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 -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지음 / 삼천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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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1



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짓는가

―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글

 삼천리 펴냄, 2012.9.14.



  한겨울에 시골집에서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서울쯤 되는 도시에서라면 이렇게 지내지 못할는지 모르나, 고흥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바깥에서도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다만, 읍내나 면소재지로 마실을 갈 적에는 긴바지를 입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길 때문에 긴바지를 입는다기보다 ‘그냥 옷’이니까 긴바지를 입고 나갑니다. 집에서는 ‘그저 반바지’차림으로 있습니다.


  한겨울 고흥에서 바깥은 영 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우리 집은 바람이 잘 드나들어 방 온도가 15∼16도쯤 되고, 조금 포근한 날에는 17∼18도쯤 됩니다. 바깥 날씨가 영 도 밑이라면 긴바지를 입을 만하지만, 영 도 밑이 아니라면 반바지를 입어도 춥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두툼한 바지를 입어도 이 겨울에 추워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몸이 다르거든요. 이를테면,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지낸다면 두툼한 솜옷을 입어도 추울 만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사는 사람이 한국에 와서 지낸다면 어떠할까요? 이들도 한국에서 두툼한 솜옷이나 가죽옷을 입으려 할까요?



.. 조선 인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79명은 일본 천황으로부터 공작, 후작, 백작 같은 귀족 작위와 7백만 엔이 넘는 ‘은사금’과 ‘표창’을 받았다 … 조선에서 일본에 필요한 식량과 원료를 확보하고, 총독부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는 토지세를 유지하며, 통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도 일본은 토지를 직접 소유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에는 무엇보다 토지의 가격이 싼 반면에 지주가 거둬들이는 소작료는 몹시 높았기에 투자할 절호의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 ..  (51, 55쪽)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전라남도 바닷마을과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강릉과 목포에서 짓는 삶은 서로 다릅니다. 남녘과 북녘이 짓는 삶은 다르고, 중국과 일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그러니, 나라와 겨레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삶터마다 다 다릅니다. 내가 이렇게 한대서 너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이 밥을 먹으니 내가 이 밥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네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게 네 머리카락 모습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머리카락 모습처럼 길게 기르거나 짧게 쳐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른 우리 삶을 저마다 즐겁게 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말’을 쓰면서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평화입니다.



.. 일본의 젊은 세대들한테서, “조선 사람이 왜 일본에 살고 있는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60만 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은 주로 토지를 수탈당했거나 징용, 징병으로 일본에 끌려오거나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 조선인 사회에는 연장자 앞에서는 담배나 술 따위를 멀리하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젊은 일본인 경관이나 관리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되는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이, 이봐” 하고 반말을 일삼았다 ..  (59, 94쪽)



  백종원 님이 쓴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삼천리,2012)를 읽습니다. ‘재일조선인 1세’로서 겪은 20세기 이야기가 이 책에서 흐릅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온 나날 이야기가 이 책에서 흐릅니다.


  백종원 님은 한 마디로 말합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조선 사람’이고, 어느 곳에서 살든 ‘조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조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훌륭하거나 뛰어날까요? 아닙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덜떨어지거나 어리숙할까요? 아닙니다.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낫지 않고, 일본 사람이 중국 사람보다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이고, 저마다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 만철은 유능한 조사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기관은 소련이나 중국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산업과 교통에서 기후, 풍토, 수질, 질병, 민족, 종교, 풍속, 관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를 상세하게 연구했는데, 연간 예산이 옛 도쿄제국대학에 필적할 정도로 방대했다고 한다 … 우리 중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관동군 병영에 실제로 입소하여 군사교련을 받게 되어 있었다. 만철 연선의 궁주령 병영에서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때, 나는 학우 몇 명을 모아 배속 장교에 대한 욕을 잔뜩 적은 항의 글 나무패를 병영 한 귀퉁이에 세워 두었다. 그런데 우리 조와 교대한 조의 선생한테 발각되어 교무회의에서 문제가 되었다 ..  (103, 106쪽)



  일본은 그만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이웃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일본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짓은 나와 너 모두를 괴롭혀요. 오늘날에도 일본 정치조직은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수많은 이웃사람을 괴롭히지요. 그리고, 이러한 바보짓은 고스란히 저 스스로를 겨냥해요.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괴롭히는’ 꼴이거든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아끼는 사람은 바로 내가 나 스스로 아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일삼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아름답게 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눌려야 했던 여러 나라 여러 겨레도 괴로운 일이었으나, 군홧발로 이웃을 짓누르는 사람은 바로 제 스스로 짓누르는 셈입니다. 스스로 괴로운 짓을 하면서 스스로 괴로운 줄 모르거나 잊는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치와 사회를 보면, 그네들 스스로 어떤 짓을 했는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 제대로 알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 못하니 제대로 살지 못해요.



.. 나는 조선인 소학교의 학생이었으나 이런 동화정책에 아이 나름으로 저항했다. 당시 일본 교장이 〈교육칙어〉를 암송하라고 강요했는데, 우리들은 그 첫 부분 “짐이 생각하기에”를 우리 말 발음으로 그럴싸하게 바꾸어 “친할머니가 콩을 달달 볶길래 한입 먹었더니 배탈이 나서”로 개사했다. 일본인 교장이 근엄한 얼굴로 칙어를 읽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고쳐 만든 ‘칙어’를 작은 목소리로 읊었는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졌다 … 우리 조선인 학생들은 한가로이 찻집에나 처박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지로 내몰리지 않으면 안 될 조선의 학생들에게 한마디 위로라든가 의미 있는 말은커녕, 일본의 지배자들과 한목소리로 ‘성전승리’를 위한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야말로 ‘조선인으로 영광’이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최남선은 뒷날 괴뢰 ‘만주국’의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건국대학의 교수가 되고, 이광수는 ‘황도문화’를 선전하는 문인보국회에 들어갈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  (134, 181쪽)



  네가 나를 때렸으니 ‘네가 잘못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맞은 사람은 두 발 뻗고 잠들어도, 때린 사람은 두 발을 못 뻗으며 잠도 못 자기 마련입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은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으며, 남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언제나 웃으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무기로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아요. 전쟁무기로는 전쟁만 끌어들입니다. 전쟁무기로 이웃을 괴롭힌 사람은 전쟁무기를 죄다 버리면서 스스로 삶을 뉘우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일본 정치와 사회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네들 스스로 전쟁무기를 못 버리기도 하면서, 그네들 스스로 삶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도 비슷해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전쟁무기를 엄청나게 끌어안습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도 군대와 전쟁무기를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한국 정치와 사회부터 평화와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한국 정치와 사회부터 참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 일본 제국주의의 패배라는 근본적인 변혁기에 즈음하여 이은 씨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상담하기 위해 만수사에 온 듯했다. 그런데 스님은 “당신은 열한 살에 인질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조선이 멸망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은 없소. 하지만 우리 민족이 수난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당신은 왕족 대우를 받아 육군 대장도 되고 참담한 민족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이 점을 당신은 스스로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스님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민족 앞에 사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조선으로 돌아가 똥거름도 지고 백성으로서 농사를 짓고, 방자 씨는 보육원이나 유치원의 보모가 되어 열심히 조선의 아이들을 돌본다면 민족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이오.” ..  (233∼234쪽)



  정치나 사회가 발돋움하는 길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끌어들여서 경제성장을 해도 이럭저럭 발돋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는 겉치레일 뿐입니다. 정치나 사회가 참답게 발돋움을 하자면,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텃밭을 일구어야 하고, 국회의원이나 의사나 신문기자도 텃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텃밭이 집집마다 있어야 하고, 모든 집에는 마당이 있어서 나무를 심어서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집집마다 있는 텃밭과 마당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뜯으며 나무를 보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낮을 보내며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정치나 사회가 발돋움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삽니다.


