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8) 변신의 1 : 변신의 시간

 

“변신의 시간이니?”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키르스텐 보이에/박양규 옮김-아빠는 전업 주부》(비룡소,2003) 52쪽

 

  같은 한자말 가운데에도 일본 한자말과 한국 한자말이 있습니다. ‘가족(家族)’이 일본 한자말이라면, ‘식구(食口)’가 한국 한자말입니다. ‘현관(玄關)’은 일본 한자말이고, ‘문간(門間)’이 한국 한자말이에요. 어차피 한자말이니 어느 쪽을 쓰든 달라질 없다 여길 수 있고, 영국사람과 미국사람이 ‘같은 영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영어를 쓰듯, 한국사람도 한국 삶자락과 알맞도록 찬찬히 가다듬을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현관문을 열고”보다는 “대문을 열고”라든지 “문을 열고”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변신(變身)’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 뜻은 “몸의 모양이나 태도 따위를 바꿈”입니다. 한국말로 쉽게 풀어내자면 ‘바꿈’이거나 ‘몸바꿈’이거나 ‘모습 바꿈’입니다.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스스럼없이 쓸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 같은 한자말 굳이 안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말 없이 말삶 곱게 일구는 사람이 있고, 이러한 한자말에서 홀가분하게 풀려나며 말밭 넓고 깊게 돌보는 사람이 있어요.

 

 변신의 시간이니
→ 변신하는 시간이니
→ 바뀌는 시간이니
→ 확 달라지는구나
→ 확 달라졌는걸
→ 새 사람이 되었네
 …

 

  한자말 쓰느냐 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자말 ‘변신’을 쓰더라도 말틀 잘 가누면 됩니다. 곧, “변신의 시간” 아닌 “변신하는 시간”이나 “변신 시간”처럼 적으면 돼요. 말넋 고이 추스르지 못하면서 토씨 ‘-의’까지 붙이면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바뀌는 모습이니 “확 바뀌었구나?”처럼 손보면 됩니다. “딴 사람이 되었네?”라든지 “멋지게 바뀌었네?”처럼 손보아도 돼요. “못 알아보겠는걸?”이라든지 “눈부시게 달라졌네?”처럼 손볼 수 있어요. 자리와 때를 살펴 말을 합니다. 흐름과 줄거리를 돌아보며 글을 씁니다. 4346.4.2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 사람이 되었네?” 엄마는 문을 열고 나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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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팔에 안고

 


  여섯 살 큰아이와 세 살 작은아이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 팔과 어깨와 등과 가슴에 안긴 채 돌아다닌다. 두 아이는 스스로 신나게 뛰고 걷고 달리고 날고 할 적에는 어버이 품을 떠나지만, 졸립거나 힘들거나 고단하거나 잠들면 언제나 어버이 품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섯 살 큰아이 데리고 여섯 해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느낀다. 이 아이가 바깥에서 잠들어 집까지 고이 안고 들어와서 자리에 눕힐라치면, 어느새 벌떡 일어난다. 집으로 오기까지 퍽 먼 길에 일어나서 걸어 주어도 되련만, 이때에는 걷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온갖 짐을 짊어지고 든 채 아이를 안고 걷는다. 팔에 힘이 다 빠진다. 좀 쉬자, 하고 생각할 무렵 큰아이가 눈을 번쩍 뜬다.


  큰아이는 알까? 이럴 때마다 얼마나 얄미운지. 그런데 이 얄미운 짓을 벌써 여섯 해째 한다.


  일곱 살이 되어도, 여덟 살이 되어도, 아홉 살이 되거나 열 살이 되어도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줄까? 히유. 아버지 팔뚝이 무쇠 팔뚝이 되면 될까? 아버지 어깨가 무서 어깨가 되면 될까? 아버지 등짝이 무쇠 등짝이 되면 될까? 얘야. 좀 자자.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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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풀 한 포기
햇볕 있어도
햇살 밝아도
해님 잠자도
해가 올라도

 

천천히
뿌리 뻗으면서
줄기 올리고
조그마한
꽃송이 올라옵니다.

 

봄이구나
여름이네
가을이었네
겨울이잖아

 

풀은
숲을 살립니다.

