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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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1



찔레꽃내음을 바람과 함께 마신다

―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글

 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2015.5.8.



  나는 오늘 시골에서 살지만, 서른 언저리까지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시골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삶을 짓지만, 우리 어버이는 나를 도시에서 낳으셨습니다. 나는 서른 언저리까지 도시에서 내 땅이라고 할 만한 보금자리를 조금도 못 누리는 채 살았고, 우리 아이들은 비록 얼마 안 되는 우리 땅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럼없이 뛰고 달리고 파고 뒹굴고 뒤집고 밟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삽니다.


  어버이로서 아이와 누릴 삶이란 바로 ‘우리 숲’이고 ‘우리 마당’이며 ‘우리 나무’요 ‘우리 꽃’이자 ‘우리 풀’이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나란히 씨앗을 심을 만한 땅을 보살필 노릇이고,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넉넉히 일굴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손수 가꾼 정원이란, 특별히 사계절 내내 꽃이 가득 찬 공간이 아니다. 하늘에 들어찬 별처럼 찬란한 만개의 순간을 일 년에 며칠 정도만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소우주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인생에서 겨울은 좌절의 기간이다. 식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것도 새로운 비약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 취미란 게 대체로 그런 것 아닌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  (9, 24, 50쪽)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지었습니다. 왜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하는가 하면,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얻어야 했으니, 스스로 삶을 지어야 했습니다. 아기가 아니라면 누구나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드러눕지 않는다면 마땅히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건사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만 할 뿐, 스스로 삶을 짓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이 ‘전문 일자리’에 얽매일 뿐, 스스로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기자나 의사나 교사나 운전사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법관이나 경찰이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과 같은 ‘한 가지 일만 하는 전문가’로 있을 뿐,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지어서 가꾸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오늘날에는 참말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만 해서 돈을 쓰기만 하는 하루를 보냅니다. 흙을 만질 겨를이 없고, 흙을 헤아릴 틈이 없으며, 흙을 밟거나 흙내음을 맡거나 흙숨을 쉴 자리가 없습니다.



.. 산길에서 만나면 “아, 꿩이 있구나.”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 안이라는 너무나 친근한 장소에서 꿩을 목격하자 감동과 흥분이 뒤따랐고, 깊게 교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일었다 … 여름 정원을 운치가 없는 지루한 공간이라 규정한 것은 너무 조급했다. 무의미한 단색으로 유린된 가련한 공간으로 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 평화를 넘어 타락의 소굴로 변한 이 나라는 정신은커녕 영혼까지 통째로 뺏길 위험에 처해 있고, 어느새 따라야 할 모범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 있고, 자신을 계속 압박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기기만의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  (34∼35, 81, 92쪽)



  마루야마 겐지 님이 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 님이 누리는 시골살이 가운데 한 토막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곁님이랑 둘이 조용히 깃들어서 살며 누리는 이야기를 곰곰이 들려줍니다. 다만, 곁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지 않습니다. 오직 마루야마 겐지 한 사람이 누리고 바라보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라는 책은 어떤 이야기를 적은 책일까요? 마루야마 겐지 님은 ‘정원 일’을 적었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정원’은 어떤 곳일까요? 일본사람은 ‘庭園’이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한국말로 옮기면 ‘뜰’이나 ‘꽃밭’입니다. 그러니까, 마루야마 겐지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350평짜리 ‘뜰’이나 ‘꽃밭’을 가꾼 열두 달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 정원 가꾸기는 언어, 그림 도구나 악보, 암석이나 점토, 금속이나 유리처럼 경험을 통해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식물을 상대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고 순조롭게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 … 안타깝게도 아주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예술은 아직 예술을 흉내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 피상적인 미의 세계는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비슷하게 흉내내고 다시 찍어내는 행위가 횡행한다 … 바람 없는 맑은 날 오후였다. 단풍이 절정에 이른 정원에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처음으로 땅에 적응해 길들여진 인간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  (97, 102, 106쪽)



  뜰이나 꽃밭은 ‘텃밭’이 아닙니다. 풀꽃과 꽃나무를 심어서 돌보는 곳이 뜰이거나 꽃밭입니다. 그러니까, 마루야마 겐지 님도 이녁이 손수 먹을 밥을 돌보려고 하는 밭자락이 아닌,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생각을 곱게 북돋울 마음으로 가꾸는 뜰이요 꽃밭인 셈입니다.