  임금님이니까 똥거름을 안 져도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이니까 농사를 안 지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이니까 나물을 안 뜯어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자나 기술자이니까 나무를 안 심어도 되지 않습니다.


  정치나 사회가 뒷걸음을 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을 거머쥐는 이들은 모두 흙과 등을 집니다. 권력과 돈과 이름을 거느리는 이들은 모두 시골과 등을 돌립니다. 글을 깨작거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풀도 꽃도 나무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는데다가, 별도 해도 바람도 구름도 안 쳐다봅니다.



.. 조선에 대한 멸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지만, 이는 에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후 ‘정한론’ 속에서 퍼지며 청일·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점점 더 커지게 된 사회적 풍조라고 생각된다 ..  (258쪽)



  이야기책 《조선 사람》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고향으로 삼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제 뿌리를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태어난 뿌리를 함께 사랑하려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이 지구별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가슴에 ‘평화’라는 이야기를 새겨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를 바라는 숨결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참말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삶짓기입니다. 4348.2.10.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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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애숙 옮김 / 삼천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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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8



너와 내가 이웃이 되려면

― 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

 이애숙 옮김

 삼천리 펴냄, 2012.8.17.



  우리 집에서는 살림돈을 조금 모으면 으레 ‘오키나와 까만설탕(흑당)’을 장만합니다. 오키나와에서 자라는 사탕수수를 그대로 졸여서 만든 ‘까만 덩어리’는 더없이 맛나고 여러모로 쓰기에 좋습니다. 배고플 적에 먹어도 되고, 기운이 빠졌을 적에 먹어도 되며, 떡볶이를 할 적에 넣어도 됩니다. 사탕처럼 먹어도 맛나지요.


  그런데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뒤로 ‘오키나와 까만설탕’을 손사래치는 사람이 꽤 늘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일본하고 오키나와(류큐)는 서로 다른 나라인데, 후쿠시마 핵발전소하고 ‘오키나와 까만설탕’이 어떻게 이어진다고 그럴까 아리송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일본이고 류큐(오키나와)는 류큐이기 때문입니다.


  정 모르겠다면, 세계지도를 펼치면 됩니다. 세계지도를 펼쳐서 ‘류큐’가 어디에 있고, 류큐섬에 있는 ‘나하’라는 도시가 일본 도쿄나 후쿠시마하고 어느 만큼 떨어졌는지 자로 재 볼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 자로 다시 류큐와 한국이 어느 만큼 떨어졌는지 재 볼 노릇이에요. 류큐섬하고 어느 나라가 더 가깝고 어느 나라가 더 멀까요? 후쿠시마하고 훨씬 가까운 나라는 어디일까요?



.. ‘나는 왜 오키나와에 가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너는 왜 오키나와에 오는가?’라고 거절하는 오키나와의 목소리와 겹치며 언제나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 본토 일본인은 오키나와 화생방 부대의 위협이 없는 땅에서 원자력잠수함의 자유로운 출입에 대한 방호책을 대충은 갖추고 살고 있다 … ‘과연 원폭 체험은 일본인에게 참 경험이 되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만 한다. 어쩌면 원폭의 참 경험이라는 인간적 샘물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갈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  (18, 51, 109쪽)



  일본은 류큐섬을 식민지로 삼다가 미군기지로 내주었다가 일본땅 가운데 하나로 끌어들였습니다. 일본이 류큐섬을 식민지로 삼기 앞서까지 류큐섬은 홀로 아름답게 삶을 이루던 터전입니다. ‘일본에 있는 오키나와’가 아니라 ‘태평양에 있는 류큐’입니다.


  그런데 이 류큐섬 옆에 ‘게라마 줄섬(열도)’이 있고, 게라마섬에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천황을 섬긴다고 하면서 아시아에 전쟁바람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 군대가 류큐섬 사람들을 모질게 괴롭히고 짓밟다가 죽였어요. 이 같은 이야기는 ‘마루키 도시’ 님과 ‘마루키 이리’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오키나와의 목소리》(꿈교출판사,2013)에도 아주 잘 나옵니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오키나와의 목소리》를 읽으면, 평화로우며 사랑스럽던 작은 ‘섬나라 류큐’에 어떤 군대가 끔찍하게 몰려들어 온통 잿더미와 주검더미로 만들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류큐사람은 조선사람처럼 ‘일본에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야’ 했고, 류큐사람도 조선사람처럼 나가사키에서 핵폭탄에 맞아서 죽거나 피폭후유증으로 오랜 나날 괴롭게 앓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짓이라 할 텐데, 일본은 일본이라고 하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그악스럽게 괴롭힙니다. 더 들여다보면, 일본은 일본이라는 테두리 안쪽에서도 저희끼리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와 다르지 않아요. 한국도 한국이라고 하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한국으로 오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가 어떤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는지 들여다보면 잘 알 만합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쪽에서도 학벌에 따라 따돌리고, 지역차별이 크며, 성차별과 신분차별도 끔찍합니다.



.. 오키나와에는 일하러 가서 피폭되어 귀향하거나 원폭 관련 질병에 대한 전문적 치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수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생존해 있다. 하지만 원폭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방법이 없어서 피폭자들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다 … 나하 군항에서 일하는 잠수부들이 몸에 이상을 호소했다. 코발트-60에 오염된 진흙을 계속 채취하여 체내에 오염을 축적시킨 물고기 틸라피아와 섭조개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미군은 잠수부들의 이상이 방사능과 관련 없다고 단언하고서 그들을 본토 원폭병원으로 보내려던 전군노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  (29, 48쪽)



  평화를 바라려면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려면 손수 흙을 지어야 합니다. 총이나 칼을 든 평화란 없습니다. 권력을 한손에 거머쥔 채 평화를 말할 수 없습니다. 돈주머니를 홀로 꿰찬 채 평화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신분과 계급을 가른 채 평화를 읊는 일이란 덧없습니다.


  전쟁무기가 있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삶과 사랑과 꿈은 안 가르치면서 시험성적으로 등급과 계급을 만드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제국주의 일본도 평화롭지 않았으나, 오늘날 한국 사회도 평화롭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람을 사람답게 돌보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이웃을 아끼거나 섬기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습니다.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느니 경제개발이라느니 하고 내세우면서 온 나라를 뒤집어엎는 짓을 잇달아 벌입니다. 한국에서 왜 새마을운동 같은 끔찍한 짓이 생겼고, 이런 새마을운동 깃발은 아직도 펄럭일까요? 한국은 조금도 안 평화롭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새마을운동 바람이 분 뒤로, 시골을 고향이나 보금자리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고, 아직도 새마을운동 깃발이 펄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시골이 시골답게 있을 수 없습니다.



