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선생님이 들려 주는 김구 산하인물이야기
이원수 글, 허구 그림 / 산하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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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넋 2024.4.27.

읽었습니다 318



  예부터 어른은 아이한테 이야기로 삶을 들려주고, 살림을 일깨우고,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훌륭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하루를 짓는 어진 사람이 나오고, 스스로 사랑을 꽃피우는 어른이 나오며, 스스로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일구는 숨결이 나올 뿐입니다. 《이원수 선생님이 들려 주는 김구》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언뜻 보면 ‘위인전’이되, 가만히 보면 ‘작은이’ 이야기입니다. 대단하거나 놀라운 일을 한 분이라기보다는, 우리 곁에서 누구나 이처럼 ‘사랑’을 나라에도 쏟거나 마을에도 기울이거나 보금자리에도 펼 수 있다는 길을 보여준다고 느껴요. 집안에서 아늑하면서 아름다울 적에 마을에서도 알차고 빛납니다. 나라사랑만 할 수 없어요. ‘나사랑’에서 ‘너사랑’으로 잇고, ‘우리사랑’을 바라볼 줄 알기에, ‘누리사랑’으로 피어납니다. 누구나 사랑으로 일어나는 사랑누리를 그립니다.


ㅅㄴㄹ


《이원수 선생님이 들려 주는 김구》(이원수, 산하, 2002.8.23.)



길마를 머리에 이고 지붕 위에서

→ 길마를 머리에 이고 지붕에서

9쪽


상놈만도 못한 행실을 하는 어른이라고

→ 막놈만도 못한 짓을 하는 어른이라고

→ 만무방보다 못한 어른이라고

39


해주에서 과거를 보인다는 방(공고문)이 나붙었습니다

→ 해주에서 물음풀이를 보인다는 글이 나붙었습니다

→ 해주에서 글겨룸을 보인다는 알림이 나붙었습니다

48


글씨를 쓴 종이 위에 또 글씨를 썼습니다

→ 글씨를 쓴 종이에 또 글씨를 썼습니다

50쪽


객사(여관)에 들 형편이 못 되는

→ 길손채에 들 살림이 못 되는

51


창수의 뒤에는 우리 2천만 동포가 있습니다

→ 창수 뒤에는 우리 한겨레가 있습니다

81


아드님의 호령이 얼마나 당당하던지

→ 아드님 목소리가 얼마나 당차던지

→ 아드님이 얼마나 힘차게 외치던지

8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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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시대 창비시선 495
장이지 지음 / 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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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4.27.

노래책시렁 419


《편지의 시대》

 장이지

 창비

 2023.12.22.



  손으로 밥을 지어서, 손으로 수저를 쥐고서 먹습니다. 손으로 씨앗을 심고서, 손으로 호미나 낫을 쥐고서 거두거나 캡니다. 손으로 아이를 씻기고 돌보노라면, 어느새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손을 맞잡고서 거닐다가, 어느새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저만치 앞서 달려갑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손수 짓는 살림을 말로 담았습니다. 말을 담는 그림은 글이 태어난 뒤에도 아주 오래도록 손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이제는 손으로 글을 쓰거나 적는 일이 확 줄었는데, 어떻게 옮기는 글이어도 ‘마음을 담은 글’일 적에라야 비로소 마음이 만나거나 흐릅니다. 《편지의 시대》는 글월과 나래꽃 사이에서 오간 마음을 적는 듯싶습니다만, 어쩐지 “편지의 시대”라는 이름부터 일본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웬만한 자리마다 일본말에 일본빛이니 어쩔 길이 없다고 할 테지만, 조금씩 마음을 기울이면 하나씩 씻거나 털면서, 우리 이야기를 도란도란 펼 만합니다. 글월을 주고받는 ‘글월철’입니다. ‘글날’입니다. ‘글빛나날’에 ‘글길’이에요. 글을 글로 여기는 눈길일 적에 마음을 마음으로 나누는 마음길을 열어요. 억지스레 짜거나 맞추는 글로는 어떤 마음도 못 움직여요. 더 멋지거나 드문 나래꽃을 얻으려는 마음으로는, 그저 시늉이었겠지요.