  그런데, 마루야마 겐지 님은 뜰이거나 꽃밭인 땅을 가꾸고 손질하면서 찬찬히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위대한 철학자들이 만약 정원 꾸미기에 정신을 쏟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진정 기뻐하며 위대한 범인으로써 생애를 장식할 수 있지 않았을까(126쪽).” 같은 깨달음입니다. 이 말은 다른 ‘철학자’와 ‘지식인’한테 외치는 말이면서, 바로 마루야마 겐지 님 스스로한테 외치는 말입니다. 마루야마 겐지 님 스스로 뜰이요 꽃밭을 가꾸면서 ‘나 스스로 가장 수수한 삶을 사랑하면서 즐긴다’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마루야마 겐지 님을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와 ‘작가’가 저마다 제 텃밭을 누리거나 논을 일굴 수 있다면, 훨씬 더 수수하면서 투박한 삶이 될 테고, 저마다 스스로 가장 고우면서 참다운 숨결로 거듭나서 사랑과 꿈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 정원은 가능한 색채를 모두 동원해, 조금 지쳐 있던, 아니, 어쩌면 아사 직전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를 영혼을 금세 치유하고,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게 했다 … 단풍이 선사한 도취의 하루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로써 훌륭한 생애는 아닐까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 무엇이든 겉만 봐서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없다. 직접 손으로 만짐으로써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 읽는 것은 머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쓰는 것은 정원 일처럼 육체적 노동이 동반된다 … 읽는 것은 감상이고, 쓰는 것은 연주이다. 연주를 하려면 당연히 거듭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체험과 경험이 밑받침되지 않는 지식과 정보에 매달려 살아가려는 사람은, 경솔하게 산 사람보다도 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  (108, 110, 120, 121쪽)



  삶은 누구나 스스로 짓습니다. 삶짓기입니다. 밥을 지어서 밥짓기이고, 옷을 지어서 옷짓기이며, 집을 지어서 집짓기입니다. 삶을 짓는 까닭은 밥과 옷과 집을 짓기 때문에 삶짓기인데, 흙을 지어야 밥과 옷과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흙을 지어서 풀열매가 나옵니다. 흙을 지어서 풀줄기에서 실을 얻습니다. 흙을 지어서 나무가 우람하게 자란 뒤에 집을 짓습니다.


  사람이 가꾸는 나무는 ‘내가 누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꾸는 나무는 ‘내가 낳은 아이가 누립’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나무는 옛사람이 나를 헤아리면서 심어서 가꾸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오늘 이곳에서 나무를 심어서 가꾸지 않으면, 내 뒤를 이어서 자라거나 살아갈 사람이 누릴 나무가 없습니다.


  내가 오늘 삶을 지어야 나부터 즐거운 하루가 되고, 내 뒤를 이어 이 지구별에서 보금자리를 일굴 아이들이 즐거운 터전을 가꿉니다. 내가 오늘 삶을 짓는 이곳은 내 앞사람이 슬기로운 마음으로 기쁘게 가꾼 터전입니다.



.. 서재에 틀어박혀 관념에만 매달리고, 나 혼자 인간과 세계 전체를 파악하려 하면 어떤 천재라도 결국은 고뇌로 인한 고뇌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도시가 이상한 세계이고, 생물들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는 걸 진심으로 설득할 사람이 없다면, 그 중요한 역할의 일부를 내가 담당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자연으로부터 나는 책 수만 권을 독파하는 것 이상의 대발견을 계속 하고 있다 … 바람은 장미를 단련시켜 진정한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장미는 바람에 향기를 실어 보낸다 ..  (127, 128, 132쪽)



  열두 달 이야기를 차곡차곡 갈무리한 글을 읽습니다. 마루야마 겐지 님은 처음에는 풀과 나무를 이야기하는듯이 보였으나,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도시에서 사는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한 자락 읊습니다. “도시가 이상한 세계이고, 생물들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128쪽).”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노래하듯이 말합니다. 마루야마 겐지 님이 읽는 ‘책’은 도시에 있는 인문학자가 지식으로 쓴 글꾸러미가 아니라, 시골에서 손수 일구는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숲책’이라는 이야기를 기쁘게 노래하듯이 말합니다.


  책을 마무리지으면서 적은 “바람은 장미를 단련시켜 진정한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장미는 바람에 향기를 실어 보낸다(132쪽)” 같은 대목에 천천히 밑줄을 긋습니다. 나는 이 마음을 날마다 느낍니다. 나도 시골자락 우리 보금자리에서 바로 이 이야기를 아침저녁으로 아이들과 누립니다.


  장미꽃내음이 얼마나 짙은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길가에 핀 장미꽃이나 놀이공원에 가득한 장미꽃이 아니라 ‘우리 집 꽃밭’에서 핀 장미꽃이 얼마나 깊고 짙으며 너른 냄새를 나누어 주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오월은 시골자락마다 찔레꽃이 피는 철입니다. 찔레꽃이 피는 철은 들딸기가 빨갛게 익는 철입니다. 하얀 찔레꽃 사이사이 새빨간 들딸기알이 알록달록 어우러집니다. 찔레꽃내음과 들딸기알내음이 어우러지는 바람을 마시면, 손으로 열매를 훑어서 먹지 않아도 온몸이 배부릅니다. 마루야마 겐지 님은 바로 이런 꽃내음과 바람노래를 언제나 누리기에 ‘뜰이나 꽃밭을 가꾸는 삶노래’를 조곤조곤 글로 적어서 멋지게 책으로 엮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8.5.16.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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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봐요, 호오포노포노 - 부와 건강과 행복을 부르는 하와이언들의 말 판미동 호오포노포노 시리즈
타이라 아이린 지음, 김남미 옮김, 이하레아카라 휴 렌 감수 / 판미동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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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0



마음을 가꾸는 네 마디 말

―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

 타이라 아이린 글

 김남미 옮김

 판미동 펴냄, 2015.4.23.



