머니는 건성으로 대꾸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설문지’를 내셨는지 안 내셨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 꾸러미를 내다버린 집이 무척 많았고, 통장 아줌마는 ‘설문지 걷기’를 하려다가 그만둔 줄 압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버리기는 왜 버려? 폐품수집 할 때 내야지.” 어머니 말마따나 저랑 언니는 다달이 ‘폐품수집’을 내느라 고달팠어요.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87년 내내 다달이 ‘빈병 2 + 헌종이 5킬로그램’을 내야 했습니다. 안 내면 이듬달로 밀려서 쌓이고, 다 낼 때까지 꼬박꼬박 두들겨맞습니다. ‘폐품수집 매맞기’는 12월에서 1월로 넘어갈 즈음 비로소 에워 줍니다. 우두머리나 벼슬아치 자리에 있던 이들은 ‘아픔’이 뭔지 알기나 할까요? 예나 이제나 그분들은 하나도 모를 테지요. ‘폐품수집’ 따위도 ‘방위성금’ 따위도 안 해봤을 테지요. 힘(권력)이 없어야 나눔(평화)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노태우네 아이들이

광주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지.

그런데 그들은 왜 광주에서만 빌까?

온나라 모든 어린이한테

먼저 무릎을 꿇고서 빌어야 하잖은가?


독재자는 전남 광주만 짓밟지 않았다.

온나라 모든 어린이를 짓밟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우려먹고 괴롭혔다.

어린이한테 무릎꿇고 빌지 않는다면

제대로 잘못을 빌었다고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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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93


《말괄량이 삐삐》

 아스트리드 린그렌 글

 김인호 옮김

 종로서적

 1982.3.15.



  린드그렌 님이 스웨덴사람인 줄은 1994년에 알았습니다. 그무렵 한창 한국외대에서 네덜란드말을 배웠는데, ‘네이포스’라 해서 ‘네덜란드·이탈리아·포르투갈·스칸디나비아(스웨덴)’, 이렇게 작은 네 곳(학과)이 사이좋게 어울렸어요. 스칸디나비아말을 배우는 또래랑 밤샘수다를 자주 했어요. 어느 날 “네덜란드말에 《안네의 일기》가 있다면, 스웨덴말에 《삐삐》하고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 있지.” 하고 얘기하더군요. “뭐? 삐삐가 스웨덴사람이야? 닐스도? 처음 알았네! 음, 네덜란드사람은 또 누가 있지? 음!” 그때에는 몰랐으나 ‘환 호흐(van Gogh)’나 렘브란트 말고도 ‘레오 리오니’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네덜란드사람입니다. 이웃말(외국말)을 배우는 우리들은 이웃말로 아름길을 펴고 아름책을 선보인 어른을 하나둘 알아가면서 새롭게 읽는 동안 기쁘고 놀라웠습니다. 어느 날 ‘종로서적’판 《말괄량이 삐삐》를 헌책집에서 찾았어요. 스웨덴말 또래는 그날 밤샘수다를 하는 자리에서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노래를 신나게 불러 주었습니다. 린드그렌 님하고 라게릴뢰프 님 책을 스웨덴말에서 우리말로 옮기겠노라 꿈꾸던 또래는 언젠가 이 뜻을 펼 날이 있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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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04


《참 아름다운 날들》

 라이너 쿤체 글

 전영애 옮김

 문학세계사

 1989.7.15.



  이 나라에서 만든 총칼(전쟁무기)을 목돈을 받고서 이웃나라에 팔 수 있으면 나라살림이 나아질까요? 총칼을 내다팔아 10조 원을 번다면, 총칼을 벼리고 뚝딱거리느라 1조 원쯤은 썼을 텐데, 그동안 이 나라 들숲바다를 망가뜨렸을 테고, 이웃나라로 퍼진 총칼은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드넓은 들숲바다를 부술 테지요. 《참 아름다운 날들》이 오늘날 다시 나오더라도 ‘K-방산’에 짓눌리겠다고 봅니다.