.. 나는 우익이 쳐들어왔다고 쓰고 싶지는 않다. 우익이 방해 연설을 했다는 말도 사용하지 않겠다.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쳐들어온 자들이나 더러운 말을 내뱉는 남자와 내 피가 직접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오키나와가 미국 군부뿐 아니라 본토 일본인이 새삼 인지한 핵기지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한테 물었다.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씁쓸히 침묵하는 내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 복귀는 ‘평화의 거점으로서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  (142, 154쪽)



  오에 겐자부로 님이 쓴 《오키나와 노트》(삼천리,2012)를 읽습니다. 1960년대 끝무렵부터 1970년대 첫무렵 사이에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어느덧 마흔 해나 묵은 글인데, 마흔 해를 묵은 글이라지만, 류큐(오키나와)와 일본을 묶는 슬픈 쇠사슬은 제대로 풀렸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사랑스러운 끈이 아닌 그악스러운 쇠사슬이 너무 단단합니다.


  한국사람은 왜 서울로 가려고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서울에서 살려고 할까요? 서울이 아니면 부산, 부산이 아니면 대구, 대구가 아니면 인천이나 대전, 또 이런저런 큰도시, 저런그런 큰도시, 오직 도시만 바라보는 얼거리인데, 왜 자꾸 이렇게 나아가려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대학교를 가야 할까요? 대학교 졸업장은 왜 따야 할까요? 왜 꿈을 안 키우고 졸업장만 따려 할까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왜 교과서 시험공부만 하고, 삶과 사랑과 꿈을 키우는 공부는 안 하거나 못 할까요?



.. 1903년의 이른바 인류관 사건은 당연히 그런 오키나와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권업박람회 기간에 학술 인류관이라는 부스에 오키나와 여성 두 사람이 ‘진열’되었다. 그녀들은 곰방대와 야자수잎 부채를 들고 오두막에 앉아 있었고, 채찍을 든 남자가 여인들을 ‘이놈’이라고 부르며 설명했다고 한다 … 볼도저의 굉음,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찬미하는 노랫소리는 그 의문의 목소리를 뭉개고 울려퍼지지만, 언제까지 굉음과 노랫소리를 지를 생각인 것일까 … 오키나와에 대한 무지의 단순화는 의식적인 회피와 냉혹한 일본인의 행태를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침략적으로 날뛰지 않을 때조차 일본인은 단순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인을 차별했다 ..  (165, 167, 171쪽)



  너와 내가 이웃이 되려면 서로 무엇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주먹을 휘두르면서 서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나한테 더 있는 돈을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배가 고픈 이웃한테 밥 한 그릇 내주지 않으면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내 손에 있는 것을 서로 나누려 하지 않을 적에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서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지 않고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오에 겐자부로 님은 《오키나와 노트》라는 책을 쓰면서 ‘류코와 일본 사이에 맺힌 앙금’을 모두 풀지는 못합니다. 아마 풀 수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풀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서로 이웃이 되면 앙금이란 없어요. 서로 벗이 되고, 서로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되면 어떠한 앙금도 없습니다.

  이를테면, 왜 류큐에 미군기지를 그렇게 많이 두어야 했을까요? 도쿄 앞바다에 미군기지를 두어야지요. 왜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세웠을까요? 도쿄 한복판에 핵발전소를 세워야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커다란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짓겠다면, 서울이나 부산 말고 문경이나 장흥 같은 데에 지어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면, 서울이나 부산 한복판에 지어요. 대학교가 서울에 이처럼 많이 다닥다닥 모이도록 하지 말고, 서울에는 딱 한 군데만 남기고, 다른 모든 대학교는 군마다 한 군데씩 있도록 해야지요. 모든 길이 서울과 부산으로만 이어지도록 하지 말고, 군과 군 사이를 살가이 잇는 작은 길을 내야지요. 군부대와 전쟁무기를 몽땅 없애고, 군부대와 전쟁무기에 들이던 돈은 이제부터 마을과 삶을 가꾸는 데에 써야지요. 경제개발이나 경제발전은 살포시 내려놓고, 사랑과 꿈을 아이들이 품고 키우면서 일구도록 이끌어야지요. 대외무역에 기대지 말고, 이 나라에서 먼 옛날부터 모든 것을 손수 지어서 손수 누렸듯이, 모든 집·밥·옷을 누구나 손수 지어서 얻고 가꿔서 누리는 길로 나아가야지요.


  댐을 지어 수돗물을 쓰는 얼거리가 아니라,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냇물을 마시도록 해야지요. 큰 발전소를 짓는 얼거리가 아니라, 집집마다 제몫으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도록 해야지요.



.. 자신들이 방치하고서 적을 향할 무기를 거꾸로 겨누고 자행한 강간에 대해, 먼저 자신을 속이고는 기만하기 쉬운 타인부터 의심 많은 타인까지 ‘거짓말’로 계속 왜곡시켜 나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 눈에 강간이 아름다운 ‘한순간의 사랑’으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둔감한 상상력으로 그는 오키나와 현장에서 오키나와 여성 피해자가 “아니야, 그건 강간이었어!” 하고 소리치며 규탄하는 손가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게라마 집단자결의 책임자도 그런 자기기만과 타자에 대한 기만을 끊임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보상하기에는 너무나 큰 죄 앞에서 그는 미치지 않고 어떻게든 살고 싶어 한다. 그는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과 왜곡되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 죄를 상대화시킨다. 그리고 자기변호의 여지를 남기려고 과거 사실의 날조에 힘을 쏟는다 … 실제로 지금 재일조선인을 둘러싸고 젊은 세대의 윤리적 상상력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번 보라. 지극히 평범한 어리석은 고등학생이 실체도 모르는 것과 연결된 사명감, ‘어떤 고양감’에 휩싸여 조선 학생을 때리는 치졸하고 파렴치한 실상을 보라. ‘전쟁 중에 일어난 여러 사건과 아버지들의 행동’과 똑같은 짓을 신세대 일본인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반복할 때 … 오키나와의 무한한 이의제기의 목소리를 묵살하려고 못 들은 척 하거나 들을 수 있는 귀를 키우지 않는 것은 국가 범죄로 가는 새로운 포석이 아닐까 ..  (184∼185, 189쪽)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이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함께 노래하고 웃으면서 춤을 춥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기에 ‘경쟁’이 불거지고 ‘순위’와 ‘등급’이 나타납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쓰레기는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할 때에 먼 옛날부터 곱게 잇던 두레와 품앗이가 저절로 마을마다 되살아날 테니, 굳이 협동조합 같은 것은 없어도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기에, 스스로 노래를 안 부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길을 짓지 않기에, 신문과 방송과 책에 휘둘린 나머지, 손수 짓는 삶과 자꾸 동떨어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지 않으면 벼랑까지 그대로 나아가다가 그만 굴러떨어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어야, 바로 이곳에서 아름답고 푸른 숲을 이룹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지 않으면 이 지구별은 그만 꽝 하고 터집니다. 바보스레 걷는 길을 멈추어야, 바로 이 지구별이 온누리에 맑고 밝게 빛나는 사랑스러운 터전으로 거듭납니다. 4348.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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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5-01-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키나와의 아픈 과거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프로그램에서도 태평양전쟁당시 일본위 만행이 언급되었습니다. 얼마전 선거때도 오키나와 주일미군이 이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숲노래 2015-01-14 10:49   좋아요 0 | URL
네, 오키나와 역사는 `일본 역사`라고 할 수 없기도 하고,
그곳, 류쿠는
외려 일본보다 한국하고 문화와 삶이
한결 가까이 이어지기도 해요.

