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원과 1000원


 지난 6월 27일, 국회의원 정몽준 씨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 토론회’자리에서 “정 최고위원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 안 한다는데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는 물음을 받고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요즘은 카드로 타지요. 한번 탈 때 한 70원 하나?”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른 버스삯이 70원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2년이고, 이때 국민학생 버스삯은 60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버스삯을 아끼곤 했습니다. 50원짜리 빵을 군것질하기도 하고, 50원 하는 오락 한 판을 하기도 하며, 50원짜리 쇠돈 하나와 10원짜리 쇠돈 하나를 나란히 들고 동네 은행에 가서 차곡차곡 모으며 지냈습니다.

 1982년에 국민학생 버스삯이 60원이었으니(인천에서), 어른 버스삯이 70원이었을 때는 1970년대 끝머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1982년에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삼미슈퍼스타즈 경기를 보러 갈 때면, 어린이는 200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이틀치 버스삯을 아끼고 걸어다니면 야구장에 갈 돈이 마련되는 셈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니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퍽 놀래키는 말씀을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사범고를 나와서 스물이 안 된 나이에 교사일을 한 아버지는 제가 중학생이 되던 때까지 스무 해 가까이 시외버스를 타고 일터를 오갔습니다. 호봉이 낮은 평교사였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 일삯은 아주 낮고 대접도 형편없었습니다. 더구나 인천에서 교사를 하지 못하고 경기도를 돌아야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광명까지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하루 네 시간을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형과 저는 한 시간 남짓 종아리며 허벅지며 허리며 주무르면서 풀어 주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랜 ‘버스 통근’을 마치고 자가용을 장만하게 되면서, 하루이틀 대중교통하고 멀어지셨습니다. 그렇게 자가용을 몰면서 살아가신 지 스무 해쯤 되다 보니, 아버지도 버스삯을 잊으셨습니다. 전철삯도 잊고 택시삯도 잊으시더군요. 물어 보나 마나입니다만, 라면 한 봉지 값을 아시겠습니까. 배추 한 포기 값을, 무 한 뿌리 값을, 시금치 한 묶음 값을 아시겠습니까. 고등어며 멸치며 꽁치며 오징어며 얼마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느 낱권책 하나에 얼마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책꽂이에 새책이 꽂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못 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몽준 의원한테만 나무랄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 새 대통령 이명박 씨는 출퇴근길 전철이 얼마나 미어터지며 끔찍한 줄을 알고 있으려나요. 예전 대통령 노무현 씨는 전철하고 담벽을 맞닿고 지내는 서민들이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는 줄 알고 있으려나요. 서울시장님은, 부산시장님은, 대전시장님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외로움과 눈물을 얼마나 살갗으로 받아들이고 있을는지요.

 적지 않은 공무원 분들이 ‘쇠밥그릇’이라는 소리를 듣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공무원 분들 스스로 자기가 맡은 ‘민원’을 일터 바깥에 나가서 몸으로 부대끼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않기 때문입니다. 동사무소든 구청이든 시청이든 군청이든 읍사무소이든, 이렇게 ‘주민이 먼걸음을 해서 찾아올 때면’ 책상 앞에 앉아서 ‘바쁜 일처리’로만 받아들일 뿐이니, 쇠밥그릇이 될밖에 없습니다. 민원창구까지 오지 못한 사람들, 민원창구로 간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아예 두 손 든 사람들, 민원창구로 가면 도움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리네 공무원 분들이 얼마나 다가서려고 애쓰고 있었을까요. 애쓰고 있기나 한가요. 공무원시험을 쳐서 찰싹 붙은 다음 일자리를 얻기까지, 고시책을 펼쳐 놓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짜내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이웃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었는지요. 옆집 사람 삶이 어떠한가 들여다본 적 있었는지요. 처음 공부를 하던 때부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뿐더러, 이웃 삶을 속속들이 받아들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했다면, 공무원이 되고 난 다음부터라고 해서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도, 대통령이 되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관용차가 나오고 비서가 딸립니다. 손수 차를 모는 분도 있을 터이나, 운전기사가 따로 나옵니다. 국회의원한테 관용 자전거를 준다든지, ‘1년치 전철 정액권’을 준다든지 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관용 자전거를 준다 하여 국회의원이 된 분들이 몸소 자전거로 국회로 오갈는지요. 전철을 타고 국회로 다니거나 ‘자기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러 다닐는지요.

 법을 탓하고 제도를 나무라기는 쉽습니다. 바뀌지 않는 법을 바라보면서 왜 이럴까 하고 한숨 짓고 지나치기도 쉽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분, 또 대통령이 된 분, 또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모두한테, ‘은행계좌로 넣어 주는 일삯’만 주기보다는, 이 일삯을 쪼개어 전철 정액권을 현물로 주고, ‘책만 사서 보는’ 도서상품권을 열 장씩 주며, 서민 물건값을 몸소 알아보도록 재래시장 상품권 십만 원어치를 주면 어떠랴 싶습니다. 이 전철 정액권과 도서상품권과 재래시장 상품권은 반드시 한 달 안에 자기 스스로 다 써야 하며, 다 쓴 내역서를 내도록 못박아 놓고요.

 정몽준 의원은 버스삯이 70원인 줄 알았다지만, 버스삯이 5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을 테고, 10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으리라 봅니다. 좌석버스와 일반버스 삯은 어떠한지, 시외버스와 시골버스 삯은 어떠한지, 마을버스와 공항버스 삯은 어떠한지, 전철과 기차 탈 때 내는 삯은 어떠한지 모르는 국회의원도 무척 많으리라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나 회사원 가운데에도 자가용만 타고다니는 분들은 전철삯과 버스삯을 하나도 모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그나저나, 책값은 알까요? 여느 낱권책 한 권이 새책방에서 얼마인지, 또 헌책방에서 얼마인지 알려나요? 버스삯을 70원으로 알던 그분은, 책 한 권 값은 500원으로 알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4341.7.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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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어느 경제학자의 미 대륙 탐방기
마이클 D. 예이츠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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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1 ― ‘싸구려 민주주의’조차 없는 미국이 좋니?
 : 마이클 예이츠,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책이름 :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글 : 마이클 예이츠
- 옮긴이 : 추선영
- 펴낸곳 : 이후 (2008.6.5.)
- 책값 : 16000원


 

 (1) 아이와 책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옆지기와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까?” “아마, 그렇겠지요.” “우리 아이가 쓰잘데기없는 책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대로 두어야 할까?” “그대로 둬야지요.” “하긴. 나도 누가 나한테 책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 믿어야지.”


.. 나는 학생들의 반지성주의를 주로 학생 개인의 탓으로 돌렸지만, 학생들 사이에 이런 태도가 만연하게 된 데는 이런 태도를 용인하는 사회의 탓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햑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대학은, 이윤을 지향하는 일종의 회사로 변모되었다 … 기업형 학교에 저항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소수에 그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무 의문을 갖지 않았다. 돈을 벌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뿐 아니라, 나아가 칭송 받는 세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  (40∼41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저한테 책을 가르쳐 준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서 책방을 찾아다녔고, 혼자서 책을 읽었고, 혼자서 곱씹으면서, 혼자서 생각을 갈무리했습니다. 읽을 책 하나를 일러 주거나, 읽은 책 하나를 되새기도록 돕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스승이 되어 준 분들은 많습니다. 말씀보다는 몸으로, 이야기보다는 움직임으로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길을 내밀어 준 분들은 많습니다.

