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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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길에서 만난 사람들
- 글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7.2007.7.9.)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22 ― 한가위에 선물할 책 하나
 : 하종강,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으며


 

 〈1〉 명절날 사람들



.. 그렇다. 사람은 ‘사상’이 아니라 ‘삶’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  (태준식 / 73쪽)


 엊저녁,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린 다음, 이곳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에 들러 명절 인사를 드리고 책을 구경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과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옆과 앞에 이주노동자 여럿이 앉습니다. 이들은 크고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한테도 우리처럼 한가위 명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향나라에 남기고 온 식구와 동무 들이 있을 테지요. 오로지 돈만 벌고자 온 한국땅이라고 하나, 나라밖까지 힘겨이 찾아온 이들한테 우리들이 내밀 손길은 ‘품삯 적은 일자리’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회사이든, 회사 우두머리를 아버지로 여기고 일터를 집안처럼 생각하며 정성껏 연장을 돌보고 땀흘려 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몸을 아늑히 쉴 수 있도록, 명절날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마음풀이를 할 수 있도록, 말과 물이 선 땅에서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지 않도록 힘쓰는 일 또한 ‘아버지로 여겨질 회사 우두머리’가 할 일이요 우리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눈길을 둘 일이라고 느낍니다.


.. “80년대의 헌신성을 강조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선배들에게는 뭐라고 대꾸할 수 있을까요?” 황씨의 대답은 뜻밖에 쉬웠다.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더 많이 누리며 살고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에요.” ..  (황정란 / 288쪽)


 느즈막이 인천으로 돌아와서 통닭집에 들릅니다. 통닭집엔 저희와 다른 손님 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손님 둘은 바로 옆에 저희가 있는데에도 소리높여 서로를 깎아내리고 욕까지 곁들이면서 싸웁니다. 계단에서 얼핏 마주쳤을 때, 저보다 대여섯 살쯤 어려 보이는 젊은 부부입니다. ‘집안일 도와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언제 아이하고 놀아 준 적이 있느냐’고, ‘너는 뭐가 잘났느냐’고 …… 거침없이 싸우는 둘이는 며칠 뒤 맞이할 한가위 명절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쇨까요.

 밤늦게까지 길거리장사 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은 한가위 명절을 맞이한 그날에도 손수레를 끌고 이곳까지 나와서 장사를 할까요. 설이든 한가위이든 전철과 버스는 다닙니다.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옵니다. 손잡이를 딸깍 하면 가스가 나오고 단추 한 번 누르면 뜨신 물이 나옵니다. 24시간 편의점 불은 언제나 밝고 약국 불은 그예 들어올 생각을 안 합니다. 명절에는 쉬면서 피붙이와 옛동무를 만나야겠다는 사람도 많겠으나, 명절 대목을 놓칠 수 없다며 여느 때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분도 많겠지요.

 선물을 안고 들고 고마운 어른을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저처럼 벌이가 밑바닥인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고마운 뜻을 보냅니다. 자가용에 선물보따리를 싣고 아이를 태우고 피붙이들을 한 사람씩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택배로 선물보따리를 보내는 분도 많습니다. 문득 궁금한 생각 하나.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느 날에도 저녁 늦게까지 바삐 일하는데, 명절날에 ‘쉼표 찍는(비번)’ 사람이 있을는지.


.. “평범하고 조용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소녀 김효선은 본래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고3이 되었을 때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은 의사가 된다 해도 환자를 직접 치료하기는 어렵고 연구직 의사로 일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어릴 적부터 가져 온 꿈을 포기하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환하면서 특수교육학을 선택했다 ..  (김효선 / 130쪽)


 언제부터 명절날 고향을 찾아간다며 법석을 떨었을까요. 언제부터 우리들은 고향을 떠나 ‘고향 아닌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일자리를 얻으며 살게 되었을까요. 고향은 명절날 돌아가면 되는 곳일까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굴러갈 수 있다고 하는 요즘 세상인데에도, 꼭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만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야 하는가요.

 태어난 고향에서 일자리 마련하며 살 수는 없을까요. 자라난 고향에서 마을 문화와 삶터를 가꾸거나 돌보거나 추스르거나 다독이면서 이웃사촌을 이루어내며 살 수는 없을까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얼마나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하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나야 하며, 얼마나 훌륭한 아파트를 마련해야 하며, 얼마나 신나는 놀이문화 시설 들을 누려야 하나요. 얼마나 빠르고 크고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굴려야 하고, 얼마나 곱고 멋있는 옷을 입어야 하며, 얼마나 맛나고 기름진 밥을 먹어야 하나요.


 〈2〉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 “종교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자선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마땅한 거야. 전쟁 직후 폐허에서는 교회가 학교나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돈 벌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학교나 병원 사업이야. 더 이상 종교 주식회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 노동자들이 큰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신부님들이 ‘우리도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야. 성직자들조차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천시 풍조에 물들어 있는 거지.” ..  (박순희 / 168쪽)


 오늘 저녁, 도서관 문을 닫고 나서 전철을 타고 일산으로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전철을 타고 용인까지 간 다음, 두 다리로 걸어서 음성에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음성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 볼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니라고 놓은 길이었으니까요. 사람 다니라고 놓은 길에 자동차만 씽씽 달리고 있지만, 길에서, 또 길을 둘러싼 마을에서, 또 길을 옆으로 한 사람들 삶터와 자연 삶터에서 이 길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습니다. 이 한가위 명절에.


