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9.

숨은책 612


《佛敎 第三十七號》

 권상로·최남선 엮음

 불교사

 1927.7.1.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들려주던 어른들이 영 마뜩찮은 어린 나날입니다. 지난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름을 남길 일을 해야 사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굳이 ‘이름을 남길 사람’이 되어야 하나 싶어 쀼루퉁했고, 범 같은 숲짐승을 고작 가죽붙이로 여기는 눈길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 옛말은 잊히지 않아요. 어린 나날 듣던 옛말을 다시 새겨 본다면 ‘우두머리(권력자)만 이름을 남기는 판’이 아닌, ‘아이하고 숲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서로 이름을 부르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지으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합니다. 《佛敎 第三十七號》는 1927년 아닌 ‘昭和二年’에 나온 작은 달책(잡지)입니다. ‘大正十三年’에 첫걸음을 떼었다지요. 겉도 속도 온통 새까맣게 한자에 한문입니다. “崔南善 先生 解題, 海東高僧傳·大東禪敎考”라 적은 벼리(차례)를 보건대, 서슬퍼렇던 지난날 권상로·최남선 두 사람이 절빛(불교)을 일구려던 땀방울이 밴 자취가 이름으로 남은 셈이기도 하겠으나, 흙을 짓고 아기를 돌보며 젖을 물리던 수수한 사람들은 도무지 읽을 길이 없는 글짓기를 하던 모습을 엿볼 만하기도 합니다. 어쩔 길이 없어 ‘昭和·大正·大日本’이란 이름을 꼭 써야 했을까요?


“다만大東禪敎考는 大日本續藏經에入刊되엇스나 누에게드려서던지 朴永善(竹尊)의撰이라한것은 誤니라.”(32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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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4.

숨은책 611


《春園文庫 7 사랑의 東明王》

 이광수 글

 문선사

 1955.10.30.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열네 살인 1988년에 ‘이광수’ 이름을 듣고 《흙》 《무정》 같은 책이름을 들었으며, 배움수렁에서 살아남자면 이 글을 읽어야 했는데 1980년 끝자락에 나온 숱한 글보다 훌륭하구나 싶었습니다. 이이가 일본 앞잡이를 했다는 말을 듣고는 “글만 쓰는 똑똑한 놈이 가장 먼저 알랑거릴까?” 싶었어요. 살림짓기하고 등진 채 글바라기일 적에 어리석은 길을 갈 테지요. 《春園文庫 7 사랑의 東明王》을 헌책집에서 만났습니다. ‘경복중학교 도서관, 등록번호 21668’이란 자국이 남은 책은 “빌린이 없음”이요, 경복중 배움책숲은 “표어 : 독서는 향상의 길, 주의 :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침칠을 마십시오”란 글자락을 남깁니다. 그런데 책은 ‘읽은 손때’가 잔뜩 뱄어요. 지난날 경북중학교 푸름이는 ‘이광수 글’은 읽되 ‘읽은 이름’만 안 남겼지 싶더군요. 그나저나 이광수 글을 ‘노벨문학상’으로 보내자고 생각한 이가 있었다니, 이육사·심훈·한용운·윤동주 글도 아닌 헛것을 치켜세우려는 이들은 ‘고은 노벨문학상’을 외치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春園先生은 六·二五動亂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消息이 묘연하여 生還을 빌고 있거니와, 그 밖에도 두가지의 슬픈 사실이 있다. 하나는 先生의 存命中에 ‘노오벨賞’을 받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이요, 또 하나는 아직까지 ‘春園全集’이 成就되지 못한 일이다.” (춘원문고 발간취지 19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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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1.

숨은책 581


《重要 英單語講義, 語源と成句と用例をを示せろ》

 岡澤 武 엮음

 光丘學園出版部·東亞出版社

 1943.9.10.



