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맛 책읽기

 


  도시로 오면 먹을 수 있는 풀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랄 틈이 거의 없으니, 도시사람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 풀을 만나기 어렵다. 시골에서 비닐집을 세우고는 철없이 아무 때나 잔뜩 심어 잔뜩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만 만날 수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도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은평구에서 ‘은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강남구에서 ‘강남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있을까?


  풀맛을 볼 수 없는 도시에서는 물맛 또한 볼 수 없다. 신림동 물맛이란 없다. 교남동 물맛이란 없다. 종로 물맛이라든지 흑석동 물맛이란 없다. 두멧시골에 댐을 지어 길디긴 물관을 이어 수도물 마시는 도시에서는 모두 똑같은 화학처리를 한 물맛이 있을 뿐, 사람들 스스로 물맛을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살피는 가슴까지 잃는다. 이리하여, 서울 물맛도 부산 물맛도 없다. 인천 물맛도 순천 물맛도 없다.


  풀도 물도 싱그럽게 자라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맛 누릴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맛 일구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을 수 있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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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교실

 


  도서관에서 흘러나오는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간다. 오래도록 대출실적 없던 책을 도서관에서 버린다. 새로 사들이는 책을 꽂을 자리가 모자란 한국 도서관에서는, 오래된 책을 버릴 수밖에 없다. 한국 도서관은 ‘책이 없다’고 할 만한데, 건물 하나 맨 처음에 으리으리하게 짓기는 하지만, 정작 ‘꾸준히 사들이는 책을 정갈하게 갖출 자리’를 넉넉하게 두지 않는다. 새 건물 차곡차곡 늘리며 새로 사들이는 책을 새로 꽂는 일을 잇지 못한다.


  도서관은 꼭 커다란 건물이어야 하지 않다. 도서관은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이어도 좋다.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 한 채를 구청이나 시청에서 사들여 작은 골목집을 작은 골목도서관으로 꾸며 동네마다 여러 곳 두면 참 좋으리라. 이렇게 하면 굳이 책을 안 버려도 된다. 동네사람은 동네에서 가까이 언제라도 찾아갈 도서관을 누릴 수 있고, 여행을 다니는 길손은 골목도서관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책바다를 누릴 수 있다.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이오덕 님 책 《삶과 믿음의 교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이 책을 읽었지만, 낯익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어 살살 펼친다. 그러다가 ‘서울 간호전문대학’ 도서관에 있던 자국을 본다. 그렇구나. 대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이로구나.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뒤에 ‘빌림종이’ 붙인 채 버렸네.


  네 사람 빌려서 읽은 자국 본다. 네 사람 뒤로는 더 빌려서 읽지 않았나 보다. 빌려서 읽은 네 사람은 어떤 넋 얻었을까. 이 책을 빌려서 읽지 않은 다른 숱한 그무렵 대학생들은 어떤 넋으로 대학교에서 학문을 익혔을까. 간호전문대학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갖추었다가 버렸는데, 다른 대학교 도서관에는 이 책 있을까. 교육대학교 도서관에는 이오덕 님 《삶과 믿음의 교실》을 곱게 갖추며 오래오래 잘 건사할까. 교육과학기술부에도 도서관 있다면, 그곳 도서관에는 이 책이 오늘날에도 예쁘게 꽂힐까. 앞으로 누가 서울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 들러 이 책을 알아보고 기쁘게 손에 쥐어 읽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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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와 노는 어린이

 


  일산집에 나들이를 온 아이들이 밭뙈기에서 거름 만지고 풀잎 따면서 논다. 사름벼리가 문득 무당벌레 한 마리를 잎사귀에 붙은 채 보여준다. “여기 무당벌레야.” 그래, 무당벌레네. 그런데, 무당벌레도 밥 먹으려고 잎사귀에 붙었을 테니, 조금만 같이 놀고 밥 먹으라고 해 주렴.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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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가볍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라는 데에 찾아간다. 교보문고라는 데에서 책을 사려고 찾아가지는 않는다. 누군가 만나려고 이곳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시청역 땅밑길 걷다가 바깥으로 나온다. 무슨 큰문 앞에서 해고노동자 보듬는 모임이 있고, 전투경찰이 둘레에 쫙 깔린다. 사람들과 자동차들 북적거린다. 사람들 소리와 자동차들 소리로 귀가 따갑다. 귀와 눈을 맑게 열고 싶어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책을 읽으면서 걷는다.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간다. 동아일보사 건너편을 지나간다. 사람들 물결 옆으로 비껴서서 걷는다. 땅밑으로 다시 들어가서 교보문고에 닿는다.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 어마어마한 소리가 훅 끼친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장사도 잘 될 테고 전국에 교보문고 지점을 열 만하겠다고 느낀다. 그나저나, 이렇게 시끄럽고 복닥거리는 북새통에서 무슨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이곳에 나들이 오는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구덩이에서도 마음닦기를 하면서 책읽기에 빠져들 수 있을까. 모두들 마음닦기 하듯이 책읽기를 하려나.