ㅅㄴㄹ


누가 먼저였는지 잊었지만 편지와 함께 외국의 멋진 우표도 동봉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우표를 찾으려고 발품깨나 팔았지요 우리의 편지는 차츰 우표를 교환하기 위한 것이 되더니 어떤 일로 영영 끊어지게 되었어요 (우표수집―삼총사/65쪽)


너는 그것을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건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너에게 주려던 편지를 흐르는 강물에 버린 것을 네가 알까 (졸업/75쪽)


+


《편지의 시대》(장이지, 창비, 2023)


사랑의 취기가, 도취의 파도가 소인으로 찍히는 것을 상상하면서

→ 거나한 사랑이, 반한 물결이 쿵 찍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 비칠대는 사랑이, 기쁜 물결이 톡 찍히는 무늬를 그리면서

8쪽


은하의 실타래 위에 이미 있었네

→ 별밭 실타래에 이미 있네

→ 별숲 실타래에 이미 있네

→ 별떼 실타래에 이미 있네

12쪽


천변만화의 구름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 덩굴진 구름이 흩어졌다가

→ 물결치는 구름이 뿔뿔이 가다가

12쪽


대관람차의 형해(形骸)가 방치돼 있다

→ 큰바퀴 뼈대를 내버린다

→ 큰고리가 덩그러니 나뒹군다

→ 고리눈 부스러기가 구른다

18쪽


칠이 벗겨진 말들이 막사 안에서 선잠을 잔다

→ 겉이 벗겨진 말이 오두막에서 선잠이다

→ 옷이 벗겨진 말이 움막에서 선잠이다

18쪽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의 무늬를, 초록색의 점자를 갑충이 더듬더듬 읽는다

→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빛무늬를, 푸른글씨를 딱정벌레가 더듬더듬 읽는다

23쪽


너머에서 도시가 비의 부식(腐蝕)을 견딘다

→ 너머에서 마을이 비에 삭지 않으려 한다

→ 너머에서 서울이 비에 슬지 않으려 한다

25쪽


백지와 마주할 때 나는 역광을, 광배(光背)를 얻는다

→ 나는 흰종이와 마주할 때 뒷빛을 얻는다

→ 나는 빈종이와 마주할 때 빛살을 얻는다

25쪽


외국의 멋진 우표도 동봉하게 되었는데 진귀한 우표를 찾으려고

→ 이웃나라 멋진 나래꽃도 넣었는데 값진 나래꽃을 찾으려고

→ 옆나라 멋진 날개꽃도 담았는데 드문 날개꽃을 찾으려고

65쪽


너는 그것을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건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 너는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한 말은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 너는 몰라 너를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7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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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지음 / 정은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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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4.27.

다듬읽기 207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

 박순주

 정은문고

 2024.3.25.



  《하나의 거대한 서점, 진보초》(박순주, 정은문고, 2024)는 첫머리부터 숨막혔습니다. 일본 간다 진보초 책집거리에 무슨 ‘쾨쾨’한 냄새가 나는지 아리송합니다. 책집거리여도 책을 안 쳐다보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엄청 많습니다. 책집 둘레가 그냥 ‘살림마을’이거든요. 마을집에 마을가게가 나란히 있고, 어린배움터에 쉼터도 함께 있습니다. 책집거리 앞은 바로 큰길입니다. 쾨쾨하거나 눅진 바람은커녕, 봄에는 벚꽃냄새와 여느 철에도 나무내음이 퍼지는 곳에 책집거리가 있을 뿐입니다. 책집지기를 만나서 얘기를 듣는 얼거리가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다 다른 책집에 하나하나 모두 들러서 ‘우리 스스로 책집마다 어떤 책을 만나서 읽고 누리고 나눌 만한가’를 들려줄 일이라고 봅니다. 만화책만 다루거나, 바둑책만 다루거나, 이탈리아책만 다루거나, 사진책만 다루거나, AV만 다루거나, 온갖 책을 다루는 숱한 책집이 마을을 이룬 진보초입니다. 겉훑기로는 책빛을 못 읽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왔을 때가 기억난다. 오래된 습한 공기에 섞인 쾨쾨한 종이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 아직도 생생하다

→ 진보초 헌책집거리를 왔을 때가 떠오른다. 오래된 눅진 바람에 섞인 쾨쾨한 종이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 아직도 생생하다

11쪽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임을 후각에서부터 상기시키는 그 특별한 냄새 말이다

