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16


《보배를 지키는 마음》

 진성기 글

 열화당

 1982.6.15.



  바람을 타는 사람이 있고, 바람이 부는 대로 휩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 적에 바람을 읽고서 바람결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고, 바람이 불면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랜 삶을 새롭게 가꾸는 마음이라면 바람을 탈 뿐 아니라 바람을 읽습니다. 늘 다른 것을 쓰고서 치우는 마음이라면 바람에 휩쓸릴 뿐 아니라 바람을 알려고 하지 못합니다. 제주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서 제주라는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보배를 지키는 마음》이라는 작은 꾸러미는 작은 걸음걸이일 적에 마을을 마주하고 이웃이랑 사귀면서 이야기밭을 일굴 수 있다는 살림길을 들려줍니다. 박정희 군홧발이 서슬퍼렇던 무렵에 가시밭을 헤치며 ‘제주민속박물관’을 지킨 작은 몸짓이 있었기에 오늘날처럼 제주 노래밭이 있을 만하구나 싶더군요. 감투(정치권력)가 내세운 ‘새마을’은 삶도 살림도 사랑도 아니었어요. 손을 놀려 보금자리를 지은 이들이 부른 노래가 살림이며 빛이고 눈물이에요. 2005년 5월 8일, 서울 ‘민들레사랑방’ 푸름이하고 자전거를 달려 제주섬을 한 바퀴 돌고서 〈책밭서점〉에 들러 《남국의 보배를 지키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책이름이 바뀌었더군요. “무사 이 책을 아는감?” “1994년에 읽었습니다.” “이분이랑 가끔 막걸리를 마시지.” “아직 계시는군요.” “그래도 이제 늙으셨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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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3.22.

숨은책 255


《들어라 양키들아, 큐바의 소리》

 C. 라이트 밀스 글

 신일철 옮김

 정향사

 1961.4.14.



  배우는 길은 누가 안 가르쳐 줍니다. 늘 스스로 걸어가다가 문득 눈을 뜨는데, 둘레에서 곧잘 넌지시 귀띔을 합니다. 귀띔말은 노상 수수께끼입니다. 새삼스레 가시밭길이나 안개 한복판으로 접어들어 헤매는 동안 천천히 실마리를 찾습니다. 어느 날 문득 《들어라 양키들아, 큐바의 소리》를 만났고 ‘라이트 밀스’라는 분이 쓴 책을 하나씩 챙겨서 읽었습니다. 이런 사람(글쓴이)이 있고, 이렇게 보는 눈썰미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던 2001년 어느 날, 같이 《보리 국어사전》을 엮던 윤구병 씨가 ‘라이트 밀스’ 1961년 옮김판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며칠 뒤에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건네었습니다. 윤구병 씨는 “그래 이 책이야. 이 책이 내가 대학 다닐 적에 읽고 배운 책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 책을 알고 찾았니?” 하시기에 “예전에 읽은 책이라 알았어요. 아는 책이니 어느 헌책집을 가면 찾을 수 있는지도 알았지요.”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 모든 책은 두 갈래로 찾아내거든요. 첫째, 다리품을 팔면서 지켜보면 찾습니다. 둘째, 목돈이 있으면 찾습니다. 이러고서 2005년 8월 13일, 서울 청계천 〈상현서림〉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납니다. 1962년에 사읽은 분 자취가 있습니다. 1962년 그분은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요.


ㅅㄴㄹ


#ListenYankee #TheRevolutioninCuba #CharlesWrightMills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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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66


《先進祖國의 창조》

 전두환 말

 문화공보부

 1983.1.19.



  전두환 씨는 마지막숨을 몰아쉬던 무렵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지난삶이 휙휙 스치면서 그동안 무슨 짓을 일삼았는지 한눈에 보았을까요?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면서 환하게 웃음지었을까요? 《先進祖國의 창조》를 2000년 즈음 어느 날 헌책집에서 3000원에 장만했습니다. 제가 어느 책을 사는지 흘깃 구경하던 분이 묻습니다. “전두환이 책을 왜 사요?” “오늘 사놓지 않으면 이들이 예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떠벌인 자취를 알 길이 없거든요.” “그래도 그런 나부랭이를 돈 주고 사나?” “돈을 들여서 사놓아야지요. 문화공보부 놈들이 뭔 짓을 함께 저지르면서 돈을 벌었는지를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우두머리 한 놈만 몹쓸놈일 수 없어요. 그놈 곁에 빌붙어 고물을 받아먹은 모든 놈들이 똑같아요.” 몹쓸짓을 앞장서서 벌인 놈이 있으면, 이놈 곁에서 심부름을 한 놈이 있고, 심부름을 옮기거나 받아적어서 펴거나 알린 놈이 있습니다. 줄줄줄 사슬입니다. 윗자리랑 밑자리 모두 검은돈을 갉아먹어요. 이러던 2023년 3월 15일, 전우원 씨가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입니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행각을 밝힙니다. 저도 범죄자이고 처벌받겠습니다.” 하고 누리길(sns)에 뒷낯을 하나하나 드러냈어요. 손자는 검은돈과 검은짓으로 숨지 않고 말끔히 털어내려는 눈물길을 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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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읽기 63