  시끄러운 소리구덩이에서는 어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복닥거리는 북새통에서는 어떤 책을 눈여겨볼 수 있을까. 넘치는 사람물결 사이에서 어떤 책을 살피면서 어떤 책을 고를 만할까.


  내 어린 날 동네책방을 떠올린다. 내 젊은 날 인문사회과학책방을 떠올린다. 동네책방과 인문사회과학책방은 호젓하고 조용했다. 동네책방으로 들어서면, 바깥에서 듣던 숱한 시끌벅적한 소리가 모두 잠들었다. 차분하게 이 책 저 책 살피고, 느긋하게 내 마음 사로잡는 책을 돌아보았다.


  교보문고에서 사람을 만나 함께 밖으로 나온다. 교보문고 바깥도 시끄럽다. 서울은 온통 소리투성이로구나. 자동차 다니는 소리, 사람들 물결치는 소리, 가게에서 떠드는 소리, 건물마다 웅웅거리는 소리, ……. 바람소리는 없다. 햇볕소리도 없다. 풀소리나 꽃소리나 나무소리도 없다. 나비나 벌이나 벌레나 제비나 멧새나 개구리가 들려주는 소리도 없다. 사람들은 어떤 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책을 읽을까. 사람들은 어떤 빛깔을 바라보면서 어떤 책을 만날까.


  책이 가벼워진다. 날갯짓을 하는 나비처럼 가벼워지는 책이 아니라, 알맹이가 사라진 채 책이 가벼워진다. 사람들이 가벼워진다. 주머니에서 권력과 돈과 이름값을 내려놓아서 가벼워지는 몸이 아니라, 마음과 사랑과 꿈을 내려놓는 바람에 가벼워진다. 글이 가벼워진다. 겉치레와 껍데기와 눈가림을 훌훌 털기에 가벼운 글이 아니라, 이야기와 삶과 웃음꽃을 담지 않아 가벼운 글이다.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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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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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32

 


글에 담는 삶
― 어른의 학교
 이윤기 글
 민음사 펴냄,1999.4.10./7000원

 


  이윤기 님이 1999년에 내놓은 산문책 《어른의 학교》(민음사)를 201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장만해서 읽습니다. 이 책은 1999년에 처음 나왔지만, 나는 2013년 오늘 처음 만나니, 나로서는 ‘2013년 새 이야기’로 이 책을 읽습니다.


.. 집에서는 머리띠라는 것을 하고 지냈습니다. 근 20년 전에 광화문 육교 위에서 2백 원을 주고 산 플라스틱 머리띠는 여느 머리띠와는 다른 반달꼴 얼레빗입니다. 나는 두 손으로 이 반달꼴 얼레빗의 끄트머리를 하나씩 잡고 머리를 빗어 뒤로 넘기고는 마지막으로 정수리에다 꽂아 둡니다. 이렇게 해야 머리카락이 제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나는 가까운 나들이 때는 곧잘 이 머리띠를 꽂은 채로 나다니기도 합니다 ..  (11쪽)


  책 첫머리에 머리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윤기 님은 머리띠 이야기를 쓰기는 하지만, 이 글을 쓸 무렵에는 머리카락이 짧습니다. 머리띠 하고 다니기 번거롭다며 짧게 깎았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길면 번거롭다 싶을 때가 있겠지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짧아도 번거롭다 싶을 때가 있어요. 머리카락은 날마다 자라니, 언젠가 다시 긴머리가 되어요. 머리카락이 짧아서 가볍다 하더라도 틈틈이 머리를 깎으러 다녀야 합니다. 머리카락에 제법 긴 겨를을 내주어야 합니다.


  머리카락이 길더라도 고무줄로 묶고 머리띠로 누르거나 머리끈으로 착 조이면, 머리카락이 더 자라건 말건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아니, 머리카락이 긴지 짧은지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마음은 다른 데로 뻗어요. 머리카락이 짧더라도 틈틈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질해야 하니, 자꾸자꾸 머리카락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내 둘레 사람들은 나더러 머리카락 길어서 번거롭지 않느냐 묻곤 합니다. 나는 빙그레 웃습니다. 내 둘레 사람한테 도로 여쭙니다. “머리카락 짧아서 번거롭지 않으셔요? 머리카락 자르려고 이발소 자꾸자꾸 가셔야 하잖아요?”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깎아 보았는지 안 떠오릅니다. 나는 길을 가며 이발소나 미장원이 있어도 따로 느끼는 일 없습니다. 나는 머리집 들어갈 일 없고 생각할 일 없습니다. 나는 길을 가면서 나무가 얼마나 있고, 나무가 얼마나 큰가를 살핍니다. 길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어떤 숨결이고, 잎사귀가 얼마나 푸른지 헤아립니다. 길가 나무는 나뭇가지 안 잘리는지, 나뭇가지 잘린 나무라면 이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하고 생각합니다.


