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버스 책읽기

 


  어버이날에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고 나서,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오늘, 음성에서 청주로 한 번, 청주에서 순천으로 한 번, 순천에서 고흥으로 한 번, 마지막 고흥읍에서 동백마을로 한 번, 이렇게 네 차례 버스를 탄다.


  마지막 네 번째 군내버스에 오르니 비로소 시골바람 맛을 느낀다. 시골풀 내음과 시골마을 모습을 헤아린다. 실비 살몃살몃 내리는 마을길 걷자니, 마을 논배미에서 개구리 밤노래 부르는 소리 온통 휘감는다.


  나흘 동안 고흥 바깥에서 자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자동차 소리에 시달렸는데, 이제 겨우 자동차 소리에서 홀가분하다. 도시에서는 너무 마땅히 자동차 소리로 가득하고, 웬만한 시골도 자동차 소리 스며든다. 참말 한국에서 자동차 소리 안 듣고 살 만한 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바람소리, 벌레소리, 새소리, 풀소리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살찌울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사람이 사람답게 마음 돌보면서 지낼 터는 어디일까. 4346.5.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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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도 푸른빛

 


  도시에도 푸른빛 감돈다. 도시사람이 도시에 감도는 푸른빛 얼마나 헤아리거나 누리는지는 알 길 없지만, 도시 곳곳에서 나무마다 새잎 틔우고 들풀이 고개를 내민다. 아파트와 건물이 훨씬 많은데다가, 자동차 소리 끊이지 않지만, 도시에도 나무와 풀이 나무바람과 풀바람 살랑살랑 일으킨다. 비록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이 얼마나 푸르게 빛나는가를 돌아볼 겨를 없다 하더라도, 도시사람이 숨막혀 죽지 않도록 푸른 숨결 한결같이 베푼다. 푸른 빛살 나누어 주고, 푸른 빛누늬 일렁여, 도시사람 흐린 눈망울에 고운 삶빛 서리도록 북돋운다. 4346.5.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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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집을 빙 둘러
탱자나무 초피나무 찔레나무
소복소복 자라서
말간 꽃 푸른 꽃 하얀 꽃
피우면
멧새와 들새
내려앉아 쉬면서
샛밥 즐기는
울타리 된다.

 


4346.4.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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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책읽기


  땅을 사 놓고 땅에다 집을 안 짓고 밭이나 논을 일구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시골 땅뙈기가 들이나 숲이 되도록 돌보지 않는다면, 이렇게 ‘땅을 사들이는 일’은 무엇일까. ‘투자’인가, ‘투기’인가?


  돈을 더 벌겠다면서 시골마을 값싼 땅을 도시사람이 사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가리켜 투자라 하든 투기라 하든, 쉽게 말하자면 ‘땅장사’라고 느낀다. 땅을 사고팔면서 돈을 벌 생각일 뿐이라고 느낀다.


  땅장사를 하고 싶으면 땅장사를 할 노릇이다. 은행을 열거나 맞돈 빌려주면서 돈장사 하는 사람도 있으니, 땅을 사고팔며 돈을 벌겠다는 사람이 나올 만하다. 물장수도 있고, 바람장수도 있으며, 학교장수나 물고기장수, 배추장사, 주식장수, 지식장수, 온갖 장수 다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땅을 왜 사려고 할까. 사람들은 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려 할까. 나이 많이 먹고 나서 느긋하게 놀면서 시골살이를 할 뜻으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흙 만지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 시골마을 너른 땅을 사들이는가.


  책은, 책을 사랑스레 읽을 사람이 사들여야 마땅하다. 돈은, 돈을 슬기롭게 쓸 사람이 벌어야 마땅하다. 꿈은, 꿈을 아름답게 펼치려는 사람이 꾸어야 마땅하다. 집은, 살붙이나 동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고픈 사람이 지어야 마땅하다. 땅은, 땅을 이루는 흙을 아끼고 보듬으면서 풀과 나무를 얼싸안으려는 사람이 장만해서 보살펴야 마땅하다.


  함부로 파헤쳐도 되는 땅은 없다. 모든 땅에는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다.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한가득 깃든 땅에는 지렁이와 벌레와 작은 짐승과 작은 들새가 깃들어 함께 살아간다.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라 할 수많은 목숨들 터전이 땅이요 흙이며 들이고 숲이다.


  풀과 나무는 땅문서 하나 없지만,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땅을 살린다. 벌레와 짐승은 땅장사 한 적 없으나, 튼튼하게 보금자리 마련해서 흙을 북돋운다. 사람은 무얼 하나.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사람은 무슨 짓을 하나.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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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마음


  시골에서 숲을 바라본다. 도시에서 나무를 바라본다. 숲을 바라보고 숲빛 살피며 숲내음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노랫가락 하나 헤아린다.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빛 살피며 나무내음 마시면서 마음속으로 감겨드는 노랫자락 하나 돌아본다.


  숲을 보는 사람은 숲을 노래한다. 숲을 안 보는 사람은 숲 아닌 다른 것을 노래한다. 숲을 마주하는 사람은 숲을 이야기한다. 숲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결 느낄 수 없는 삶을 이야기한다.


  삶이 고스란히 시로 태어난다. 삶터가 하나하나 시를 짓는다. 삶마디가 새록새록 싯마디 되어 물결처럼 흐른다.


  숲속에서도 꿈을 노래하지만, 시멘트 층집에서도 꿈을 노래한다. 숲속에서도 사랑을 속삭이지만, 아스팔트 찻길에서도 사랑을 속삭인다. 꿈은 어디에서나 꿈이요, 사랑은 언제나 사랑이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를 노래할 수 있고, 삶을 누리기에 시를 누릴 수 있다. 숲마을 고흥을 떠나 여러 날 일산과 서울 언저리를 거치는 동안, 도시에서 새잎 내놓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며 시를 쓰는 분들 문학이 내 숨결로 젖어들지 못하는 까닭을 생각한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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