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삐뚤거리는 2024.4.19.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누가 옆에서 치거나 떠들거나 뭘 해도 아예 안 느껴. “마음을 기울여서 스스로 하는 일과 놀이”에 오롯이 잠기지. 마음을 안 기울이는 사람은 누가 옆으로 스치거나 낮게 속삭여도 느낄 뿐 아니라, 아무 짓을 안 하더라도 자꾸 휘둘리고 휩쓸려.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곳에서 글씨를 쓰기에 삐뚤거리지 않아. 책상맡에서 글씨를 쓰기에 반듯하지 않아. 모든 ‘글씨’는 ‘마음씨’란다. 모든 ‘말씨’도 ‘마음씨’이지. 마음을 사납게 쓰기에 말씨가 사나워. 마음을 감추면서 꾸미니까, “꾸민 말씨”가 드러나. 덜컹거리거나 흔들거리는 곳에 있든 말든 안 대수로워. 걸으면서 쓰거나, 서서 쓰더라도, 안 힘들지. “무엇을 쓴다”는 마음이기에 쓰고, “무엇을 쓴다”는 마음이 아니기에 못 쓰거나 아무렇게나 써. 어느 살림을 빚거나 다룰 적에도 같아. 스스로 ‘어떻게·얼마나·어떤’마음이 흐르는지 지켜볼 노릇이야.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쓰는 글씨”인지 헤아려 보렴. “사랑으로 짓는 밥”과 “사랑 없이 뚝딱거린 밥”은 달라. “사랑으로 지은 집”과 “사랑 잊은 채 올린 집”도 달라. 전쟁무기나 총칼에는 사랑이 없어. 꽃가루와 풀벌레노래와 둥지에는 사랑이 있지. 빗줄기와 햇볕과 바람에는 사랑이 뻗어. 겉보기로만 말끔하면 ‘겉글’인 ‘겉치레’야. 팔랑거리는 나비가 어떻게 사랑인지 바라보렴. 꼬물거리는 올챙이가 어떻게 사랑인지 살펴봐. 흐르는 구름은 어떻게 사랑일까. 새로 돋는 잎은 어떻게 사랑일는지 생각하렴. 네 손짓과 발걸음이 어떤 기운과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는지 하나씩 짚어 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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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신문기자 2024.4.20.흙.



“발로 뛰어서 그곳에 있고, 눈을 움직여 고루 보고, 손을 놀려서 모두 찾고, 마음을 움직여 나란히 서는”, 이 네 가지를 바탕으로 일하는 글빛을 밝힐 적에 ‘신문기자’라고 했어. 그러나 이 같은 신문기자는 처음부터 적었고, 차츰 줄고, 거의 안 남았다고 여길 만해. “누구나 글로 담을 수 있는 길”이 늘면서, 엉성한 글꾼은 꽤 사라졌어. 그러나, 예나 이제나 “엉성하면서도 속이고 가리고 감추어 돈·이름을 얻는 글꾼”이 꽤 많아. 이들은 끼리끼리 글담을 쳐서 글힘을 부리려 하지. 글담꾼·글힘꾼은 “사람들 누구나 눈뜨고 깨어나고 일어나는 살림길”을 안 바라. 이들은 저희 글을 “사서 읽기만 하며 끌려다닐 독자”만 바라. 참다운 글꾼이라면 다르겠지. “사든 안 사든 읽든 안 읽든 스스로 눈뜨며 깨어나기를 바라는 씨앗”을 글에 담아서, 남한테 먼저 하라고 외치기보다는, 늘 스스로 새롭게 하는 사람일 테니까. 어버이가 차리는 밥이란, 아이가 즐겁게 먹고 누리기를 바라면서, 어버이로서도 스스로 기쁘게 누리는 밥이야. 함께 먹고 누릴 밥을 짓는 어버이야. 함께 쓰고 읽으면서 깨어나려는 길을 밝히기에 ‘글’이지. 별은 모두한테 별이고, 해는 모두한테 해이고, 바다는 모두한테 바다야. 나무가 몇몇한테만 나무일 수 없어. 비가 몇몇한테만 비이지 않겠지. 풀벌레가 모두한테 풀노래를 베푸는데, 귀를 안 기울이는 이들한테도 풀노래로 다가선단다. 아침마다 뜨는 해는 조금씩 흘러서 이웃한테 찾아가서 고르게 비추지. 살림도 글도 ‘해’ 같은 마음과 몸짓이기에 밝고 아름답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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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동네서점·동네책방



