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4


《春園硏究》

 김동인 글

 춘조사

 1956.5.25.첫/1959.11.30.2벌



  이광수나 김동인은 일본바라기(친일부역)였습니다. 김동인이 쓴 《春園硏究》는 ‘끼리끼리 논다’고 여기면서 집어던질 수 있습니다. 타고난 글바치가 어떤 까닭에 막춤질로 엇나가는 길로 들어섰나를 헤아리자면 이들이 쓴 책을, 더구나 ‘이 일본바라기가 저 일본바라기를 감싼 글’을 읽을 노릇일 테지요. 그런데 《춘원연구》를 읽자니, 첫머리 몇 대목에서만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곰곰이 짚었구나 싶더군요. 그래도 이 몇 대목으로 우리 슬픈 발자취를 톺아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 남은 “各種書籍 東亞書店. 濟州市 一徒二洞”이란 책집 자국이 애틋하고 ‘1961.11.1. 김창선’이란 글씨가 깃들어, 제주 마을책집 발자취 한켠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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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상이 자심했으며 그런 때마다 전 국가의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을 회상하는 길을 막는 수단으로서 전대의 유산을 모두 없애 버렸으매, 예술 유산이라야 풍부하지는 못하다. (10쪽)


《용비어천가》는 이씨 조선을 찬송하기를 강제하는 한낱 정략적 시가에 지나지 못하다 하나, 정략적으로 미루어 그 뒤에 숨은 예술적 가치는 거부할 수 없는 바다. 그러나 암담ㅎ기 짝이 없는 이씨 조선이었다. 이조의 문헌이며 제작품 등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오백년간에 겨우 이것이었던가? (12쪽)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문학 예술의 도취경을 맛본 이 민족은 이러한 빈약한 문학만으로는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정본이며 그 저작까지도 알 수 없는, 많고 많은 평민문학이 애독되고 애청된 크나큰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13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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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6.

숨은책 603


《死線을 넘어서》

 賀川豊彦 글

 김소영 옮김

 신교출판사

 1956.3.20.첫/1956.7.20.두벌



  꿈꾸며 기다리던 책을 드디어 만나면 손끝부터 머리끝을 거쳐 발끝까지 짜르르합니다. 벼락을 맞은 듯해요. 널리 사랑받는 책이라면 새책집이건 헌책집이건 손쉽게 만납니다. 사랑을 덜 받거나 못 받고서 사라진 책이라면, 사라진 지 한참 된 책이라면, 돈이 있더라도 장만하기 어려워요. 몇 안 남은 어느 책을 선뜻 내놓는 ‘낯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님(독서가)’이 있기에 비로소 책 한 자락을 반가이 마주합니다. 《死線을 넘어서》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분이 쓴 책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이는 1909년부터 열네 해를 가난마을(빈민굴)에서 가난님(빈민)하고 벗하면서 살았다지요.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1920년에 글로 담은 《사선을 넘어서》입니다. 이녁은 가난님도 가멸님(부자)도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살림을 짓는 길을 헤아린 끝에 ‘살림두레(생활협동조합)’를 처음으로 열어요. 나라(정부)에 기대지 않고 총칼(군대)을 없애는 길이 ‘살림두레’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1956년에 나온 책을 제주 헌책집 〈책밭서점〉에서 만났어요. 속에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요. 소매·도매 濟州書林. 濟州市 二徒一洞”이란 글씨가 꾹 박혔습니다. 1956년에 어느 제주사람이 〈제주서림〉에서 만난 책이 오늘까지 이어왔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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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1


《씨앗의 희망》

 헨리 데이빗 소로우 글

 애비게일 로러 그림

 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2004.5.18.