  모든 말에는 마음이 깃듭니다.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읊는다면 아무 생각이나 아무렇게나 흩뜨리면서 아무 마음이나 되겠다는 몸짓이 되어, 아무 삶으로나 흐르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생각하면서 기쁘게 헤아린 말을 하나하나 읊는다면 기쁜 꿈이 깃든 마음으로 말길을 틀 테니, 언제나 나 스스로 꿈꾸는 길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새가 들려주는 소리는 아무렇게나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노래가 될 수 있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새롭게 지저귄다고 느낍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아이하고 나누는 말 한 마디는,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새처럼 늘 스스로 노래하는 말 한 마디일 때에, 어른인 나부터 즐겁고 아이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기쁜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 우리의 참된 모습이자 원래의 상태는 제로, 자유, 텅 빔, 무(無), 순수, 새로움이며, 이때의 ‘진정한 나’는 신성한 존재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 정화의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고마워요’,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사랑해요’라는 네 마디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 정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이 시작할 수 있다 … 내가 자유로워져야 나의 물건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  (19, 22, 23, 48쪽)



  타이라 아이린 님이 휴 렌 박사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찬찬히 엮은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판미동,2015)를 읽습니다.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언제나 네 가지 말을 내가 나한테 스스로 들려주면서 마음을 씻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남이 나한테 아무리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말을 들려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한테 스스로 아무 말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달라지거나 거듭날 수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내가 밥을 먹습니다. 숨을 쉬어도 내가 숨을 쉽니다. 길을 걸어도 내가 걷습니다. 눈을 떠도 내가 눈을 뜹니다.


  눈을 뜨고 바람을 마시면서 밥을 받아들일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네가 아닌 나입니다. 내가 눈을 뜨지 않고서야 너한테 눈뜨기를 알려줄 수 없습니다. 내가 바람을 마시면서 목숨을 건사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 스스로 목숨을 건사하도록 바람을 마시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며 잠을 자는 사람은 언제나 바로 나입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지을 때에 비로소 내 길을 엽니다.



.. 스스로 ‘기억’인지 ‘사랑’인지 물을 때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기억이 축적되어 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기억을 선택하고 있는지 깨달을 것이다 … 내가 호감을 느끼는 것조차 내 자유를 빼앗는다. 정말 그럴까? 나는 평소 좋아했던 것들을 되돌아봤다 … 일부러 돈을 내고 구입했으니 안 쓰면 손해라는 식으로 열심히 사용하기도 했다. 확실히 거기엔 물건의 영혼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  (37, 43, 47쪽)



  ‘고마워요’,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사랑해요’라고 하는 네 마디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네 마디를 다시 갈무리합니다. 영어로는 ‘I love you’, ‘I'm sorry’, ‘Thank you’, ‘Please forgive me’라고 한다니까, 또 이 책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를 보면 책겉에 영어로 이러한 차례로 적혔으니, 새롭게 되읽어 봅니다. “사랑해”, “잘못했어”, “고맙구나”, “부디 봐주렴(나를 봐주렴)”.


  어떤 말로 네 마디를 읊어도 다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하와이섬에서 살아온 분들은 처음에는 영어가 아니라 그곳 말로 이 네 마디를 읊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 네 마디가 영어로 새롭게 옷을 입었고, 한국에도 호오포노포노가 들어오면서 한국말로 다시 옷을 입혀서 네 마디를 읊습니다.


  ‘I'm sorry’를 흔히 ‘미안(未安)하다’로 옮기곤 하는데, 한자말 ‘미안하다’는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를 뜻합니다. ‘편(便)하다’는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다”를 뜻합니다. ‘죄송(罪悚)하다’라는 한자말은 “죄스러울 정도로 황송하다”를 뜻합니다. ‘황송(惶悚)하다’는 다시 “분에 넘쳐 고맙고도 송구하다”를 뜻한다 하고, ‘송구(悚懼)하다’는 “두려워서 거북스럽다”를 뜻한다 하는데, ‘송구하다’는 일본 한자말이기에 ‘미안하다’나 ‘죄송하다’로 고쳐써야 한다고 한국말사전에서 풀이합니다. 말뜻을 찬찬히 살피면 ‘I'm sorry’를 ‘미안하다’로 옮겨서 말할 적에는 그리 알맞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이 말을 쓰는 결을 살펴서 “잘못했습니다”나 “잘못했어”로 고쳐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Please forgive me’를 ‘용서해 줘요’로 옮기지만, 한자말 ‘용서(容恕)’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을 뜻합니다. 그런데, 한자말 ‘용서’를 한국사람이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한국사람은 이런 말을 안 쓰고 살았습니다. 하와이 겨레가 처음부터 영어를 쓰지 않았듯이, 한국사람은 처음부터 한자말이 아닌 한국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보아주다’나 ‘봐주다’입니다. “나를 봐주셔요(보아주셔요)”나 “부디 봐주십시오(보아주십시오)”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진정한 나’를 되찾는 것이다 …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눈앞에 나타난 일을 착실히 정화할 때,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한 무거운 기억이 제거되고 진정한 나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 (휴 렌) 박사는 내게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해 어떤 기대나 집착을 가지면 그 즉시 우니히피리(잠재의식)에게 빛이 차단된다고 말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도, 그때 맛보는 감정도 모두 정화의 대상이다 ..  (65, 77, 135쪽)



  내가 스스로 나를 따사롭게 다스리는 길에 읊는 네 마디 말 가운데 “부디 봐주렴(나를 봐주렴)”을 더 헤아려 봅니다. 한국사람은 잘못을 덮어 달라고 할 적에 “봐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보아주다’인데, 나를 ‘보아’ 달라고 하는 말입니다.