.. “지난해에 충북에서만 농가 부채 때문에 여섯 명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어. 농가 부채가 왜 생기는지 알아? 퇴비 공장 하나만 봐도 그래. 환경친화 사업이라고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고 농민들은 전 재산 털고 담보 잡혀 가면서 거금을 융자받아 투자했지. 현실성 없어서 전부 다 망했어 ……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증 섰던 일가친척, 동네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빚에 허덕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정부의 농업 정책 실패 때문에 생긴 농가 부채인데,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지 …… 그 와중에 농협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 농협 이자가 12퍼센트야. 시중 이자보다 오히려 더 비싸. 이건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완전히 장사꾼들을 위한 농협이야” ..  (안순애 / 38∼40쪽)


 자가용이든 버스든 택시든 기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더 빨리 달리는 탈거리에 몸을 실으면, 씽씽 지나쳐 버리는 길가와 동네와 자연 삶터를 ‘구경거리’로만 느낄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자전거를 몰아야, 또 자전거를 느긋하게 몰아야, 또 자전거를 몰면서도 자주 쉬어 주어야 찻길과 찻길 옆 마을을 ‘구경거리 아닌 우리 삶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꾸욱꾸욱 땅을 밟고 걸을 수 있다면,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고개 숙여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길을 걸으며 먹다 남은 비닐봉지를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겠지요.

 길에 ‘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이,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 문화를 무너뜨리는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을 아주 작은 힘으로나마 알뜰히 가꾸고자 애쓰는 사람이 ‘내 이웃이 아파하거나 힘들어할 때’ 모르쇠로 지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 아픔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세상이 어수선하고 법 아닌 법이 판칠 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 “휴게소에서 앞으로 몇 년쯤 더 일할 생각이냐” 하고 물었을 때, 이경순 씨는 “정년퇴직할 때까지요”라고 답한 뒤 야무지게 덧붙였다. “우리가 그런 곳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한 번 취업하면 퇴사하기 싫은 직장으로, 그런 평생직장으로 우리가 만들고 말 거예요.” ..  (이경순 / 87쪽)


 전철간에서 내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얼굴빛 없이 지나가고 마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한테 욕지꺼리 내뱉고 위협운전하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돈 적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조촐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고 있는 터전에 포크레인 삽날을 밀어붙이며 ‘재개발-도시정화’를 하겠다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사람과 시장과 군수 들도 우리 이웃입니다. 수십 수백만 신도를 거느리며 몸집이 커지기만 하는 교회 목사님도 우리 이웃입니다.

 열무 1500원어치를 사는데 떨이라고 하며 돈을 더 안 받고 1500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저잣거리 아주머니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살그머니 뒷등을 깜빡이면서 안전거리 마련하여 뒷차를 막아 주는 운전기사도 우리 이웃입니다. 아무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기꺼이 몸과 시간을 바쳐서 우리 삶터 구석구석 그늘진 곳까지 찾아와 땀흘리는 자원봉사 활동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날마다 먼지 뒤집어쓰면서 헌책 하나 캐내어 꼼꼼히 손질한 다음 책시렁에 갖추어 놓으며 ‘좋은 책 알아볼 책손’을 기다리는 헌책방 일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 “피해자들은 평생 입 다물고 어둠 속에 숨어 울며 살았는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살았던 이 더러운 세상을 내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발끈을 야물게 고쳐 매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박영란 / 59쪽)


 어젯밤 누군가 술 체한(‘술 취한’이 아닌 ‘술 체한’이라고 느낍니다. 술도 안 받으면서 꾸역꾸역 집어넣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온통 뒤틀려서 체하고 마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며 병을 집어던져 깨뜨리는 소리가 살림집까지 들려왔습니다. 아침에 길에 나가 보니 병조각이 그대로 있습니다. 술병 깨져 어지러진 이 골목길을 누가 치워야 할까요. 술병 집어던진 이는 자기가 한 짓을 떠올리고나 있을까요.


 〈3〉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은


 한울노동문제연구소를 꾸리는 하종강 님은 대학교 강의도 나가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삶이 한결 나아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조각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사람을 만나면서 지냅니다. 쉴 틈이 있을까요? 글쎄, 쉴 틈이 있다기보다는, 당신 하는 일을 놀이처럼 느끼며 더 다부지게 뛰고 있지 싶은데.

 지난해부터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에다가 《철들지 않는다는 것》에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내놓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 2006년 5월에 나왔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2007년 7월에 나왔으니 열넉 달 사이에 책 세 권입니다. 할 말이 많은 분일까요? 그동안 할 말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사셨던 분일까요?


..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진보적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태일기념관에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태일 열사의 기념관을 그 모양으로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진보운동의 수준이다. 그런 마당에 내가 낸 세금으로 박정희기념관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가슴이 막힌다. 전태일기념관을 나라돈으로 번듯하게 지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  (156쪽)


 우리들이 들을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만날 사람은 누구이며, 날마다 부대끼거나 스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명절날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무엇이며,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부모님하고, 딸아들하고, 사촌 오촌 육촌 칠촌 팔촌 들하고, 고향동무나 선후배하고,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안부인사만 나누고 돌아서곤 합니까. 고향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로 나누십니까. 지금 우리들이 마음을 기울이거나 함께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어 머리를 맞대십니까.