 이분들 가운데에는 책을 거의 안 읽거나 못 읽은 사람이 많고, 책을 제법 읽은 분도 있으며, 그럭저럭 책을 가까이한 분도 있습니다. 때때로 책을 추천해 주거나 선물해 주는 분이 있었으나, 선물받은 책은 썩 내키지 않아서 뒤로 밀어 놓았습니다. 진작에 읽은 책은 읽었기에 다른 이한테 줍니다. 그동안 책방을 다니며 살펴볼 때 영 달갑지 않아서 도로 꽂아 놓은 책은, 선물받은 책이었어도 헌책방에 내놓습니다.

 책을 무척 많이 읽고 갖춘 분 집이나 일터를 찾아가게 되면, 이분이 어떤 책을 살펴 오셨는가를 차근차근 훑은 다음, 이분이 들여다본 책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읽곤 했습니다.


.. 기자들이 시간을 내서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경험했으면 좋겠다. 살펴볼 의지만 있다면 불평등은 쉽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에 가르쳤던 학생들처럼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않는 한, 불평등의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  (48쪽)


 늘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으나, 조금이나마 번 돈이 있으면 책값으로 바치며 살아옵니다. 빌리거나 얻어서 읽은 책에는 ‘밑줄 긋고 생각 적바림하며’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 하나를 여러 달 동안 들고 다니면서 읽다 보면 책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는데, 제 돈으로 장만해서 제 물건으로 삼지 않는 책이라면, 이렇게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글쓴이와 출판사를 헤아리면서 책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내 물건으로 가지고 있어야, 내 마음대로 책 구석구석에 온갖 생각을 끄적이면서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읽을 책은 내 돈으로 산다’는 생각을 굳게 지키며 살아옵니다.

 옆지기하고 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옆지기는 제가 일찌감치 읽은 책을 고르기도 합니다. 이때, 제가 낙서 거의 없이 깔끔하게 본 책으로 있다면 ‘그 책은 집에 있어요’ 하고 말합니다. 제가 낙서도 많이 하고 밑줄과 별과 온갖 끄적임을 한 책으로 집에 있다면 아무 말 하지 않고 겹으로 사도록 내버려 둡니다. 아무래도, 자기 마음이 와닿는 대목을 자기 스스로 찾고 느끼며 읽어야 할 텐데, 낙서가 가득한 책을 읽게 되면, 자기 생각을 추스르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집에 갖추어 놓은 적지않은 책들은 제가 온갖 낙서를 잔뜩 해 놓았는데, 먼 뒷날 우리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책을 찾아서 읽을 나이가 된다고 하면, 지 아비가 끄적인 자국 때문에 책읽기를 꺼릴는지 모릅니다. 뒷날에도 판이 끊어지지 않아서 새로 장만할 수 있는 책이라면 괜찮지만, 판이 끊어져 이 하나만 겨우 간수하고 있는 책이라면 참 미안한 노릇입니다.


.. 이 부유한 1퍼센트 가구가 차지한 몫은, 가장 가난한 20퍼센트의 가구를 구성하는 2225만 5600가구가 차지한 몫의 48배였다. 오늘날의 전반적인 소득 분배 상황은 1920년대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평등하다 … 고층 건물 건축 바람이 불고, 더 많은 도로가 건설된다. 상류층을 상대로 한 상점과 식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상점과 식당을 대체한다. 주택 가격은 치솟는다.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정치권력도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  (99쪽)


 우리 집 두 식구는 책을 가까이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도 어느 만큼은 책을 가까이하며 지내리라 봅니다. 우리 집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이 없고, 다른 놀이감도 없으니 책하고 놀며 지낼지 모릅니다.

 책은, 우리가 세상을 알아가거나 느끼거나 배우는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 책 하나를 가까이하며 자기 눈을 넓히고 마음을 틔울 수 있으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아이한테 억지로 책을 손에 쥐어 줄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 두 사람은 우리 두 사람대로 즐길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읽어서 좋은 생각을 얻었으면, 이 생각을 우리 스스로 몸으로 옮기며 살아가면 됩니다. 책을 읽다가 어딘가 얄궂다고 느낀 대목이 있으면, 얄궂은 대목을 콕콕 집어내어 걸러낸 다음, 우리 깜냥껏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틈틈이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소리내어 읽어 주면 됩니다. 아이가 글을 깨친 뒤에도 세 식구가 번갈아 가며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 됩니다. 동생을 낳는다면, 세 식구가 돌아가며 책을 읽어 줄 수 있고, 동생이 자라면 네 식구가 돌아가며 읽을 수 있을 테지요.

 어느 한편으로 보면, 어버이가 아이와 소리내어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쳐 줍니다. 낱말을 읽는 법, 낱말과 낱말이 이어졌을 때 어떻게 소리내는가, 낱말 높낮이와 길이는 어떠한가, 어느 자리에서 힘을 주고, 어느 대목에서 끊는가를 시나브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즈음 책치고 올바르고 알맞는 말씨로 이야기를 엮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책을 펼쳐서 읽는 동안, ‘그 자리에서 곧바로 걸러내어 읽어야’ 합니다. 옆지기와 동화책을 번갈아 읽을 때에도, 틈틈이 ‘잘못 쓴 글’을 고쳐서 읽었습니다. 이를테면, “소란스런 학교로군. 이래서야 집중해서 공부가 되겠나” 같은 글월은 “시끄러운 학교로군. 이래서야 마음을 모아 공부할 수 있겠나”로 고쳐서 읽습니다. “피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같은 글월은 “피어는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습니다”로 고쳐서 읽습니다.


.. 보통,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라는 우울한 과학에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를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 하지만 경제학 용어에 익숙한 독자는 거의 없다. 나는 글을 쓴 사람부터가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  (133쪽)


 골목길을 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면, 또 꼭 사진을 안 찍더라도 골목마실을 하노라면, 동네 어린이를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마주친다고 해도 한둘이나 서넛일 뿐, 무리지어 노는 어린이를 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도 어린이가 없다지만, 도시에도 어린이는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도시로 떠나니 어린이가 없고, 도시에서는 학원에 가랴 집에 붙잡혀 공부를 하랴, 또는 컴퓨터에 빠지거나 텔레비전 보느라 바빠서 골목으로 나와서 놀지 못합니다.

 웬만한 어버이들은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고, 아파트에는 코딱지만한 놀이터가 아주 조그맣게 붙어 있습니다. 그나마 놀이터와 아파트 사이에는 주차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아파트로 들어서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습니다.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 바깥으로는,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가 넘실거리는 한편으로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놓는 가게가 줄지어 있습니다.

 동무를 사귀기 어려운 어린이요, 동무를 사귄들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히도록 뛰어놀 빈터가 없는 어린이입니다. 우리 아이라고 해서 남다를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도심지요, 그나마 우리 집은 아직 골목길이라 해도, 이 골목길이 앞으로 언제까지 ‘재개발로 안 쓸려 없어질’는지 모릅니다.


.. 우리는 인디언에게서 토지를 훔쳐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관개농업을 도입했고, 물을 오염시키고 식생을 파괴하는 소를 방목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 땅을 ‘개선’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초대형 고속도로가 사막을 가로지른다. 광산은 산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며, 댐은 협곡에 홍수를 일으킨다. 군대 주둔지나 피닉스ㆍ라스베이거스ㆍ로스앤젤레스 같은 거대 도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더럽힌다 …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도시들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계속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253∼254쪽)


 아이한테는, 제가 어릴 때 겪어 보기로도, 무릎이 깨지든 머리통에 혹이 나든, 신나게 뛰어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놀다가 다치기도 하고, 놀다가 울기도 하면서 스스로 크고 동무들하고 함께 자라야 합니다.

 혼자서가 아닌, 두서넛이 아닌, 열 스물 무리지어서 놀아야 합니다. 망까기를 하든 금긋기 놀이를 하든 고무줄을 하든 술래잡기를 하든 저희끼리 가르치고 배우고 규칙을 세워서 놀아야 합니다. 놀고 나서는 집에 와서 씻고 자기 옷가지는 자기가 빨고 몇 가지 심부름을 한 뒤, 저녁나절에는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옛이야기를 듣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잠들어야지 싶습니다.