  한국말 ‘보다’는 눈으로 겉모습을 알려고 하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생각하다’나 ‘헤아리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다’는 몸(두 눈)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알려고 하는 몸짓이면서, 마음(생각)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알려고 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덮어 달라고 할 적에 ‘보아주다(봐주다)’라고 말한 한겨레 삶을 살피면, 나를 그대로 보고 나를 그대로 헤아리면서 나를 그대로 아끼고 보살펴 달라고 하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잘못했어” 하고 말하면서 “나를 봐주렴” 하고 덧붙일 때에 내가 내 모든 몸짓과 말과 삶을 꾸밈없이 들여다보면서 따스하게 다스리는 흐름이 되리라 느낍니다.


  내가 나를 보면서 “잘못했어” 하고 말하기에, 나는 나한테 “고맙”습니다. 내가 나를 고맙게 여기면서 “보아주겠다”고 말하니,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네 마디 말은 언제나 함께 움직이면서 나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서서 내 길을 걷도록 이끕니다.



.. 이제야 납득이 갔다. 억지로 진심을 담으려고 하면 반드시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뒤따랐던 것이다. 정화는 각자가 가진 기억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최초의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 사랑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된다 … 세상에는 무수한 감정들이 있다. 그러나 감정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재생에 불과하다. 그것을 그대로 흔적으로 남기며, 각자가 지닌 본래의 완벽한 상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  (163, 169, 202쪽)



  억지를 부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아이들이 ‘떼’를 쓴다고 흔히 말하는데, 어른도 ‘억지’를 곧잘 부립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떼를 쓴들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아무리 억지를 부린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억지로 쓰는 글은 재미없고, 억지로 하는 놀이는 따분하며, 억지로 잠을 재우려면 졸립지 않습니다.


  기쁘게 해야 기쁩니다. 신나게 해야 신납니다. ‘호오포노포노’는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삶이 기쁜 줄 스스로 ‘보’면서, 이를 고스란히 느끼자고 하는 이야기이니, 늘 가장 쉽고 홀가분하면서 보드랍습니다.


  내 삶을 내가 바라보니,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삶은 언제나 이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열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니 기뻐서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들꽃이나 들풀을 밟았으니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나물을 뜯으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바람을 마시고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내 똥오줌을 흙한테 돌려주면서 부디 거름으로 삭혀 주오 하고 바라며 ‘봐주렴’ 하고 말합니다.


  어떤 말로든 스스로 마음을 나타내고 드러낼 때에 비로소 홀가분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로도 마음을 나타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한다면 거북하거나 답답합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마음을 나타내고, 이 마음을 곰곰이 되짚으면서 생각을 키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 한 마디를 바람에 얹습니다. 기쁜 생각을 지어서 꿈 한 마디를 바람에 담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저마다 다른 삶자리를 가꾸면서 스스로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말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4348.5.9.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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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 우리가 꿈꾸던 마을이 펼쳐지고 있다,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박재동 글.그림 김이준수 글, 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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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9



한마을에서 이웃이 되는 길

―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박재동·김이준수 지음

 샨티 펴냄, 2015.4.6.



  ‘마을 살리기’ 바람이 찬찬히 온 나라에 붑니다. ‘마을’이라는 낱말은 시골에서 쓰는 말이고,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쓰지만,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을’이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마을’이라는 낱말은 “살림집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동네’는 ‘洞 + 네’입니다. ‘동네’는 ‘洞內’에서 말꼴이 바뀌었다고도 하지만, ‘형네’나 ‘할머니네’처럼 ‘-네’를 붙였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한겨레는 먼 옛날부터 ‘마을’이라는 낱말만 썼으나, 시골살이가 사라지는 곳, 이른바 ‘도시’가 생기면서 한자를 빌어 ‘동네’라는 낱말을 새로 지어서 썼다고 여깁니다. 오늘날에는 ‘뉴타운’ 같은 영어를 쉽게 쓰지만, 일제강점기 언저리와 해방 뒤에는 으레 한자로 새 낱말을 지어서 썼습니다.


  그러니까, 오래된 삶터에서는 수수하게 ‘마을’이라는 낱말을 쓰는 셈이요, 새로운 문명과 사회를 보여주려고 하는 도시에서는 ‘동네’라는 낱말을 써서 둘을 가르려고 하는 셈입니다.



