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1.27.

숨은책 579


《漢文の學び方 考へ方と解き方(新訂第四版)》

 塚本哲三 글

 考へ方硏究社

 1919.4.25.첫/1941.6.20.166벌



  우리는 한글을 씁니다. 우리끼리 조용히 산다면 한글로 넉넉합니다. 이웃나라를 사귈 적에는 바깥말글(영어·한문)을 익혀요. 사투리는 고장이며 마을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하고 이웃이 사는 마을은 삶터가 다르니 말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웃이 사는 고장이라면 말씨도 삶결도 훨씬 다르고, 이웃이 사는 나라라면 더더욱 벌어집니다. 《漢文の學び方 考へ方と解き方》은 1919년에 첫벌을 찍고 1941년에 166벌을 찍었다는데, 그 뒤로도 엄청나게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문을 배우는 길, 생각하고 푸는 길”이라는 책은 배움책(참고서)인데, 글을 쓰며 한자나 한문을 몰라서는 안 될 옆나라 일본사람으로서는 종이가 마르고 닳도록 펴면서 배워야 했겠지요. 우리는 중국을 섬기던 조선 500해에, 옆나라 일본한테 짓눌리며 따르던 마흔 해 가까운 나날을 보냈어요. 이 사슬도 저 굴레도 푼 지 일흔 해가 지나는 사이, 우리 글살림은 얼마나 피었을까요? 한문 배움책을 쓴 일본사람은 ‘일본글 = 國文’이라고 또렷이 밝힙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국어국문학’ 같은 이름을 못 떨칩니다. ‘국어’도 ‘국문’도 옆나라가 총칼로 찍어누르며 퍼뜨린 말씨인 줄 알아차리지 않으면 ‘한글살림·한글꽃’은 피어나기 어렵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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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27.

숨은책 578


《木賊 內二十二ノ三》

 觀世元滋 訂正

 檜大瓜堂

 1923.8.15.



  헌책집을 다니다가 “무슨 책일까?” 궁금해서 집어들어 펴다가 놀라는 책이 꽤 됩니다. 《木賊 內二十二ノ三》은 일본에서 나온 책입니다. 곱게 엮었고 종이가 반드르르하며, 꾸밈새가 정갈합니다. 그나저나 ‘木賊’이 뭘까 싶어 살피니 ‘속새’란 풀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요, 일본에서는 ‘쇠뜨기’를 가리키기도 한다더군요. 그렇지만 수수께끼는 아직 못 풉니다. ‘손질(訂正)’을 했다는 ‘觀世元滋’가 누구인가 찾아봅니다. ‘노가쿠(能)’를 하고 노가쿠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해서 책으로 여미었다는 ‘칸제 모토시게(かんぜ もとしげ 1895.12.18.∼1939.3.21.)’란 사람이라고 합니다. 《木賊 內二十二ノ三》은 우리로 치자면 ‘판소리 밑글(대본)’이라 하겠어요. 우리로서는 시큰둥할 만한 책이지만, 이웃나라로서는 값진 책이지 싶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은 엮은이가 선보인 《木賊》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갈무리(스캔)해서 올려놓았더군요. 우리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도 ‘판소리 밑글’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올려놓았을까요? 고장마다 다르게 했을 소리를, 사람마다 다르게 펼쳤을 판소리를 얼마나 찾아서 들을 만할까요? 한켠은 부러운, 다른켠은 부끄러운 우리 민낯 가운데 하나일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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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27.

숨은책 577


《제19회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수상작품집》

 김휘훈과 여덟 사람 글·그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21.11.3.



