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의 대화 - 돈만 외치는 망가진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나’로 사는 법
톰 새디악, 추미란 / 샨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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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3



삶을 보아야 삶을 읽는다

― 두려움과의 대화

 톰 새디악 글

 추미란 옮김

 샨티 펴냄, 2014.3.20.



  삶을 보는 사람만 삶을 읽습니다. 삶을 보지 않는다면 삶을 읽지 못합니다. 숲을 보는 사람이 숲을 읽습니다. 숲을 보지 않으면서 숲을 읽지 못합니다. 야구를 보거나 축구를 보아야 야구나 축구를 읽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보아야 영화나 연극을 읽어요.


  사랑을 읽고 싶다면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사랑을 나누거나 누려야 하며, 사랑을 참다이 읽고 싶으면 사랑을 일구거나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읽을 수 없습니다. 바라보지 않거나 들여다보지 않거나 살펴보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읽을 수 없어요.


  보는 일이란 눈으로 헤아리는 일이 아닙니다. 보는 일이란 몸으로 겪는 일입니다. 내가 바로 그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삶을 누릴 때에 비로소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흘깃 헤아리는 일이란 ‘구경’입니다. 냇물 너머로 불 구경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불 구경을 하듯 ‘흘깃 헤아리’기만 해서는 알 수 없고 읽을 수 없어요.



.. 집단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세상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보기 시작했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깨달아 가던 중이었다 … 나는 그런 물질 과잉 문화 속에서 자랐고 그것의 공허한 매력에 현혹되어 제멋대로 행동했었다 … 사실 진짜 문제는 전쟁, 기아, 집단 학살, 환경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들은, 밝혀지고 조명을 받으면 ‘해결될 수 있는’, 더 깊고 고질적인 문제의 ‘징후들’일 뿐이라고 ..  (10, 11, 12쪽)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싶다면, 삶을 보아야 합니다. 삶을 보지 않고서야 삶이 이루어지는 얼거리를 알 수 없어요.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싶으면, 사랑을 보아야 할 텐데, 온몸과 온마음으로 사랑을 따사롭게 껴안을 때에 비로소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보아서는 삶도 사랑도 알 수 없습니다. 학교를 다녀서는 삶도 사랑도 알 길이 없습니다. 말만 들어서도 삶이나 사랑을 알 턱이 없어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제대로 보면 됩니다. 제대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삶으로 오롯이 들어오도록 가누면 돼요.



.. 현재의 문명을 뒷받침하는 인류의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문명과 함께 인류는 사라지고 말 거야 …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아니야. 사랑과 감사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힘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아 … 세상은 완벽하게 정당해. 사람들이 지금 걱정하는 것을 계속 걱정한다면, 경쟁과 다툼 속에서 서로 대항한다면, 세상은 그런 행동의 완벽한 반영이 될 거야. 세상은 사람들이 창조해 낸 그대로야 ..  (24, 25, 35쪽)



  톰 새디악 님이 쓴 《두려움과의 대화》(샨티,2014)를 읽습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톰 새디악은 스스로 이녁 삶을 새롭게 읽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녁 마음에 깃든 빛이 ‘두려움’이었구나 하고 느끼면서, 앞으로는 이녁 마음에 ‘새로움’이라는 숨결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래서, 톰 새디악 님 스스로 마음속에 있는 두 가지 넋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한 가지 넋은 ‘두려움’이고 다른 한 가지 넋은 ‘진리’라고 합니다.



..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단지 잠자고 있었던 거지 …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집단적 에너지일 뿐이야. 개인들이 각자의 목소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 … 천국이 우리 안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심란해 해 … 아들딸을 대상으로, 특히 그 아이들이 아플 때 돌봐 주고 그걸로 이익을 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거야, 그렇지? 그럼 친척들은 어떨까? 삼촌이나 사촌 같은? ..  (50, 51, 58, 59, 74쪽)



  한몸에 깃든 두 가지 넋 가운데 하나가 ‘두려움’이라면,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 되리라 느낍니다. 한몸에 깃든 두 가지 넋 가운데 하나가 ‘진리(참)’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 되리라 느껴요. 그렇겠지요. 마음속에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함께 있습니다. 마음속에 어두움이 있는 사람은 빛도 함께 있습니다. 빛이 있기에 어두움을 알 수 있고, 어두움이 있기에 빛을 알 수 있어요. 거짓이 있기에 참을 알고, 참이 있기에 거짓을 압니다.


  이쪽과 저쪽이라고 할까요. 서로 비추면서 한몸을 이루는 거울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거짓을 보고 또 보면 참을 읽을 수 있기도 합니다. 참을 보고 다시 보면 거짓을 읽을 수 있기도 해요. 둘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은 종이 앞뒷장처럼 한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 두려움이 나쁜 것도, 진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두려움은 단순히 존재할 뿐이고 … ‘나는 누구이고, 내가 소중하게 지키는 가치들은 무엇인가?’ 같은 진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 시스템에 복종하는 것은 그 시스템이 지지하는 부당함에 복종하는 거야 … 열심히 하는 게 해답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학교 교육이 실패하고 있지? … 생각지도 않게 학교를 쉬게 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  (15, 135, 148, 179, 180쪽)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갈 때에 즐거울까 생각해 봅니다. 두려움이 아닌 새로움으로 나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두려움을 잊고 참다움으로 나아가야 즐거울까요?