→ 그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이라고 코로 느끼라는 유난한 냄새 말이다

→ 우리 어림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이라고 냄새로 알려준다

11쪽


생기를 되찾으며 하루하루 변화하고 있다

→ 기운을 되찾으며 하루하루 거듭난다

→ 다시 반짝이며 하루하루 나아간다

12쪽


그 꿈을 실현시켜 주는 곳이다

→ 이 꿈을 이루는 곳이다

→ 꿈을 펴는 곳이다

21쪽


노란 눈의 고양이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 노란눈 고양이가 이쪽을 쳐다본다

→ 눈이 노란 고양이가 이쪽을 본다

51쪽


누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 누가 꿈꾸었을까

71쪽


도쿄로 올라와

→ 도쿄로 와

→ 도쿄로 가

91쪽


큰 축제가 두 개 열린다

→ 큰잔치를 둘 연다

→ 큰마당을 둘 편다

317쪽


이벤트를 기획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재창조하는 공간이 부부가 꿈꾸는 서점이다

→ 두 사람이 모임을 꾀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짓는 꿈을 펴는 책집이다

→ 둘이서 새롭게 일을 꾸리고 이야기를 짓는 꿈을 나누는 책터이다

333쪽


무슨 책으로 꾸밀지 지휘하고 손님과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취할지 조율하는 일도

→ 무슨 책으로 꾸밀지 이끌고 손님과 어떻게 만날지 가다듬는 일도

→ 무슨 책으로 꾸밀지 다스리고 손님과 어떻게 어울릴지 살피는 일도

→ 무슨 책으로 꾸밀지 거느리고 손님과 어떻게 얘기할지 맞추는 일도

334쪽


레트로한 분위기에 반해 젊은이들을 비롯해 남녀노소가 찾아온다

→ 예스런 결에 반해 젊은이를 비롯해 누구나 찾아온다

→ 옛멋에 반해 젊은이를 비롯해 두루 찾아온다

→ 오래빛에 반해 젊은이를 비롯해 고루 찾아온다

337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마을이지

→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야말로 꿈마을이지

3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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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4.26. 쓰는 손은 하나여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꿈은 문득 그려서 품습니다. 몸을 잊고서 마음을 읽는 어느 때에 가만히 씨앗을 스스로 빚어서 온넋으로 바라볼 적에 꿈이 깨어나서 천천히 싹틉니다. 오늘 하는 숱한 놀이나 일이나 살림은, 모두 누구나 예전에 스스로 그린 꿈씨입니다. 잘하거나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겪으면서 배우는 일입니다. 훌륭하거나 못난 일이 아닙니다. 맞아들여서 생각하고 살피면서 배우는 일입니다.


  넉벌손질(4교)을 하는 《말밑 꾸러미》입니다. ‘우리말 어원사전’을 손수 쓰고 여밀 수 있으리라고는 어림조차 못 했지만, 꿈씨는 진작에 심었습니다. 1992년에 《민중서관 이희승 콘사이스 국어사전》을 두 벌째 다 읽고서 “이 따위로 엮는 엉터리가 우리나라 국어사전이라면, 내 손으로 제대로 엮고 말겠어.”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책상을 쾅 내리쳤습니다. 한창 ‘자율학습’이라면서 잿집(시멘트 덩어리 교실)에 갇힌 어느 날 저녁 아홉 시 무렵이었어요.


  그런데 이 꿈씨는 이날 바로 잊었습니다. 심기는 했되 잊었지요. 이태 뒤인 1994년에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들어갔고, 네덜란드말을 익혀서 옮김빛(통·번역)이라는 길을 가려 했지만, 네덜란드 낱말책조차 없는 곳이 ‘대학교’라는 허울뿐인 줄 느끼고서, 이 따위 대학교도 그만두어야겠구나 싶었고, 이듬해에 바로 싸움터(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돈·이름·힘이 없는 여린 사내는 어쩔 길 없이 언제라도 끌려가야 한다면, 제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여겼어요.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구르면서, ‘군의문사’와 ‘군대폭력’과 ‘군납비리’를 뼛골로 지켜보았고, 다시 대학교에서 열두 달을 보내면서 ‘운동권 문제’를 곁에서 보고는 너무 신물났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날마다 몇 군데 헌책집으로 책읽기를 다녔어요. 주머니에 오천 원을 넣고서, “오천 원어치 책”을 날마다 사되, 돈이 안 되어 못 사는 책은 서서읽기를 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앉은 적이 없습니다. 책값을 치르지도 못 하면서 앉을 수 없다고 여겼고, 얼른 서서읽기로 하나를 끝내야 다음 책을 읽을 수 있거든요.