 신나게 뛰어놀 곳은 땅이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축구장에만 잔디를 깔 일이 아니라, 우리 삶터 어디나 시멘트가 아닌 흙이 있도록 간직하면서 풀꽃과 나무가 자라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 어느 날 우리는 거리에서 만난 열 명 남짓한 주민들을 붙들고 그 커다란 나무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나무 이름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인근에 위치한 식물원의 전문가 역시 그 나무의 이름을 몰랐다 … 자연재해는 정치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 즉 귀찮은 가난한 사람들을 주요 도시에서 제거하고 시장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을, 우리 대신 처리해 줄 것이다 ..  (312, 366쪽)


 그렇지만, 놀이동무도 또래동무도 만나기 힘든 도시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다 하여 학교에서 홀가분하게 놀 수 있으려나요. 학교 공부를 마친 뒤에는 즐겁게 놀 수 있으려나요. 초등학생 때뿐 아니라 중학생 때와 고등학생 때에도 놀아야 할 텐데, 중학교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놀 수 있고, 고등학교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놀 수 있는가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스스로 놀고 동무와 노는 법을 몸으로 얻어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책이란 교과서란 지식이란 졸업장이란 회사란 무슨 쓸모나 값어치가 있을까요. 동무와 사귀는 법, 아니 동무와 사귀면서 세상을 즐기는 삶을 꾸리지 못하는 아이가, 제아무리 학교 공부를 잘하고 시험점수가 높게 나온다고 하여 우리 두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저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가 똑똑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똑똑하게 자랄 수도 있으나, 슬기로운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슬기롭지는 못하더라도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씩씩하지는 못하더라도 착하게 어울리는 삶을 가꿀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착함이 첫째고, 씩씩함과 튼튼함이 둘째며, 슬기로움이나 올바름이 셋째입니다. 똑똑함은 있어도 좋으나, 없다고 나쁘지 않습니다.





 (2) 삶터, 겨레, 나라, 이웃, 마을


 앞으로도 집에 텔레비전은 들여놓지 않을 테지만, 비디오테이프를 볼 수 있는 장비는 들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브이디로 나오지 않는 예전 영화, 극장에서 좀처럼 볼 수 없으며, 틀어 주는 사람마저 없는 예전 영화는 우리 스스로 비디오테이프를 장만해서 보아야 합니다.

 엊그제, 영화 〈로빙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동네에 거의 하나만 남은 퍽 오래된 비디오집에 타르코프스키 테이프도 있고 키아로스타미 테이프도 있다고 하니, 우리 집에 장비만 있으면 빌려서 볼 수 있습니다. 이웃집 사람을 불러서 함께 보아도 됩니다. 비디오집이 문닫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틈틈이 그 영화를 아주 싼값으로 빌려서 볼 수 있습니다.


.. 일상적인 일의 대부분은 브라질, 멕시코, 네팔, 벨로루시 출신 이민자들의 몫이다. 이민을 왔건 이곳 출신이건 상관없이, 이곳의 모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표준 정도의 집에서 살아갈 비용을 대기가 어렵다 … 값비싼 집들이 새로운 개발 부지에 건설되고 있고 건설할 예정인 집도 많다. 이로써 일자리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건설 관련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한편으로는 경관을 해칠 것이다 … 이주 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최고로 가난한 사람인데도,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하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문제다 … 하지만 이 사람들은 사회 보장세를 포함한 세금을 내며, 고용주들에게 이윤을 안겨 준다 ..  (21∼22, 247쪽)


 우리 두 사람한테 걱정이 있다면, 살붙이들과 이웃사람들과 동무들까지 거의 모두 ‘제도권 학교와 학원을 꼬박꼬박 다녀서 큰 회사에 들어가 펜대 굴리며 높은 연봉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아이가 크기를 바라는 데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따스한 울타리가 되어 아이를 지켜 줄 수 있을 터이나, 아이가 우리 울타리를 바라지 않으면 뛰쳐나가겠지요. 아이 스스로 돈을 더 바란다면 스스로 다른 살 길을 찾아갈 테지요.

 아이 밴 어머니가 산부인과에 안 가면 미친사람으로 여기는 눈총을 받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아이 낳을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는데, ‘예전에 집에서 아이를 낳으셨던 이웃 할머니’조차 병원에 가라고 채근입니다. ‘세이레(삼칠일)’라는 말은 낡아빠진 말로만 남았을 뿐, 어느 어르신도(딱 두 분만 빼고) ‘세이레’를 왜 지키고, 세이레를 어떻게 지키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와 낳은 뒤, 아기 어머니가 어떻게 몸풀이를 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고 있는 어르신이 몹시 드뭅니다. 의사라는 사람도, 보건소 직원도 ‘초음파 검사’니 ‘양수 검사’니 하는 지식은 갖추고 있으나,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자라는 흐름과 어머니 몸 바깥으로 나오는 흐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 오히려 손님들은 우월감을 느꼈다. 명찰을 패용한 사람은 시중드는 사람임을 의미했다. 손님들은 무례했고, 생색내는 오만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 하지만 수많은 손님들이 나를 감정이 있는 실제 인물로 취급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 그들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돈을 썼으므로, 그들의 유일한 의무는 지불한 돈에 걸맞은 여가를 즐기는 것뿐이다 … 사람들은 호텔 밖에서, 그들이 다시는 보지 못할지 모르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질 때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호텔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  (74∼76쪽)


 가만히 생각합니다. 담배도 우리 몸에 나쁘지만 자동차 배기가스는 우리 몸에 훨씬 나쁩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은 더욱 나쁩니다. 그렇지만 우리 둘레 어느 누구도 자동차를 덜 타거나 안 탈 생각이 없고, 공장에서 새 물건을 끊임없이 ‘안 만들어도 되는 물건 씀씀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사서 길에 내놓는다고 쓰레기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 어느 매립터로 옮겨 갈’ 뿐입니다. 헌책방에서는, 또 골목집에서는 ‘이마트 끈’을 책 묶는 데에도 쓰고, 꽃그릇 버팀나무 세우는 데에도 씁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쓰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안 만드는 사람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요.

 출판사에서는 책에 비닐을 씌울 뿐더러 책날개를 두 겹 세 겹으로 씌우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겉보기 좋으라고 상자를 여러 겹 만드는 백화점 물건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장보러 다닐 때 장바구니나 손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는지요. ‘큰 하나(거대 담론)’는 할 줄 안다고 해도 ‘작은 하나(생활 실천)’를 죄다 놓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올바르거나 아름다운 쪽으로 고쳐나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진보나 개혁을 꿈꾸든 경제성장이나 고소득을 바라든, 우리 스스로 우리가 늘 부대끼는 ‘작은 삶’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느끼지 못한다면, 입 큰 청개구리 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나는 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쌓아 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두고 경쟁하는 현실 속에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 영구적인 불평등은 포틀랜드뿐 아니라 우리 나라(미국)의 모든 도시를 괴롭힌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실업률이 높은 축에 속하는 도시, 거리마다 노숙하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도시, 고속도로 진출입로마다 거지들이 구걸하는 도시에서 저녁 식사 손님은 레스토랑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싼 식사를 했다 ..  (198∼199, 214쪽)


 유럽나라 책마을을 이야기할 수는 있으나, 부산 책방골목은 이야기하지 못하는 한국사람입니다. 미국 헐리우드를 읊을 수는 있으나, 대구 골목길은 살피지 못하는 한국사람입니다. 인도와 티벳과 몽골을 나들이하지만, 정작 우리 삶터 구석구석 두 다리로 밟아 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나라밖에 나가 보면 눈이 트이고 생각이 열린다고 하는데, 나라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눈이 트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사는 좁은 울타리’, 그러니까 ‘아파트숲’과 ‘시멘트 도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눈이 트였을 뿐입니다.