.. 내가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활동가가 아니라, 망설이면서 노동운동에 끼어들었다가 그 경험을 평생 동안 짐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활동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열등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의 활동 범위 밖에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인인 사람들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다 어렵게 만나도 자신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가까운 동료나 친척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감추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차마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  (337∼338쪽)


 하종강 님이 만나 도톰한 책 하나로 묶은 ‘우리 땅 노동자 이야기’들은, 한 분 한 분 곱씹고 되새겨 보면, 모두 우리 자신이요 이웃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이가, 우리 동무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이니까요.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정규직으로 걱정없이 지내면서 연봉 1∼2억을 너끈히 받으면서 몇 억짜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명절날 찾아뵐 분들한테 이 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드릴까 합니다. (4340.9.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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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슴 아픈 동감입니다~~~~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아갑니다. 일깨워주시는 글 고맙습니다.
 



 어제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분이 제게 묻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책값 가장 싼 곳을 알려 달라고.

 “책값 싼 데 어디 있어요? 책값 싸다고 하면 탁 떠오르는 곳 있죠?” “무슨 책을 찾으시는데요?” “책값 가장 싼데요.” “글쎄, 책값이 싸다고 다 읽을 만한 책은 아닐 텐데요 …… 그러면 고물상에 가 보셔요.” “고물상에서도 책을 팔아요?” “헌책방 책이 고물상에서 많이 들어오니까요. 다만, 골라서 살 수는 없고 뭉텅이로 사야지요.” “고물상이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에 ‘고물상’이라고 치면 나오나요?” “글쎄요, 저는 고물상에 가 보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4340.9.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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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책 좀 골라 주라.” “무슨 책?” “아이들 책.” “마, 아이들 책은 니가 공부해서 사 줘야지.” “내가 아이들 책을 어떻게 알아. 너가 많이 봤으니 좀 추천해 줘.” “어른인 네가 보는 책이라면 추천도 해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은 추천해 주지 못하지.” “그냥, 아무 책이라도 추천해 줘.” “자식, 생각해 봐라. 너는 애인하고 어디 놀러갈 때 그냥 아무 데나 가냐. 또 애인한테 선물 사 줄 때 아무거나 사 주니.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사 줄 수 없지. 또 대충 추천하는 책을 사 줄 수도 없고. 애인한테 선물 사 주듯이, 네가 손수 공부해서 찾아서 사 줘야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책 사 주면 될까?” “네가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니? 그럴 바에야 그냥 돈으로 주는 게 나아.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참으로 아이들한테 좋은 책일까? 아이들 마음밭을 무너뜨리는 책이지는 않을까?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생각해 봐. 너는 네 아이한테 어떤 책을 사 읽힐 생각이니? 네가 먼저 살펴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가려낼 수 있은 다음, 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겠어? 이 일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대충 해서는 안 되겠지.”

 고등학교 적 동무가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선물할 어린이책을 사러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온 김에 저한테 ‘무슨 책을 골라 주면 좋을까 물어 보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제가 동무녀석한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책이 좋다고 할 책이든 안 좋다고 할 책이든 네 스스로 골라라’입니다. 어쩌면 동무녀석은, 대충 전집 한 가지라든지, 낱권책 몇 가지를 골라 줄 수 있겠지요. ‘요새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책’을 추천받아서 사 줄 수 있고요. 그러면 동무녀석이 사다 준 그 책을 받아드는 아이는 얼마나 좋아할까요. 얼마나 반길까요.

 “아이들 책은 함부로 추천해 줄 수가 없어. 선물을 받을 아이는 몇 살이니?” “초등학교 5학년쯤.” “음, 초등학교 5학년이라. 그래, 아이들한테 책을 추천해 주기 어려운 건,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해도 눈높이나 지식이 달라. 어느 아이는 책을 좀더 많이 읽었을 테고 어떤 아이는 아직 책을 잘 못 읽을 수 있지. 아이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잖아. 이쪽에 있는 책들은 모두 그림책인데, 어떤 책은 지식 소양을 길러 주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생태ㆍ환경을 이야기감으로 삼은 책이야. 그 아이한테는 동화책이 알맞을 수 있는데, 어느 동화책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고 어느 동화책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지. 책마다 성격이 다르고 갈래가 다르기 때문에, 그 아이한테 맞춰서 그 아이를 잘 생각하면서 골라야 한다고. 그러니 아이들 책은 아무나 추천해 줄 수 없고, 아이들 부모가 손수 공부해서 하나씩 사 줘야 해.”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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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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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글ㆍ그림 : 이세 히데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10.)
- 책값 : 1만 원



― ‘버려진 책’이 가꾸어 준 내 삶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덮으면서


 

 〈1〉 내가 좋아하는 책


 지난 월요일,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의 전도자 6인》(1976)을 서울 돈암동 헌책방에서 찾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찾고 있던 책을 이제야 만납니다. 진작 판이 끊어진 책이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웬만한 책은 다 갖추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기독교의 전도자 6인》은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라디오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는 《a pictorial history of RADIO》(Citadel press,1956)를 서울 홍제동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나라밖에서 라디오가 처음 만들어지고 방송이 퍼지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나라밖이든 나라안이든, 라디오라는 물건이 만들어지고 라디오 방송이 우리 삶으로 파고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교보문고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을까요.
 