가만히 보면, 지도로 볼 적에도
뱃길이 류큐와 한국은 한결 가깝지요.
여름과 겨울에 바뀌는 바람을 타면
그야말로 옛날에는
류큐와 한국은 서로 자주 오갔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두 겨레가 일본한테 끔찍한 짓을 겪기도 했고요..
 
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6


 

살아온 나날과 살아갈 꿈

― 역사가의 시간

 강만길 글

 창비 펴냄, 2010.5.20.



  역사는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내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어버이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온 발자국이랑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온 발자국입니다.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친 시험지식입니다.


  중학교에 들어설 무렵 비로소 ‘역사’라는 이름을 지식으로 맞이합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도 ‘역사’나 ‘국사’나 ‘사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지식을 맞이했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니, 하나라도 이름과 숫자를 잘못 외면 죽죽 그으면서 틀렸다는 말을 듣습니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역사는 오직 ‘시험을 치르면서 머릿속에 외워야 하는 통계와 숫자’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치니 젊은이가 역사를 모른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를 다루려 하기 때문에 젊은이가 역사를 도무지 모르는 머리나 마음이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과서는 ‘정치집권자 이름과 발자국’을 그러모은 시험문제일 뿐입니다. 대학입시에 따라 엮은 어설픈 ‘시사상식’입니다.


  대통령 이름이 역사일까요? 이것도 역사라면 역사일 테지만, 삶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역사입니다. 임진왜란이 터진 햇수가 역사일까요? 일제강점기가 언제인가 하는 숫자가 역사일까요? 매국노와 독립운동 같은 이름이 역사일까요? 새마을운동이 역사일까요? 자유무역협정이 역사일까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역사일까요?



.. 조선청년들이 처음에는 지원병으로, 다음에는 징병으로 일본군대에 입대하게 되면, 그 집에는 며칠 전부터 높은 깃발이 세워지고 축하잔치가 벌어졌다. 학교에서는 조선사람도 일본천황의 군인이 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가르쳤다 … 초등학교 6학년생은 일본어 상용에 열중하면서 침략전쟁을 위한 노력동원에 끌려 다녔는가 하면 미군의 ‘대규모 폭격설’에 시달리기만 했다 …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35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혹독한 강제지배를 받고 해방된 이 땅에서 침략자 편에 섰던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는 역사를 겪어야 했으니, 그러고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사회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42, 50, 58쪽)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지구별 뿌리와 숨결을 도무지 안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거스르는 짓을 저지르는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모두 잊거나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서 어린이로 자라 푸름이를 지나 젊은이가 되는 동안,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어떤 나날을 누릴까요? 이동안 사람답게 살까요, 아니면 대학입시에 시달리는 시험노예가 될까요? 어릴 적에 제대로 신나게 마음껏 노는 어린이는 몇이나 되는가요?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책을 읽는 어린이보다 수학 문제집이나 영어 교재를 숙제처럼 풀어야 하는 어린이가 훨씬 많은 한국에서 삶이 있기는 있을까요? 대학생이 되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이 있을까요? 연봉 1억쯤 받는 일자리를 얻으면 비로소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삶다운 삶이 없는 채 지냈는데, 이렇게 쳇바퀴로 구른 줄조차 느끼지 못하는 오늘날 한국사람입니다. 그러니, 시험지식으로 역사 과목 점수를 잘 받았어도 역사를 알 턱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구별이 어떻게 태어났고, 해와 별과 달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시험지식이 아닌 삶과 넋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6·25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면 전후 상당기간 그랬던 것처럼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문제의 초점이 되고, 그 뒤에는 침략한 쪽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과 복수심이 항상 따르게 마련이다 … 6·25전쟁을 계속 침략전쟁이라 강조하면서 침략자를 가려내어 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이 평화통일을 이루고 동아시아 및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되겠는가 … 속없는 사람들이 흔히 “남자는 군대에 가 봐야 된다” 같은 말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방의무는 신성하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사회가 미개해서 전쟁이 문제해결의 최고수단이던 시대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114, 115, 133쪽)



  강만길 님이 쓴 《역사가의 시간》(창비,2010)을 읽습니다. 강만길 님은 이녁이 살아온 나날을 더듬으면서 《역사가의 시간》을 씁니다.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나 시험문제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녁이 몸으로 부대끼면서 누린 이야기를 씁니다.


  역사란 이야기입니다. 살아서 숨쉬는 역사란 이야기입니다. 지식으로 알려주거나 논문으로 쓸 때에 역사가 아니라, 서로 도란도란 주고받을 이야기일 때에 역사입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하고 묻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바다나 하늘은 어느 정치집단이 거머쥐는 물건이 아닙니다. 독도를 일본땅이라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한국땅이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살뜰히 아끼거나 돌보면서 가꾸려는 손길이 없다면, ‘내 땅’이라고 외치는 뜻이 없습니다.


  4대강사업 따위를 하면서 냇물을 모두 망가뜨리는데, ‘내 땅’이란 무엇일까요. 4대강사업이 아니었어도 새만금이나 시화호를 밀어붙였는데, ‘내 땅’이란 있을까요. 골프장에서 농약을 엄청나게 뿌리고 땅속에서 샘물을 어마어마하게 뽑아내어 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줄 뻔히 안다면서, 막상 골프장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몸짓은 없는데, 참말 ‘내 땅’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서 새로운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새로운 군부대를 더 늘리려 하는 짓을 보면, 한국사람은 ‘한국땅’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역사도 모르고 삶도 모르니 모두 바보짓을 하면서 쳇바퀴를 돕니다.



.. 식민지화의 주된 원인이야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있지만, 조선왕조 지배층의 아둔함과 무능·부패에도 책임이 있었다 … 당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곳의 하나가 바로 군대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부패의 온상이던 군부의 쿠테타로 세워진 정부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 운운하는 데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 민주주의가, 역사가 하룻밤 사이 총칼에 의해 감금당하는데도 역사학계는 아무 말도 못했다 …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계획이 진행되어 가는데도, 박 정권이 스페인의 프랑꼬 정권처럼 되어 가는데도, 경제성장이란 미몽에 빠져 국민 일반은 물론 지식인들까지도 대부분은 그것에 순종해 가고 있었다 ..  (151, 161, 189. 191쪽)



  교과서에 적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대학입시로 몰아넣는 끔찍한 지옥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잘 엮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란 없습니다. 더군다나, 교과서에 담을 수 있는 역사 지식은 아주 조그맣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은 교과서에 몇 줄로 담지 못합니다. 우리가 걸어갈 발걸음은 교과서에 몇 쪽으로 싣지 못합니다.