 머나먼 나라까지 비싼 비행기삯을 들이지 않고,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 아파트숲과 시멘트 도시를 벗어나서 동해에서 서해로, 강화에서 제주로 죽 달려 본다면, 해남에서 통영으로, 고성에서 홍성으로 달려 본다면, 얼마든지 생각이 열립니다. 제주섬만 한 바퀴 자전거로 돌아도 마음문이 활짝 열립니다.





 (3) 여행이야기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늘그막에 걱정없이 놀고먹을 수 있던 경제학과 교수 부부가 굳이 ‘교수 자리’를 그만두고 ‘국립공원 비정규 노동자 자리’로 옮아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를 읽습니다. 경제학 교수인 만큼, 자료와 숫자에는 눈이 밝았을 텐데, 자료와 숫자는 종이에 적힌 글자입니다. 몸으로 부대끼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앎이 아닙니다. 비정규 노동자를 아무리 많이 만나 본들, 스스로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 보지 않고서야, 비정규 노동자들 아픔과 슬픔과 눈물을 ‘자기 나름대로 삭일’ 수 없습니다.


.. 고용주는 가능하면 숙련 노동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싸기 때문이다 … 근대의 작업장은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제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 가끔 고객의 요구 사항이 없을 때가 생기면 새로운 과업이 배정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럼으로써 온종일 꾸준히 업무에 임하도록 강제되었다 … 우리는 전체 작업 구조에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대신, 일을 회피하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는다 … 날이 저물면 나는 자유로웠지만,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시 무렵의 이른저녁부터 잠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  (86∼89쪽)


 글쓴이 ‘마이클 예이츠’ 님은, 여러 해에 걸쳐서 넓디넓은 미국땅을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싸구려 모텔’ 방을 얻어서 지냅니다. 모텔 방을 얻은 다음 하는 일은, 드넓은 미국땅 자연이 어떠하고, 이 자연을 둘러싸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기.

 미국땅에서 미국사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미국사람다운지 살펴봅니다. 미국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 미국사람인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화라는 이름은 얼마나 허울좋게 사람들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 서부에 머물 때는, 피츠버그나 존스타운에 살때 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답은 간단했다. 동부의 하늘은 쳐다볼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 마지막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맨해튼의 무관심한 정서였다. 도시가 너무 크고 비인격적이어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  (115, 156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나라라고 합니다. 언제나 “자유라는 이름”과 “민주라는 이름”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도 경제도 정치도 문화도 예술도 교육도 과학도. 우리와 한겨레인 북녘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입니다. 늘 ‘민주’가 앞세워지고 ‘인민’이 우러름받으며 ‘공화국’으로 살림을 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떤 사람한테 어떤 자유를 어떤 모습으로 지켜 주고 있는가요. 우리 사는 남녘땅에서 자유는 어떤 사람한테 어떠한 모습으로 누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요. 대통령이 말하는 민주와 국회의원이 말하는 민주와 신문기자가 말하는 민주와 대학교수가 말하는 민주와 동네 아저씨가 말하는 민주와 학원강사가 말하는 민주는 서로 얼마나 가까운가요. 또는 먼가요.

 싸구려 민주만 나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싸구려조차 안 되는 민주가, 거짓 민주가 껍데기 민주가 겉치레 민주가 눈속임 민주가 사탕발림 민주가, 그러니까 돈이 되면 어떻게 하든 다 좋다는 민주만 판치고 있지 않습니까. (4341.8.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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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카르페디엠 2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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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8 ― ‘천재 화가’가 아닌 ‘그림을 사랑한’ 아이인데
 : 중자오정, 《로빙화》



- 책이름 : 로빙화
- 글 : 중자오정
- 옮긴이 : 김은산
- 사잇그림 : 장호
- 펴낸곳 : 양철북 (2003.8.16.)
- 책값 : 9000원



 (1) 여름벌레 소리와 도시


 지난밤 드문드문 세찬 바람이 불다가 잦다가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하더니, 깊은밤에는 비가 뚝 멎었습니다. 모기장을 쳐 놓았어도 모기는 모기장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와서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고, 우리는 피를 빨리면서도 모자란 잠을 이루려고 바둥바둥입니다. 새벽 어스름이 조금씩 걷힐 무렵, 모기장 안쪽에 있는 모기가 눈에 뜨여서 한 마리 두 마리 …… 열 마리 남짓 잡습니다. 희뿌윰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이제 일어날까 하다가, 오늘 낮 부지런히 다녀야 할 일을 생각하며, 아니다 잠깐이라도 몸을 푹 쉬고 하루를 맞이하자며,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여느 날보다 퍽 느즈막한 일곱 시 반쯤 일어납니다. 낯과 몸을 씻고 빨래 한 점을 하는데, 씻는방 창밖으로 매미소리 들립니다. 나무도 없는데 무슨 매미가 우나 하고 내다보니, 이웃한 빈 건물 벽에 붙어 있는 듯합니다. 어디께 있나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매미소리 뚝 끊깁니다. 사람 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몸을 다시 웅크리며 빨래를 합니다. 아까보다 가늘어진 매미소리 울립니다. 다시 몸을 움직여 슬그머니 내다봅니다. 또 끊깁니다. 그래, 미안하다, 애써 세상으로 나와서 시원하게 울어 보려는 참에 내가 괴롭혔구나, 난 살며시 나갈 테니 마음껏 울어라.

 다 한 빨래를 탁탁 털고 씻는방에서 나오니 이윽고 매미소리 다시 들립니다. 굼벵이가 고이 깃들며 지낼 만한 흙이 마땅하지 않은 도심지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발려진 동네인데, 저 매미는 어디에서 몇 해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이처럼 때맞춰 깨어나서 큰소리로 울어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정말 아명의 그림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내 아생은 아명이 그린 그림들을 벽에 붙였다. 벽에 건 그림만도 이미 열 장이 넘었지만, 한 장 한 장 모두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괴상한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그린 그림들 위에 선생님이 찍어 준 ‘미’라는 도장은, 보는 사람들을 오히려 민망하게 했다 ..  (22쪽)


 엊저녁, 옆지기는 매듭엮기를 하고 저는 책을 읽습니다. 옆지기가 심심하다며 책을 소리내어 읽어 보라고 합니다.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잃어버린 소년들》이라는 책을 읽는데, 마침 펼쳐서 읽는 대목이 꽤 지루합니다. “이거 원, 읽는 사람부터 재미가 없네.”

 엊그제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장만한 《이경희-현이의 연극》(1973)이라는 퍽 묵은 수필책을 집어듭니다. 〈여치〉라는 글이 보입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여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제 점심때, 친구와 같이 어느 식당에 갔더니 그 식당 입구 양쪽에 대로 만든 여치 둥우리가 걸려 있었다. 시원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무의식중에 ‘어마!’ 하고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한참 동안 잊고 살아온 여름벌레! 그리운 것을 만난 것같이 반갑고 정이 갔다(98쪽).”는 첫 대목.

 응, 여치 울음소리? 음, 여치 울음소리.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소리였지? 메뚜기며 여치며 방아깨비며 풀무치며 여름벌레 울음소리는 모두 다른데, 어느 소리가 어느 벌레 울음인지 가려낼 수 없으려나? 하긴, 이제 이 여름벌레를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데, 울음소리를 어찌 가려내나.