―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56쪽)


 지난달, 《토트 티아메르-청소년의 순결》(가톨릭출판사,1963)이라는 책을 서울 연세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고 있습니다. 책도 묵었고 줄거리도 묵었지만, 처음 나온 지 마흔 해가 지난 이즈막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대목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산시선》을 읽어도, 《목민심서》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북학의》나 《을병연행록》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뿐 아니라 《파브르 식물기》도, 시튼이 쓴 동물 이야기도 세월이 묵을수록 빛을 더해 간다고 느낍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 또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지난다 하더라도 책상맡에 놓고 짬짬이 다시 돌아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피의 나무들”. 책 제목을 새롭게 붙였네! 아카시아 그림은 표지로 다시 태어났고, 내 이름이 그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53쪽)


 지금은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저입니다. 책을 엮고 책을 쓰는 일을 하는 한편, 책을 가꾸고 지키는 도서관 일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하나둘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이 제법 되고, 앞으로 세월이 좀더 지나면 ‘헌책방에서마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책’도 꽤 되겠지요. 이런 책들을 돈 값어치로 셈한다면 ‘값나가느니 값 안 나가느니’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장만할 때 돈이 들어간다뿐, 책을 읽을 때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꾸리는 도서관에 와서 책을 구경하거나 읽는 분들한테도 돈이 들어가지 않겠지요.

 1979년 4월에 나온 잡지 《현존》 100호를 돈으로 따져야 할까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포토그라피》라는 사진잡지를, 《사진문화》라는 사진잡지를 돈셈으로 헤아려야 할까요. 종로서적이 무너지면서 함께 사라진 책들 가운데 하나인 《인권운동》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값나가는 보기드문 책으로 쳐야 할까요. 삼성출판사에서 1970년대에 손바닥책으로 엮어낸 ‘한국문학전집’을 돈값에 따라 바라보아야 할까요.


―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45쪽)


 ‘우라느스키’라는 분이 쓴 《무신론자의 바이블》(정음문화사,1984)을 읽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노후의 생활도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해 나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신체 장애자의 경우도, 힘껏 공부해서 가능한 한 자기의 힘으로 살아야 하리라. 사는 권리란, 자기 자신의 의사와 능력으로 사는 권리이며, 타인에게 의뢰하며 사는 권리가 아니다.(142쪽)”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다가, 문득 ‘우라느스키’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책에도 소개가 없고, 인터넷에서도 이이 발자취를 살필 수 없습니다.

 1960∼70년대에 우리 나라에 곧잘 소개된 ‘무샤고오지 사네아쓰’라는 일본 철학가 발자취 또한 인터넷 찾아보기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1961년에 번역된 《젊은 날의 철학》(백문사)을 읽으면, “좋은 문학에 접하면 자기를 살리는 방법, 어떻게 하면 자기 완성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의 사는 목표를 볼 수 있게 된다.(29쪽)”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1961년에 이이 철학책 묶음이 손바닥책으로 여섯 권 나왔습니다만, 마흔 해 남짓 지난 오늘에 와서는 책은커녕 발자국조차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 “책이 이리 되도록 많이도 봤구나.  좋아, 어떻게든 해 보자꾸나.” “전 나무가 좋아요. 이 책엔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24쪽)


 사람들이 저한테 “헌책방이 뭐 그리 좋아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볼 수 있나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만난 보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제 책상맡에 있는 책을 휘 둘러보다가 요즈막에 장만한 책을 집어서 보여줍니다. “지금은 비록 판이 끊어진 책이거나, 출판사가 문을 닫아서 사라진 책입니다만, 세월이 흘러도 우리한테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에요.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는 책이에요. 세상흐름을 잽싸게 옮겨타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으려 하지 않은 책이라면, 지금은 새책방 진열대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헌책방에서 다시 빛을 보기 마련이에요. 저는 헌책을 보거나 새책을 보지 않고 그냥 ‘책’만 보고 있어요. 헌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하는 이름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책을 살필 수 있어 좋아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칭찬을 하거나 북돋워 주네 하는 이름에 따라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있어 좋아요. 그 어느 평론가나 책소개꾼들도 알아채지 못한 책이라 하겠지요. 누구보다도 샛장수 아저씨들이 고물상에서 건져낸 책이고, 헌책방 일꾼이 솎아낸 책이에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그래서 헌책방 일꾼은 허파가 안 좋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책에 담긴 줄거리는 모르실 수 있으나, 누군가한테 꼭 쓸모가 있구나 느껴서 하나둘 그러모은답니다. 저는 이렇게 솎여진 책에서 제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책을 가만히 살피면서 즐겨요. 더구나 주머니가 후줄근한 날에도 돈 몇 천 원이면 마음을 살찌우는 책 하나를 고맙게 얻을 수 있으니 좋지요. 책에 낀 먼지는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박박 문지르거나 살살 쓰다듬으며 닦으니 더 좋아요. 깨끗한 책을 싫어하지 않아요. 조금 지저분해진 책을 깨끗하게 추슬러 주면서 겉보기를 넘어서는 속살을 읽을 수 있으니 사람을 보는 눈매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더 살필 수 있게 되잖아요.”