.. 농부가 흙을 걸우듯이 사람도 나날이, 자신을 걸웁니다. 사람은, 필경은 흙이 될 운명을 타고 나서 그런 것일까요 ..  (35쪽)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다닐 때에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몰거나 군내버스를 탑니다. 내 둘레 사람들은 나한테 묻습니다. 자가용 있으면 아이들 데리고 다니기에도 좋고, 먼 데까지 마실 다닐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또 빙그레 웃습니다. 그러고는 도로 여쭙니다. “자동차 있어서 오히려 멀리 못 가지 않나요? 자동차 때문에 정작 가고 싶은 데 못 가지 않나요?”


  자동차를 끌고 숲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몰면서 숲바람 쐴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탄 몸으로 숲내음 맡거나 햇살내음 마시지 못합니다. 자동차를 몰 적에는 아이들 얼굴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자동차 손잡이를 붙잡느라 아이들 손 잡을 겨를 없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사귈 마음 조금도 없습니다. 자동차하고 사귀면, 그때부터 아이들하고 놀지 못하고, 책이랑 놀지 못하며, 호미를 손에 쥘 수 없거든요. 나는 아이들하고 부대끼고 싶습니다. 나는 책을 만지고 싶습니다. 나는 흙숨을 쉬고 싶습니다.


.. 사전을 열면 말의 역사가 보입니다. 그런데도 번역가는 사전 안 펴고 어물쩍 넘어가고 싶다는 유혹과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싸워야 합니다 ..  (115쪽)


  나는 종이로 된 사전을 즐겨 씁니다. 내 곁에는 종이로 된 사전이 천 가지 즈음 있습니다. 한국말로 된 사전이 있고, 외국말로 된 사전이 있습니다. 1940년대 것부터 2000년대 것까지 골고루 있습니다. 조그마한 것 있고 커다랗거나 여러 권짜리 있어요.


  종이로 된 사전을 넘기면서 온갖 말 만납니다. 찾으려고 하는 낱말만 보지 않아요. 찾으려고 하는 낱말 둘레에 있는 숱한 말 마주합니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도 이와 같은 느낌이에요. 찾으려고 하는 책 하나만 찾거나 살피거나 장만하지 않아요. 책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책을 만집니다. 책 하나를 둘러싼 이런 책 저런 책 들추거나 넘기면서 널따란 책누리를 즐깁니다.


  사람을 만날 적에도 그렇지요. 이런 이야기 한 마디만 나누려고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조곤조곤 나누고, 저런 생각도 살근살근 주고받습니다.


  숲으로 들어가서 숲바람 쐴 때에도 그래요. 편백나무숲에 가야 하거나 삼나무숲에 깃들어야 하지 않아요. 소나무도 좋고 동백나무나 굴참나무도 좋아요. 콩배나무나 멧벚나무도 좋지요. 잣나무나 오리나무도 좋아요. 온갖 나무를 만나고, 숱한 나무를 생각합니다. 나무마다 다른 삶결과 숨결을 마십니다.


.. 받들어 모시는 대찰 주지 스님을 태연자약하게 놀려먹을 수 있는 내 길동무 스님의 세계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지요 ..  (129쪽)


  이윤기 님 산문책을 읽습니다. 이윤기 님이 살아온 발자국을 돌아봅니다. 이윤기 님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가 하고 헤아립니다. 이윤기 님 스스로 즐겁게 걸어온 삶이니, 이렇게 이윤기 님 마음을 글 하나에 차근차근 담겠지요. 이윤기 님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 산문책 즐겁게 장만해서 즐겁게 읽으며 이녁 마음밭 살찌우겠지요.


  누구나 삶을 누립니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씁니다. 누구나 삶을 짓습니다. 높거나 낮거나 좋거나 나쁜 삶이란 따로 없이, 누구나 스스로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짓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녁 삶을 즐겁게 글로 씁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무엇인가 배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싸움 순위싸움 점수싸움에 시달립니다. 학교라는 데에서 아이들한테 즐거운 배움이나 슬기로운 가르침 나누는 일이 뜻밖에 무척 적어요.


  어른들이 학교를 세워서 무엇인가 가르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 순위공부 점수공부로 들볶습니다. 학교라는 데에서 어른들 스스로 즐거운 삶과 사랑과 꿈을 북돋우거나 키우는 일이 뜻밖에 참 적어요.


  “어른 학교”란 무엇일까요. “어른 학교”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요. “어른 학교”는 꼭 다녀야 할까요. 졸업장 없는 사회가 그립습니다. 학교 없는 나라가 그립습니다.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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