병정들은 쓰러진다. / “그런데 왜 하필 이 병정들을 그렇게 하니?” / “이건 우리 편이 아니잖아요.” (여섯 살짜리/18쪽)


양손에 하나씩 권총을 들고 가슴에는 장난감 기관단총을 메고 있다. / “이런 무기를 보고 너희 엄마는 대체 뭐라시든?” / “엄마가 사주셨는데요.” / “아니 뭐라구?” / “나쁜 사람들을 쳐부수라구요.” / “그럼 좋은 사람은 누구지?” / “레닌요.” / “레닌? 그게 누군데?” / 그애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곰곰히 생각을 해보다가 결국 대답을 못한다. / “너 레닌이 누군지 모르는구나?” / “왜 몰라요. 대장이잖아요.” (일곱 살짜리/19쪽)


미하엘은 십마르크가 넘는 질서침해 판정서를 받고 새벽 세시에야 악기를 되찾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사회주의적인 공동생활 침해(기타 연주)’ (여운/58쪽)


그 사람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좀 조용히들 해!” 그러더니 나를 곁눈으로 조금 훑어보았다. “당신, 신문에 난 대로 쓰는 거요, 아니면 사람 사는 그대로 쓰는 거요?” (삼림노동자/146쪽)


ㅅㄴㄹ


#KunzeReiner


애써 새로 나온

라이너 쿤체 책은

너무 말랑말랑해서

차마 못 읽겠더라.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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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19


《시와 혁명》

 김남주 글

 나루

 1991.12.25.



  늘 책을 만지작거리고 붓을 놀리니, 하루 내내 종이랑 함께산다 할 텐데, 막상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상장)’은 내키지 않아 모조리 멀리하며 살았습니다. 작은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야, 차 살 돈 없어? 차는 사줄 테니까 운전면허증만 따!” 하고 말씀했지만 “차를 사주셔도 저는 종잇조각을 안 딸 생각이니, 차를 장만할 돈을 물려주시면 책을 사서 읽겠습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작은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차를 사주겠다’는 말은 했으나 ‘책을 사주겠다’는 말은 안 했고, 책값을 준 일도 없습니다. 걷고 또 걷고 다시 걷던 어느 날 헌책집에서 《시와 혁명》을 만났습니다. 갓 태어난 큰아이를 돌보고 재우고 놀리느라 띄엄띄엄 읽었어요. 이 책을 다 읽은 날, 앞자락 귀퉁이에 몇 마디 끄적였습니다. 앞으로도 종잇조각은 움켜쥘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는 사람한테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김남주 님 책을 스스로 읽을 만한 나이에 이르면, 이 글이 무슨 뜻인지 알겠거니 여기며 후딱 휘갈기고서 큰아이랑 곁님이 먹을 밥을 지어서 차렸지요.


“나는 길에서 : 나는 길에서 살고, 길에서 일하고, 길에서 놀고, 길에서 어울리고, 길에서 생각하고, 길에서 읽고, 길에서 씁니다. 두 다리 쭈욱 뻗을 따뜻하고 넓은 방에서 글을 쓰거나 무엇을 하며 살아 본 적이 없습니다. 2009.4.1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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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1.

숨은책 818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

 모리스 드리용 글

 최윤경 그림

 배성옥 옮김

 민음사

 1991.3.20.첫.1996.8.25.7벌



  1994년부터 서울을 드나들기 앞서까지 인천도 ‘꽤 크다’고 여겼습니다만, 인천은 ‘백화점도 없다가 겨우 생겼으나 일찌감치 무너진’ 곳이고, ‘방송국이 없’다가 1997년에 ‘itv’가 태어났으나 몇 해 뒤 ‘서울방송국 짬짜미’에 밀려 닫아야 했습니다. 없는 투성이인 고장이지만, 매캐한 공장은 수두룩했고, 서울을 버티는 일개미(노동자)는 날마다 불수레(지옥철)를 이루며 오갔습니다. 서울내기 동무가 “그래도 광역시인데 백화점이 없다고?” 하고 물으면 “응, 다들 거의 서울로 새벽에 가서 밤에 돌아와 자는데 백화점에 갈 일부터 없지.” 하고 대꾸했어요. ‘잠고장(침대도시)’에 큰가게가 설 수 없겠지요. 그러나 서울도 백화점이 이따금 사라졌습니다. 예전 서울역에 있던 큰가게가 닫았고, ‘미도파백화점’도 가뭇없이 떠났어요. 판이 끊긴 《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를 어렵사리 헌책으로 찾아내었는데, ‘서울 미도파백화점 상계점 7F’에 있던 〈미도파문고〉에 깃든 자국이 고스란하더군요. 팔림쪽(전표)이 그대로 붙었다면, 안 팔렸다는 뜻일 텐데, ‘96.10.22.’에 책시렁에 꽂힌 뒤 얼마나 오래도록 손길을 못 받았을까요. 그래도 용케 서른 해 가까이 어디선가 살아남았습니다. ‘미도파’도 ‘미도파문고’도 이제 없으나 ‘미도파백화점 7층 미도파문고 책시렁’에서 잠자던 책은 제 곁에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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