  내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온 나날만 해도 책 몇 권은커녕 수십 권으로 써도 모자랍니다. 내 이웃과 동무가 살아온 나날만 해도 책 수백 권에 이르도록 쓸 만합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한 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고작 역사 교과서 한 권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못 바꾸는 역사책입니다. 아무것도 못 짚는 역사책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은 책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책을 덮고 눈을 떠서 둘레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숲이 흘러온 역사를 책이나 도감으로 알려줄 수 없습니다. 책이나 도감은 나무 한 그루가 어떻게 씨앗에서 깨어나 수천 해를 살아내는지 적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수천 해를 살아내지 않거나 못하니까, 나무 한 그루 이야기조차 ‘기껏 쉰 해 남짓’ 살피면서 ‘다른 책을 넘기’면서 몇 줄 끄적일 뿐입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나 가야나 부여 적 이야기를 ‘몇 권 남은 역사책’을 훑으면서 살핀다 한들 얼마나 제대로 밝히거나 알 수 있을까요? 임금님이 먹던 밥이나 임금님이 흝은 말 몇 마디는 알는지 몰라도, 지난날 이 땅을 일구거나 가꾸면서 삶을 지은 사람들 이야기는 한 줄조차 없는 그런 역사책이 무슨 역사를 밝히거나 알릴까요?


  하다못해, 궁궐을 어떻게 짓는가 하는 역사조차 책으로 없고 책으로 밝힐 수 없습니다. 궁궐에 어떤 나무를 썼고, 어떤 나무를 어떻게 베고 손질하고 다루어서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엮는지 어떤 책으로도 못 밝혔고 안 밝힙니다. 궁궐 기둥으로 삼을 만한 나무는 몇 백 해를 자란 나무인지 누가 알까요. 궁궐 기둥을 받치는 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돌인지 누가 알까요.



.. 베트남파병이나 이라크파병이 국익을 위해서라 하면, 지난날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파병이나 침략도 그들 국민들에게는 국익을 위해서라 말한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 행방을 모른다는데도 매일 불러내어 고문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야말로 사람 패는 일을 즐기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서슬이 퍼렇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목숨까지 빼앗던 치안국 ‘대공분실’이 ‘인권보호센터’로 되고, 학살의 현장이 희생자의 기념관이 되고 마는 그 ‘이치’를 모르면 결코 역사를 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  (218, 254, 279쪽)



  조각조각 따지는 시사상식이나 정보는 역사가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타고 흐르는 사건이나 사고 소식은 역사가 아닙니다. 신문이나 방송도 쌓이고 쌓이면 역사가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온 발자국을 엿본 눈길’ 가운데 몇 가지일 뿐입니다.


  《역사가의 시간》이라는 책에도 나오는데, 강만길 님은 ‘아주 가볍게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만길 님이 받은 고문은 아주 가볍습니다. 그나마 강만길 님은 이렇게 이녁 책에 몇 줄 적기라도 했지만, 군사독재정권이 춤추던 때에 끔찍하게 고문을 받다가 죽은 숱한 사람들 이야기는 아무 책에도 안 적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죽은 윤동주 시인 같은 사람이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 어떤 책에 적혔을까요? 일제강점기에 부역을 했던 사람들이 남몰래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얼마나 역사로 적혔을까요?


  역사를 모르면 잘못된 일이 되풀이된다고들 말합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다만, ‘역사를 모르’면 잘못이 되풀이된다기보다 ‘삶을 모르’면 잘못을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지어 아름답게 사랑하는 꿈을 가꾸지 않을 적에 잘못을 자꾸 되풀이합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시키는 짓을 고스란히 따르니, 잘못을 자꾸 되풀이합니다. 인문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서 잘못된 역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인문 지식은 하나도 없어도 스스로 삶을 지을 줄 알 때에 잘못된 역사를 끊습니다. 책 한 권 안 읽었어도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꿈을 보듬을 적에 잘못된 역사를 멈추게 합니다.


  머릿속에 인문 지식을 담으면 무엇을 할까요? 이녁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입시지옥 쳇바퀴를 밟도록 몰아넣기만 하는걸요. 머릿속에 진보나 개혁이나 평등이나 평화 같은 지식을 잔뜩 넣으면 무엇을 할까요? 막상 이녁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뒤에 입시학원에 넣고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 졸업장’을 따도록 부추길 뿐인걸요.



.. 역사의 진행은 모든 부분이 고루 나아갈 때 비로소 그 옳은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결코 산업화의 주력이 따로 있고 민주화의 주역이 따로 있고 평화통일의 주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대학총장 한 임기를 겪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모든 대학은 총장의 업무추진비를 비롯해서 재정 일체를 세목까지 철저히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 뒤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민족사회 전체가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지배 아래 있을 때도 우리 역사학은 그같은 민족사적 현실에 관심을 갖고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나 대응책 같은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 김영삼 정부 때는 말할 것 없고 김대중 정부 때까지도 행정부에는 민주세력이 많이 진출했다 해도 국회는 군사독재정권과 유착되었던 반민주세력이 그대로 점령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과거청산특별법 같은 것이 제안될 수도 통과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  (364, 444, 503, 512쪽)



  섣부른 지식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습니다. 섣부른 지식은 오히려 엉터리 정치권력한테 힘을 보태어 줍니다. 인문 지식만 쌓는 일은 되레 바보스러운 정치권력이 더 힘을 내도록 부추깁니다.


  정치권력이 꾀하는 바보짓에 휘둘리지 않도록 쳇바퀴질을 멈출 때에 역사를 알아챕니다. 역사를 알아채는 사람은 이녁 아이를 의무교육 수렁에 집어던지지 않습니다. 역사를 깨달은 사람은 아이와 함께 삶을 새롭게 배워서 스스로 짓는 길을 걷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자꾸 멍청한 짓을 하는지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머리통만 무거울 뿐, 몸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지식을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는다고 하더라도, 인문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집회에 자주 나가서 주먹을 불끈 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짓는 삶이 없으면 모든 일은 정치권력자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입니다.


  옛날부터 ‘나라를 버틴 힘’은 군대나 임금님이나 학자가 아닙니다. 책이나 글을 하나도 모르는 채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짓고 아이를 돌보면서 이야기와 말과 사랑을 물려준 수수한 어버이입니다. 수수한 어버이가 수수한 삶을 가꾸면서 수수한 사랑으로 모든 이야기를 짓고, 이 땅을 알뜰살뜰 일구었습니다.


