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이희인 지음 / 호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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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8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나들이

―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이희인 글·사진

 호미 펴냄, 2013.3.9.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반기는 곳은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고 달리면서 소리치며 놀 수 있는 데라면 어디이든 반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뛸 수 없고 달릴 수 없으며 소리칠 수도 없는데다가 놀 수 없는 데라면 무척 힘들어 합니다.


  노래하면서 놀고 싶은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간다’고 하면서 ‘노래할 수 없는 곳’에 간다면, 놀러 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춤추고 뛰면서 놀고 싶은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자’고 하면서 ‘춤도 뜀뛰도 할 수 없는 데’에 간다면, 놀러 간다고 할 수 없어요.


  어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느긋하게 쉬기를 바라는 사람은 느긋하게 쉴 만한 곳에 가야 합니다. 눈부시거나 멋진 모습을 구경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눈부시거나 멋진 것이 가득한 곳에 가야 합니다. 고즈넉하면서 푸른 숲을 바라는 사람은 고즈넉하면서 푸른 숲이 펼쳐진 곳에 가야 합니다.





.. 갑자기 눈앞에 발리우드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장을 가득 메웁니다. 푸성귀 냄새, 과일 냄새로 가득한 걸로 봐서는 야채시장인 것 같습니다 … 양쪽 문을 열어 둔 채로 기차가 달립니다. 사람들은 열린 문가에 서 있거나 주저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합니다. 기차는 광야나 광활한 자연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비좁은 마을 골목을 끼고 달립니다 … 식료품 외에도 시장 안쪽에는 옷이나 구두, 가방, 액세서리 등을 파는 가게들도 보입니다. 낯선 마을의 시장 구경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구경보다 못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  (19, 34, 121쪽)



  이희인 님이 쓴 여행책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호미,2013)를 읽으면서 인도양과 맞닿은 여러 나라를 가만히 그립니다. 내가 사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인도양을 고요히 헤아립니다.


  우리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칠 킬로미터를 달리면 바닷가에 닿습니다. 고흥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파란 빛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남해’라고 하는 바다로,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보면 ‘태평양’입니다.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닷물입니다.


  짭조름한 기운이 가득 서린 바닷바람은 제법 셉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는 퍽 모진 바람이 되는데, 바닷가마다 후박나무가 서서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무척 오랫동안 이 나라 바닷마을하고 섬마을에서 자란 나무입니다. 네 철 내내 푸른 잎사귀를 다는 후박나무는 여러모로 바닷마을이나 섬마을하고 잘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바닷바람은 한 해 내내 그치지 않으니, 후박나무처럼 한 해 내내 도톰하고 펑퍼짐한 잎을 매단 나무가 있으면 바람을 긋기에 좋습니다.




.. 설득의 힘. 무기와 폭력, 전쟁이 아닌 차분한 설득과 포용의 정신이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을 불교의 품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이자 매력일 것입니다 … 기차에서 만난 스리랑카 꼬마들이 낯선 여행자에게 슬쩍 장난을 걸어 옵니다. 문득 한 소년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손에 든 과자 하나를 제게 건네줍니다 … 여행의 참맛은 이렇게 우연히 맞닥뜨린 소소한 풍경 속에 있는 게 아니랴 싶습니다..  (80, 112, 114쪽)



  시골에서 시골버스를 타면, 이 시골버스에서 젊은 이웃을 만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웬만한 젊은 이웃은 거의 다 자가용을 탑니다. 시골버스를 타는 사람은 초등학교 어린이나 중·고등학교 푸름이하고 늙은 할매와 할배입니다. 먼 이웃나라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이들도 시골버스를 탑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시골버스에서 손전화 기계를 만지작거리고, 늙은 할매와 할배는 창밖을 바라봅니다.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에 아이들이 북적거리고, 마을마다 젊은이가 넘실거리며, 마을잔치와 마을놀이와 두레와 품앗이가 있던 때까지는 시골버스도 무척 왁자지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라고 하는 책을 쓴 이희인 님이 스리랑카나 인도에서 탄 기차나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모습을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너른 숲을 품에 안으면서 너른 숲과 같은 낯빛과 목소리로 삶을 짓는 사람입니다. 드넓은 바다를 가슴에 안으면서 드넓은 바다와 같은 얼굴빛과 웃음으로 삶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는 어떤 낯빛이나 얼굴빛으로 지낼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와 웃음을 서로 주고받는 하루를 열까요?