― 책방에는 새로 나온 식물도감이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난, 내 책을 고치고 싶어.” (8쪽)


 누군가 묻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 많이 보셨겠네요?” 싱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요. 어릴 적에 책이 어디 있어요. 다만,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여서 ‘교사용 문제집’은 잔뜩 얻어와서 숙제라며 안겨 주셨어요. 그 문제집 푸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푼 적은 거의 없어요.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기 바빴는걸요. 그래도 교사 집안이라고, 또 형이 어릴 때에 똑똑해서 책을 읽힌다고 딱따구리 무슨 전집이 하나 있었고, 삼국지하고 한국역사 전집 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월부책장사한테 산 책일 테지요. 때때로 이 책들을 조금 들춰보기는 했지만, 형하고 저하고 가장 많이 본 책은 클로버문고 같은 만화책이었고(어머니 몰래 사서 모았습니다), 《소년중앙》이었어요. 《보물섬》은 돈이 없어서 빌려서 보았어요. 《소년중앙》에는 만들기 별책부록이 많아서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꼬박꼬박 사서 보았지요. 몰래 모은 이 만화들을 어머니께서 동네 쓰레기통에 죄 갖다 버리셔서 하나도 안 남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교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던 그때까지는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좋아요.”

 
 〈2〉 책은 나한테 무엇이 되었는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에 나오는 ‘소피’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를리외르 아저씨 같은 사람도 없었고, 소피처럼 두툼한 식물도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떠올릴 수 있던 어릴 적 제 책이라면, 어머니가 몇 차례 갖다 버리셨어도 다시 사고 또 다시 사서 갖추었던 《번데기 야구단》(까치) 같은 만화책입니다.

 글쎄, 뒤늦게 책을 깨닫고 지금은 책과 함께 살아가는 제가 된 바탕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을 버리신 어머니’ 덕분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어머니로서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될 만화책’이어서 버리셨겠지요. 형과 저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었을 테지만. 어머니가 책을 버리신 덕분에,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이 없는 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 만화책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면, 클로버문고뿐 아니라 수많은 1970∼80년대 만화책들이 잘 간직된 채로 부천만화박물관이라든지 어디엔가 바침책으로 드릴 수 있었겠지요. 또는 제가 인천에 연 도서관 책꽂이 한쪽을 아름답게 채우거나요.

 하지만, 형과 제가 없는 용돈을 10원짜리 하나까지 아끼며 사서 모았던 책이 버려졌기 때문에, 그것도 여러 차례 버려졌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나이부터 다닌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을 좀더 애틋하게 돌보거나 바라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나는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으려 한다’는 매무새를,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을 이제부터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잘 간직해서 내 딸아들, 또는 내 딸아들이 낳아 기를 딸아들과 그 뒤 사람들한테까지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는 꿈을 가슴 한켠에 새길 수 있었지 싶어요.

 《월간 목회》 1978년 5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이원수 님. 이 조그맣고 낡아빠진 책에 실린 이원수 님 동화는 ‘깨끗하고 반듯하고 큼직한 판에 글씨도 큰 새로 나오는 책’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78년 어느 잡지 별책부록으로 당신 동화를 한데 그러모아 펴낸 이원수 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아버지와 아들〉이 좋습니다. 이원수 님은 머리말에 “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읍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내 마음속에 그냥 가두어 두고는 배길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나의 동화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암과 싸우며 시름시름 앓고 있던 이원수 님은, 아픔을 온몸으로 삭여내며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쓰셨습니다.

 동화 줄거리만 헤아리자면 요새 나오는 판으로 읽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저는 동화 줄거리만 얻고자 책을 읽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묵은 책으로 굳이 찾아서 읽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처음 나오던 때 느낌을 함께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헤아려 볼 수 있어요. 그때 이 책이 책방에 깔리며, 또 그때 사람들 손에 쥐어지면서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가만히 톺아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보물이 아닙니다. 늘 옆에 있는 고마운 지기처럼 살가운 동무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오래되어 값나가는 보물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고운 속살을 내보이면서 마음빛이 바래지 않도록 어깨동무를 해 주는 맑은 벗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남 앞에서 뽐낼 만한 장서가 아닙니다. 오래도록 제 삶을 밝히고 가꾸어 주는 가운데, 제가 숨을 거두고 사라진 뒤에는 또다른 누군가한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훌륭한 이슬떨이입니다.


 〈3〉 티끌 같은 아쉬움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읽으면서, 또 보면서, 또 곰곰이 되새기면서 제 책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두루 얻는 한편으로, 몇 군데 아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 아이들이 볼 그림책인 만큼, 옮긴이는 아이들 말씨와 눈높이를 조금 더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오래오래 책과 가까이하기 바라는 마음이라면, 이런 책에 담기는 말과 글은 좀더 추스르거나 다독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에 뜨이는 아쉬운 글월을 몇 가지 뽑아서, 딱 한 가지로만 손질해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로만 손질했지만, 저마다 다 다른 말씨를 살리면서 손질하여 다시 쓰면 더 좋겠습니다.


 ┌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나무 이야기는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이 표지는 제 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껍데기는 제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추는 거야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춘단다

 ┌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빠뜨리셨어요
 └→ 그림이 있는 종이를 빠뜨리셨어요

 ┌ 아까 그림 속의 그 사람이야
 └→ 아까 그림에 그려진 그 사람이야

 ┌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 실 당김도, 가죽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고르기도

 ┌ 아버지 손은 마법의 손이에요
 └→ 아버지 손은 마법 손이에요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는” “나만의 책”을 품에 안게 해 준 를리외르 아저씨는, 아이한테 책을 가꾸고 돌보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린아이 스스로 살갗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보던 책 줄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고, 또 알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손질하는 책을 보는 사람이 그 책을 아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읽어내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당신 손으로 책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지요. 아이는 이 숨결을 느끼면서 자기가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에 담은 이야기임을 차츰 깨닫습니다. 부드러운 그림결로 두 사람 삶을 차분히 담아낸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하지만, 책날개를 두 가지나 붙여서 만들어야 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값으로 1만 원이나 붙게 한 만듦새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사람 마음까지 속깊이 헤아리지는 못한 듯합니다.