《노태우 선언, 꿈도 아픔도 국민과 함께》

 노태우 글

 민주정의당

 1987.8.



  파란빛 손글씨로 쓴 글월을 떠서 ‘6·29선언 설문지’까지 끼워넣고서 열여섯 쪽짜리로 엮은 《노태우 선언, 꿈도 아픔도 국민과 함께》에는 들꽃물결을 누그러뜨리려는 벼슬아치(정치권력) 속셈이 환히 드러납니다. 1987년 여름날, 마을 ‘통장’이 집집마다 이 꾸러미를 돌립니다. “저녁에 설문지 내세요!” “네.” 어머니는 건성으로 대꾸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설문지’를 내셨는지 안 내셨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 꾸러미를 내다버린 집이 무척 많았고, 통장 아줌마는 ‘설문지 걷기’를 하려다가 그만둔 줄 압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버리기는 왜 버려? 폐품수집 할 때 내야지.” 어머니 말마따나 저랑 언니는 다달이 ‘폐품수집’을 내느라 고달팠어요.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87년 내내 다달이 ‘빈병 2 + 헌종이 5킬로그램’을 내야 했습니다. 안 내면 이듬달로 밀려서 쌓이고, 다 낼 때까지 꼬박꼬박 두들겨맞습니다. ‘폐품수집 매맞기’는 12월에서 1월로 넘어갈 즈음 비로소 에워 줍니다. 우두머리나 벼슬아치 자리에 있던 이들은 ‘아픔’이 뭔지 알기나 할까요? 예나 이제나 그분들은 하나도 모를 테지요. ‘폐품수집’ 따위도 ‘방위성금’ 따위도 안 해봤을 테지요. 힘(권력)이 없어야 나눔(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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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네 아이들이

광주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지.

그런데 그들은 왜 광주에서만 빌까?

온나라 모든 어린이한테

먼저 무릎을 꿇고서 빌어야 하잖은가?


독재자는 전남 광주만 짓밟지 않았다.

온나라 모든 어린이를 짓밟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우려먹고 괴롭혔다.

어린이한테 무릎꿇고 빌지 않는다면

제대로 잘못을 빌었다고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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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93


《말괄량이 삐삐》

 아스트리드 린그렌 글

 김인호 옮김

 종로서적

 1982.3.15.



  린드그렌 님이 스웨덴사람인 줄은 1994년에 알았습니다. 그무렵 한창 한국외대에서 네덜란드말을 배웠는데, ‘네이포스’라 해서 ‘네덜란드·이탈리아·포르투갈·스칸디나비아(스웨덴)’, 이렇게 작은 네 곳(학과)이 사이좋게 어울렸어요. 스칸디나비아말을 배우는 또래랑 밤샘수다를 자주 했어요. 어느 날 “네덜란드말에 《안네의 일기》가 있다면, 스웨덴말에 《삐삐》하고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 있지.” 하고 얘기하더군요. “뭐? 삐삐가 스웨덴사람이야? 닐스도? 처음 알았네! 음, 네덜란드사람은 또 누가 있지? 음!” 그때에는 몰랐으나 ‘환 호흐(van Gogh)’나 렘브란트 말고도 ‘레오 리오니’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 네덜란드사람입니다. 이웃말(외국말)을 배우는 우리들은 이웃말로 아름길을 펴고 아름책을 선보인 어른을 하나둘 알아가면서 새롭게 읽는 동안 기쁘고 놀라웠습니다. 어느 날 ‘종로서적’판 《말괄량이 삐삐》를 헌책집에서 찾았어요. 스웨덴말 또래는 그날 밤샘수다를 하는 자리에서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노래를 신나게 불러 주었습니다. 린드그렌 님하고 라게릴뢰프 님 책을 스웨덴말에서 우리말로 옮기겠노라 꿈꾸던 또래는 언젠가 이 뜻을 펼 날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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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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