 


4346.3.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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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과 책

 


  환경을 망가뜨리는 막개발 이야기를 글로 잘 풀어내거나 다루어도, 사람들 스스로 생각힘 없다면, 막개발이 얼마나 끔찍하거나 어마어마한 줄 느끼지 못한다. 생태를 뒤흔드는 유전자조작 이야기를 사진으로 잘 보여주거나 밝혀도, 사람들 스스로 마음밭 사랑씨앗 없으면, 유전자조작 때문에 우리 삶이 어떻게 뒤흔들리며 아픈가를 느끼지 못한다.


  시화호나 새만금 생채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어야 갯벌을 함부로 메우는 짓이 얼마나 못난 바보짓인가를 깨닫는 일이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시화호나 새만금을 다 메우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하면, 그때까지 망가뜨린 삶터를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할까.


  사람들이 전기를 쓴다. 도시사람도 시골사람도 전기를 쓴다. 그런데, 시골사람은 전기 없어도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으나, 도시사람은 전기 없으면 그만 모든 삶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끊어진다. 전기 없으면 은행도 문을 닫으니, 돈을 뽑거나 찾거나 쓸 수도 없다. 전기도 돈도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어디로 움직이지도 못하리라. 전기도 돈도 없는데 40층이나 50층 아파트에서 지내는 사람은 어떻게 1층까지 내려가려나. 아니, 내려간다 한들 어떻게 다시 올라가려나. 전기도 돈도 없는 도시에서 한겨울에 20층이나 30층 아파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골 논자락 한복판에 선 송전탑을 바라본다. 도시에서도 이런 짓 저지를 수 있을까. 도시에서도 아파트 한복판이나 학교 운동장 한복판에 송전탑 버젓이 세울 수 있을까. 도시에 있는 공원 한복판에 송전탑 박을 수 있는가. 도시에 있는 주택가 한복판에, 골목동네 한복판에, 이런 어마어마한 송전탑 박는 일 생길 수 있는가.

 

  그러나, 시골이라 해서 이렇게 송전탑 아무 데나 척척 때려박는다. 숲속에도 박고 논자락에도 박으며, 살림집 옆에까지 박는다. 한국전력 공무원들은 그저 ‘지도에 그린 대로’ 송전탑을 쑤셔박는다.


  사람들은 송전탑 어떻게 서는 줄 느낄까. 책에 이런 이야기 실린다 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할까. 나 같은 사람이 사진으로 찍어서 알려주면 ‘전기를 쓰는 삶’이 이웃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기도 하는 줄 조금이라도 살필 수 있을까. ‘밀양 송전탑’ 실타래는 아직 풀리지 않는다. 밀양 송전탑 아닌 ‘서울 송전탑’이나 ‘부산 송전탑’이라 한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 힘들게 하는 일이란 없었으리라 느낀다. 사람들은 ‘서울 일’ 아니면 모르쇠요, 머리로 지식을 넣을 뿐이기 일쑤이다. 참말, 책을 읽어 뭐 하나. 참말, 책을 말해 뭐 하나.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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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과 책읽기

 


  아이들 벗어 놓은 신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개구지게 노느라 신을 발에서 탁탁 털며 통통통 뛰어다니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저희 예쁜 신을 정갈하게 두고는 놀러다니기도 한다. 어버이가 바쁘다 하면서 신을 아무렇게나 휙휙 던지면, 아이들도 이 모양새 고스란히 배운다. 어버이가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신을 정갈하게 두면, 아이들도 이 매무새 하나하나 물려받는다.


  어버이가 책을 곱게 쥐어 읽으면, 아이들도 손에 책을 곱게 쥐어 읽는다. 어버이가 호미질 슬기롭게 할 줄 알면, 아이들도 호미질 슬기롭게 할 줄 안다. 어버이가 밥을 즐겁게 노래부르면서 차리면, 아이들도 밥을 차리는 마음가짐을 가만히 이어받는다.


  독서교육과 조기교육도, 또 글쓰기교육이니 무슨무슨 교육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삶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배움과 가르침이 있을까. 4346.4.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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