  숲이 없으면 지구별은 무너집니다. 도시를 키우고 공장을 세워 경제발전 따위를 아무리 들먹거려도 숲이 없으면 지구별은 죽음입니다. 석유를 아무리 많이 뽑아낸들 석유를 먹지 못합니다. 석유로 돈을 버는 나라마다 사막에 숲을 가꾸려고 엄청나게 돈을 써대는 까닭을 읽지 못하면서, 이 조그마한 한국땅에 고속도로와 온갖 공장과 발전소와 아파트 따위만 자꾸 짓는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한국 역사는 늘 뒷걸음을 칠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를 장만할 돈이 있으면 시골에 땅을 장만해서 숲집을 가꾸어야지요. 스스로 삶을 지어야지요.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멍청한 역사는 또 되풀이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베푸는 정책을 기다리지 말고, 어떤 정부지원 없이 즐겁게 삶을 지어서 일구는 길로 걸어야 바보스러운 역사를 끊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시골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키우는 까닭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끝난 뒤에도 다른 정치권력이 똑같이 도시를 키우고 시골을 짓누르는 까닭을 올바로 읽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도시에만 몰려들어 돈만 벌면서 ‘삶짓기’를 안 하면,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는 줄 똑똑히 읽어야 합니다. 4347.12.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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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5


 

밥 안 짓는 사람은 뭘 할까

― 할아버지의 부엌

 사하시 게이조 글

 엄은옥 옮김

 여성신문사 펴냄, 1990.5.1. (2008년에 《아버지의 부엌》으로 다시 나옴)



  사내보다 가시내가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가시버시 가운데 가시내가 먼저 흙으로 돌아가는 때가 있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혼자 지내는 집보다는 할머니 혼자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가시내가 사내보다 튼튼하기 때문에 오래 살까요? 아니면, 가시내는 사내를 걱정해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까요?



.. “아버지보다 내가 하루라도 더, 그게 안 되면 10분이라도 더 살아 있고 싶어. 아버지 혼자 남으시면 불쌍하고, 미안한 기분이야. 아버지를 먼저 잘 보내 드리고 나서 죽고 싶어” 호소하는 듯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집안일을 다 배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안하다는 기분이 어머니의 마음속에 뭉쳐 있는 것 같았다 ..  (13쪽)



  솥이나 냄비로는 밥을 못 지을 뿐 아니라, 전기밥솥으로 밥을 못 짓는 사내가 꽤 많습니다. 쌀을 어떻게 씻어서 불리는지 모르는 사내가 참 많고, 가게에서 어떤 쌀을 장만하면 될는지 모르는 사내가 퍽 많습니다. 막상 쌀을 사서 씻은 뒤 전기밥솥 단추를 누르더라도, 다른 것은 못 하기 일쑤입니다. 국은 끓일까요. 반찬은 마련할까요.


  멀리서 찾지 않고 내 어버이를 바라보더라도, 내 아버지는 냉장고에 먹을거리가 가득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다루거나 꺼내어서 먹어야 할는지 모르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아실는지 모르지만, 혼자 밥을 짓고 국을 끓일 줄 아실는지, 또는 라면이나마 손수 끓일 줄 아실는지 궁금합니다.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비워야 한 날이면 중국집에서 거듭 시켜서 밥상을 차렸습니다.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중국집에 전화를 어떻게 걸어야 하고, 무엇을 시켜야 하며, 값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내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내가 집 바깥에서는 ‘전문가’ 자리에 서서 일합니다.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회사나 공장을 움직인다든지, 탱크나 비행기나 발전소를 다룬다든지 하지요. 책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신문을 내거나 방송을 내보내는 일도 하고요.



.. 아침 일을 8가지쯤 끝내니까 아버지는 녹초가 되었다. 나도 지쳤다. “한 집안을 꾸려 간다는 건 힘들구나. 나는 지쳐 버렸어.” 하고 누워 버린다. 신문을 읽을 기력도 없어 보이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어 아버지가 가엾다는 생각에 한숨과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너무 엄격하고 지나치게 (가르치려고) 해 드렸나? 반성하면서도 그러나 처임이 중요한 것. 기본을 철저히 가르쳐 드리지 않으면 아버지는 풀어져서 대충대충 하실 거다 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아버지는 점심때까지 까딱도 안하고 누워 계셨다. 11시쯤 되어 나는 큰소리로 쾌활하게 “자, 일어나세요. 점심 준비합시다. 힘 내세요. 영차 영차.” ..  (37쪽)



  도시에서는 가게에 가서 쌀을 사다가 먹습니다. 그러나, 쌀이란, 처음부터 비닐에 담긴 ‘풀열매’가 아닙니다. 볍씨를 흙에 심어서 여름 내내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먹고 마시도록 돌본 뒤에 가을에 베어서 훑고 말리고 까부른 뒤에 겨를 벗겨야 비로소 ‘쌀’입니다. 가을에 거둔 나락 가운데 이듬해에 다시 심을 볍씨를 갈무리합니다. 이듬해에 다시 심을 볍씨를 빼고 나서 우리가 먹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밥을 지을 줄 알기는 해도, 쌀이 어떻게 나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밥맛은 알아도 쌀결은 모르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밥맛은 쌀맛입니다. 쌀맛은 벼맛입니다. 벼맛은 무엇일까요? 바로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들풀이 어우러지는 맛입니다. 그리고, 논을 돌보는 시골지기 손길이 어리는 맛입니다.


  밥 한 그릇이 그냥 눈앞에 뚝딱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랑과 손길과 꿈이 깃듭니다. 지구별을 감도는 푸르며 싱그러운 숨결이 깃듭니다.


  밥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란 삶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밥맛을 모르는 사람은 삶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 회사일에는 일단락 짓는 것이 있고 매듭이 있다. 해냈다는 반응과 충족감이 있다. 그것에 비해 가사란 하는 보람도 없고 평가도 결과도 없고 반응도 없는 것이 아닐까. 잡사가 줄줄이 이어지므로 인내가 필요하다. 하면 당연하고 안 하면 점점 쌓여 간다 ..  (44쪽)



  사하시 게이조 님이 쓴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에 나오는 사내(할아버지)는 여든세 살입니다. 여든세 살 나이에 가시내(할머니)가 먼저 흙으로 돌아갑니다. 할머니가 흙으로 돌아간 뒤, 할아버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집을 치워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치우기’가 무엇인지, 비질이나 걸레질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비나 걸레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회사에 가서 돈을 벌 줄 아는 사람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청와대에서 대통령 자리에 앉는 분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국회의사당을 지키거나 법원이나 신문사나 방송국을 지키는 분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일까요?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날마다 먹는 밥’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하는 셈일까요? 날마다 밥을 먹지만, ‘날마다 먹는 밥이 될 먹을거리’를 우리 땅에서 손수 심고 거두고 돌보고 갈무리해서 건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하는 셈일까요?



.. 구청이나 우체국, 은행, 병원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가서 사회인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계셨다. 창구의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얘기를 거는 모습을 일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억지로 만들어서 친절한 것뿐이어서 아버지는 쓸쓸하고 분하신 거다. 상대방으로부터 가볍게 취급당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응대를 받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굴욕이신 듯. 그래서 동네모임인 반상회는 귀중한 사회참여의 장소다 ..  (78쪽)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사내(할아버지)는 셋째 딸아이가 알뜰히 이끌고 가르쳐서 집살림과 집일을 천천히 배웁니다. 지겨워 하면서 배우고, 배를 곯으면서 배웁니다. 힘들어 하면서 배우고, 어려워 하면서 배웁니다. 늘그막에 뭔 짓이느냐 하고 여기면서 배우다가, 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텐데, 그렇다고 좀처럼 ‘쉽게 죽지’도 못합니다.