  그러나, 새로움이나 참다움은 즐거움이 아닙니다. 새로움을 찾으려 하면 새로움으로 갑니다. 참다움으로 가면 참다움으로 가지요. 즐거운 삶이 되고 싶다면 즐거움으로 가야 합니다. 즐거움은 즐거움일 뿐, 새로움이나 참다움이 아닙니다. 참다움 또한 참다움일 뿐, 새로움이나 즐거움이 아니에요.


  이야기책 《두려움과의 대화》는 스스로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두려움’과 ‘진리’가 맞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얼거리이지만, 두려움이 무엇인가를 밝혀서 두려움이 아닌 길로 가려고 하는 톰 새디악 님 삶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톰 새디악 님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을 ‘진리’라고 느낄 뿐이에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삶도 사랑도 안 가르치는 학교는 두려움만 낳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하고 동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 가르치고 사랑을 보여줄 때에 비로소 학교가 학교답다고 할 만해요. 이러한 모습이 참다움이라고 할 만합니다. 경제나 군대로 치면 지구별에서 1위라고 하는 미국이라는데, 이런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닙니다. 살기 좋을 수 없는 나라인 미국입니다. 왜냐하면, 살기 좋은 터전은 경제나 군대로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숲은 경제나 군대로 만들지 못해요. 따사로운 사랑은 철학이나 과학으로 만들지 못해요. 즐거운 어깨동무나 두레는 이론이나 지식으로 만들지 못해요. 아기를 낳아 돌보는 삶은 문학이나 정치로 만들지 못해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군대가 없어야 할 테지요. 아니,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어야겠지요. 즐거운 나라가 되려면 경제개발이 없어야 할 테지요. 아니, 경제개발을 해야 할 까닭이 없어야겠지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누구나 마음껏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돈을 내고 다녀야 한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에요. 졸업장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한다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되기를 바란다거나 돈만 많이 벌기를 바라는 나라는 즐겁지 못한 나라예요.



.. 미국은 경제적·군사적 규모가 세계 1위이지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 아이들이 창밖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떡갈나무가 올라오라고 손짓하고, 쌓여 있는 나뭇잎들이 어서 와서 놀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 아무도 그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 ‘무엇이 너를 살아 있게 하니?’라고 묻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학교는 유치원 때부터 한 가지 결과만 추구하며 직업 교육만 시킨다 …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 … 사랑으로 한 발 자국씩 걸을 때마다 치유가 이루어질 것이다 … 사랑이 당신이고 당신이 사랑이다. 그것은 늘 그래 왔다. 사랑이 모든 것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  (185, 197, 198, 253, 264쪽)



  삶을 보아야 삶을 읽습니다. 사랑을 보아야 사랑을 읽습니다. 삶을 생각해야 삶을 가꿉니다. 사랑을 생각해야 사랑을 가꾸어요.


  두려움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태어납니다. 두려움을 품으면서 걱정을 하니까 두려움이 크게 부풀면서 걱정이 커집니다.


  꽃을 보아야 꽃이 떠오르면서 꽃내음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숲을 보면서 숲에 들어서야 숲을 알고 느끼면서 숲내음이 온몸을 감쌉니다. 살아가고 싶은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은 삶을 마음속에 그려야 합니다. 즐겁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둘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서 환하게 웃고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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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살다 -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6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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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2



바보는 굶겨야 얼을 차린다

― 밀양을 살다

 밀양구술프로젝트 엮음

 오월의봄 펴냄, 2014.4.21.



  전남 고흥군과 해남군은 군청과 군수가 앞장서서 핵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다가 주민들이 거세게 손사래쳐서 이를 막은 적이 있습니다(1989, 2010∼2011). 그러나 고흥군과 해남군은 군청과 군수가 다시 앞장서서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어요(2011∼2012). ‘핵’이 아닌 ‘화력(석탄)’이니 괜찮다고 하는 허울을 뒤집어씌웠지요. 그러나 시골사람도 바보가 아닌 터라, 이런 터무니없는 공사계획을 긴 싸움 끝에 물리쳤습니다. 아주 마땅한 일이지만, 커다란 발전소를 시골마을 끝자락 바닷가에 짓는다고 한다면, 우람한 송전탑을 도시까지 수없이 박아야 합니다. 발전소가 들어서는 바닷마을만 무너지지 않아요. 발전소 언저리 바다만 망가지지 않습니다. 송전탑을 박아야 하는 들과 숲이 모조리 망가지거나 무너집니다.


  지난 2012년에 고흥에서 외롭게 ‘화력발전소 반대 싸움’을 할 적에 밀양에서 여러 이웃이 고흥에 찾아와 주었습니다. 중앙언론은 해남과 고흥과 같은 시골마을 이야기는 취재를 하지도 않고 기사로 쓰지도 않습니다. 밀양 송전탑 이야기는 워낙 크게 불거져서 ‘희망버스’가 달려가기도 하지만, 참말 외지고 동떨어진 시골에서 아무리 그악한 일이 터져도, 기자나 작가나 운동가나 활동가나 시민단체가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누구보다도 밀양에서 찾아온 이웃이 크게 힘이 되었습니다. 숫자로 치면 ‘두어 사람’이지만,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아픈 이웃 두어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발전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대목에서 적잖은 시골사람들 눈을 틔워 주었습니다.