.. 임유화 씨는 아파트가 한 칸 한 칸의 사적 재산물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집합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이 속속 판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성미산마을은 점점 더 흥미로운 곳이 되어 갔다 … ‘어울려서 요리하고 먹는’ 즐거움이 주방에서 시작해 마을로 이어진다 ..  (15, 29, 47쪽)



  ‘두레’를 엮으려는 움직임이 나라에서까지 일어납니다. 한자말로는 ‘협동조합’이라고 하는데, ‘협동조합’은 일본에서 지은 낱말입니다. 협동조합 운동도 일본에서 불거졌습니다. 나라에서 정책으로 협동조합 바람을 일으키기 앞서,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습니다. ‘두레 생협’ 같은 이름을 쓰는 곳도 있었는데, 생협이든 협동조합이든 한국말로 가리키면 ‘두레’입니다.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여럿이 함께 큰일을 할 적에 ‘두레’를 합니다. 두레를 모임으로 엮지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태어났고, ‘두레’라는 이름도 시골살이에서 나타났습니다. 도시에서는 흙일을 하지 않는데, 외려 도시에서 ‘마을 살리기’나 ‘마을 만들기’를 벌이고, ‘두레’라는 모임을 엮으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납니다.



.. 누군가는 이웃랄랄라가 어떻게 마을공동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웃랄랄라는 분명 마을공동체다. 스스로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 이런 과정에서 은실이네만의 철학도 생겼다. 조금 벌더라도 일을 많이 하지는 말자 … 마을에서는 곧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대도시들은 이런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 곽수경 씨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을의 청소년들도 언젠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59, 68, 78, 204쪽)



  박재동·김이준수 님이 빚은 이야기책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샨티,2015)을 읽습니다. 서울에서 ‘마을 살리기’를 알차면서 예쁘게 잘 하는 스무 군데 마을을 찾아다닌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서울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마을이 스무 군데뿐이겠습니까만, 이 스무 군데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마을이 자라기를 비는 마음일 테고, 다른 모든 예쁜 마을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기를 꿈꾸는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책을 찬찬히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왜 마을 살리기를 할까요?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마을 살리기를 한다고 한다면, 마을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살리기를 굳이 해야 하는 까닭이라면, 마을이 죄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어긋난다고 해야 할까요,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요, 197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나라에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아직도 깃발이 나부낍니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새마을 운동 깃발을 내걸어야 합니다. 시골 군청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고, 도시에서도 이 깃발을 내걸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일고 난 뒤부터 ‘마을이 죽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시골에 있던 수많은 마을을 깡그리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도시에 있던 달동네도 하나둘 짓이겼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갑고 고요하게 숨쉬던 마을살이를 몽땅 내쫓으려고 하던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벌이면서, 풀집과 흙집을 허물었습니다. 제비집도 까치집도 허물었습니다. 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덮었고, 논둑도 시멘트로 덮으며, 논도랑도 시멘트로 덮었지요.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쓰도록 부추긴 새마을 운동입니다. 새마을 주택을 짓게 시키고, 새마을 모자를 쓰게 시키며, 새마을 수련원을 세워서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 시민’을 키우려고 닦달했습니다.



.. 마을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망정 되지 않은 일은 없다 … 〈도봉 N〉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도 놓치지 않고 신문에 담아냈다. 아이들이 쓴 시가 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은 신문이 언제 나오느냐고 보채곤 했다.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가 실리는 신문, 마을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 미디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때 빛이 난다. 내 주변에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즐겁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와보숑은 보여준다 ..  (114, 129, 151쪽)



  마을은 나라에서 세우지 못합니다. 마을은 사람들 스스로 세웁니다. 사람들이 손수 흙을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들을 돌볼 적에 비로소 살림집 한 곳이 태어나고, 이웃집이 생기고 늘면서 바야흐로 마을을 이룹니다. 커다란 장비를 써서 아파트를 수백 채씩 때려박아서 수천이나 수만에 이르는 사람이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도록 해야 ‘마을’이 되지 않습니다. 예부터 ‘마을’이라고 하는 곳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삶터’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즐겁게 살다가, 새롭게 아이를 낳아서 오래오래 물려줄 만한 삶터’가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에 나오는 ‘마을 살리기’를 찬찬히 보면, ‘골목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드뭅니다. 으레 아파트로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아파트라고 해서 마을이 안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언제나 재개발을 합니다.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이곳에 ‘예전 아파트 주민’이 다시 돌아와서 살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아파트 재개발을 하면 예전 아파트를 허물면서 나오는 온갖 시멘트 쓰레기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갈 곳이 없어요. 이런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까요? 갯벌에 파묻고 매립을 할까요? 바다에 던질까요? 가난한 이웃나라에 아파트 쓰레기를 내다팔까요?


  마을 한 곳은 한두 해나 열스물 해 사이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을 한 곳은 아무리 짧아도 이백 해는 흘러야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된 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를 꾸준히 되풀이한 뒤에라야 비로소 마을이 뿌리를 내립니다.



.. 아이들을 대하는 아빠들의 태도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아내의 몫으로만 여기던 육아를 자신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와 함께 바깥으로만 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마을의 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마을무지개의 미덕은 이주 여성을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본다는 것, 경제 활동을 함께하면서 마을공동체도 일구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  (184, 234쪽)



  서울은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땅은 무척 좁은데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텃밭을 누리기 몹시 어렵습니다. 마당 있는 집에서 지내는 서울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고급아파트나 호화빌라에 살더라도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지요. 마음껏 악기를 켜거나 노래를 부를 만한 살림집에 깃든 서울사람은 그야말로 드뭅니다.