  전라남도 두멧시골에서 살며 부릉이(자가용)를 안 거느리기에, 늘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시골버스를 탑니다. 걸으며 면소재지·읍내를 지나가든, 시골버스를 타든, 이때에 스치는 숱한 시골 어린이·푸름이 입에서 끔찍하다 싶은 막말·거친말이 끝없이 쏟아집니다. 시골버스 일꾼(버스기사)은 이따금 “이 xx들아, 좀 조용히 못 해!” 하고 윽박지르더군요. 시골아이나 시골어른이나 똑같아요. 상냥말이 없습니다. 《씨앗의 희망》은 소로우 님이 쓴 “씨앗이 퍼지다(the Dispersion of Seeds)”를 옮긴 책입니다. 씨앗은 참말로 퍼집니다. 바람을 타고, 풀벌레나 숲짐승이나 새가 옮겨서, 또 사람이 손바닥에 얹어 새터에 심으면서 퍼져요. ‘말씨·글씨’라는 우리말처럼, 우리나라 옛사람은 말이든 글이든 늘 ‘씨(씨앗)’로 여겼습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둔다” 같은 옛말처럼, 아무 말이나 안 하도록, 언제나 사랑으로 말하도록, 어른부터 스스로 가다듬고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려고 했어요. 이런 삶길을 우리는 언제부터 잊다가 잃었을까요? 흔히 소로우 님 《월든》을 많이 읽지만, 저는 《씨앗의 희망》이야말로 곁책으로 삼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이 풀꽃나무요, 풀꽃나무가 숲이요, 숲이 사람이며, 사람이 사랑이에요.


#theDispersionofSeeds #HenryDavidThoreau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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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0


《우편번호부 1971》

 체성회 엮음

 체신부

 1971.3.1.



  요새는 우체국에서 우편번호부를 안 나눠 줍니다. 길이름(도로명 주소)을 요즈음처럼 가르기 앞서는 우편번호부가 단출했으나, 이제는 깨알글로 두툼한 책 석 자락입니다. 예전에는 글월을 자주 많이 쓰는 사람한테 작고 단출한 우편번호부를 나누어 주었어요.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우체국 일꾼한테 “새해 ‘우표발행계획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봄에는 “우편번호부가 새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편번호부 1971》는 제가 태어나기 앞서 나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다녀오며 얻은 우편번호부도 1971년치처럼 얇고 작았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도 이렇게 작다가, 2000년을 넘어서며 크고 두툼했는데, 하도 사라지는 골목이 많고 새로 올리는 잿빛집(아파트)에 큰집이 늘다 보니 우편번호를 촘촘히 가르는 판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따금 우편번호부를 들추면서 낯선 고장을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아, 이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우편번호를 따라 인천에서 강원도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제주도로, 충청도로 넘실거렸습니다. 나들이는 들숲바다를 품고 해바람비를 마주하는 느릿느릿 느슨한 길입니다. 요새는 길이 너무 크고 많고 빠르기까지 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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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599


《환경 가계부》

 혼마 미야코 글

 환경운동연합 환경교육센터 옮김

 시금치

 2004.12.10.



  사람은 나날이 발돋움할까요, 나날이 길들까요?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길들고, 스스로 생각해서 하면 발돋움합니다. 누가 가르치기에 즐겁지 않아요. 스스로 배우려고 나서기에 즐거워요. 둘레를 보면 온통 배움거리입니다. 배움거리란 삶입니다. 풀꽃을 배우고 구름을 배웁니다. 벌나비를 배우고 풀벌레를 배워요. 이따금 책으로도 배우는데, 스스로 몸을 놀려 해보기에 비로소 배웁니다. 어린 날 어머니 어깨너머로 살림길을 배웠는데, 어머니는 늘 “왜 나한테서 배우려고 해? 학교에서 안 가르치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배움터는 삶·살림·사랑을 안 가르쳐요. 배움책(교과서)에 따라서 틀(지식)을 외우도록 이끄는 배움터입니다. 《환경 가계부》가 처음 나올 무렵에는 큰고장에서 살며 여러모로 배웠습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긴 뒤에는 이 책을 들출 일이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서울·큰고장에서 푸르게 살자면 이모저모 마음을 기울이면서 바꿀 길이 잔뜩 있어요. 빠르거나 크거나 많이 누리는 터전인 서울·큰고장이거든요. 이 책은 ‘햇볕불(백열등)’이 나쁘고 ‘반짝불(형광등)’이 좋다고 적으나, 반짝불은 ‘형광물질’이 있어 끔찍해요. 햇볕불은 ‘햇볕을 옮긴 빛’이요, 다 써도 유리·쇠붙이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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