.. “자식 보내 놓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그땐 백마부대, 매화부대 마이 죽었어. 월남 가 갖고. 그리 보내 놓고 울기도 마이 울고. 밥도 마이 굶고. 그래서 일을 마이 했다 카이. 잠이 안 와 갖고 베를 짰다 카이. 명주, 삼베 잣는다고 그거 짤라ㅏ카믄 밤새도록 짜야 된다. 울어 가며 노래 부르고.” … “참, 나는 이곳이 너무 좋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 벌어져도 내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잎이 돋아나고 그 예쁘게 단풍 물드는 산이 철탑으로 장식이 되잖아예. 그 철탑이 보고 싶어서 산을 쳐다보겠습니까?” ..  (25, 250쪽)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려고 하는 까닭을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합니다. 왜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려고 할까요? 게다가 시골에서도 아주 외진 시골에 지으려고 할까요?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발전소는 아주 위험하고 무서운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가 터지는 일이 생겨도 시골에서 ‘최소 인명 피해’가 나도록 할 뜻이기 때문입니다. 고흥 바깥나로섬에 ‘우주선 발사 기지’를 지은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처리장이 ‘안전’하다면 도시에 지을 노릇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지어야지요. 그래야 송전탑을 안 놓습니다. 도시에서 쓸 전기 때문에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서 송전탑을 끝없이 온갖 시골마을마다 수없이 때려박는 짓은 돈도 자원도 모두 헤프게 쓰는 일이 될 뿐 아니라, 이 나라를 아주 망가뜨리는 바보짓입니다.


  여기에서 더 헤아릴 대목은, 깨끗하고 조용한 시골에 발전소 같은 위해시설을 지으면,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과 열매와 남새는 ‘아주 마땅히 망가집’니다. 도시사람은 밥을 어떻게 먹겠습니까? 모두 시골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밥을 지어서 먹지요. 그러면, 시골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깨끗해야겠지요? 안 깨끗한 시골에서 안 깨끗하게 거둔 곡식과 열매와 남새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겠어요? 아니, 먹을 수조차 없겠지요.


  시골은 언제나 깨끗하게 지키고 돌보아야 합니다. 시골에는 아무런 위해시설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발전소뿐 아니라 공장도 시골에 지으면 안 됩니다.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나 호텔도 시골에 지으면 안 됩니다. 시골은 깨끗한 삶터가 되도록 지키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골과 도시가 함께 즐겁게 잘 살 수 있습니다.



.. “언제 누가 살아도 여긴 물 좋고 공기 좋고, 손주들 와서 살고 누가 와도 다 잘살 낀데. 자꾸 밑으로 내려오믄 이제 못 산다. 송전탑 저거 보통 것도 아니고 76만 5000볼트 디게 센 게 와가, 저 청도 가서 갈라진다 카이. 밑에 산소도 파내라고 지랄병 하는데 우야겠노.” … “도시 가면 오히려 재밌는 게 없어. 여기 오면 무진장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를 기쁘게 하고 좋게 해. 자연 사랑해 봐.” … “이 사람들이 10월 달부터 돈을 가지고 꼬시는 기라. 11월 말까지 안 받으면 안 된다, 12월 말까지 안 받으면 마을 공동기금으로 들어간다 카민서. 이런 식으로 보상금 받기 싫다는데도 집집이 다니면서 전화를, 홍보팀에서 계속 전화를 해 가지고 보상금 받아라, 안 받으면 마을 공동기금으로 들어가면 영영 못 받는다 ……” ..  (35, 106, 264쪽)



  밀양 이웃은 고흥에 와서 ‘발전소를 바깥나로섬 끝에 지은 뒤 송전탑을 어디로 어떻게 잇겠느냐?’ 하는 생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고흥에 있는 시민모임은 ‘송전탑 예상 배치 그림’을 큼직하게 그려서 고흥 읍내에 걸었습니다. 커다란 걸개그림을 본 고흥 여러 면과 읍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고흥 ‘귀퉁이’에 발전소를 짓는 일은 ‘귀퉁이로 끝’이 날 일이 아니었지요. 외통수 반도 모양으로 생긴 고흥에서는 모든 읍과 면이 송전탑으로 피해를 보아야 하는 일이었지요.


  밀양 이웃은 고흥에 화력발전소가 못 들어오게 막는 일에 크게 이바지를 했습니다. 고흥사람도 밀양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고흥 이웃이 밀양에 얼마나 이바지를 했는지 잘 모릅니다. 이바지가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고흥에서는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 참 무시무시한 일이로구나!’ 하고 느끼거나 깨달았는데, 밀양에서는 ‘고흥·해남 핵발전소·화력발전소 계획’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느끼거나 깨닫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 시골마을 분들은 잘 느끼시더라도 밀양 시내에서는 얼마나 느낄는지, 살갗으로 느끼거나 ‘우리 모두한테 닥친 일’이라고 뼈저리게 느낄는지 궁금합니다.