.. 차밭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밀족 아낙의 얼굴 그 어디에도 반목과 증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도 더 많은 찻잎을 따고 더 좋은 값에 찻잎을 팔아 하루하루 생활고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걱정과 고단함이 그 얼굴들에 더 많이 읽힙니다 … 한참을 서서 지켜보는데, 좀처럼 물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낚시를 보러 온 여행자들이 모여듭니다. 강퍅한 어부들 어깨 너머로 뉘엿뉘엿 인도양의 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  (139∼140, 160쪽)



  스리랑카 차밭에서 일하는 아지매한테서 먹고사는 걱정과 고단한 마음이 물씬 묻어난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느껴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하루하루 고된 일을 하면서 살림을 바짝 조이는 이웃이 많습니다. 한쪽에는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있고, 한쪽에는 여행은 꿈조차 못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여행을 안 다닐 적’에는 하루하루 고단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지내기 일쑤입니다.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곳으로 여행을 다니면 고단함도 풀고 걱정도 털면서 홀가분한 마음이 될까요. 언제 여행을 다닐 수 있으면 괴로움도 근심도 없이 가벼운 몸으로 하루를 열 만할까요.




..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여행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갈 곳을 정하고, 그 지역 정보를 모으고, 그곳에 대한 환상을 스스로 키우며 다니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다시 강을 건너와 비루파크샤 사원을 둘러본 뒤,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함피의 이웃 마을인 카마라푸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시골길입니다 ..  (203, 274쪽)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이곳이 마을 고샅이든 뒷길이든 오솔길이든, 모두 기쁜 ‘마실길(여행길)’이 됩니다. 아름답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길을 꾸역꾸역 걷는다면, 이곳이 프랑스이든 미국이든 뉴질랜드이든 덴마크이든 그저 고달프면서 지겹거나 따분한 하루가 됩니다.


  그러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은 누가 가꿀까요? 바로 우리가 스스로 가꿉니다. 하루 만에 가꾸지는 않습니다. 오늘 하루와 모레 하루를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차근차근 가꿀 때에 우리 보금자리에 아름다운 길이 하나 놓입니다. 올 한 해와 이듬해를 웃음꽃 피어나는 노래로 맞아들이면서 찬찬히 북돋울 때에 우리 마을에 사랑스러운 길이 하나 태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천천히 자랍니다.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기까지 제법 여러 해가 듭니다. 나무를 처음 심을 적에는 그늘도 꽃도 열매도 구경하기 어렵지만, 다섯 해가 흐르고 열 해가 흐르면서, 나무는 씩씩하게 하늘을 바라봅니다. 스무 해가 흐르고 쉰 해가 흐르면서, 바야흐로 우리들이 아이를 낳고 이 아이들이 새로운 어른으로 자랄 무렵, 다 같이 누릴 아름다운 보금자리와 마을이 새로 깨어납니다.


  내가 웃는 곳에 네가 마실을 옵니다. 네가 노래하는 곳에 내가 나들이를 갑니다. 내가 기쁘게 삶을 짓는 곳에 네가 마실을 옵니다. 네가 즐겁게 삶을 가꾸는 곳에 내가 나들이를 갑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스리랑카나 인도로 마실을 가서 아름다운 인도양을 누릴 수 있다면, 스리랑카나 인도에서는 한국으로 나들이를 와서 사랑스러운 태평양도 들도 숲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서로서로 저마다 제 삶자리를 아름답고 사랑스레 돌볼 수 있기를 빌어요. 4348.5.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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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끌리네요^^..

파란놀 2015-05-26 23:58   좋아요 0 | URL
예쁜 책입니다
 

묶음표 한자말 213 : 사자성어四字成語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으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흉내낸 신조어였다

《정혜경-밥의 인문학》(따비,2015) 178쪽


사자성어(四字成語) : 한자 네 자로 이루어진 성어


 사자성어四字成語를

→ 네 마디 한자말을

→ 네 글자 한자말을

→ 넉 자로 된 한자말을

→ 한자말 넉 자를

 …



  숫자를 셀 적에 ‘세’와 ‘네’를 쓰는 자리가 있고, ‘석’하고 ‘넉’을 쓰는 자리가 있습니다. 글자를 셀 적에는 “이름 석 자”나 “넉 자로 된 말”처럼 씁니다. 이런 자리에는 ‘세’나 ‘네’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한자 네 자”처럼 글을 써요. 올바르지 않은 말투인데 국립국어원에서 자꾸 이런 말투를 쓸 뿐 아니라, 스스로 바로잡지도 못합니다. 한국말사전에 잘못된 말투가 자꾸 나오니, 사람들도 이런 잘못된 말투를 고스란히 따르겠구나 싶습니다.


 자연에 대한 여러 가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 자연과 얽힌 네 마디 한자말이 여러 가지 떠올랐다

→ 자연을 다룬 네 글자 한자말이 여러 가지 떠올랐다


  ‘사자성어’는 한자 넉 자를 엮어서 짓는 낱말입니다. 한국말로 넉 자인 낱말은 사자성어일 수 없습니다. 한국말로 넉 자인 낱말이라면 ‘넉 자 낱말’이나 ‘네 글자 말’이나 ‘네 마디 말’이 될 테지요.


