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하고

 


구름이 멧봉우리
포근히 감싸고
멧봉우리가 구름
살며시 안아
실비 뿌립니다.

 

논에서 김 오릅니다.
밭에서 풀 돋습니다.
나무에 싹 나옵니다.

 

바다빛이 하늘빛과 만나고
흙빛이 손빛과 만나며
햇빛이 눈빛과 만납니다.

 

흙을 만지고
흙과 놀아
흙하고 살아요.

 


4346.2.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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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 어른과 어린이
― 고흥 녹동초 선생님들한테 들려줄 ‘한국말 강좌’ 인사말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어른을 가리켜 ‘교사’라 하고, 아이들은 이 어른을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교사 자리에 선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생’이라 부릅니다. 서로 이름표로는 ‘교사·선생님’과 ‘학생’입니다만, 학교 울타리 바깥에 서면 모두 ‘어른·어버이’요 ‘어린이’입니다.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도 서로 어른이자 어린이일 테고, 어버이요 아이일 테지요.


  오직 ‘교사’라고만 여긴다면, 학교에서 학생한테 교과서에 담긴 지식과 정보만 잘 알려주고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나, 교사이기에 앞서 ‘어른’이고, 교사이면서 ‘어버이’ 삶을 짓는 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학교에서 마주하는 어린이, 아이 앞에서 어떤 말과 마음과 사랑 될 때에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누구나 스스로 깨우치리라 느낍니다.


  고흥은 시골입니다. 고흥에서 도양읍은 시골마을입니다. 시골인 고흥에서도 공무원으로 일한다거나 가게를 꾸리는 분 있어, 도시하고 똑같은 일자리를 붙잡아 도시하고 똑같은 달삯 받는 분 있을 테지만, 시골인 고흥이기에, 흙과 물을 만지면서 삶을 짓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곧, 고흥에서 교사 자리에 서는 어른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하고 마주하는 어른입니다. 고흥에서 나고 자라 교사가 되었건,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라 교사가 되었건, 또는 다른 도시에서 나고 자라 교사 되어 고흥으로 왔건, 모두 ‘시골마을 시골아이’ 마주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고흥 도양읍 녹동초등학교 어른이자 어버이요 교사인 분들은 이곳에서 누리는 삶을 어떻게 짓고 아이들 앞에서 어떤 ‘어른 삶’과 ‘어버이 삶’을 교실 안팎에서 보여줄 때에 아름다울까요.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이 아주 많은 고흥인 만큼, 고흥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도시에서 앞으로 지낼 나날을 살피는 지식과 정보를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도시로 떠나 살아갈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고향마을 고흥 넋과 숨결 곱다시 품에 안으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북돋울 이야기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둘 모두 나란히 배워야 할 수 있겠지요.


  포두면에서 택시를 모는 어느 어르신은 당신 어릴 적에, 포두국민학교에서 금탑사까지 걸어서 오가는 봄나들이 늘 했다고 해요. 국민학생들이 하루 네 시간 걸어서 금탑사까지 오갔다고 합니다. 예순 넘고 일흔 가까이 되는데, 국민학교에서 배우고 들은 다른 어느 것보다 이 얘기를 오래도록 떠올리고 들려줍니다. 녹동초등학교 아이들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삶을 배우고 보고 듣고 겪고 마주하면서 자랄까요. 이곳을 다닌 아이들은 앞으로 스무 해나 마흔 해쯤 지나고 예순 해쯤 더 보낸 앞날에 어떤 이야기 되새기면서 삶을 지을까요.


  삶을 돌아볼 때에 말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어느 곳에 선 사람인가를 되새길 때에 내가 쓰는 말글이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르거나 곱거나 참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우리 말글 바로쓰기’ 책을 읽는대서 우리 말글을 바르게 쓰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글쓰기 길잡이’ 책을 읽었기에 글쓰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먼저, 스스로 삶을 즐겁게 바로세울 때에 말과 글을 슬기롭게 다스립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누리는 길 씩씩하게 걸어갈 때에 글쓰기이든 사진찍기이든 그림그리기이든 노래하기이든 춤추기이든 신나고 해맑게 빛냅니다. 녹동초등학교 교사 자리라 하는, 참 아름답고 멋스러운 일을 하면서, 시골아이 마주하는 분들 모두 어여쁜 꿈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4.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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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긴 빨래

 


  잠을 자는 방을 치우며 쓸고 닦다가 큰아이가 숨긴 빨래 두 점 본다. 큰아이가 마당에서 흙놀이 개구지게 한 다음 슬쩍 벗어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듯하다. 큰아이로서는 숨길 마음은 없었을 터이나, 흙옷 벗고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벗은 옷을 잊었지 싶다.