  밀양뿐 아니지요. 청도에서도 똑같습니다. 밀양과 청도뿐일까요. 커다란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부터 송전탑을 줄줄이 놓는데, 왜 자꾸 커다란 발전소를 새로 지으면서 우람한 송전탑을 줄줄이 박아야 할까요? 왜 작은 발전소로 바꾸지 않으며, 왜 집과 마을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쓰는 틀로는 안 바꾸려고 할까요?



.. “경찰 가시나들, 저 더러분 놈의 가시나들 때문에 사람이 몇이 다쳤는 줄 아나. 제방 젙에 앉았다고 나이 많은 사람들 밀어내고 안고 나와서 아무 데나 놔버리니까 허리 다친 사람 있제.” … “소 한 마리 30만 원씩 주면 해롭기 때문에 그렇게 주는 거 아이겠습니꺼. 가처분신청 받아 가지고 법원에 갔는데 마지막에 할 말 있으면 하라 카대. 그래 내가 ‘여게 한전 놈들도 있지마는 생각해 보시소. 소 한 마리 30만 원 주면 사람 한 마리는 얼마 주는교?’ 물으니 대답도 안 합디다.” … “경찰들은 웃긴 게 우리가 경찰 코만 건드려도 그게 폭행죄더만요. 조깨만 차 옆에 얼쩡거려도 공무집행방해고. 그러니 우리가 무슨 수로 경찰을 이기겠습니까. 석 달째 경찰들은 오미가미 탱자탱자 놀면서 월급 다 받아 처먹고.” ..  (37, 147, 291쪽)



  밀양구술프로젝트에서 엮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2014)를 읽었습니다. 시골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나려고 한다면 ‘구술프로젝트’ 같은, 아무래도 시골하고 너무 동떨어진 이름이 아닌, 시골스러우면서 살가운 이름을 지어서 쓰면 좋을 텐데, 도시에서 시골을 찾는 이들 마음자리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밀양을 살다》를 읽으면, 밀양에서 나고 자랐거나 밀양으로 시집·장가를 들거나 밀양이 좋아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논 한 마지기를 어떻게 일구었고, 밭 한 뙈기를 어떻게 가꾸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집 한 채는 그냥 집 한 채가 아닙니다. 집 한 채는 깊은 사랑이요 너른 꿈입니다. 집 한 채는 강제수용이나 보상금이나 부동산이 아닙니다. 집 한 채는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깃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입니다.



.. “사람이 다 울력으로 삽니더. 울력으로예. 참말로 정답게 잘 지내는 동넵니더, 여가.” … “내가 엄청 큰 공부를 했더라구. 농촌 사람들한테 … 내가 왜 청와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만이 신사라고 했을까? 그게 아니었네. 그 사람들하고 이 사람들(시골사람)하고 바뀌어야 하네.” … “옛날에도 내가 정치는 쇼인 건 알았거든예. 근데 이걸 하면서 완전히 쇼인 걸 제대로 알았어예. 그니깐 정부에서도 너거는 뒤지 봐라, 뭐 이런 거 같아예.”..  (85, 99, 300쪽)



  나라에서 올바른 일을 한다면 강제수용을 할 턱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아름다운 일을 한다면 경찰과 군대와 전경 따위를 끌어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강제수용을 하고 강제집행을 하며 강제공사를 벌인다면, 나라에서 하는 일은 하나도 안 올바를 뿐 아니라,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올바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밀어붙이기 일쑤입니다. 언제나 말하지요. ‘국익’을 생각한다고.


  핵발전소가 국익일까요? 전쟁과 군대가 국익일까요? 새마을운동과 경제발전이 국익일까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국익일까요? 고속도로와 골프장이 국익일까요? 농약과 비료가 국익일까요? 입시지옥과 학력차별이 국익일까요? 시골에는 늙은이만 남도록 모든 어린이와 젊은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는 사회 얼거리가 국익일까요?



.. “경찰들이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예요, 여경들이. 저그 엄마 즈그 아빠도 그렇게 못하는데 완전 손을 꼬집는 게 멍이 시퍼럴 정도로 팔을 비틀거나 온몸을 다 비트는 거예요. 완전 꼼짝달싹도 못하게. 그거 보고 나서 내가 막 여경한테 얘길 했거든요. ‘너희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 너희도 그렇게 한번 당해 보면, 안 겪어 봐서 모르지, 이때까지 여기서 농사짓고 산 할머니들인데 저희 집 앞에 탑이 들어오면 좋겠냐. 그렇게 싫다는 송전탑 왜 세우냐, 너희 머리 꼭대기에 세워라.’ 듣는 척도 안 하고 입 꼭 다물고 있는 거예요, 여경들은. ‘한번 봐라, 니가 했는 짓 한번 봐라. 할머니 손 이런 식으로 멍 시퍼렇게 하면 되겠느냐.’ 도로가에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다 막고 있는 거예요. 도로에 전부 다 할머니들이 벼농사 해 갖고 나락을 다 널어놨거든요. 경찰들이 밝을라고 하는 거예요. ‘느그 밟지 마라. 이때까지 할머니들이 고생해 가지고 농사지어 놓은 것을 너희가 왜 망칠라 하느냐. 밟지 마라, 다리 안 치우냐!’” ..  (314쪽)