 듣느니 참새와 비둘기와 까치 울음소리일 뿐인데, 소쩍새와 왜가리와 갈매기와 새매와 어치와 콩새 울음을 가릴 수 있는 도시내기가 다문 몇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려나. 이 새소리를 가려낼 수 있다고 하여도, 이이는 도시에서 알맞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한 번 들여놓고 살아가는 이 도시라는 데에서는 벌레소리며 새소리며 짐승소리며 바람소리며 모두 잊어야만 하지 않나.

 《현이의 연극》을 쓴 아주머니는 “언젠가 들은 얘기지만, 도오쿄오 중심지에서는 나비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쩐지 사실 같지 않았으나, 요즘 서울에서도 나는 나비를 본 기억이 까마득한 것 같다(100쪽).”고 적습니다.

 나비를 볼 수 없는 서울, 아니 나비를 볼 수 없는 한국. 산에 가야 볼 수 있을 텐데 산이라고 해 봐야 케이블카 놓고 아스팔트길 닦고 굴을 뚫고 갖가지 밥집에다가 호텔 모텔 지어대고 스키장 무슨 장 우격다짐으로 때려넣는데 …….


.. “교장 선생님이 현에서 여는 미술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럼 네가 대표로 뽑혔다는 말이냐?” “예! 누나도 대표예요. 앞으로 날마다 남아서 연습을 해야 돼요.” “네 누나도 연습을 한다고? 그건 안 된다. 네 누나는 엄마 일을 도와야 해.” …… 차매는 갑자기 자신이 그림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 지도 시간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었지만,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엄마는 그렇게 바쁘신데……. 나라도 일찍 집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도 도와 드려야지.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일 거야 ..  (45, 72쪽)


 지지난달, 옆동네 화평동으로 골목마실을 갔다가 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 그 비슷한 무렵, 서울에 있는 ㅇ출판사로 나들이를 갔다가 그 출판사 앞마당에서 노니는 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

 골목길 한켠 빈자리를 그냥 놀리지 않고 흙을 일구고 갈고 거름을 치면서 땅심을 돋워 준 다음 여러 가지 푸성귀를 심으니, 벌과 나비가 찾아듭니다. 조금만 벗어나면 자동차 우악스럽고 시끄럽게 내달리는 서울 한복판이었으나, 출판사 앞마당에 자라는 나무와 꽃을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간수했기에 외로운 나비 한 마리가 이곳에서나마 날개를 접고 쉴 수 있습니다.

 옆동네 율목동 할머님도 걱정을 하지만, 온 인천을 재개발을 한다며 갈아엎으면, 그나마 골목이 어우러져 있는 조용한 동네에서 마음좋은 사람들한테 밥술이나마 얻어먹던 길고양이와 길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들 사람도 그 비쌀 뿐더러 메마르고 매몰찬 시멘트 성냥갑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여태껏 뿌리내리며 조용히 살아오던 나무와 꽃과 풀도 싹 목아지가 잘리며 쓰레기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 서른 해를 묵은 동네 감나무가, 쉰 해를 묵은 동네 느티나무가, 스무 해를 묵은 동네 앵두나무가, 마흔 해를 묵은 동네 은행나무가, 해마다 새로 줄기를 뻗는 담쟁이와 나팔꽃과 호박꽃과 해바라기가, 한 줌 재로 바뀌며 제 삶터를 내어주고 숨을 거두어야 하나요.


.. “주사? 하하하! 아니 무슨 주사를 놓는다는 거냐?” “쥐약을 먹었으니 해독제를 맞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흥! 그깟 한 푼 값어치도 없는 고양이 한 마리 살리자고 귀한 돈을 날리자는 말이냐?” 분명 맞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명은 아버지가 고양이와 돼지를 차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 같이 사랑스러운 동물이 아닌가? 게다가 돼지에 비하면 고양이가 훨씬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을 아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노기 띤 그 말에 아명은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기댈 데가 없어진 아명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쳐죽일! 왜, 뭐 때문에 울어? 당장 그치지 못해?” ..  (100∼101쪽)


 요사이, 서울이나 인천이나 웬만한 도시마다 자동차 물결이 조금 수그러들었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달리노라면, 예전과 견주어 차가 꽤 줄었음을 살갗으로 느낍니다. 차가 줄어 널널해지니 짓궂고 거칠던 버스기사도 자전거한테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줄어든 자동차 물결’은, ‘이 땅 이 나라 자연 삶터가 무너지는 일을 걱정’하면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기름값이 부쩍 치솟아서 돈 나가는 일이 걱정’되어서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타는 까닭은 ‘자가용 끌고 가 보았자 막히기만 하니 늦어질 뿐더러, 차 댈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입니다. 조금이라도 지구자원을 덜 쓰면서 이웃과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돌보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돈, 돈, 오로지 돈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일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나며, 돈 때문에 처세와 자기계발서라는 뚱딴지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오느 책을 부지런히 읽습니다. 돈 때문에 자가용을 끌면서 다니려 하고, 돈 때문에 내키지 않는 술자리 대접을 할 뿐더러, 돈 때문에 검은돈을 봉투에 담아서 선물로 바칩니다.

 돈을 바라보며 대학교에 보내려 합니다. 돈을 생각하며 아이들한테 영어와 한자를 가르칩니다. 돈을 꿈꾸며 아이들한테 책을 읽힙니다. 돈 나와라 뚝딱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논술시험 대비 글쓰기 교육’을 시킵니다. 돈이 구르기를 바라면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내 주머니에만 돈이 차기를 꾀하니 주식을 하고 펀드를 놓습니다.


.. 임장수의 외아들은 임지홍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옷을 껴입혔고, 비타민을 비롯해 몸에 좋은 것이라면 억지로라도 먹일 정도였다. 하지만 임지홍은 창백한 얼굴에 몸이 쇠약한 아이로 자랐다 …… 이번에 임지홍에 맞설 만한 강적이 나타난 것과, 그 주인공이 자신의 차밭 가운데 아주 일부를 부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 뒤, 그는 끓어오르는 노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임장수는 그런 빈농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밀려나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했다 ..  (123∼125쪽)


 매미소리는 우렁차게 들렸다가 끊어졌다가 되풀이됩니다. 힘들어서 쉬는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저처럼 어디서 매미가 우나 하고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어서 옹크리면서 살피느라 그러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새벽나절 잠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하늘가를 바라보았을 때, 오늘은 구름 한 점 없겠구나 싶었는데, 아침 여덟 시를 넘기고 아홉 시를 넘기니 밝은 햇살이 우리 집으로도 내리쬡니다. 바람도 알맞게 살랑거립니다. 엊저녁처럼 끈적거리지 않습니다. 이만한 볕과 바람이라면, 이불 빨아서 널면 좋으련만, 밀린 이불 빨래는 없으니 조금 아쉽습니다. 그러면 지금 덮고 자는 이불이라도 햇볕에 말려 볼까나.


.. 사실 임지홍은 이미 전통 미술 교육의 포로가 되어 있었던 탓에, 한순간의 노력으로는 지금까지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주 총명해서 모방 실력이 남달리 뛰어난 덕에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니, 지홍이 갖고 있는 결점들이 유달리 깊고 많을 수밖에 없었다 ..  (137쪽)


 우리 집에서 십오 미터쯤 떨어져 있는 전철길은 새벽 다섯 시 십 분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기차와 전철이 다닙니다. 하루에 두 번쯤, 무거운 짐을 실은 짐기차가 지나가는데, 온 건물이 부르르 떱니다. 이때마다 생각합니다. 저 기차를 모는 분은, 자기가 기차길을 지나갈 때마다, 기차길과 이웃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줄 알까 하고.