  이무렵에 혼자 ‘사전짓기’를 익혀 가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는 우리말을 다루는 어원사전도 없지? 국어학자란 놈들은 다 뭐 하나?” 싶었어요. 고등학생 때처럼 새삼스레 “그러면 내가 써야 할까? 그런데 그냥 국어사전도 아닌 어원사전은 어떻게 써야 하지?” 하고 마음에 대고서 물었습니다.


  정부·대학교·연구소에 깃들지 않은 채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면, 더더구나 낱말책을 묶자면, 밥벌이를 할 길이 까마득합니다. 이런 살림길이라서 다른 곁일을 끝없이 하는데, 곁일로도 버거운 살림은 으레 언니가 도왔고, 여러 책숲이웃(도서관 후원자)이 함께 도왔습니다.


  읽고 쓰고 새겨서, 새롭게 여미고 가다듬어서 쓰는, 이러한 낱말책짓기(사전편찬)는 한 사람이 하되, 어느 한 사람이 낱말책짓기를 하도록 돕는 숱한 사람들 마음과 손길과 숨결이 있기에, 그리고 곁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살림노래를 부르기에, 게다가 시골에서 숲빛을 늘 머금으면서 새한테서 배우고 풀꽃나무한테서 배우고 바람한테서 배우고 바다랑 하늘이랑 흙한테서 배우니, ‘쓰는 손은 하나’이되, ‘쓰는 손을 돕는 숨결은 온·즈믄·골·잘’입니다.


  셈틀로만 넉벌손질을 하다가 벅차서 펴냄터에 종이로 뽑아 주십사 하고 여쭈었습니다. 펴냄터에서는 아예 미리책(가제본)으로 꾸며서 보내줍니다. 고맙게 흐르는 마음과 손길과 이바지를 기쁘게 맞이합니다. 큰아이는 “내 통장에서 100만 원쯤 뽑아 줄까요?” 하고 묻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안 받겠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30만 원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살림돈뿐 아니라, 고흥교육청에 ‘폐교 사용료’를 목돈으로 치러야 하기에, 푼푼이 이 돈 저 돈 한창 모읍니다. 아무튼, 마무리를 짓고, 고흥교육청에 목돈을 치르고, 기지개를 켤 즈음에, ‘우리말 어원사전’을 만나려나 하고 헤아리는 봄날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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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3.26.


《고릴라를 보려면》

 최영민 글, 삐삐북스, 2021.6.15.



다시 부슬부슬 비가 뿌린다. 큰아이하고 우리 책숲에 들르고서 이웃마을까지 들길을 걷는다. 그냥 비를 맞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오늘날 시골 논둑길은 잿빛으로 덮고서 짐수레가 지나다녀서 엉망이다. 지난날 논둑길은 사람하고 소하고 짐승하고 풀벌레가 다니면서 비날에도 느긋이 다닐 만했다. 둘이서 한참 거닐면서 예전에 보내고 놀던 이야기를 한다. 저녁에 비가 그치고 별이 살짝 돋는다. 《고릴라를 보려면》을 돌아본다. 오늘날 깊이 헤아릴 대목을 차근차근 짚는다고 느낀다. 다만, 몇 가지는 못 짚는다. 첫째, 시골을 모르고 못 짚는다. 둘째, 숲과 들과 바다 곁에서 숲들바다를 살피는 눈이 없다. 셋째, 말이 너무 어렵고, 일본말씨·옮김말씨를 못 추스른다. 고릴라를 보려면, 마음으로 볼 노릇이다. 숲과 마을을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지. 말과 글도 마음으로 볼 노릇이다. 마음이 없이 섣불리 부스러기(정보·지식)로 다가서려 하니 그르치기 일쑤이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부스러기를 머리에 담고서 “이렇게 바꿔야 해요!” 하고 외치는 아이들이지 않기를 빈다. 아이들 스스로 소꿉놀이를 하면서 “나는 이렇게 하면서 하루를 사랑해요!” 하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를 빈다. 마음을 담는 말부터 씻어야 푸른별도 씻을 수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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