  가을입니다. 가을걷이를 아직 하지도 않았으나 한가위가 지나갑니다. 이제 곧 가을걷이를 합니다. 나는 조그맣게 꿈을 꿉니다. 가을걷이를 앞둔 올가을에 꿈을 꿉니다. 밀양 이웃을 헤아려서, 이 나라 시골사람이 서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마을에서 올가을에는 ‘가을걷이만 마치’되, 나락을 농협에 팔지 않기를 꿈꿉니다. 이 나라 모든 시골에서 모든 농사꾼이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도 엉터리이니, 이런 엉터리 협정 때문에라도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우리 이웃 밀양 할매와 할배와 아지매와 아재가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우악스러운 송전탑 공사 그만둬!’ 하고 함께 외칠 수 있게끔, 모든 시골에서 나락 한 톨조차 ‘농협 수매 거부’를 해서, 청와대와 국회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과 대구를 비롯한 모든 도시에서 ‘한국 쌀’은 못 먹게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경제발전과 무역이 그렇게 대단하니,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이건 공무원이건 누구이건, 다 ‘미국 쌀’이나 ‘중국 쌀’이나 ‘베트남 쌀’이나 ‘캐나다 쌀’을 먹으라고 하지요. 경찰과 전경도 모두 ‘한국 쌀’은 입에 대지 말고 수입 쌀만 먹으라고 하지요.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군홧발로 짓밟고 온갖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일삼는 경찰과 전경한테는 배추 한 쪼가리조차 중국에서 사다가 먹으라고 하지요. 나락뿐 아니라, 배추도 무도 양파도 마늘도 파도 모두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딸기도 수박도 참외도 능금도 배도 포도도 몽땅 ‘농협 수매 거부’를 할 수 있기를 꿈꾸어요.


  몽땅 나라밖에서 사다 먹으라고 해요. 그렇게 이웃을 짓밟고 깔보려고 한다면, 이 나라 시골에서 나는 곡식과 열매와 남새는 아예 손도 못 대게 할 수 있기를 꿈꾸어요. 바보들은 며칠 굶겨야, 아니 석 달쯤 굶겨야 비로소 번쩍 얼을 차리리라 생각합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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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하루 빛깔있는책들 - 불교문화 123
돈연 지음 / 대원사 / 199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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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1



나물 뜯는 절집 스님

― 산사의 하루

 돈연 글

 김대벽·안장헌 사진

 대원사 펴냄, 1992.6.30.



  돈연 스님이 쓴 《산사의 하루》(대원사,1992)를 읽으면, 절집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떻게 보내는가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얼거리로 ‘수녀원 하루’도 생각해 볼 만한데, ‘시골 할머니 하루’라든지 ‘열 살 어린이 하루’도 돌아볼 수 있어요. 문화란 멀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모두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도시나 시골이나 거의 엇비슷하달 수 있고,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 같은 큰도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작은도시에서도 하루살이가 거의 비슷하다 할 만해요. ‘서울 어린이 하루’나 ‘해남 어린이 하루’를 따로 그릴 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닷가 어린이와 멧골 어린이와 섬 어린이 하루를 ‘섬사람 하루’로 돌아보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어요. 오늘날 시골 어린이는 시골일을 그리 안 하면서 산다면, 지난날 시골은 어떠했는가를 헤아리면서 그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 시골살이를 떠올릴 수 있는 어른들이 아직 튼튼할 적에 우리 여느 삶을 담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지 싶어요.



.. 종소리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을 위해 울린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하늘, 수라에 이르고 다시 곤충이나 새들에게까지 자비의 감로 법문을 들려주기 위해 울린다 … 넓은 의미에서 수행자의 하루 스물네 시간은 모두가 부처님께 예배하는 생활이다 ..  (15, 22쪽)




  절집 스님들은 무슨 일을 할까요. 절집 스님들은 절집에서 어떤 일을 하며 마음닦이를 할까요.


  《산사의 하루》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 하루 스물네 시간 언제나 마음닦이라 할 만합니다. 무엇을 하든 늘 마음닦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꽤 긴 자리를 빌어 ‘행자가 수련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대목도 볼 만하지만, 나는 다른 어느 대목보다 이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 행자의 수련 기간은 대개 일 년 정도이다. 이 기간에는 봄이면 나물을 캐서 국거리를 장만하거나 채소를 뿌리고 가꾸는 일, 여름이면 푸성귀 무침이나 떨어진 김장을 대신하여 미역 냉채나 깻잎, 콩잎, 장아찌로 밑반찬을 해 놓는 일, 가을이면 김장하고 메주 만들어 말리고 띄우는 일, 채소 일변도의 식탁을 꾸며 대중들의 정진에 틈이 없도록 보살필 줄 아는 여력을 키워야 한다 … 잡채에 쓰는 표고버섯 불려 알맞게 찢어야지, 시금치 적당히 데쳐 물 빼 놔야지, 우엉 썰어 쪼갠 뒤 으깨지지 않게 칼등으로 두드려 양념해서 구워야지, 두부 썰어 기름에 노릇노릇 튀겨야지, 콩나물 다듬아 삶아 물 빼야지, 기름 발라 소금을 뿌려 재워 놓은 김도 얕은 불에 구워야 한다. 어디 거긋뿐인가. 겨울에는 무 썰어 생채를 만들고 ..  (48, 53쪽)




  절집에 들어가기 앞서 봄나물을 캐거나 밥을 짓거나 나물무침을 하거나 김치를 담근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스님이 되려면 밥짓기를 알뜰살뜰 할 수 있어야 하는 줄 얼마나 생각했을까요.