  ‘사자성어’라는 낱말을 쓰려 한다면 그냥 이대로 쓰면 되고, 사람들이 이 한자말을 잘 알아듣기 어렵다고 여기면, 한자를 덧달지 말고 쉽게 풀어내어 쓰면 됩니다. 4348.5.26.불.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나타낸 말로, 네 글자 한자말을 흉내낸 새말이었다


‘상황(狀況)’은 ‘모습’으로 다듬고, “표현(表現)한 것으로”는 “나타낸 말로”로 다듬으며, ‘신조어(新造語)’는 ‘새말’로 다듬습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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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2 수수께끼 놀이 하자



  우리 삶을 이루는 모든 수수께끼는 내가 스스로 내서, 내가 스스로 풉니다. 수수께끼는 남이 나한테 내지 않습니다. 수수께끼는 남이 내 몫을 풀어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남이 내 수수께끼를 슬기롭게 풀어 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남이 풀어 준 대로 길을 가지 않아요. 나는 내가 스스로 푸는 결대로 하나하나 살피면서 내 길을 갑니다.


  ‘묻는’ 사람이 ‘안다’고 했습니다.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 수수께끼를 짓고, 궁금하게 여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얻습니다.


  길은,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찾습니다. 길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걷습니다. 길은, 길을 짓는 사람이 스스로 지어서 닦고 돌봅니다.


  삶은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실마리를 하나 풀어서 이 수수께끼를 끝마쳤구나 싶으면, 어느새 곧바로 새로운 수수께끼가 나한테 찾아옵니다.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면서 저 수수께끼로 나아가고, 저 수수께끼를 풀면 새롭게 이 수수께끼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새로운 수수께끼가 깨어납니다.


  수수께끼가 없는 삶이라면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서 목숨을 잇는 까닭은, ‘삶 = 수수께끼’이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가 없으면 우리 목숨은 곧장 끝나요. 궁금한 이야기가 없으면 삶이 아닌 죽음이고, 궁금한 이야기가 없는 채 목숨만 잇는다면, 삶에 아무런 보람도 재미도 기쁨도 웃음도 노래도 없습니다. 궁금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내 하루에 보람과 재미와 기쁨과 웃음과 노래가 피어납니다. 궁금해 하면서 길을 찾고, 궁금하기 때문에 길을 열며, 궁금한 꿈이 바야흐로 삶꽃으로 피어나도록 하려고 길을 걷습니다.


  궁금함이 없으니 ‘딴 재미’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여흥·오락·여가·쾌락’으로 나아갑니다. 궁금함이 없어 ‘딴 재미’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여흥·오락·여가·쾌락’으로 가지만, ‘여흥·오락·여가·쾌락’을 붙잡고 또 붙잡더라도 보람이나 기쁨이나 웃음이나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다른 오락이나 쾌락으로 나아가지만,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온갖 여흥과 여가로 내 하루를 가득 채우려 하지만, 하루를 빡빡한 일정으로 채운들 이튿날이 되면 모든 것은 다시금 물거품처럼 됩니다. 여흥도 오락도 여가도 쾌락도 ‘소비’이기 때문에, 내 삶을 못 채웁니다. ‘소비’는 쓰고 없어지면서 쓰레기로 남기 때문에, 내 삶을 넉넉하게 북돋우지 않습니다.


  돈이 많기에 넉넉한 삶이 아닙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넉넉한 삶입니다. 돈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아무런 재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습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길을 찾으면서 재미를 누리고 보람을 얻습니다. 궁금해 하는 마음은 이윽고 꿈결로 닿고, 꿈결로 닿는 마음은 시나브로 사랑에 이릅니다.


  수수께끼 놀이는 스스로 삶을 찾으려는 기쁜 몸짓입니다. 수수께끼 삶은 스스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고운 노래입니다. 내 목소리를 내가 들으면서 기쁩니다. 내 웃음을 내가 느끼면서 아름답습니다. 내 눈빛을 내 숨결이 바라보면서 사랑스럽지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풀지 않는 수수께끼만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없습니다. 풀려는 마음이 없을 뿐입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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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삶’을 읽으려는 마음은 얼마나 있는가



  영화 〈매트릭스〉나 〈인터스텔라〉나 〈루시〉 같은 영화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제대로 ‘읽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어떻게 읽는지 알 길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 생각을 어떻게 가다듬는지 헤아릴 길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얼추 짚을 수 있다. 언론이나 매체나 학교나 사회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본 영화’조차 참뜻이 감추어지도록 사람들을 길들이려고 무던히 애쓴다.