  서울에서 꾀하는 ‘마을 만들기’는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못 심고 텃밭 한 조각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더는 이 갑갑한 곳에서 숨이 막혀 못살겠다!’고 하면서 외치는 목소리라고 느낍니다. 층간소음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말고,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수다를 떨면서 밥잔치도 열고 술잔치도 벌이면서, 온갖 잔치를 함께 누리자고 하는 신나는 놀이마당을 꿈꾸면서 ‘마을 만들기’를 꾀하지 싶습니다.


  마을은 언제나 놀이마당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노니까요. 마을은 언제나 일터입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언제나 일하니까요. 다만, 놀이와 일은 서로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 일거리를 거들면서 기쁘게 놉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놀도록 온갖 놀잇감을 손수 만들어서 건네며 함께 놉니다. 놀이노래를 가르치고, 놀이를 물려줍니다. 너른 마당과 들과 숲에서 아이들이 걱정없이 뛰놀도록 삶터를 가꿉니다.


  서울에서 꾀한다는 ‘마을 만들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기를 바라는 꿈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이 짓는다는 ‘마을’은 바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고 노래하는 잔치마당을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에서도 앙증맞은 마을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강아랫마을과 강웃마을 모두 사랑스러운 마을이 새로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리하여, 나중에는 서울과 시골이라는 울타리가 없이, 모두 한동아리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멋진 ‘한마을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4.28.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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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 2017 대선, 박원순 vs 반기문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8
고성국.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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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8



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보는가

―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고성국·지승호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4.24.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얘기는 조선 무렵부터 불거졌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이 얼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위해시설은 서울에서 벗어나고, 서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로 몰립니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도 서울바라기이고, 커다란 도시에서도 서울바라기입니다. 아무튼 서울에 한발을 걸치고 살아야 뭐가 되든 된다고 여깁니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서울 아닌 곳으로 옮기고,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 아닌 곳으로 가며, 공공기관이며 크고작은 회사가 서울 아닌 데로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줄어들 수 있을까요?


  대학교와 행정기관과 회사가 서울을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여러모로 줄어들리라 느낍니다. 다만, 줄어들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대학교와 시설과 기관이 서울에서 떠나더라도, 사람들은 서울에 많이 남을 테니까, 서울에 있어야 ‘돈’이 모이거나 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으리라 느껴요.



.. 인적 자원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연합 쪽이 훌륭해요. 그런데 왜 이 모양이냐? 저는 그게 마음을 제대로 비우지 못해서라고 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당장 금배지를 달아야 하고, 당권도 잡아야 하고, 대선주자도 되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길이 없는 거예요 … 이벤트 몇 번으로는 어렵고요. 그건 새누리당이 더 잘하죠. 당 색깔까지 확 바꾸잖아요 … 진보 진영이 결코 새누리당을 얕봐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표현 하나 하나가 상대에 대해서 시니컬해요. 잠깐 화풀이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는 못 이깁니다. 상대를 경쟁상대로 인정하고 분석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어요 ..  (14, 17, 33쪽)



  시골에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서 면이나 읍 한 곳에서 사는 사람 숫자는 서울이나 큰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한 곳보다 적기 일쑤입니다. 시골 군 한 곳은 서울에 있는 동 한 곳보다 사람 숫자가 훨씬 적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조용합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자동차도 적어 바람이 훨씬 맑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서울과 달리 일거리나 돈벌이가 매우 드물지만, 시끄러운 소리도 매우 드뭅니다. 모내기와 가을걷이로 바쁜 봄가을 한철을 빼면 농기계 소리를 들을 일조차 드뭅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이니, 시골에서는 층집을 올리는 일이 드물고, 땅밑을 파서 살림집을 꾸미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마당을 누리고 텃밭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마당 한쪽에 꽃나무나 열매나무를 심어서 가꿀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마당에서 쿵쿵 뛰든, 집에서 콩콩 구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피아노나 기타를 마음껏 칠 수 있고,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인 만큼,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거나 열매를 따는 일을 하는 일거리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밥을 손수 일구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과자나 라면이라면 가게에 가서 사다 먹어야 할 테지만, 내 밥을 내 손으로 땅에서 얻는 곳이 시골입니다. 밥 굶을 일은 없는 시골입니다.



..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믿고 싶은 걸 믿었던 겁니다. 당시 누가 이길 것이냐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좀 있었죠. 저는 박근혜가 유리하다고 봤고요 …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분명한 목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 치열함이랄까 처절함을 ‘수첩 공주’라며 비아냥거린다거나 권위적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놀리듯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본 거예요. 오히려 당시 야권의 후보들이 그런 치열함이 있었느냐고 반문해야죠. 상대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걸 보고 아무런 경각심도 가지지 못한다면 이길 수가 없죠 ..  (19, 20쪽)