  물을 길어서 밥을 짓습니다. 풀을 뜯어 반찬을 삼습니다. 된장을 풀어 국을 끓입니다. 수수한 밥차림입니다만, 함께 먹을 밥을 날마다 살펴서 차립니다. 밥도 날마다 차리지만, 나물은 끼니마다 뜯어야 해요. 비가 오건 날이 덥건 늘 풀을 뜯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절집에서 밥짓기부터 익히면서 마음을 닦는다면, 일흔 해나 아흔 해에 걸쳐 날마다 밥을 지은 할머니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일군 셈일까요. 하느님도 부처님도 모르는 채 늘 밥을 지어 한집 사람들을 먹여살린 할머니와 어머니는 저마다 어떤 삶을 가꾸면서 어떤 길을 걸은 셈일까요.


  절집에 들어가서 밥짓기를 익히면서 마음을 닦는다면, 우리들 살림집에서도 날마다 즐겁게 밥을 지으면서 마음을 닦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는 동안 얼마든지 마음을 닦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걸레질도 마음닦이입니다. 설거지도 마음닦이입니다. 아이들과 노는 하루도 마음닦이입니다. 집 둘레에 돋는 풀을 살펴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손길도 마음닦이입니다. 지난날에는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는 일도 마음닦이예요. 절구질을 하고 방아를 찧는 일도 마음닦이입니다.



.. 대중 울력은 보통 한나절 정도로 잡혀 정진에 지장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이 상례지만 모내기와 수확 그리고 김장 등의 일은 며칠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 바위가 많은 협소한 곳에 지어진 사찰은 흙이 부족한 관계로 낙엽을 위쪽으로 쓸어 모은다. 비질에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 수행자는 신발 뒤끝의 어느 한쪽만 닳게 신어서는 안 된다. 앞뒤가 고르게 닳아야만 수행자에 맞는 걸음걸이가 된다 ..  (73, 77쪽)




  절집 스님들이 씨앗을 뿌립니다. 절집 스님들이 낫을 들어 나락을 벱니다. 씨를 뿌려 돌본 뒤 거두어 갈무리하는 삶이 절집 스님들 마음닦이입니다. 이러한 일을 으레 할 줄 모른다면 스님이 못 되는 셈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교회 목사가 되든 성당 신부가 되든, 성직자가 되는 길에 이처럼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논밭을 일구는 삶을 함께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을 때에, 푸르게 눈빛을 밝혀 사랑스러운 숨결을 길어올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성직자가 익힐 삶이란 바로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입니다. 성직자가 만나는 사람이란 바로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에요.


  다른 학문에서도 이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교수가 되건 교사가 되건, 반드시 집일과 흙일을 배우도록 해야지 싶어요. 유치원 교사가 되건 시장이나 군수가 되건, 누구나 반드시 집일과 흙일을 익히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어도 날마다 집일을 다스리고 흙일을 돌볼 수 있도록 해야지 싶어요.



.. 향기 좋게 피는 야생화 사잇길의 여름 산보며,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갈대숲 사이의 가을 산보며, 토끼가 힘들여 뛰는 눈길의 겨울 산보, 밟히는 작은 이끼의 망울져 터져 나가는 생명의 신비를 바라보는 일들. 짧은 산행이라 차림 그대로여서 좋고, 목적이 없으니 바쁠 것 없어 홀가분하다 ..  (92쪽)



  아름답게 살 때에 즐겁습니다. 흙을 만지고 흙길을 거닐면서 숲바람을 쐬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자가용을 몰아 놀러다녀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풀밭을 밟으면서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놀이시설이 있어야 하는 공원이 아닙니다. 우람한 나무가 하늘로 뻗고, 들짐승이 함께 노니는 풀밭에서 뒹굴 수 있어야 공원입니다.


  절집에만 있어야 할 스님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스님이면서 살림꾼이요 오롯한 사람이어야지 싶습니다. 예배당에 있어야 할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하느님이면서 삶지기요 오롯한 사랑지기여야지 싶습니다. 부처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숲에서 태어났고, 숲에서 살림을 수수하게 가꾸던 살림꾼 손길에서 깨어났으며, 숲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맑은 눈망울에서 비롯했으리라 느낍니다.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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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9-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제게도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듯 해요.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책들'은 나올때마다 즐겁게 장만해 간직하고 있는데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 ,읽으며 다시 꺼내 읽으면 더욱 즐거울 듯 합니다~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숲노래 2014-09-09 09:46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저도 잘 못 느꼈을 텐데
요즈음 다시 읽어 보니
'절집'에서 하는 일 가운데
'행자들이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런 일들이 아주 많을 뿐 아니라
마음도 많이 써야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읽으면서
'참 재미있네' 하고 느꼈어요. ^^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 -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오랜 이야깃거리
제시카 커윈 젱킨스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69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