  집에서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는 사내(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누군가 옆에 붙어서 모든 심부름을 해 주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 아이한테 손수 아무것도 안 가르치고 학교와 학원만 보낸 어버이는 이녁 아이뿐 아니라 손주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원래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을(보이지 않는 곳을 알뜰히 청소하는 일) 묵묵히 하셨으니, 딸이 왜 화를 내고 애를 태우는지,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가 보다. 부엌을 깨끗이 치우고 문턱을 닦아 놓아도 칭찬해 주지도 않으니 하루쯤 안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잡일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변명이시다 ..  (93쪽)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하루쯤 집을 비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이틀쯤 집을 비우고 사라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 모든 가시내가 꼭 사흘쯤 집을 비우고 사라지면 얼마나 신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다른 생각도 합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사람이 농협에 아무것도 내다 팔지 않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시골 흙일꾼은 굳이 농협에 쌀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팔아야 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는 쌀개방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을 하기로 했으니, 모든 먹을거리를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라 하고, 시골 흙일꾼은 시골에서 이녁끼리 먹을 만큼만 지어서 나락 한 톨조차 아무한테도 안 팔면 돼요. 경쟁력이고 경제발전이고 뭐고 따질 일이 없습니다. 값싼 쌀이 좋다는 도시사람과 지식인과 공무원과 정치꾼한테는 ‘미국이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사들인 쌀’을 먹으라 하면 되고, 시골사람만 ‘한국에서 거둔 쌀’을 먹으면 됩니다.


  숲을 밀어 송전탑을 때려박을 뿐 아니라, 들을 밀어 관광단지와 군부대를 만들고, 시골을 깎아서 발전소와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고, 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공장도 뭐도 위해시설도 모조리 시골로 보내는 만큼, 도시는 땅값이 비싸서 나무 한 그루조차 안 심는 오늘날이니, 배추와 무와 고추도 몽땅 중국에서 사들이면 됩니다.



.. 아버지가 좋아하는 외출의 유일한 수단인 자전거를 안심하고 탈 수 없는 일본의 도로 사정에 분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버지보다 젊은 나도 가끔 넘어질 것 같은 나쁜 도로, 보도와 차도의 높이가 다른 것, 자전거용 전용도로가 없는 것의 모순을 나도 느꼈다. 노인이나 어린이,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도로의 대책이 없다. 육교 등은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 부상당한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 이를 위해 아버지는 시청이나 구청에 투서를 했지만 응답이 전혀 없다 ..  (119쪽)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참 어렵습니다. 길이 나쁠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약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대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기에 몹시 나쁘고, 젊은 아줌마도 자전거를 타기에 아슬아슬하다고 하면, 참으로 놀랄 노릇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리가 아파 구름다리나 지하도로 다닐 수 없어 ‘무단횡단’을 하는 할매나 할배가 도시에 꽤 있습니다. 발걸음이 워낙 느려, 건널목 푸른불이 빨간불로 넘어가도 미처 다 건너지 못하기도 합니다. 도시는 온통 계단투성이일 뿐 아니라, 바퀴걸상이나 아기수레가 느긋하게 다닐 만한 길이 드뭅니다. 자동차는 거님길을 잡아먹고, 자동차가 없는 거님길은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이나 광고판이나 오토바이가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이웃이 되어 사는가요. 우리는 내 이웃을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우리는 우리 삶터를 어떻게 가꾸는가요.



.. 아버지도 마찬가지. 딸들이 젊어 갖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척척 일하고 있으면, 아 소란스럽구나, 내 평화로운 생활 속에 들어와서 양해도 없이 멋대로 휘저어서 뻔뻔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딸들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조금만 더 있어 주지 않나 하고 그리운 생각이 솟아 돌아가는 뒷모습에 눈물 흘리는 아버지랍니다 … 아버지의 경우는 다행히도 마에가와 씨가 매일 와서 돌보아 주면서 여러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니까 어두운 면은 없다. 그래도 밤이면 혼자 있는 것이 무섭다고 하는데, 진짜 외톨뱅이 노인들의 외로움은 어떨까 ..  (174∼175, 133쪽)



  《할아버지의 부엌(아버지의 부엌)》에 나오는 여든세 살 할아버지는 맏사위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깊이 생각한 끝에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외칩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이녁 딸아이가 도와주기만 바랄 수 없는 삶인 줄 깨닫습니다.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뿐 아니라 딸아이도 괴롭고, 사위뿐 아니라 다른 살붙이도 고단하겠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손수 밥을 짓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면 차츰 익숙하게 할 수 있으며, 나중에는 제법 솜씨있게 지을 수 있습니다. 집안을 손수 돌보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면 차근차근 가꿀 수 있고, 나중에는 꽤 이쁘장하게 꾸밀 수 있습니다.



.. “그것이 노후를 아릅답게 사는 길이라 명심하고,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자. 결국 이것이 나, 노인에게 주어진 길이다. 외롭지만 마음 편한 독신생활을 더 한층 즐겁게, 심신의 건강에 유의하며 살자. 또 셋째딸이 말하는 것처럼, 노인의 방 같지 않게, 화분이랑 꽃을 밝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옷도 청결하게 밝고 화려한 것을 입으며, 몸도 마음도 젊게 살려고 애쓰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세 끼 식사는 뱃속 8부만 먹고, 사치하지 말고 욕심없이 살겠다. 지켜봐 주십시오.” ..  (186쪽)



  학교에서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먹을 수 있기를 빕니다. 도시락을 펼치는 교사는 아이들한테 ‘오늘 이 도시락은 이러저러하게 지었지’ 하고 알려줄 수 있기를 빕니다.


  시사상식이나 사회문제를 놓고 술자리에서 밤새 말다툼을 벌이는 사내는, 이제 부질없는 말다툼은 그치고, 아이들한테 밥을 어떻게 차려 주었더니 맛있게 먹었더라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기를 빕니다. 정치나 경제 같은 말다툼은 그치고, 그렇게 말다툼할 틈이 있으면 손수 밥을 맛나게 차려서 이웃과 동무를 부른 뒤 ‘잔치’를 열기를 빕니다. 인문책은 그만 읽고 요리책을 읽기를 빕니다. 나중에는 인문책도 요리책도 모두 덮은 뒤, 아이들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함께 놀고 노래하면서 웃는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삶을 바꾸지 않으면, 헉명이란 없습니다. 삶을 바로세울 때에, 비로소 사랑이 싹틉니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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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반 레인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9
미하엘 보케뮐 지음, 김병화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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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3



그림에 흐르는 빛과 숨결

― 렘브란트 반 레인

 미하엘 보케뮐 글

 김병화 옮김

 마로니에북스 펴냄, 2006.4.25.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는 겨울눈을 맺습니다. 겨우내 조그마한 눈이 추위를 견디면서 봄을 기다립니다. 겨울눈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보들보들 싱그러운 잎이 단단하게 뭉친 모습이 참 야무지구나 싶습니다. 언제 찬바람이 그치고 언제 따스한 볕이 드리울까 하고 기다리면서 살짝살짝 바깥을 엿보는구나 싶어요.


  아주 조그마한 씨앗을 곳곳에 퍼뜨리는 들풀은 겨울에도 여러 날 포근한 볕이 드리우면 어느새 싹이 틉니다. 다시 찬바람이 불고 꽁꽁 얼어붙어서 그만 어린 싹이 시들어 죽어도, 풀씨는 겨울에도 곧잘 싹을 틔웁니다.