  시골사람이 시골일을 모두 손으로 하던 때에는 학교에서 ‘농번기 방학’을 두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시골마을마다 온갖 농기계가 들어오면서 이제 ‘농번기 방학’을 더 두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가르치는 어버이는 매우 드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여느 어버이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시골을 벗어나서 ‘몸 안 쓰고 돈 잘 버는 도시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시골 초·중·고등학교도 시골아이가 하루 빨리 ‘도시내기’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시골에서 쓰는 교과서는 서울에서 만든 표준 교과서일 뿐이고,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을 알려줄 뿐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모내기를 언제 하는 지 모르기 일쑤이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어도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는 철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시골학교조차 시골일을 시골아이한테 안 가르치니, 도시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시골일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는 길을 학교에서 배우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 지난날 민주화 운동, 재야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모를 이들의 희생과 실천이 쌓여서 생긴 거잖아요. 지금의 진보 진영이 그 기반 위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 원칙과 가치를 관철할 전략적 유연성, 박근혜 정부는 이게 없어요 … 야당에서 자꾸 과거 권력을 심판하자고 나서는데 그건 잘못된 전략이에요 …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앞으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입니다 … 문제는 옳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왜 졌는지도 알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 뻔히 알면서 안 하잖아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  (31, 37, 39, 43쪽)



  고성국 님과 지승호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한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철수와영희,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정치평론을 하는 고성국 님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이야기’를 다룹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한 사람이 붙고 한 사람이 떨어진 까닭을 찬찬히 짚습니다. 다음 대통령선거에 나올 만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마음결과 몸짓으로 거듭나야 표를 더 받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습니다. 정치와 대통령선거와 사회 이야기를 다루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인데,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대목보다도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대목을 깊게 다루면서 살펴보는 책입니다.



.. 여론조사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민심에 밝은 것이 지금의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막상 뭔가를 결정할 때 보면 국민여론과 동떨어져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우선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심과 떨어져 있죠. 그리고 정부부처 장관, 차관들이 민심과 떨어져 있습니다 … 어디나 극단은 존재합니다. 다만 진보건 보수건 국민과 소통하려면 극단의 목소리를 걸러낼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거예요 … 통진당 해산으로 진보 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면, 이를 국민적 대중 진보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  (50, 67, 77쪽)



  고성국 님은 한국 정치가 부디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길’이면서 ‘제 길’을 걷고 ‘참다운 길’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기투표를 하듯이 벌이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더라도 ‘삶을 살리는 정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쪽 정당이 이겨야 하거나 저쪽 정당이 져야 하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알차게 가꿀 수 있는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시민)가 스스로 슬기롭게 깨우쳐서 정치 일꾼을 지켜보고 옳은 길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앞서 ‘여느 정치 일꾼’으로 있을 적부터 제대로 ‘일꾼’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사회를 살리고, 올바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문화를 가꾸며, 참답게 일하는 사람이어야 교육을 바로세워서 이 나라에 평화와 평등이 널리 퍼지도록 힘쓰겠지요.


  인기투표가 아닌 정책투표가 되어야 하고, 인기몰이를 하려는 정책이 아닌 참답게 삶을 가꾸려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기 정치인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우면서 믿음직한 정치 일꾼이 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이명박은 한 번 장사꾼은 영원한 장사꾼이라고 하는 사실을 재임기간인 5년 내내 보여줬지요 … 정치인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에서 실패하고 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 제가 보기에 정치는 이류이고, 행정은 삼류이고, 기업은 사류입니다 … 저는 기업보다 정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관점, 인간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이윤을 얼마나 내느냐 하는 효율성을 놓고 보면 기업이 이유라고 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치가 훨씬 나아요.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인간 존중은 이윤추구보다 한 단계 위입니다 ..  (92, 93, 106쪽)



  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볼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바라며 정치를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어떤 삶으로 나아가려고 정치를 살필 때에 즐거울까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를 찬찬히 읽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간층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중간층은 무엇을 바랄까요?


  중간층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 선거가 아니라, 중간층을 비롯해서 이쪽과 저쪽이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도록 힘쓸 수 있어야 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아름답게 서도록 가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늘 느낍니다. 누가 심든 씨앗은 씨앗입니다. 이쪽 정당 사람이 심기에 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저쪽 정당 사람이 심은 탓에 말라죽지 않습니다. 씨앗은 오직 사랑으로 심어야 잘 자랍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심은 뒤 오직 아름다운 손길로 돌봐야 잘 큽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논밭에 깃들어 아름다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은 뒤, 오직 기쁜 손길을 타야 소담스러운 열매가 됩니다. 그리고, 밥은 우리가 모두 먹습니다. 이쪽 정당 사람은 굶어야 하지 않고, 저쪽 정당 사람만 배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나누어 먹을 밥입니다. 가난한 이웃이 있으면 정당을 가리지 말고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배부른 동무가 있으면 배고픈 동무하고 밥술을 나눌 노릇입니다.


  온누리를 골고루 어루만지는 햇볕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깃드는 빗물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부는 바람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푸른 숨결을 베푸는 숲처럼, 한국 정치가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한국 정치가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자면, 정치 일꾼에 앞서 바로 우리부터 스스로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거듭나야 할 테지요.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정치가 이루어질 테니까요. 4348.4.26.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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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지음, 이현주 옮김 / 샨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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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6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이현주 옮김

 샨티 펴냄, 2012.5.7.



  삶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으면, 내 삶에서 어려운 일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바라보지 않거나 바라볼 마음이 없으니, 내 삶에서 모든 일이 다 어렵고 맙니다.