 우리 집이 깃든 골목 앞에는 차가 거의 안 다니니, 어쩌다 지나가는 차도 아주 싱싱 내달립니다. 마치 내기 달리기라도 하듯. 차는 천천히 달려도 소리가 크지만 빨리 달리면 훨씬 큽니다. 오토바이는 더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자기가 달리는 길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가 탄 차에서 내는 소리’ 때문에 고달픈 줄을 알까요. ‘자기가 탄 차에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히는 줄을 알까요. 자기는 자기 돈 주고 자동차를 샀으니 그만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이 자동차 하나를 만들기까지, 또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가 이루어져서 이웃한테 나쁘게 피해를 끼치는 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담배꽁초와 빈 담배곽을 길에 버리면서, 침을 퉤퉤 뱉으면서, 껌을 툭 뱉으면서, 과자 껍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면서, 빈 병과 깡통을 아무 데나 얹어 놓고 지나가면서, 그나마 쓰레기봉투도 아닌 까만 비닐봉투에 쓰레기 담아 남의 집 앞에 내놓으면서, 마음에 조금이나마 꺼려지기라도 하는가요. 돈을 쓰든 찢든 버리든 ‘내 마음’인지요. 매미가 저렇게 울어대고 있는데.


 (2) 그림 한 장과 삶


.. “별말씀을요.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못 선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그림은 너무 ……, 너무 진부하다고 할까요. 저 그림들은 어린 학생들이 그릴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른들 그림에 가까우니까요. 아니, 꼭 어른들 그림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사실 저 또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고아명 같은 아이야말로 아이다운 그림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연스러운지 부자연스러운지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을 숨기지 않고 그려 내지요. 그래서 가끔 우리 어른들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들 자신도 그림이라면 실제 사물과 아주 비슷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요. 사실 그런 게 바로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인데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그대로를 화폭에 옮겨 놓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  (35∼36쪽)


 그제 저녁, 좋다는 소리를 듣는 어린이책을 꾸준히 펴내는 ㅅ출판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ㅅ출판사에서 얼마 앞서 낸 어린이책 하나를 읽다가, 몇 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는 한편, 사잇그림 몇 가지가 영 잘못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돌 던지기’와 ‘물수제비(또는 물팔매)’가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한 다음, 책에 실린 그림 몇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아이가 앉은 걸상 다리하고 밥상 다리 길이가 똑같이 보인다는 대목. 그림 그리는 분들이 사람이 밥걸상에 앉은 모습을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듯 그리지 않고 머리로만 그릴 때 흔히 이런 잘못을 저지릅니다. 밥상 다리와 걸상 다리 길이가 같거나 비슷하면, 사람은 걸상에 앉아서 밥상 밑으로 다리를 넣을 수 없습니다. 걸상 다리는 절반 남짓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만화처럼 그리는 그림이라고 해도(하물며 만화 그림이라고 해도), 기하학 그림도 아니고, 무언가 일부러 비트는 그림이 아니라 한다면, 손가락을 넷으로 그리거나 눈을 셋으로 그리거나 발가락이 손가락보다 길게 그려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이 그림을 흉내낸다고 해도, 아이들도 걸상 다리와 밥상 다리를 다른 높이로 그립니다. 그렇지만 ㅅ출판사 분은 ‘자기가 보기에는 밥상 다리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괜찮아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느끼신다면 할 수 없지요.’

 다음으로 1949년 겨울 일본 변두리 조그마한 기차역 앞 모습을 그린 그림. 이무렵 안경 쓴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리고 이무렵 남다른 서양 옷차림을 따르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패딩 잠바’ 차림을 할 수야 없을 테지요. ㅅ출판사 분도 한눈에 ‘어머나, 패팅 잠바는 안 어울리네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이무렵 1940년대에는 ‘잠바라는 옷’은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겉옷(또는 두툼한 겉옷)’이나 ‘외투’일 뿐이고, 때때로 ‘코트’일 뿐입니다. 모르지요. 서양 군인들이 입는 ‘잠바’가 벌써부터 사람들 사이에 퍼졌을는지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사진책 《김기찬-역전 풍경》(2002)과 《木村伊兵衛-街角》(1981)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펼칩니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역 둘레 모습을 담은 한국 사진책 어디에도, 또 1945년부터 1974년까지 북적거리는 일본 도심지 길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책 어디에도 ‘ㅅ출판사 어린이책 사잇그림’에 나오는 옷차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ㅅ출판사 그분한테 이 그림에 나오는 ‘배경이 되는 사람’ 모습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려주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 하나가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가를 헤아리고자 1940년대 끝무렵 일본 시골 기차역 모습 사진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터이나 그렇게까지 애쓸 듯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찾아본다고 해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 편집자가 알아채서 그린이한테 알려주기 앞서, 그림을 그린 분 스스로 ‘일본이 전쟁에 지고 아주 고달프던 1949년 겨울날 시골 기차역 앞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때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를 생각하고 알아보고 그림에 담아야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 자신이 갖고 있는 어른의 눈빛을 버리고 아이들의 눈으로 느끼고 아이들이 하는 것을 함께 하자, 아이들은 어느새 자신 가까이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곽운천이 며칠 안 되는 시간에 얻은 교훈이었다 ..  (82쪽)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책 만들어 주셔요’ 하는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지만, 쓰린 속은 달래지 못합니다. 마땅한 대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지는 않았지만, 꽉 막힌 속이 더 엉겨 버린 듯해 괴롭습니다.

 아무렴, 매미에도 여러 갈래가 있고, 또 같은 갈래 매미라 해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며 날갯짓과 울음소리도 다른데, 이 다름을 느끼면서 그림으로 담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갈매기를 그리든 기러기를 그리든, 수십 수백 수천 마리가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똑같은 새로 이루어진 모습’이 아니라 ‘다 다른 새로 이루어진 모습’이건만, 수십 마리 기러기를 그릴 때, 다 다른 이름을 불러 가며 그릴 분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수백 마리 갈매기를 그리며 저마다 다른 이름을 되뇌이며 그림으로 담을 분을 우리 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요.

 똑같은 민들레가 없으며, 한 민들레에서 자라는 잎이라 해도 다 다르게 돋아나고 다 다른 크기입니다. 이 다름을 잡아챌 뿐더러, 마음눈으로 알아보고서 붓질에 녹아낼 그림쟁이란, 한국에서 일감을 찾아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줄 수 없을 노릇일까 모르겠습니다.


..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눈이 있기에, 느끼는 것을 그대로 그리면 그만입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그냥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훌륭한 그림이 됩니다. 사물의 생긴 모양과 비슷하고 안 하고는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 어린이가 자신의 주장을 가진 후에, 그것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야만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지 않고 형식에 얽매여 사물을 그대로 베껴는 그림은 창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술이라 할 수도 없고요. 이런 점만 보아도 임지홍의 그림은 사물을 잘 베낀 작품이지만, 창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147∼150쪽)


 돌이켜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섯 해 동안, 학교에서 배운 ‘그림그리기(미술)’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험문제에 나올 이론을 외우고 이름난 작가와 작품 이름 외우기로 그쳤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세상을 보고 부대끼고 느낀 이야기를 그림에 담도록 이끌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석고상을 놓고 그림자 똑같이 그려내기를 하고 자와 제도기를 써서 ‘반공 푯말 그리기’ 따위는 했을지언정, 어머니 아버지 얼굴 그리기나, 형 누나 모습 그리기조차도 해 보지 못했고, 자기가 사는 동네 그리기마저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3) 《로빙화》라는 이야기책


 영화로도 나오며 더 이름을 날린 《로빙화》라는 이야기책을 덮습니다. 진작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뒤늦게 읽고, 금세 책에 빠져서 다른 일에 곁눈을 팔지 않으며 끝까지 달음질을 칩니다.

 그림을 좋아함을 넘어서 사랑하는 ‘고아명’이라는 아이는, 그림만 사랑하지 않고 뭇 목숨붙이를 사랑하고, 누나를 사랑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자기가 사는 시골마을을 사랑하고 이웃 모두를 사랑합니다. 이 깊고 너른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사랑을 폭 바칠 만한 그림을 담아냅니다.