  열일곱 살까지 ‘월요일∼일요일’ 같은 말씨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한창 영어를 익히고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첫 낱말부터 끝 낱말까지 두벌을 읽는 동안 문득 아리송했어요. “예전에는 우리한테 ‘요일’이 없었을 텐데? 누가 언제부터 지어서 쓴 말이지?” 이 수수께끼를 푸름이일 적에는 못 풀었지만, 한자 ‘월화수목금토일’을 우리말 ‘달불물나무쇠흙해’라 할 만하겠다고는 생각했습니다. 둘레에 이렇게 쓰는 분이 이따금 있기도 했습니다. 적잖은 동무들은 “넌 참 귀찮게 산다. 뭣 하러 그렇게 쓰니?” 하며 혀를 찼고, “우리말로 새롭게 나타내 보아도 재미있잖아? 훨씬 알기 쉽지 않니?” 하고 대꾸했습니다. 《重要 英單語講義, 語源と成句と用例をを示せろ》는 ‘말밑·삶말(관용구)’을 바탕으로 영어를 깊고 넓게 익히는 길을 들려줍니다. 책끝에 “附. 週日の名と月の名”이라며 ‘월요일∼일요일’을 붙입니다. 찬찬히 짚자니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가리키며 쓰는 한자말’은 모두 일본 한자말 같습니다. 우리가 익히는 영어는 처음에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으니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대로 ‘영어’를 쓰고 가르치고 배우는 셈이에요. 영어 낱말책·배움책도 곧잘 일본책을 베끼기 일쑤였는데, 앞으로는 바뀔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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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1.

숨은책 595


《續 農民讀本》

 橫尾三郞

 農村硏究會

 1936.1.10.



  윤봉길 님이 《농민독본》을 내놓던 1927년 무렵 우리나라는 시골나라(농업국가)였습니다. 누구나 시골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었으니 시골사람이 마음을 새롭게 뜨며 일어서는 길을 펴는 책을 엮을 노릇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을 헤아리거나 걱정하면서 시골에서 살림을 짓고 뜻을 편 글바치는 드물었어요. 하나같이 서울로 나아갔습니다. 이광수 씨는 1932년부터 《흙》이란 글을 썼되 막상 흙사람으로 살지 않았어요. 심훈 님은 1935년에 《상록수》를 내놓았고, 시골집에서 1936년에 숨을 거둡니다. 《續 農民讀本》은 일본사람이 일본 시골을 헤아리면서 쓴 책입니다. ‘속’이란 이름이 붙듯 일본 《農民讀本》도 여럿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도 일본도 시골나라·논밭나라이지만, 우두머리는 시골·논밭뿐 아니라 숲·바다를 헤아리는 마음이 얕거나 없었습니다. 두 나라 우두머리·벼슬아치는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굴레를 씌웠고, 일본 우두머리는 총칼을 앞세워 제 나라부터 억누르고 이웃나라로 쳐들어갔어요. 숱한 글바치는 이런 우두머리 앞에 조아렸습니다. 오늘을 돌아보면 시골·논밭·숲·바다를 품으며 하루를 노래하고 사랑하는 손길이 매우 얕습니다. 시골은 ‘친환경’이 없습니다. 고스란히 ‘숲’으로 푸르니까요.


http://books-toeisha.jugem.jp/?eid=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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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1.

숨은책 609


《영국 여성 운동사》

 실라 로우버덤 글

 이효재 옮김

 종로서적

 1982.10.30.



  빌리는 책은 깨끗하게 읽고서 돌려줍니다. 곱게 보라고 빌려줄 테고, 속이야기를 고이 새기려고 빌립니다. 손수 건사하는 책은 두고두고 읽을 생각이니 깨끗하게 봅니다. 한 벌 읽고서 더 들출 생각이 없더라도 함부로 굴고 싶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책에 글씨도 그림도 밑줄도 빗금도 못 넣었으나, 열네 살에 들어간 푸른배움터부터 배움책에 이모저모 잔뜩 적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낀 대목을 적노라니 더는 책을 못 빌립니다. 빌려읽다가는 적고픈 대목을 지나쳐야 하거든요.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이 책에 남기고 싶기에 ‘빌리는 책’은 접고 ‘사는 책’으로 돌아섭니다. 《영국 여성 운동사》는 이효재(1924∼2020) 님이 우리말로 옮깁니다. 순이물결(여성운동)을 새롭게 펴려는 뜻으로 선보입니다. 이 책이 나올 무렵이든 더 옛날이든 요즈음이든, 집일을 않고 아이를 안 돌보는 돌이(남성)는 참 많습니다. 순이 목소리를 귀여겨듣고 보듬는 길이란 돌이도 돌이로서 빛나는 길입니다. 책 안쪽에 “여주에게. 역자. 1983.4월.”이란 글씨가 투박합니다. 책을 받은 ‘여주’ 님은 어떤 삶길을 걸으셨을까요. 메마른 땅에 푸르게 꿈씨를 심는 나날이었을까요. 누구나 집일하고 살림을 함께한다면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이룬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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