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똑같은 도시

 


  똑같이 숲을 밀어, 똑같이 시멘트밭 만든다. 모두들 똑같이 자가용 몰면서, 똑같이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삶 된다. 똑같이 시골을 떠나고, 똑같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똑같이 텔레비전과 손전화 들여다본다. 서울과 부산이 똑같다. 부산과 광주가 똑같다. 광주와 화순이 똑같고, 화순과 화천이 똑같다. 다 다른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다 다른 빛이 사라지고, 다 다른 삶이 무너지는 동안 다 다른 길이 끊긴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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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길을 묻는데

 


  월요일에 고흥을 떠나 순천을 지나 통영에 닿은 뒤 시외버스로 다시 마산에 갈 적이다. 길을 잘 모르겠기에 시외버스역 일꾼한테 어느 곳으로 걸어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고 길을 여쭈는데, 한심하다는 말투로 거기까지 걸어갈 생각 말고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면서 내 고무신을 흘낏 보더니 “저기 마트에 가서 신부터 사서 신으쇼.” 하고 내뱉는다.


  이런 이들하고는 말을 섞을 일이 없을 뿐더러,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아깝기에 혀를 쯔쯔 차고는 내 갈 길을 갔다. 먼 길이건 가까운 길이건 자가용을 몰든 택시를 타든 천천히 걷든 그곳을 가는 사람 마음이다.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은 천천히 걸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니 걸어가는 길을 묻는데, 왜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할까. 게다가 요즘 이 나라에서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을까? 참 야릇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일로 마산을 몇 차례 스치곤 했는데, 모든 마산사람이 이녁과 비슷하지는 않을 터이나, 이런 이들이 살아가는 곳은 스쳐서 지나가지도 말자는 생각이 든다. 4347.3.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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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고무신

 


  여관에 묵으며 몸을 씻는다. 웃옷과 양말과 머리띠를 빨래한다. 하얀 고무신도 빨래한다. 노란 빛깔 반소매 웃옷을 비비고 헹구는데 새까만 물이 끝없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여러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녔더니 땟국이 짙게 배었나 보다. 하얀 빛깔 고무신에서도 까만 땟물이 끝없이 나온다. 내 발도 지난 사흘 동안 얼마나 애써 주었다는 소리일까. 비비고 빨고 다시 비비고 또 헹군다. 까만 땟물이 그칠 때까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다 마치고 옷걸이에 꿰어 널며 생각한다. 이튿날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집 아이들 신도 빨아야겠네. 작은아이 하얀 고무신도 빨고, 큰아이 예쁜 신도 빨아야겠네.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찾아왔으니, 새봄에 신을 신들도 새로 빨아서 햇볕에 말려야겠네. 4347.3.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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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책읽기

 


  사무실에 스스로 갇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공장에 깃들어 기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은 빈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손이 잘리거나 물건이 망가지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햇볕을 쬐지 못하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바람을 마시지 못하고 빗물을 받아먹지 못하니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꽃내음과 풀내음이 없는 자리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구름과 무지개를 누리지 못하는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하고 나란히 살아가지 못하는 데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노래를 잊거나 잃는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노래를 짓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방송에서 흐르는 대중노래를 소비하기만 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삶이 노래가 되는 줄 깨닫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삶에서 날마다 노래가 태어나거나 자라는 흐름을 바라보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녁 하루에 노래를 담지 않으니, 노래하는 사랑과 꿈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노래하듯이 읽거나 쓰지 못한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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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들다

 


  여관에 들어온다. 여러 날만에 셈틀을 만진다. 비로소 느긋하게 글을 몇 줄 적을 수 있다. 온몸이 뻐근하고 결린다. 사흘 동안 책방마실 길동무 노릇을 하면서 경상남도와 강원도와 서울을 오락가락하면서 지낸다. 날짜로는 오늘까지 사흘이지만 여러 해 흐른 듯하다고 느낀다. 시골집에 있는 곁님과 아이들은 잘 놀면서 즐겁게 지낼까? 봄꽃 흐드러진 시골집에서 모두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까. 얼른 씻고 밀린 빨래를 하면서 허리부터 펴고 보아야겠다. 4347.3.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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