 그러나, 아명이 둘레에서 아명이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 아명이 누나 ‘고차매’뿐. 아명이와 차매를 가르치는 ‘곽운천’ 선생은 아명이가 그리는 그림 껍데기는 읽어내지만, 그림에 담은 속내까지는 읽어내지 못합니다. 아명이가 시골마을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하지만, 곽운천 선생도 아명이를 ‘천재화가’라는 틀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모든 목숨을 사랑하면서 자기 삶을 사랑한 어린이 아명이’를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합니다.

 가난한 가운데에도 부모님과 누나한테 보살핌과 아낌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고아명은, 자기 삶에서 새로운 길을 그림그리기로 시나브로 느껴 가지만, 아명이 둘레에 있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섣부른 다짐과 가벼운 어김으로 깊디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아명은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아픔을 받으면 아픔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서 버림받은 고양이와 함께 자기도 조용히 아파하다가 숨을 거둡니다.


.. “이제 그만 울어……. 아명이도 만족하고 있을 거야. 천재 화가였잖니, 그치? 천재 말이야…….” 곽운천은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머리속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그깟 천재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다 끝나는 것 아니에요?”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어린 소녀(고차매)의 눈빛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곽운천은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어차피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 아니겠니? 사람들 모두 아명이가 천재인 것을 알았고, 또 교훈도 얻었으니까 그것으로 된 거야.” “사람들 모두라고요? 사람들이 누가 아명이더러 천재라고 했는데요? 저는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눈물이 멈춘 차매의 눈에서 강한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에 향장님도 아명이가 천재라고 하셨잖니?”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살아 있을 때는 다들 모른 체하더니 죽으니까 찾아와서 천재니 뭐니 떠들고…….” ..  (281∼282쪽)


 천재라는 이름이, 부자라는 이름이, 정치꾼이라는 이름이, 또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공무원이라는 이름이, 교사라는 이름이, 부모라는 이름이, 화가라는 이름이, 작가라는 이름이, 과학자라는 이름이, 또 소작인이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슨 값, 쓸모, 이야기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왜 이런 이름에 우리 삶을 매어 놓아야 하는지, 왜 우리 삶을 이런 이름에 굴레처럼 묶어 놓아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 고석송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후우,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도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감기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원수 같은 빚 때문에, 그놈의 빚을 지기 싫어 그런 것이 아니던가? ..  (269쪽)


 아명은 죽었습니다. 머지않아 아명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늙어서 죽겠지요. 그러고 나서 어린 동생을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하는 누나 차매와 막내 아생도 늙어서 죽겠지요. 또는 가난에 허덕이다가 굶어서 죽거나, 사고나 병들어서 죽거나.

 이렇게 죽어서 떠나게 되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나면, 빚이건 돈이건 무엇이 될까요. 무엇으로 남을까요. 죽은 이와 남은 이한테 어떤 뜻이 있을까요. (4341.8.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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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홍대용 원저, 김영호.이숙경 지음 / 꿈이있는세상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촘스키’를 읽는 당신, ‘홍대용’도 함께 읽으셔야지요
 [잠깐 읽기 9] 홍대용, 《의산문답》



- 책이름 : 의산문답, 개혁을 꿈꾼 과학사상가 홍대용의 고뇌
- 글 : 홍대용
- 옮긴이 : 이숙경, 김영호
- 펴낸곳 : 꿈이있는세상 (2006.4.15.)
- 책값 : 9000원



 (1) 책읽기와 취향


 여러 매체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별 다섯 만점’을 잣대로 비평을 하곤 합니다. 얼마 앞서 ㅈ이라는 사람이 펴낸 책을 놓고 ‘인터넷 서평단’은 하나같이 별 넷이나 다섯을 주었지만(서평단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거의 이렇게 점수를 붙여 주더군요), 이 책을 자기 돈을 치러서 사서 읽은 여러 사람들이 별 하나만 주었습니다. 별 0개를 주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별 하나를 붙였구나 싶은데, 이렇게 별 하나를 준 사람들 글은 여느 독자들한테 크게 공감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전문 서평꾼 한 사람이 ‘나는 내 돈 주고 사서 읽었어도 아주 좋았기에 별 다섯을 준다. 내가 별 다섯을 준다고 나를 똑같은 서평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글을 남깁니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그 전문 서평꾼은 ‘취향이 다른 문제’라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면서 별 다섯을 주었는데, 자기가 내세우는 이야기대로라 해도 ‘별 하나 주기도 아깝다’고 하는 사람 또한 취향 문제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취향 문제를 넘어서는 더 큰 문제가 있어요. ㅈ이라는 분이 낸 책이, 얼마나 짜임새가 있고 알맹이가 야무지고 따로 그런 책을 낼 만한 뜻이나 이야기가 무르익었느냐는 대목.

 사람을 죽이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살결빛이나 옷차림이나 일자리에 따라서 푸대접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높은 아파트 창턱에서 고양이를 집어던지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쓰레기물을 끝없이 내뿜는 공장이 우리 동네에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골목길에서 빵빵거리며 우악스럽게 내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교육감이 누가 뽑히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취향이라 한다면, 너는 참이슬을 마시지만 나는 처음처럼을 마신다든지, 너는 한라산물맑은소주가 맛있다 하지만, 나는 시원소주가 맛있다든지, 너는 이과두주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고량주가 좋다든지 할 때가 취향입니다.


.. “무릇 짐승과 초목이 아는 것과 깨달음이 없다고 했지만, 아는 것이 없는 까닭에 거짓이 없고,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몹쓸 짓도 하지 않는다.” ..  (48쪽)


 어느 책 하나를 놓고 잘 되었느냐 잘못 되었느냐를 가리는 일은 취향을 넘어서야 한다고 느낍니다. 날카롭고도 차분하게, 깊고도 치우침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큰일이라고 느낍니다. 책 하나가 나오기까지 어마어마한 나무가 베어지고, 나무를 베려고 적잖은 물과 기름을 써야 할 뿐더러, 나무를 베어내는 곳까지 길을 닦고 제재소를 짓고, 이 나무를 다듬어서 짐차에 실은 뒤 배로 옮겨 싣습니다. 그런 다음 기름으로 움직이는 배가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다니며 종이공장에 부려놓고, 종이공장에서는 또 물과 기름을 써서 종이로 만듭니다. 이렇게 종이가 된 다음, 짐차에 실려 인쇄공장에 가서 기름과 물을 먹고 책으로 찍힙니다. 책으로 찍힌 다음 다시 짐차에 실려서 배본소로 들어가고, 배본소에서는 또다시 작은 짐차로 옮겨 담긴 채 전국 곳곳에 있는 책방으로 실어 옮깁니다. 책방에서는 전기불 환하게 켜 놓은 책꽂이 한쪽에 이 책을 꽂아 놓습니다. 책을 사는 우리들이 몸소 책방으로 간다고 해도 자원이 듭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보아도 택배기사가 자원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얼핏 보면 ‘돈 몇 푼 치러서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인 개인 테두리’로 느껴질 터이나, 찬찬히 헤아리면, ‘돈을 넘어서는 사람 삶터 이음고리가 고스란히 담긴 테두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지금 너는 과거에 들었던 것에 집착하고 남을 이기려는 마음에 빠져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서 남의 바른 말을 막으려고 하니, 네가 도를 구하고자 함에 있어서 잘못됨이 있는 것이 아니냐? … 네가 진정으로 도를 들으려거든 네가 옛날에 들었던 것을 씻어버리고, 또한 너의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네가 마음을 비우고, 네가 입을 조심한다면 내 어찌 숨김이 있겠느냐?” ..  (63∼64쪽)