 찬찬히 적었어야 할 옮김 말투와 함께 ‘지나친 꾸밈새가 되어 버린 책날개나 만듦새’를 되짚거나 다스릴 수 있다면,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그림책은 더 많은 아이들한테 살뜰한 벗으로, 또 지기로, 또 길동무로, 또 이웃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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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07-10-05 11:49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번역문장으로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마구 공감이 가네요.
 
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지음 / 달팽이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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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에서 살아가시는 할머님 모습


- 책이름 : 지는 꽃도 아름답다
- 글 : 문영이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7000원



 이 책 하나 21 ― 할머니 삶터도, 내 삶터도 아름다워요
 :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읽으며



 〈1〉 내가 발딛고 있는 삶터


 태어나고 자란 인천을, 지난 1995년 4월 5일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5일, 열두 해 만인지 열세 해 만인지 돌아왔습니다.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안 분위기’ 탓에 인천 부모님 집에서 더 살기 싫어지기도 했지만, 새로 지은 널따란 아파트 방 한켠에서 지내는 일은 꼭 옥살이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고 싶었고, 이웃과 어깨동무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넓은 집으로 옮겨 가고 싶어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넓지 않아도 좋다’고, 마흔여덟 평짜리 새 아파트보다는, 연탄 때는 낡고 조그마한 5층짜리 아파트였어도, 열세 평짜리 헌 아파트가 훨씬 낫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옆집과 윗집과 아랫집 모두 사촌과 다름없는 이웃이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았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제 동생이었으며, 동네 형들은 제 친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 새벽잠 없는 내력도 몰랐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칼날 밑에서 실같이 이어져 내리던 실고추 내력도 몰랐다. 그리고 고단한 잠 깨워 이른아침 대참에 찬이슬로 얼굴 씻기시는 어머니 마음은 더더욱 몰랐다 ..  〈13∼14쪽〉


 나어린 사람한테 열 몇 해는 얼마나 긴 세월일까요. 키가 우쑥우쑥 자라고 몸집이 덩실덩실 커집니다. 나이든 사람한테 열 몇 해는, 늙은 나이에 숟가락 몇 번 더하는 세월일까요. 인천을 떠나기 앞서 보았던 그 골목길이 그대로인 곳에서는 ‘그동안 햇볕에 조금 더 바래고 먼지와 차방귀에 조금 더 까매졌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는 집과 길과 나무를 만납니다. 그동안 좀더 많은 사람과 일을 겪었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이 허리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어르신들을 골목길에서 만납니다.


..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편이 조청을 못 만들게 한다. “사서 먹는 것보다 돈도 더 들고, 욕보고” 하지만, 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걱정해서란 것을 안다. 슬며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떡방앗간에 가 보면 설탕가루나 당원 봉지를 툭툭 터서 쌀가루에 섞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입맛을 버려 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 떡을 할 때는 고명이나 떡가루에 그런 잡스런 것을 못 넣게 지킨다. ‘요즘 사람은 다 단것을 좋아한다’고 떡을 하러 온 사람이나, 방앗간 주인이 말리지만, 나는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  〈160쪽〉


 문득, 나고 자란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좁고 자그마한 집이기는 해도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셨다면 당신들께서 인천을 떠나셨을까 싶은 생각(부모님은 인천을 떠나 용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옮기셨습니다). 덧붙여 제가 인천집을 싫어하며 떠났을까 싶은 생각.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이었다면 마땅히 나무 한 그루를 어린나무로 심거나 씨앗으로 심었을 테지요. 그 나무가 여태껏 자랐다면 나즈막한 지붕을 훌쩍 넘어 담벼락 바깥 골목길까지 그늘을 드리우거나 열매 달린 가지를 내어주었겠지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저는 저대로 기둥 굵게 자란 나무를 보며 집구석을 애틋하게 돌보았겠지요.

 창영동, 금곡동, 송현동, 송림동, 화평동, 만석동, 인현동, 송월동, 전동, 북성동, 송학동, 내동, 용동, 답동, 율목동, 신포동, 신생동, 신흥동, 유동, 항동, 선화동, 숭의동, 도원동, 도화동, 주안동, …… 4월부터 다섯 달 동안 두 다리와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서 동이름을 하나하나 읊어 봅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신흥동에서 신포동까지 장보러 걸어오던 일, 북성동을 지나 신생동 은행에 들렀던 일, 답동과 율목동을 가로지르는 싸리재를 넘나들던 일, 국민학교가 있던 신흥동 둘레 숭의동과 선화동과 도원동에 사는 동무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 기찻길로 석탄이 들어오면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서 기찻길로 다시 서울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 기차가 안 다닐 때면 하나부터 천까지 헤아리며 기찻길을 밟고 주안동까지 걸어서 오가던 일을 곰곰이 되짚습니다.