  책을 읽기만 하던 어느 날 이웃님이 “이제 그대도 다른 사람 책은 그만 읽고 스스로 책을 써 보시지요?” 하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늘 조용히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요.” “언제까지 다른 사람 꽁무니만 좇을 생각인가요?” “네? 아직 모르는 아름다운 책이 많은걸요.” “그러니까 언제쯤 스스로 아름다운 책을 새로 쓰겠느냐고요.” 나이 지긋한 이웃님은 마을책집에서 곧잘 뵙는 어르신이었고, 이제 흙으로 돌아가셨겠지요. “어르신이야말로 책을 쓰셔야 하지 않아요?” “나 같은 늙은이 말고 그대 같은 젊은이가 새책을 쓰면 좋겠어요.” 책집이웃인 어르신한테 제가 쓴 책을 건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새책을 쓴다’는 말씀조차 여쭙지 못했습니다. 아직 책을 쓸 생각을 안 하던 그무렵에는 ‘책즐김이가 스스로 책지음이로 왜 거듭나야 하는가’를 헤아리지도 느끼지도 않았어요. 그저 아름책을 찾아 읽으며 뿌듯했어요. 《제19회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 수상작품집》은 2021년에 어느 곳에서 젊은 지음이(작가)를 북돋우려고 벌인 판에서 보람(상)을 받은 누리그림(웹툰)을 그러모읍니다. 그런데 ‘안 파는 책(비매품)’으로 조금만 찍었다더군요. 새빛을 널리 펴도록 책집에 들어가도록 찍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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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5.

숨은책 576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2》

 이와모토 나오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1.1.15.



  시골을 시골스러이 다루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사람으로서 시골을 이야기하는 책도 드뭅니다. 시골을 다루는 책은 시골부터 안 팔리고, 서울에서는 더더욱 안 팔리기에 안 펴낼는지 모릅니다. 이와 달리 ‘시골마실’ 이야기책은 자주 나오고 많으며 제법 팔립니다. 아니, 시골을 ‘놀러갈 곳(여행지)’으로 삼는 책은 앞으로도 자주 많이 나올 테며 자주 많이 읽히리라 느낍니다. 2010년에 인천을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기면서 ‘시골책’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는데, 뜻밖에 그림꽃책(만화책) 가운데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이 2010∼2011년에 걸쳐 석걸음으로 나왔어요. 다만, 이 그림꽃책은 몇 해 안 되어 판이 끊어집니다. 너무 안 팔리고 안 읽혔거든요. 글책·그림책이나 빛꽃책(사진책)으로 시골을 다루는 분이 가끔 있지만, 시골이 시골스럽게 어제·오늘·모레로 이어갈 즐거운 길을 짚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지은이부터 시골에서 안 살고, 펴냄터도 시골에 없다시피 하거든요. 서울(도쿄)을 등진 시골내기(면사무소 직원)가 시골빛을 살리면서 가꾸고픈 꿈을 담은 자그마한 책을 벼슬꾼(군수·공무원·국회의원)부터 읽으면 좋겠습니다만, 책이 사라졌으니 읽히지도 못합니다.


ㅅㄴㄹ


#雨無村役場産業課兼觀光係

#岩本ナ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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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1.14.

숨은책 575


《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

 편집부 엮음

 미국공보원

 1962?



  1990년에 동독·서독은 하나로 모둡니다. 총칼로 푸른별을 어지럽힌 값을 치르느라 둘로 나뉜 독일이요, 우리나라는 총칼로 짓밟혔는데 뜬금없이 둘로 나뉘었어요. 열여섯 살에 독일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는 둘로 쪼개진 슬픔 못지않게 배움터나 마을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마구 패고 괴롭히는 막짓부터 어떻게 좀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참말로 1990년에도 곳곳에서 주먹질이 춤추었습니다. 후미진 골목에는 어린이·여린이 돈을 후리려는 야살이가 득시글하면서 담배를 꼬나물었어요. 미국공보원에서 ‘2-592(34)’을 붙여서 내놓은 《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는 “지난 16년 동안에 400만 명을 넘는 동독 사람들이 자유세계로 탈출했다는 사실은(3쪽)”으로 첫머리를 엽니다. 1962년에 펴내어 뿌렸지 싶은 얇고 작은 꾸러미입니다. ‘서베를린·동베를린’을 갈라서 보여주는 그림은 배움터를 다니는 동안 으레 보던 ‘남녘·북녘’ 그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어른(교사)들은 “저쪽(공산주의 나라)은 굶주린다. 굶주리는 나라에서 살고 싶냐?” 하고 따지듯 윽박질렀습니다. 차마 입으로 벙긋하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굶주리고 싶지도 않지만, 이렇게 날마다 어른들한테 얻어맞는 배움터도 괴롭습니다” 하고 외쳤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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