 모든 책은 헌책이고, 모든 책은 새책인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낡아도 책이고 깨끗해도 책인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되어도 책이고 갓 나와도 책인 까닭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김치국물이 튀겼다고 해서 책에 담긴 줄거리를 못 읽을 일이 없습니다. 빳빳하고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새책이라고 해서 책에 담긴 줄거리를 곱으로 받아들일 일이 없습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지식으로 머리에 담아내는 물건이 아닌 책입니다. 마음으로 새겨 읽는 마음밥인 책입니다. 곡식을 먹어 몸을 살찌우듯, 책을 읽어 마음을 살찌웁니다. 밥을 먹으며 일할 힘을 얻듯, 책을 읽어 가슴이 따뜻하거나 넉넉한 사람이 될 사랑과 믿음을 추스를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어영부영 ‘유명인사’ 내세워서 팔아치우는 책은 겉만 번지르르한 도둑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얼레벌레 ‘진보인 척’ 우쭐거리며 팔아먹는 책은 시커먼 꿍꿍이속을 감춘 몹쓸 깡패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베, 비단과 옷, 이불은 살아 계실 때에 봉양하는 기구이고, 관곽이나 정삽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장사 지낼 때에 남 보기에 좋게 하는 장식이다. 이것들은 모두 흙에 들어가면 썩어서 유해를 더럽힐 뿐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신경을 쓰고 마침내 유해가 더럽혀지는 것은 생각지 않으니, 이렇게 하는 것을 효도라 하고 또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 ..  (138∼139쪽)


 지난날 이 땅 어른들, 또 우리가 책으로 만나며 높이 받드는 북중미 토박이들 삶, 그리고 티벳이나 몽골 높은산에서 살아가는 토박이들 삶, 그리고 아프리카나 호주 토박이 삶은 ‘종이로 찍힌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던 삶이었습니다. 이들한테는 책이라는 물건이 따로 없어도 되었습니다. ‘책으로 적어 놓을’ 이야기를 늘 몸으로 익혔고 마음에 새겼으며, 이 이야기를 한결같이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주고받으면서 곱씹고 되뇌었어요.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던 이 겨레 수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그윽하며 훌륭한 슬기를 엿보거나 배울 수 있던 까닭은, 당신들 몸과 마음에는 ‘굳이 종이에 담아 놓지 않아도 될 흔들림 없는 사랑과 믿음’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로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읽지 않아도, 당신들 꾸려가는 삶이 바로 ‘책읽기’와 다름이 없었고, 당신들 부대끼는 삶을 언제나 깊이 되새기고 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몸뚱이뿐 아니라 가슴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


.. “그러나 만약 공자가 바다에 떠다니다 오랑캐 족이 사는 곳에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의 법을 써서 오랑캐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나라 도를 국외에 일으켰을 것이다. 따라서 안과 밖이라는 구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에 있어서도 자연히 중국이 아니라 마땅히 국외에 춘추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 된 까닭이다.” ..  (165쪽)


 사람한테는 책 한 권으로 넉넉할 수 있습니다. 책 한 권 없어도 넉넉할 수 있습니다. 책 만 권이 아닌 십만 권이나 백만 권이 있어도 턱없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수백만 권이 이르는 책이 있다고 하여, 그 하버드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책에 담긴 알짜’를 잘 삭여서 펼치면서 살아가고 있던가요. 미국이나 일본 대학교하고 견주면 너무 우스운 숫자이지만, 그래도 나라안 으뜸가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수많은 책이 있다고 하여, 이 서울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책이 말하는 슬기와 깨달음’을 고이 곱새기고 받아먹으면서 이웃하고 즐겁게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요.

 이웃사랑을 하는 똑똑이는 몇이나 되는지요. 이웃나눔을 하는 부자는 얼마나 되는지요. 이웃믿음으로 어깨동무하는 권력자는 이 땅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 본 적이 있는지요.





 (2) 옛책 《의산문답》과 오늘날 책


.. 기존의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다른 만물보다 더 지혜로운 존재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엄연한 서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본 낙론의 입장에 선 학자들은 사람만이 귀한 것이 아니므로, 자연히 동식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에도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 즉,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분이나 내세우며 글이나 읽는 당시 양반들을 비판하고, 신분에 따라 직업을 한정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  (52, 55쪽-붙임말)


 옛책 《의산문답》이 지난 2006년에 새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무척 보기 좋은 판짜임에, 알맞는 글자크기에, 우리 역사나 문화를 거의 돌아보지 않는 오늘날 흐름을 살피면서 꼼꼼하게 넣은 붙임말과 풀이말까지 해서, 아주 야무지고 단단하게 엮어냈습니다. 우리 옛책이 이만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튼튼하고 쏠쏠하게 묶어냈습니다.

 꼭 ‘양장’으로 묶어내어야 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판을 크게 키우고 글자도 더 키우고 해야 ‘옛 어른 뜻을 높이는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의산문답》을 펴낸 출판사 분들은, 홍대용 님이 이 책을 펴낸 그 옛날, 무슨 생각과 마음과 얼과 넋이었는가를 깊이깊이 곱씹고 되새겼음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책이 있습니다’ 하고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구나 싶어서 반갑습니다. 조선시대 실학자를 들먹일 때 늘 정약용과 박지원만 울궈먹고 있던 우리 문화 눈높이를 돌아보아도(정약용 님과 박지원 님 책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똑같은 알맹이를 놓고 아무런 ‘새 풀이’ 없이 되풀이하는 모습은 자원낭비라는 소리입니다), 드디어 홍대용 님 삶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살피고 껴안을 수 있도록 선물 하나 내어주었으니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 그러나 비록 당대에 그의 뜻을 실현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세상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박지원ㆍ이덕무ㆍ유득공ㆍ박제가 등의 실학자들과 뜻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알렸던 것이다 ..  (78쪽-붙임말)


 그런데 홍대용 님 이 책은 얼마나 사랑을 받거나 눈길을 받으면서 읽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너도 나도 ‘우리 출판사 목록에 정약용이나 박지원 책 하나 집어넣으면 잘 팔릴 테지!’ 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열하일기 하나 붙잡고 늘어져도 책장사 잘 되는’ 이 나라에서, 《의산문답》이 1700년대에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를 곱씹고 2000년대에 새로 읽을 만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어낼 손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 그런데 조선의 정치상황을 보면, 정부의 기득권층은 진실로 민생을 위한 현실 개혁정책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보는 홍대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113쪽-붙임말)


 우리 세상이 돈이 아닌 삶을 볼 줄 안다면야, 《열하일기》도 읽히고 《의산문답》도 읽히리라 봅니다. 《의산문답》뿐 아니라 《을병연행록》도 읽힐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박지원과 홍대용에 그치지 않고, 역사책에 이름 석 자로만 남은 숱한 옛 어른들 발자취를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우리가 서로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믿고 돕고 사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워드 진도 훌륭하지만 박지원도 훌륭합니다. 노암 촘스키도 훌륭하지만 홍대용도 훌륭합니다. 며칠 앞서, 우리 나라 국방부에서 ‘불온도서 스물세 가지­’를 몸소 뽑아서 밝혔는데, 이 스물세 가지에는 ‘노암 촘스키’ 책이 둘이나 끼워져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국방부 관계자께서 홍대용 님 책을 읽어 보셨다면, “아니 1700년대 이때부터 ‘반정부 사상’을 외치고 있었다니!” 하면서, ‘반정부 불온도서’로 이 《의산문답》 하나를 끼워 놓고 촘스키 님 책 하나는 덜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341.8.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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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님의 "서재가 사랑할 만하다"

늘 똑같은 '유명인사'만 우려먹는 책은 꽤 신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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