 재개발과 도심정비사업과 구시가지정화라는 달콤쌉싸름한 이름을 내건 막개발로 사라진 조그맣고 지붕 낮은 한 층짜리 집들을 떠올립니다. 아직까지 골목집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으면서 해가 뜨면 빨래나 이불을 내놓아 말리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는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예나 이제나 골목길 한쪽에서 일을 합니다. 잠깐잠깐 쉬는 가운데에도 두 손은 재게 놀려 굴이나 조개를 까거나 나물을 다듬어 저잣거리에 내다 팔 준비를 합니다.


.. 나는 무슨 먹을거리든 주된 재료 맛을 살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모든 떡을 소금간만 하듯, 김치도 무배추가 지닌 단맛을 살리려 많은 양념을 넣지 않는다. 올해는 통깨 넣는 것도 그나마 잊어버렸다 ..  〈155쪽〉


 머잖아 재개발로 쓸려나갈 주안동, 수봉공원 옆쪽 구석진 동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감나무를 사진에 담을 때입니다. “거, 뭐하시오?” “네, 감나무가 좋아서 사진으로 담으려고요.” “허, 감나무는 뭐하러 찍나?”

 왜 사진 찍느냐고 말을 건 아저씨네 집에서 자라는 감나무도 찍을걸 그랬나요. 아저씨네 감나무를 사진으로 담았다면, 그 아저씨는 무어라 대꾸를 하셨을까요.

 지난 일요일, 송림동 달동네에 있는 꽃집(꽃을 파는 집이 아니라, 꽃을 많이 키우는 집입니다. 꽃그릇 숫자가 쉰은 훌쩍 넘을 듯하고, 온 집이며 마당이며 남새밭으로 가꾸어 놓아서, 꽃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집임자 아주머니가 2층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잘 자란 까마중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까마중을 따먹었다면 아주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나.


.. 어차피 살림은 정성이다. 물을 쓸 때도 무엇을 먼저 씻을까 차례를 잡아서 씻고, 불을 쓸 때도 불을 한 번 지펴 차례를 잡아 잇달아 쓰다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만 옆 불구멍을 잠깐 열고 쓰면 좋을 것을 ..  〈148쪽〉


 지난 수요일, 자전거로 광명에서 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당산동을 지나 신촌까지 달렸습니다. 한참 도림동을 지나갈 무렵에는 일부러 오르락내리락하는 달동네 안쪽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서울 도림동 골목집도 조금 묵은 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계단이며 난간이며 담벽 위며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한둘이든 몇몇이든 올려놓습니다. 좀더 오래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해서 고추 말리는 집까지 보지는 못합니다. 요즈음 인천 동구 골목집들은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거든요. 다 말리고 거두어들인 집도 있으나, 웬만한 골목길마다 ‘차 못 다니는 좁은 길’이면, ‘차 뜸한 길’이면 으레 한쪽으로 길게 고추를 펼쳐놓습니다. 비가 오면 비닐이나 천막을 씌워 놓습니다.


.. 옥수수밭을 매고, 나머지 덩굴콩도 심었다. 덩굴콩이란, 빛깔이나 모양이 제비콩 같으면서 동글동글한데, 맛은 그보다 훨씬 좋은 콩이다. 이름을 몰라, 유난히 덩굴져 오르기를 좋아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  〈120쪽〉


 어제는 항동에서 집으로 걸어옵니다. 우산이 없어서 택시나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가방에 든 것은 비닐로 꽁꽁 싼 다음 걷기로 합니다. 장대처럼 쏟아지다가 멎고, 가늘게 내리다가 이내 굵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멎는 비. 답동성당 옆으로 지나갈 때 뒤따르던 차가 빵빵거립니다. 10초만 기다려 주면 빵빵거리지 않고도 우리 옆으로 스쳐 지나갈 틈이 나오는데. 골목길 한쪽에 함부로 대놓아 길을 좁게 하는 자동차를 보며 빵빵거리지 않는 차들입니다. 꼭 사람한테만 빵빵거립니다.


.. 옛 방식대로 버려지는 쌀뜨물로 그릇을 씻고, 빨래는 환경친화비누로 쓰는 일을 철저한 사명으로 지킨다면 맑은 냇물이 간직되고, 떠났던 가재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시냇물이 살아나 예전같이 아무 데서나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을 찾는 배낭 속에서 물병을 빼고 그것을 돈으로 셈해 보면(플라스틱 물병까지) 엄청나리라 ..  〈10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비가 와서 물이 차거나 넘치는 곳에 가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앞길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찰방찰방. 곱고 멋진 옷 차려입은 어른들은 이제나저제나 버스가 물살을 가르며 와 주나 걱정하며 처마 밑 계단짬에 주루루 서 있고, 저를 비롯한 꼬맹이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가슴까지 물이 찬 터미널 앞길에서 신나게 놉니다.


.. 거름으로 쓰이는 쓰레기는 밥상에 올려지는 밥만큼이나 정갈하게 골라낸 다음이라야 쓸 수 있다. 비닐조각은 없느냐? 유리조각이나 건축폐기물은 아니냐? 화학약품이나 많은 소금기는 없느냐? 건전지, 깡통, 수은, 쇠붙이는 섞이지 않았느냐? ……… 땅도 땅 나름대로 깨끗한 정성을 쏟아야 소화해 내고 살이 된다 ..  〈88쪽〉


 제가 중학생일 때 형은 고등학생. 형은 우산을 거의 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내리는 비를 그예 맞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우산을 둘 쥐어 주면서 형한테 주라고 하지만, 형은 우산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어 형한테 씌워 주지만, 형은 발걸음을 빠르게 놀리며 비를 맞고 가겠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되풀이되는 실랑이였는데, 오래지 않아 저도 형을 따라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학교를 오갑니다.