 동네서점이 동네문화에 미치는 영향 → 마을책집이 마을살림에 미치는 바람

 동네서점을 지역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킨다 → 고을책숲을 고을쉼터로 바꾼다

 편안한 느낌의 동네책방이다 → 아늑한 작은책밭이다

 동네책방과 협업하여 → 들꽃책터와 함께


동네서점 : x

동네책방 : x

동네(洞-) :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洞內)

서점(書店) :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 ≒ 서관·서림·서사·서포·책방·책사·책전·책점

책방(冊房) :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 = 서점



  마을에 여는 책집이 있습니다. 마을은 커다란 곳이 아니니, 작게 꾸리는 책터입니다. 고을마다 다 다른 빛살로 책밭이 태어납니다. 매캐하고 시끄러운 큰고장 한켠에 들어서는 책가게란 마치 들꽃 같습니다. 이런 여러 얼거리와 빛살을 헤아려, ‘작은책숲·작은책밭·작은책터’나 ‘작은책집·작은책가게’라 할 만합니다. ‘고을책숲·고을책밭·고을책터’나 ‘고을책집·고을책가게’이라 할 만하고, ‘들꽃책숲·들꽃책밭·들꽃책터’나 ‘들꽃책집·들꽃책가게’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수수하게 ‘마을책숲·마을책밭·마을책터’나 ‘마을책집·마을책가게’라 할 수 있어요. ㅅㄴㄹ



동네서점에서는 북토크 형식으로 많이 진행되고 단골 고객들이 많이 참여하므로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 작은책집에서는 책수다로 꾸리고 단골이 많이 함께하므로 거의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 작은책숲에서는 책마당으로 열고 단골이 많이 함께하니 으레 도란도란 좋다

→ 작은책밭에서는 책잔치로 하고 단골이 많이 함께하니 참 포근하다

→ 작은책터에서는 책뜨락을 차리고 단골이 많이 함께하니 늘 따스한 자리이다

《책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김건숙, 바이북스, 2017) 64쪽


사람들이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싸게 사면 동네책방은 사라진다

→ 사람들이 누리책집에서 책을 싸게 사면 고을책집은 사라진다

→ 사람들이 누리책집에서 책을 싸게 사면 들꽃책집은 사라진다

《책방 풀무질》(은종복, 한티재, 2018) 174쪽


동네책방이 필요한 독자는 대략 두 가지 유형으로 거칠게 나누어 볼 수 있다

→ 들꽃책숲을 바라는 사람은 얼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마을책숲을 오가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동네책방 생존 탐구》(한미화, 혜화1117, 2020) 33쪽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은 차치하고 후발주자로서 다른 동네서점보다 경쟁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큰책집이나 누리책집은 둘째치고 뒷내기로서 다른 마을책집보다 잘하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 큰책집이나 누리책집은 모르겠고 뒤늦게 다른 마을책집보다 잘하기는 안 쉬울 듯했다

《꽃서점 1일차입니다》(권희진, 행성B, 2021) 24쪽


따라서 그만한 반대급부를 동네책방에서 제공해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 따라서 그만큼 마을책집이 돌려주어야 맞다고 생각을 한다

→ 따라서 그만큼 마을책집이 갚아야 맞다고 생각한다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 116쪽


쿠폰을 무료로 나눠 주면서 동네책방에서 참고서와 만화책을 제외한 책을 사게 하고

→ 덤종이를 그냥 나눠 주면서 작은책집에서 도움책과 만화책을 빼고 사라 하고

→ 꽃종이를 거저 나눠 주면서 고을책집에서 곁배움책과 만화책 말고 사라 하고

《버티고 있습니다》(신현훈, 책과이음, 2022)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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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나는 제비 (2024.4.23.)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고흥버스나루에는 제비집이 여럿 있습니다. 해마다 숱한 제비가 이곳으로 돌아와서 둥지를 손질해서 알을 낳고 새끼를 돌봐요. 시골이라지만 버스가 꾸준히 드나드는데, 제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가볍게 날갯짓입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누가 제비집을 모두 헐었습니다. 꼬박꼬박 찾아와서 노래를 베푸는 제비를 시골아이한테 물려줄 마음이 아닌, 제비똥이 싫다거나 ‘감시카메라’에 집을 지어서 성가시다는 꼰대라고 하겠습니다.