  나는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겨울눈이랑 풀싹을 눈여겨봅니다. 아니, 내 눈에는 겨울눈과 풀싹이 아주 잘 보입니다. 도시에 나들이를 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에도 언뜻선뜻 스치는 길나무 겨울눈을 알아채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사람들이 손전화를 켜고 수다를 떠느라 시끄러워도, 시내버스 닫힌 창문 바깥에서 흐르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알아채면서 방긋방긋 웃습니다.


  내 숨을 살리는 나무와 풀은 내 동무입니다. 내 넋을 깨우는 나무와 풀은 내 이웃입니다.





.. 렘브란트의 작품은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대략적인 것에서 정확한 것으로, 밑그림에서 완성작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또 그 반대도 아니다. 상징과 서사, 인물, 공간적 차원, 빛, 심지어 시간적인 사건과 같은 그림 속에 포함된 모든 것이 관찰하는 현실을 향한다. 요컨대, 이해하는 것 자체가 보는 행위로 바뀌는 것이다 ..  (11쪽)



  아침이 밝으면 언제나 마당으로 내려서서 아이들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 집 나무를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을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뒤꼍으로 올라가서 뒤꼍 나무한테 말을 겁니다. 나무를 둘러싼 흙을 밟고, 우리 집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을 누리고, 우리 집 나무 우듬지에 앉아 노래하는 멧새를 바라봅니다. 마당과 뒤꼍을 천천히 거닐면서 멧새를 바라보면, 멧새는 우듬지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서로 마주보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습니다.


  날마다 나무를 바라보면, 겨울에도 날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느낍니다. 날마다 나무를 쳐다보면, 여름에도 잎이 날마다 바뀌는 모습을 느낍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놓고 보면, 나무 한 그루는 늘 다른 빛깔이요 모양이며 무늬이고 결입니다. 나무를 그리려 한다면 삼백예순다섯 장을 그릴 만하고, 나무 한 그루를 삼백예순닷새에 걸쳐 날마다 한 장씩 그려서 ‘나무도감’으로 묶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아직 이런 도감을 선보이거나 이런 그림을 그린 이는 없지 싶은데, 이렇게 해야 제대로 된 ‘나무도감’이 되리라 느껴요.





.. 이런 초상화들은 모든 측면에서 극도로 정확하고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 이 젊은 화가에게 저명인사들의 작품 의뢰가 갈수록 많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완벽한 묘사 때문이었다 … 렘브란트는 그저 의뢰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작품 몇 점을 완성한 뒤, 그는 관례적인 표현 방법을 포기하고, 역사화를 그릴 때 구사했던 방식으로 초상화를 구성했다 ..  (39쪽)



  미하엘 보케뮐 님이 글을 써서 엮은 《렘브란트 반 레인》(마로니에북스,2006)을 읽습니다. 타셴에서 펴낸 멋진 ‘그림 이야기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이라는 분이 지난날 일군 그림에 어떤 넋과 숨과 빛과 사랑과 노래와 꿈이 깃들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짚으며 들려주는 책입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에 실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미하엘 보케뮐 님이 붙인 글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이 우리한테 남긴 그림에 서린 이야기는 바로 ‘우리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을 쓴 미하엘 보케뮐 님조차 우리한테 ‘그림읽기’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미하엘 보케뮐 님은 미하엘 보케뮐 님 나름대로 읽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 렘브란트의 작품을 돌이켜 살펴보면 그가 초심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화, 초상화, 몇 안 되는 풍경화까지도 모두 사건이나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라는 것의 성격이 변해 그것 자체가 설명적인 것이 된다 … 멀리서 보면 색채는 얼룩덜룩하고 불분명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편견 없이 바라보면 그것이 순수하고 따뜻한, 내면에서 빛이 비치는 듯한 붉은 색조임을 감지하게 된다 ..  (77, 87쪽)



  그림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삶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노래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글과 책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밥 한 그릇에 흐르는 빛과 숨결을 읽습니다.


  언제나 내가 스스로 읽습니다. ‘잘 읽’거나 ‘못 읽’는다는 틀을 가를 수 없습니다. 제대로 읽는다거나 엉터리로 읽는다고 틀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이녁 나름대로 읽습니다. 저마다 읽을 만큼 읽습니다.


  장미나 튤립을 보면서 마냥 ‘이쁘다’ 하고만 읽는 사람이 있고, 장미나 튤립을 어떻게든 집에서 키우려고 생각하면서 읽는 사람이 있으며, 어릴 적부터 이쁘게 바라본 장미와 튤립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오늘 마주하는 장미와 튤립이 어떻게 얼마나 이쁜가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땅 풀꽃과 장미랑 튤립을 나란히 놓으면서 서로 어떻게 이쁜가를 헤아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렘브란트 그림이 대단하려면, 렘브란트 그림을 읽는 사람이 대단해야 합니다. 그림읽기를 누리려는 사람 스스로 대단한 눈썰미와 대단한 마음가짐과 대단한 사랑으로 마주해야 비로소 렘브란트 그림이 대단합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렘브란트 그림이든 말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게 뭐야? 종이로구나. 불쏘시개로 쓰면 딱 좋겠네.’ 하고 여기면, 렘브란트 그림이라 하더라도 불쏘시개일 뿐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눈높이 그대로 그림‘값’이 달라집니다.


  아주 훌륭하거나 멋진 책이 있어도, 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훌륭하거나 멋집니다. 잘 팔리는 책이기에 훌륭하거나 멋진 책이 아닙니다. 훌륭히 알아보는 사람 손을 타면서 훌륭한 책이 됩니다. 멋지게 알아차려서 멋진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람 손길을 받을 적에 멋진 책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잘 팔리는 책은 ‘잘 팔리는 책’이 될 뿐입니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책’이 되지요. 사랑스러운 책은 ‘사랑스러운 책’으로 거듭나요.





.. 오로지 감상자가 자신이 가진 감상력과 이성의 힘을 동원해 예술작품이 제공하는 가능성 게임에 참여할 때만 비로소 색채와 형태의 주목할 만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게 하려면 그는 예술작품의 개별적 요소와 전체성 양쪽을 모두 파악해야 하며, 그림이 부여하는 원칙에 따라 그것들을 결합해야 한다 … 렘브란트는 자신만의 화면구성으로 감상자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후기에 그린 〈포목상인조합의 임원들〉에서는 감상자가 장면의 맥락을 이해할 때 그림에 묘사된 과정에 자신이 개입돠어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이는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림 안에 보이는 것에도 해당한다. 렘브란트의 그림 양식을 통해 감상자는 구성자의 역할을 배정받았다 ..  (90쪽)



  우리는 모두 시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노래꾼입니다. 우리는 모두 살림지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림쟁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우리는 모두 따사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삶을 담아서 내 숨결을 노래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화가’라는 사람만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을 그립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이 그림을 그려서 우리한테 남긴 까닭을 돌아봅니다. 렘브란트라는 분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짓고 싶은 꿈으로 그림을 그렸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나는 렘브란트 그림을 왜 읽을까요? 나는 렘브란트 그림을 읽으면서 내 삶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아름답게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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