  구석퉁이에서 며칠쯤 묵었을까. 흙자국 손으로 복복 문지르고 비비지만 흙기운 잘 안 빠진다. 하는 수 없지. 오늘 빨고 다음에 더 빨 때에 흙내 가시라 하지 뭐. 날이면 날마다 흙하고 뒹굴며 노는데 흙무늬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머스마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는 나와 형이 ‘숨긴 빨래’를 얼마나 자주 많이 오래도록 빨면서 하루를 보내셨을까 돌아본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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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에

 


  시골은 저녁 일고여덟 시 되어도 이내 군내버스 끊어진다. 아니, 일고여덟 시 되면 읍내나 면내 가게는 하나둘 문을 닫는다. 아니, 일고여덟 시 되면 웬만한 가게는 모두 문을 닫고, 길바닥에 좌판 펼치는 아지매와 할매는 거의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택시를 부른다. 읍내부터 우리 마을 어귀까지 달린다. 새까만 밤하늘 바라본다. 캄캄한 밤길 숲과 들을 바라본다. 택시 창문 스르르 내린다. 낮은 지붕 작은 마을 위로 별빛 반짝반짝 환하다. 시골에는 가로등이라는 전깃불 없어도 되는걸. 별빛이 얼마나 밝고 달빛이 얼마나 환한데. 시골사람은 등불 하나 없어도 밤길 잘 걷는데. 시골마을은 굳이 불 밝힐 까닭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하루를 맑게 일구는데.


  택시가 돌아간다. 가방을 질끈 짊어지고 논둑길 걷는다. 개구리 노랫소리 가뭇가뭇 듣는다. 이틀 밤 부산에서 지내고 사흘만에 돌아오니, 그새 개구리 많이 깨어났구나. 이제 하루가 다르게 개구리들 더 깨어나고 더 밤노래 들려주리라. 머잖아 밤이고 낮이고 아침이고 개구리 모둠노래로 온 마을과 들과 숲 빛나리라.


  땅에서는 개구리 노래한다. 나무에서는 멧새 노래한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 마룻바닥 콩콩 뛰며 노래한다. 얘들아, 너희 아버지 별밤에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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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2:31   좋아요 0 | URL
별밤에 가방을 짊어지고 개구리 노랫소릴 들으며
아이들이 마룻바닥 콩콩 뛰며 노래하는 집으로..논둑길 걸으며 돌아가시는
아버지, 함께살기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낮은 지붕 작은 마을 위의 반짝반짝,하는 밤하늘도 보이구요..

숲노래 2013-04-25 12:34   좋아요 0 | URL
그 그림을 언제나 appletreeje 님 보금자리에서도
환하게 그려 보셔요~~~
 

신현림 사진책

 


  그림을 그리려다가 시를 쓰고, 시를 쓰다가 사진을 배우다가는, 사진을 찍으며 시를 쓰는 신현림 님 시집을 읽고 사진책을 읽으며 산문책을 읽는다. 문득 생각한다. 신현림 님은 이녁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그림과 글과 사진을 생각하는데, 신현림 님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는 이 그림과 글과 사진을 얼마나 사랑하면서 종이에 앉혔을까. 《사과밭 사진관》 펴낸 책마을 일꾼은 사과밭에서 사과꽃 바라보며 사과내음 마셨을까. 《빵은 유쾌하다》 펴낸 책마을 일꾼은 바닷가에서 바닷바람 쐬며 바닷바람 마시다가는 들판에서 들볕 쬐고 들풀 뜯어 먹으면서 신현림 님 글과 사진을 마주했을까. 글 쓰는 사람하고 함께 들마실 즐기면서 책 엮을 만큼 느긋하며 넉넉한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늘어나면 좋겠다. 사진 찍는 사람이랑 같이 숲마실 즐기면서 책 빚을 만큼 한갓지며 아름다운 삶 누리는 책마을 일꾼 태어나면 좋겠다. 종이로 묶어 인쇄하고 제본해서 새책방 책시렁에 꽂아야 ‘책’이라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삶을 수수한 손길로 살가이 쓰다듬을 때에 바야흐로 샘물 같은 이야기 흐르고 새봄 같은 이야기 자란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http://blog.aladin.co.kr/hbooks/5204987

(사진책 <사과밭 사진관> 느낌글. 편집이 퍽 아쉽다고 느낀 책이다. 그래서 별점이 셋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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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25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과 더불어 <빵은 유쾌하다>를 즐겁게 읽었어요.
그런데 <사과밭 사진관>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고, 책 제목도 좋았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넘기다 보니 왠지..뭔가 아쉬워서 그냥 나온 기억이 납니다.
정말 편집도 많은 영향을 지니는 듯 해요.

숲노래 2013-04-26 07:08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
사진책뿐 아니라... 시집도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읽는 맛이 확 달라지곤 해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빚을 때에는
편집과 디자인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