  고흥 곳곳을 보면, ‘감시카메라’에 꽤 둥지를 틀어요. 왜 그곳일까 하고 갸웃해 보면, ‘처마’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은 ‘감시카메라’가 마치 처마 같아요.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아홉길(9호선)로 갈아탑니다. 양천향교나루에서 내려 해바라기를 하려니 제비 둘이 휙 날아갑니다. 올해에도 서울제비를 봅니다. 서울에도 제비가 돌아오는데, 아마 모르는 분이 훨씬 많겠지요.


  서울제비가 궁금하다면 〈나무 곁에 서서〉를 찾아갈 일입니다. 이곳에서 책 두엇쯤 장만하고서 “그런데, 제비가 어디 있나요? 알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쭤 보셔요. 매캐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서울 한복판이어도, 곳곳에 들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면서 애벌레가 잎을 갉고서 나비로 깨어납니다. 하늘이 뿌연 서울에도 거미가 살고, 제비는 예전에 대면 퍽 버거울 만하지만 “아직 서울을 버릴 수 없다구!” 하는 마음으로 씩씩합니다.


  서울로 오는 길에 《서리북》이라는 책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책을 엮고 쓴 분들은 ‘낡은 책글(서평)을 넘겠다’고 외치지만, 막상 《서리북》에 실린 글을 읽자면 “또다른 고인물로 또다른 글담을 세우는 굴레”인 듯싶더군요. 왜 ‘느낌글’이 아닌 ‘리뷰’를 쓰나요? 왜 ‘책’이 아닌 ‘북’을 쥐나요? 어린이와 푸름이가 다가설 만한 말결로 다독이는 글을 쓰기가 그토록 어려울까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살피기가 그처럼 힘들까요?


  ‘교수·비평가’란 이름이 나쁘지는 않지만, 글담(문자권력)에 갇힙니다. 오늘 마실하는 〈나무 곁에 서서〉는 “수수한 아줌마와 살림꾼이라는 눈으로 책을 살피고 풀꽃과 숲과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여민다고 느낍니다. 아줌마는 아줌마로서, 아저씨는 아저씨로서, 젊은이는 젊은이로서, 할매 할배는 할매 할배로서, 저마다 다르면서 나란한 마음으로 어깨동무할 적에, 책도 마을도 살림도 가꾸는 빛씨를 심을 만하리라 봅니다. 이제는 서울과 시골이 손을 맞잡고서 함께 새길을 찾는 이야기를 일굴 노릇이라고 느껴요.


ㅅㄴㄹ


《내가 잘하는 건 뭘까》(구스노키 시게노리 글·이시이 기요타카 그림/김보나 옮김, 북뱅크, 2020.4.10.첫/2020.6.15.2벌)

#くすのきしげのり #石井聖岳 #ぼくはなきました (나는 울었습니다)

《딸기 따러 가자》(정은귀, 마음산책, 2022.4.20.첫/2022.12.10.2벌)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데이비드 조지 해스컬/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4.4.24.)

#ThirteenWaysToSmellaTree #DavidGeorgeHaskell

《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김유이와 여섯 사람, 에픽로그, 2023.9.9.첫/2023.9.18.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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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백지 白紙