 제시카 커윈 젱킨스 글

 임경아 옮김

 루비박스 펴냄, 2011.12.20.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사람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가꾸는 오늘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저 먼 데에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고, 저 먼 곳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들려주는 책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거나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문명과 자연 사이 그 어디쯤에 놓인 알프레스코는 이탈리아말로 ‘신선한 공기 속에서’라는 뜻이다. 즉 그림 같은 풍광 속으로 소풍을 떠나거나 야외 식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직되고 엄격했던 빅토리아 여왕 재위 기간(1837∼1901) 당시의 사람들에게 도시를 벗어나 숨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 일본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좀더 아련한 기쁨을 주었다. 도시 거주자들은 귀뚜라미 콘서트를 듣기 위해 시골로 여행을 떠났다 ..  (13, 52쪽)



  제시카 커윈 젱킨스 님이 쓴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루비박스,2011)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름다움’을 a부터 z까지 여러 낱말을 빌어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아름다움이란, 이 책을 쓴 분이 스스로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글쓴이 스스로 누린 아름다움이고, 글쓴이 스스로 바라본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쓴 분이 보지 못하거나 겪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아름다움은 이 책에 없습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채지 못한 아름다움은 이 책에 없어요. 더없이 마땅한 일이지요.


  이를테면, 들꽃 한 송이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합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건드리지 못합니다. 흙알갱이 하나가 길어올리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살피지 못합니다.



.. ‘신 안으로 들어가기’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enthousiasmos에서 나온 ‘enthusiasm’이라는 영어 단어는 “열렬한 찬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합리성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했던 계몽시대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뜻이 모호했고, 지식인들은 그 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애썼다 … 책은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페이지에 꽉 들어찬, 과도하게 장식적인 고딕 글씨체를 혐오했다. 그는 그것은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지만 “읽으려고 만든 글씨가 아니다”라고 투덜댔다 ..  (66, 99쪽)



  바람이 불어 모든 목숨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바람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어 모든 목숨이 무럭무럭 살찝니다. 그리고, 햇볕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건드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려 온누리를 촉촉하게 적시니 싱그러운 냇물이 흐르고 시원한 골짝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빗물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임금님이나 귀족이 입은 옷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네들이 낀 장갑이나 쓴 모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옷을 짓는 천은 어떻게 얻었을까요? 모두 실을 짜서 천을 짓습니다. 실은 풀에서 나옵니다. 또는 양털로 얻기도 합니다.


  들판에 우거진 풀에서 실을 얻는다니, 놀랍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누구나 다 들판에서 풀줄기를 베어 실을 얻었어요. 옛날에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옷장을 짜며 걸상을 만들었어요. 나무질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수저도 손수 만들고 밥상도 손수 만듭니다. 모든 삶을 누구나 손수 지었어요. 참말 옛날에는 놀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뚝딱뚝딱 짓습니다.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짓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따로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가르지 않았어요. 날마다 아름다움을 누리는데 굳이 ‘아름다움’을 말할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나누는데 따로 ‘사랑’을 밝힐 일이 없습니다.



.. 후디니는 뉴욕의 한 클럽에서 어떤 일본인이 메뉴 카드로 새를 접는 것을 보고 종이접기를 배웠다. 그는 “마침내 내가 종잇조각으로 자연스럽게 날개를 파닥이는 작은 종이 새를 만들어 냈을 때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라고 썼다 … 기사도 정신이란 것이 생겨나기 전 유럽의 기사들은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12세기 아라비아의 연대기 작자 오사마는 기독교도 기사들이 돼지에 기름을 바른 다음 나이 든 여자들을 뒤쫓도록 시키며 즐기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  (152, 177쪽)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는 어떤 책일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왜 아름다움을 말하려 할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할까요?


  삶이 아름답지 못하니, 자꾸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는 않나요?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모르니, 자꾸 남을 살피거나 다른 눈치를 엿보지 않나요?


  밥 한 그릇이 아름답습니다. 말 한 마디가 아름답습니다. 수수한 놀이 한 가지가 아름답습니다. 살가운 노래 한 가락이 아름답습니다.


  된장국과 밥 한 그릇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담아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아름답습니다. 깔깔 하하 웃으면서 어깨동무하는 놀이가 아름답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아름답습니다.



.. 뉴턴은 연금술의 주제에 관해 100만 단어도 넘게 썼다. 다만 그의 사후에 왕립협회가 그 대부분을 ‘출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했을 뿐이다. 당국이 뉴턴의 은밀한 실험을 당혹감 때문에 숨겼는지, 아니면 그 자신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자료들을 숨겼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까지 뉴턴의 일부 서류들이 사라졌다 … 그들은 피지 원주민들이 만든 ‘잉꼬의 놀이터’를 미국 뉴멕시코 차마 인디언들의 ‘두꺼비’와 비교했다. 나바호족은 줄로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을 만들었고 파푸아뉴기니의 키와이 섬 주민들은 가재, 코코넛 야자 모양을 만들었다. 가장 널리 퍼진 모양은 ‘생쥐’였다. 뇌문의 미로를 통해 작은 쥐가 고양이를 피해 도망치는 모양.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수준 높은 것은 에스키모가 줄로 만든 모양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재빨리 줄을 움직이면 두 산 사이로 강이 흘러 평원으로 가고, 거기 솟은 산 옆에서 남자가 배를 타고 연어를 잡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  (183, 208∼209쪽)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있어요. 이곳을 바라보아요. 아름다운 삶이 늘 이곳에 어떻게 있었는지 잘 살펴요. 내가 누리는 아름다움부터 제대로 느끼고, 내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요.