  〈주피터 어센딩〉이라는 영화를 곰곰이 두 차례 본다. 이 영화가 들려주려는 목소리를 새삼스레 생각한다. 이 영화가 모든 수수께끼나 실마리를 풀지는 않을 테지만, 여러모로 궁금하던 대목을 찬찬히 짚는구나 하고 느낀다. 무엇보다 〈주피터 어센딩〉이 지구별이 ‘노예 별’인 줄 똑똑하게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목이 재미있다. 이 대목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말을 들을 적에 깊이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우리 삶을 제대로 가다듬거나 슬기롭게 가꾸자고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을까?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꾸준히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지구별 사람들이 머잖아 바보스러운 제도권사회를 스스로 떨치고, 아름다운 삶을 사랑스레 짓는 길로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그래야지. 그렇게 되도록 북돋우려고 이런 영화가 하나둘 나온다고 느낀다. 4348.5.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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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주피터 어센딩
라나 워쇼스키 외 감독, 채닝 테이텀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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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날다 (주피터 어센딩)

Jupiter Ascending, 2015



  ‘별을 나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영화 〈주피터 어센딩〉을 본다. 열두 살부터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열두 살 어린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어느 만큼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실마리를 얻을 만할까. 스물네 삶 젊은이나 마흔여덟 살 어른은 이 영화를 보면서 저마다 생각과 슬기와 셈과 철을 얼마나 곱게 가다듬을 만할까.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이 있고, 이 책을 놓고 제법 긴 느낌글을 쓴 적이 있다(http://blog.naver.com/hbooklove/220107844847).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을 읽고 나서 느낌글을 쓸 적에 ‘새마을운동’과 ‘제도권학교’를 퍽 길게 이야기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채 바보스러운 굴레에 갇히도록 하는 얼거리를 따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한 사람을 나무라거나 우러른다고 하더라도, 이쪽이나 저쪽 모두 ‘새마을운동’과 ‘제도권학교’ 울타리에서 맴돌 뿐이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똑같이 시멘트를 사랑하고, 대학교에 목을 맨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으며, 도시를 아름답고 푸른 숲으로 가꾸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 한 사람을 나무라든 우러르든,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짓는 길을 바라보려고 하는 하루를 여는 사람이 퍽 드물다고 느낀다. 왜 그러할까?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삶을 짓는 사람은 대통령을 바라보지 않는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신문도 방송도 책도 안 본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대학교도 제도권학교도 졸업장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삶짓기를 하는 사람은 바람을 읽고 흙을 읽으며 나무를 읽는다. 삶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은 별을 읽고 온누리를 읽는다. 삶을 사랑스레 지으려는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꿈을 읽는다.


  영화 〈별을 날다(주피터 어센딩)〉에서 지구가 어떤 별인가 하는 대목을 참으로 똑똑히 보여준다. 지구는 ‘노예 별’이다. 다만, 스스로 노예인 줄 모르는 노예로 가득한 별이다. 지구는 틀림없이 ‘노예 별’인데, 온누리(은하계)에서 아주 구석진 곳에 있는 별일 뿐 아니라,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 별이기도 하다. 왜 그러한가? 지구라는 별은 대단히 작으면서도, ‘대단히 작은 것 하나’에서 모든 것이 비롯하기 때문이다. 씨앗 한 톨이 우람한 나무가 되듯이, 대단히 자그마한 지구별 하나가 온누리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무시무시한 힘을 뽐내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사람 하나’가 이 무시무시한 힘과 울타리를 깨부술 수 있다. ‘따스한 숨결이 흐르는 사랑이라는 마음’이라면, 오직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노예인 모습을 떨쳐내고는, 온누리를 뒤흔들 기운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눈이 있어’서 ‘무엇인가를 보기’는 하지만, 제대로 보지는 못한다. 제대로 보려는 생각조차 못한다. 도깨비나 도깨비불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맨눈으로 ‘옵스’를 보거나 ‘차크라’를 보거나 ‘밴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느 때에는 머리도 생각도 제대로 열지 않은 탓에 코앞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못 알아보는 사람이니, 사람은 그저 노예에 머문다. 그렇지만, 스스로 머리를 불태워서 불바람을 온몸에 일으키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슬기로운 숨결이 바로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은 별을 날아야 한다. 별을 날지 못한다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노예(종)가 된다. 생각이 없는데다가 별을 날지 않으려는 사람은, 영화 〈주피터 어센딩〉에 나오듯이 ‘다른 외계사람’이 수만 해를 살도록 도와주는 ‘물(생명수)’이 될 뿐이다. 잘 생각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노예인 사람이 ‘다른 외계사람이 수만 해를 살도록 돕는 물’이 된다. 이 기운을 알아차리고 제대로 보아야 한다. 〈주피터 어센딩〉은 〈매트릭스〉 다음을 노래하는 영화이다. 〈매트릭스〉는 ‘나’를 돌아보도록 하는 영화라면, 〈주피터 어센딩〉은 ‘너’를 바라보도록 하는 영화이다. 4348.5.2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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