..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서이다 ……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그런 곳에 아스팔트길이 왜 있어야 할까? 몇 십 몇 백 년을 자란 숲을 어떻게 그리 쉽게 벨 생각을 했을까? ..  〈79∼80쪽〉


 아무 걱정도 생각도 근심도 마음도 없이 비를 맞고 걷던 적이 언제였을까.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걷기로 하니, 빗방울이 튀어 옷을 적셔도 괜찮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에서 사진기도 비를 맞히며 걷습니다. 골목길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옆지기가 “또 흑백으로 찍어요? 비오는 날은 칼라로도 찍어 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알았어요.” 대꾸하고는 렌즈 앞에 끼운 필터를 빼고 흑백으로 맞춥니다.

 비오는 날 구름을 흑백으로 찍으면 빛도 구름 그림자도 한결 또렷합니다. 빛깔있는 사진으로 찍으면 빗물에 촉촉히 젖어드는 계단이며 골목집 꽃그릇이며 알록달록한 느낌이 살아납니다.


..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바뿐 내 아들딸을 생각하여 고생을 마다하지 않듯이, 늙은 사람도 할 수만 있다면 고단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도 있어야겠다. 자리를 양보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자리를 받은 것 같은 마음은 없었는지? 그리하여 건성인 인사치레는 없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  〈70쪽〉


 예배당에서 나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쓰고 골목을 걷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신을 벗고 양말발로 걷습니다. 쏟아지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줄줄줄 흐르는 빗물 때문에 신을 신으나 마나겠지요.


.. 오빠는 내게 가벼운 심부름 한 번 시키는 일이 없었지. 삼촌들이 어쩌다, “영이야 물 한 그릇 다오.” 하면, “삼촌, 영이도 삼촌하고 똑같은 학생이여. 왜 그 애한테 심부름을 시켜.” 하고 오빠보다 두 살 아래인 삼촌에게 싫은 눈치를 보냈지 ..  〈41쪽〉


 집에 닿습니다. 젖은 옷을 벗고 젖은 가방을 풀어 놓습니다. 가방을 열어 비닐봉지에 담긴 책을 꺼내어 펼쳐놓습니다. 몇 권이 살짝 젖었네요. 비닐봉지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 있는 듯합니다. 가방 빨아 본 지 꽤 되었구나 싶어, 이 김에 함께 빨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젖은 옷가지와 가방을 들고 살림집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며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어,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전깃줄을 붙잡고 앉아 있네요. 흔하디흔한 고추잠자리가 이제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데. 요 고추잠자리가 우리 집 창가 전깃줄에서 비긋기를 하고 있군요.


.. ‘이제 나도 벌레먹은 옥수수가 내 몫이구나.’ 지금 딸아이는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아득한 딱한 일로 보일까? 그 마음 이렇게 잠깐인 것을……. “오늘은 벌레먹은 것까지 어렵지 않게 다 팔고 왔다.”며 어린 아들딸 앞에서 즐거워 할 그 옥수수장수를 떠올리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  〈31쪽〉


 밤새, 새벽내, 또 아침나절까지 해가 났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가랑비로 바뀌었다가 갰다가 되풀이됩니다. 바람은 몹시 붑니다. 뒷집 너머로 있는 전철길에서는 5분에 한 대쯤 지나가는 전철 소리가 꾸준히 이어집니다. 때때로 석탄 실은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구르르릉 하면서 건물이 조금조금 흔들립니다. 1958년에 지은 건물인데, 여태껏 저 짐열차 구르르릉에도 잘 견디며 서 있군요.


.. 식혜가 검은빛이 나는 것은 밥이 적게 들어간 것이고, 따라서 달지 않아 설탕을 많이 넣은 억지 맛이다 ..  〈160쪽〉


 〈2〉 일흔세 살 할머님 이야기


 이야기책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너덧 번 읽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또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돌아보면서.

 책읽을 틈이 없이 바쁘게 산다는 동무나 선후배한테 이 책을 사서 선물해 줍니다. “너희 할머님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봐.” 하고 말하면서.

 남편바라지에다가 딸아들바라지로 젊은 날을 다 바친 문영이 할머님은, 마지막 아이가 제금을 난 다음, ‘이제부터는 내 하고픈 일을 하나 해 볼라요’ 하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시오’ 하고 선선히 받아 주는 말을 듣고, 예순세 살이던 1997년에 문학강의를 처음으로 들어 봅니다. 그 뒤 당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띄엄띄엄 짤막한 글을 쓰셨고, 2003년 8월에 이오덕 선생님 책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읽으며, ‘내가 참 바른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당신이 썼던 글을 ‘우리 글 바로쓰기’에 알맞게 추슬렀습니다. 머리가 허옇게 된 ‘흰바가지’가 되었으나 “동네에 불이 나면 물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이고, 자배기를 안고 저마다 오직 불을 꺼야 한다는 한 생각으로 뭉치던 사람들”처럼 자그마한 글 하나를 써서 나누면서, 말이며 삶이며 사람이며 땅이며 곡식이며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4340.9.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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