  몽골이나 티벳이라면 하늘빛이 더 파랗겠지요. 서울이나 부산이라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하늘빛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습니다. 미얀마나 부탄쯤 가야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지 않아요. 인천이나 대구 골목길 한켠에서도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어요.


  민들레꽃도 아름답고, 냉이꽃도 아름다우며, 고들빼기꽃도 아름답습니다. 구름 한 조각도 아름답고, 소나기 한 줄기도 아름다우며, 참새 노래잔치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우리 곁에서 곱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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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구도감 - 궁금한 것을 찾아 연구해 보자!
아리사와 시게오 지음, 김창원 옮김, 쓰키모토 카요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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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8



무엇을 보며 살아가는가

― 자유연구도감

 아리사와 시게오 글

 쓰키모토 카요미 그림

 김창원 옮김

 진선북스 펴냄, 2009.12.3.



  글을 쓰는 아리사와 시게오 님과 그림을 그리는 쓰키모토 카요미 님이 빚은 책은 《탐구도감》(1999)이나 《애완동물도감》(2001)이나 《식물재배도감》(2001)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자유연구도감》(2009)도 두 사람 손길이 살가이 깃들어 태어난 책입니다. 다른 ‘도감’ 책들도 초등학생 눈높이에서 여러 가지를 스스로 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가 잘 나왔고, 《자유연구도감》도 초등학생이 스스로 이것저것 할 수 있도록 알뜰살뜰 알려주고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자유연구’일까요. 무엇이 ‘자유연구’일까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핍니다. 자유롭지 않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떤 틀에 얽매이거나 따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교과서에 나오지 않’거나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자유연구’라는 이름을 붙였구나 싶기도 합니다.



.. 하나는 어떤 일이든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면 책에 써 있지 않은 중요한 일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연구 주제가 여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머리말)



  풀벌레와 숲벌레를 잡아서 표본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표본은 얼마든지 만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벌레이든 풀이든 얼마든지 모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표본을 만들기보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찬찬히 지켜보도록 이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방학 숙제’라든지 ‘사회 탐구’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자유연구도감》이지 싶습니다. 또한 ‘연구’라는 이름을 붙인 책인 만큼, 꼭 ‘보고서’를 써서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끕니다.


  여러모로 돌아본다면, 일본 사회나 문화는 이처럼 꼼꼼히 살펴보고 갈무리해서 글로 적바림하는 버릇을 일찍부터 들이면서 발돋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온갖 숙제와 상장과 성적표와 점수를 따지느라,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둘레를 살피거나 갈무리하는 버릇을 들일 겨를이 없구나 싶습니다. 일본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도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많습니다만, 한국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는 그야말로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많습니다. 입시지옥과 제도권 울타리에 갇힌 채 시험성적만 따지는 한국 교육이니, 이러한 모습은 앞으로 더 깊어지리라 느낍니다.



.. 세제가 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중성 세제를 푼 물에 무순을 키워서 확인해 봅니다. 또 석유를 정제해서 만든 세탁용 합성 세제와 자연에 가깝다고 하는 천연 세제가 무순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여 정리해 봅니다 ..  (231쪽)



  ‘자유연구’가 숲에서 나무를 살펴보고 숲내음을 맡으며 숲에 깃들어 여러 날 스스로 지내는 길을 알려주거나 이끄는 이야기로도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자유연구’가 도시 한복판에 아이들이 손수 씨앗을 심고 가꾸어 숲을 이루는 길을 슬기롭게 보여줄 수도 있기를 빕니다. ‘자유연구’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돌보는 사람들 숨결을 보여주거나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귀여겨듣는 자유연구도 생기고,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림을 꾸리는 길을 살피는 자유연구도 생기며, 전쟁과 폭력과 군대를 없애는 길을 찾는 자유연구도 생기기를 빕니다.


  역사를 스스로 배우는 길을 찾는 자유연구도 생기고,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루는 길을 헤아리는 자유연구도 생기며, 날마다 내 하루를 새롭게 노래하면서 웃고 뛰노는 길을 북돋우는 자유연구도 생기기를 빌어요.



.. 자전거를 세밀하게 조사하여 어떤 과학의 원리와 힘을 응용했는지 부분별로 조사해서 커다란 종이에 정리해 봅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생활 주변에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을 응용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  (251쪽)



  자전거와 얽힌 과학을 살피는 일도 재미있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 한결 재미있구나 싶어요. 자전거를 타고 한국이든 일본이든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도시와 시골을 두루 돌아다니기도 하며, 자전거를 스스로 손질하고 아끼는 모습도 살필 수 있겠지요.


  고갯마루를 자전거로 넘는 느낌을 헤아리고, 판판한 길을 달리는 느낌이랑, 흙길과 숲길과 시멘트길을 달리는 느낌을 다 다르게 헤아리도록 이끌어도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참말 자유연구를 밝히기를 빌어요. 굳이 보고서를 안 써도 돼요. 마음으로 느끼고, 삶을 사랑하며, 이웃과 동무하고 노래하는 나날을 꿈꾸는 자유연구가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4347.8.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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