 백지에 낙서를 하다 → 흰종이에 끄적이다

 백지 답안지 → 하얀 길눈종이 / 텅 빈 종이

 음악은 백지다 → 노래는 하나도 모른다 / 노래는 깜깜하다 / 노래는 어둡다

 백지로 돌아가서 → 처음으로 돌아가서

 백지로 돌리고 싶다 → 처음으로 돌리고 싶다


  ‘백지(白紙)’는 “1. 닥나무 껍질로 만든 흰빛의 우리나라 종이. ‘흰 종이’로 순화 2. 아무것도 적지 않은 비어 있는 종이. ‘빈 종이’로 순화 3. = 백지상태 4. 어떤 대상이나 일에 대하여 이미 있었던 사실을 없는 것으로 하거나 무효화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백지상태(白紙狀態)’는 따로 사전에 올림말로 나오는데, “1. 종이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상태 2.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3. 어떠한 일을 하기 이전의 상태 4. 잡념이나 선입관 따위가 없는 상태 ≒ 백지(白紙)”를 가리킨다고 해요. 곰곰이 따진다면 ‘흰종이·빈종이’나 ‘종이·종이쪽’이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낱말책에 ‘흰종이·빈종이’가 올림말로 없어요. 얄궂습니다. 때로는 ‘처음’으로 손보면 되고, ‘깜깜하다·어둡다·캄캄하다’나 ‘거품·물거품’으로 손볼 만합니다. ‘맨끝·맨뒤·맨밑’이나 ‘밑바닥·밑자리·바닥·바닥나다’로 손보고, ‘비다·비우다·없다·없애다’로 손봐요. ‘모르다·낯설다·설다’나 ‘하얗다·파리하다·해쓱하다’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백지’가 네 가지 더 나오는데 모두 털어냅니다. ㅅㄴㄹ



백지(白子) : 바둑돌의 흰 알 ≒ 백(白)

백지(白地) : 1. 농사가 안되어 거두어들일 것이 없는 땅 2. 정해진 근거가 없는 상태

백지(白地) : 아무 턱도 없이

백지(白芷) : [한의학] 구릿대의 뿌리 ≒ 구릿대뿌리·단귀·지(芷)



하얀 백지에다 수없이 직선을 긋는다

→ 하얀종이에다 숱하게 금을 긋는다

→ 빈종이에다 반듯하게 자꾸 긋는다

《이슬처럼》(황선하, 이슬처럼, 창작과비평사, 1988) 73쪽


그것이 백지에 번지며 피어오르는 형상의 기운생동(氣韻生動)

→ 이는 흰종이에 번지며 피어오르는 힘찬 모습

→ 이는 흰종이에 번지며 피어오르는 눈부신 모습

《사람을 그리다》(최정호, 시그마북스, 2009) 591쪽


어설프게 캐서린으로서의 예비지식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백지 상태가 차라리 나은 것 아닐까

→ 어설프게 캐서린으로서 미리 알기보다는, 아무것도 없기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 어설프게 캐서린으로서 미리 꾸미기보다는, 아무것도 몰라야 차라리 낫지 않을까

《유리가면 7》(미우치 스즈에/해외단행본팀 옮김, 대원씨아이, 2010) 105쪽


머릿속이 텅 빈 백지 상태라면

→ 머릿속에 텅 비었다면

→ 머릿속에 하얀 종이 같다면

→ 머릿속에 하얗다면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현경미, 도래, 2014) 17쪽


백지 위에 손 그림자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다

→ 흰종이에 손 그림자 자꾸 춤을 추었다

→ 하얀 종이에 손 그림자 자꾸 춤을 추었다

《시》(조인선, 삼인, 2016) 78쪽


의도적으로 내 모국어인 한국어를 백지 상태에서부터 쌓아올렸다

→ 일부러 내 겨레말인 우리말을 하얗게 해 둔 채 쌓아올렸다

→ 부러 내 겨레말인 한말을 텅 비워 놓고서 쌓아올렸다

→ 내가 어릴 적부터 쓰던 한말을 일부러 밑바닥부터 쌓아올렸다

《0 이하의 날들》(김사과, 창비, 2016) 148쪽


예의 일이 백지로 돌아갔어요

→ 그때 일이 물거품이에요

→ 그때 일이 없어졌어요

→ 그때 일이 사라졌어요

《러브 인 하우스 1》(타카스카 유에/윤현 옮김, 학산문화사, 2018) 165쪽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서

→ 아무것도 없는 종이로

→ 빈종이를 펴고

→ 흰종이를 놓고

《변명과 취향》(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 92쪽


커리큘럼을 백지 상태에서부터 새롭게 짜야 한다는 점이었고

→ 배움틀을 새롭게 짜야 하고

→ 배움그림을 처음부터 짜야 하고

→ 배움길을 새로 짜야 하고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2023) 50쪽


백지와 마주할 때 나는 역광을, 광배(光背)를 얻는다

→ 나는 흰종이와 마주할 때 뒷빛을 얻는다

→ 나는 빈종이와 마주할 때 빛살을 얻는다

《편지의 시대》(장이지, 창비, 202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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