  삶은 기쁨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삶은 즐거운 노래이면서 웃음입니다. 그러나, 삶이 기쁨이라고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삶이 기쁨이라고 알려주는 신문이나 방송은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교과서로 길들이고 입시지옥에 묶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는 아이들한테서 기쁨을 빼앗거나 없애야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야, 입시지옥으로 빠져듭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들들 볶아야, 아이들은 졸업장 아닌 내 삶을 짓는 길로 못 나아갑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사건·사고와 정치·경제와 스포츠·오락만 다룹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삶을 차분하게 가꾸는 슬기로운 꿈’을 다루는 일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사람들이 서로 ‘이쪽 저쪽(이를테면 진보와 보수)’으로 갈려서 다툼질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 하느님은 그 어떤 등기부도, 목록도 보관해 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신다 … 그냥 보라! 응시하라. 관념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는 세계를 그냥 보라 … 종소리를 듣고 싶으면 바다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춤꾼을 보고 싶으면 춤을 보아라. 노래하는 이를 만나고 싶으면 노래를 들어라 ..  (13, 26, 33쪽)



  기쁨을 찾고 싶다면 학교를 버려야 합니다.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고 싶다면 신문과 방송을 버려야 합니다. 기쁨을 누리려 한다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즐거움을 나누려 한다면, 내 사랑을 내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학교에 길든 몸으로는 기쁨이 없습니다. 사회의식이나 신문·방송이나 정치·경제 같은 얼거리에 갇힌 마음으로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머리카락과 매무새로 똑같은 아침에 똑같은 시멘트집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똑같은 시험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아무도 안 웃습니다. 아니, 못 웃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웃으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나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이들도 일하면서 못 웃습니다.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은행계좌를 들여다보며 웃지 않아요. 내 주머니에 가득 찬 돈을 이웃과 기쁘게 나누면서 웃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어요. 게다가, 신문에서 사건과 사고를 읽으며 웃는 사람이 있나요?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나 오락 기사를 읽으면서 웃는 사람이 있나요? 삶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아니라, 몇몇 연예인이 바보짓을 일삼으면서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나요?



.. 가슴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무슨 신비스러운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게 아니다. 그대 고향집으로, 그대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쉬지를 못한다. 창조된 세계를 보라. 나무, 새, 풀, 짐승들 ……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 행복에 대하여 그들이 가진 첫 번째 틀린 생각은 그것이 감각의 쾌락, 재미, 도취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다 ..  (44, 53, 54쪽)



  앤소니 드 멜로 님이 쓴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는 아주 쉬운 책입니다. 즐겁게 살기가 아주 쉽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단히 쉬운 책입니다. 다만,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는 길잡이책입니다. 즐거움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알려주는 길잡이책이에요.



.. 당신은 얼마든지 당신이 아닐 수 있고, 누군가의 꼭둑각시 인형일 수 있다 … 기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명이 들어오면서, 당신은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게 되리라 … 하느님은 내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지금이다. 삶은 내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이다 … 살아 있음은 너 자신이 되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지금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여기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성향이 있다. 당신은 이보다 더 영적이고 신성한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  (72, 75, 80, 84, 110쪽)



  즐거움은 남이 나한테 찾아서 주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늘 내가 스스로 찾아서 누립니다. 그러니, 앤소니 드 멜로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첫걸음’입니다. 이 책은 성경이나 경전이 아닙니다. 그저 첫걸음입니다. 내 삶에서 내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내 새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새걸음은 어떻게 내딛을까요? 첫걸음을 디뎌야 새걸음으로 나아가요.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새걸음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디 신문은 끊고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읽는 이웃이 늘기를 바랍니다. 부디 텔레비전은 고물상에 맡긴 뒤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읽는 동무가 늘기를 바랍니다. 신문이나 방송은 쓰레기가 아닙니다만,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로 되는 길로 이끄는 신문이나 방송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책은? 책도 우리를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네, 오늘날 문명 사회에서 거의 모든 책은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책은 모두, 내가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로 이끕니다. 우리가 책을 읽으려 한다면,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나 스스로 찾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을 노릇입니다. 처세나 자기계발이 아니라, 삶노래와 기쁨웃음으로 내가 스스로 이끌도록 돕는 책을 길동무로 삼을 노릇입니다.



.. 사물을 습관처럼 보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 무엇이든지 새롭게 보겠다는 선한 의지만 있으면 된다 … 우리는 남한테 조종당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 안에 있다 … 마음에서 좋고 싫음을 씻어버릴 때 우리는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 협박당하지만 않으면 아이들은 언제나 훌륭하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듣고 보고 배울 수 있다 ..  (128, 135, 162, 187, 197쪽)



  사랑은 아주 쉽습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이니까요. 삶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내가 스스로 삶이니까요. 예배당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면 됩니다. 학교가 아닌 내 마음속에서 가르침을 찾으면 됩니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꿈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좋은 삶이나 나쁜 삶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삶입니다. 이 삶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내 꿈을 지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도 ‘좋고 나쁨’으로 따지지 않아요. 아름다우면 그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 그예 사랑스럽습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틀로 바라볼 때에는 ‘참 아름다움’이나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참답게 기쁘거나 즐거운 삶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오로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는 기쁨이나 즐거움입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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