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아침 기계빨래



  오늘은 이른아침부터 기계빨래를 한다. 이틀 쌓인 옷을 손으로 빨까 하다가 기계한테 맡긴다. 곁님이 입는 두툼한 옷은 사흘 앞서 손으로 빨았기에 이틀치 빨랫거리가 쌓였어도 얼마 안 된다. 그냥 손으로 다 비비고 헹구고 짜서 널면 되지만, 이렇게 하는 데에 들일 이십 분을 아침에 나한테 쓰기로 하고 기계한테 빨래를 맡긴다. 손으로 빨래를 마치면 이십 분이면 끝이지만, 기계한테 맡기니 사십육 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기계빨래는 손빨래보다 이십육 분을 더 쓰고, 물과 전기를 더 쓸 뿐 아니라, 이 기계가 태어나기까지 온갖 자원을 썼을 테지. 빨래 한 점을 손으로 하느냐 기계로 하느냐에 따라 지구별이 참으로 크게 달라진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아이들을 먹인 뒤, 나는 혼자 광주로 마실을 간다. 광주에 있는 〈전라도닷컴〉 ‘글쓴이(작가) 모임’이 있어서 하루 말미를 낸다. 광주를 오가는 데에 들 찻삯 오만 원을 모으기에도 빠듯하지만, 이 마실길에 우리 도서관 지킴이를 여러 사람 모실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러니까, ‘도서관 지킴이’를 새로 받고 싶어서 광주로 마실을 간다.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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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나무쑥갓꽃 (마가렛꽃/마거릿꽃)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큰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깜짝 놀랄 만한 꽃무리를 만난다. 어어, 이 꽃이 왜 벌써 필까 하고 생각하면서 한참 들여다본다. 쑥갓꽃이잖아 하고 생각하면서 바라보는데, 설마 초등학교 꽃밭에 쑥갓꽃을 심을까 궁금하다. 아무리 꽃을 좋아하는 교장선생이 있다 하더라도 쑥이나 쑥갓을 심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내가 아직 모를 뿐이기는 한데, 학교 들머리나 꽃밭을 ‘텃밭’으로 꾸민다든지, 장다리꽃이나 유채꽃이 자라도록 한다든지, 참깨꽃이나 부추꽃이 피도록 하는 학교는 못 보았다.


  하얀 꽃송이를 사진으로 담아서 인터넷으로 여쭌다. 꽃을 잘 아는 어느 분이 이 꽃은 ‘나무쑥갓꽃’이라고 알려준다. 영어로는 ‘마가렛꽃(마거릿꽃)’이라 한단다. 잎사귀가 쑥갓과 비슷하다고 해서 ‘나무쑥갓’이라 한다는데, 이 아이도 먹는 풀일까 궁금하다. 다만, 초등학교에서는 먹을 뜻으로 이 아이를 심거나 가꾸지는 않을 테지만, 이 꽃이 들에서 피는 나라에서는 들나물로 삼을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자라는 쑥갓을 다른 나라에서 옮겨심으면 그곳에서는 쑥갓도 ‘꽃밭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그나저나, 볕이 좋으니, 여름에 볼 꽃을 한겨울에도 본다. 여름에 피어나는 꽃이 겨울에도 피어나면서 찬바람을 참말 씩씩하게 견딘다.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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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경제신문에 싣는 책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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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마당에 심는 나무



  우리 집 마당에는 후박나무가 퍽 크게 섭니다. 우리 집 뒤꼍에는 감나무도 퍽 크게 섭니다. 우리 집이 깃든 마을에서 마당에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도록 두는 다른 집은 없습니다. 옆마을에도 이런 집은 거의 없고, 다른 마을에서도 마당에 나무를 우람하게 키우는 집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우람하게 자라던 나무가 있어도 베에서 넘깁니다. 나무가 잘 큰다 싶어도 어느 만큼 자라면 목아지를 칩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이렇게 하지만, 학교와 길거리에서도 이렇게 합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를 가든 ‘아름드리 나무’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기 어려운 한국입니다. 마을뿐 아니라 숲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숲에서 조용히 씩씩하게 자라던 나무는 산림청에서 솎아내기를 한다면서 벱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즈믄 해를 넘게 살아낸 나무를 곳곳에서 만날 만하지만, 한국에서는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를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즈믄 해를 살아낸 절집이 몇 군데에 있다고 하지만, ‘집 한 채가 즈믄 해를 살아내’는 까닭을 제대로 읽거나 헤아려서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집 한 채가 즈믄 해를 살아내려면 ‘즈믄 해를 살아낸 나무’를 베어서 기둥으로 삼고 서까래를 올립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집 한 채가 오백 해를 살아내려면 ‘오백 해를 살아낸 나무’를 베어서 기둥으로 받치고 도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짓는 집은 즈믄 해를 살거나 오백 해를 버티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떤 집도 백 해조차 버티도록 짓지 않습니다. 빨리 지으려 할 뿐이고, 돈이 되도록 올리려 할 뿐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글을 갈무리한 《수집 이야기》(산처럼,2008)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마련한 ‘민예관’에 둔 ‘아름다운 일본 보물’을 어떻게 그러모을 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은 ‘민예’라는 낱말을 지었습니다. “백성 예술”이라는 소리요, ‘수수한 사람이 일군 삶이 그대로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수집 이야기》에 나오는 ‘민예관 소장품’은 여느 시골마을에 있는 여느 시골집에서 여느 시골사람이 수수하게 쓰던 투박한 살림살이입니다.


  “‘아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잘못이다. 물건을 보기 전에 지식을 움직이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방해받게 된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70쪽).”와 같은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참말 그렇지요. 섣부른 지식을 앞세우면 어떤 것을 보든 ‘섣부른 지식’이 가로막습니다.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요. 아름다운 것을 보더라도 아름다움이 아닌 겉모습에 얽매입니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더라도 사랑스러움이 아닌 겉치레에 휘둘립니다.


  무화과나무에서 맺는 무화과알을 눈으로 보면서 먹으면 눈으로 헤아리는 맛이 더 달콤할 수 있지만, 무화과알을 낯설게 여기거나 달갑잖게 바라본다면 이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없습니다. 굴이나 조개도 이와 같습니다. 고기를 먹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눈으로 보며 더 맛나게 즐기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기 때문에 아예 손을 안 대기도 합니다.


  한편, 이름난 어느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아주 높은 값을 치러야 하는 작품이 있어요. 이와 달리 이름이 안 난 어느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아주 싸디싼 값만 내도 되는 작품이 있어요. 두 작품은 무엇이 다를까요.


  “직관이 고마운 까닭은 망설임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명성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진다(152쪽).”와 같은 이야기를 되읽습니다. 사람을 마주할 적이든 물건을 마주할 적이든 늘 같습니다.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거나 힘이 센 사람을 마주하기에 이녁을 더 섬기거나 우러러야 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거나 이름이 낮거나 힘이 여린 사람을 마주하기에 이녁을 업신여기거나 낮보거나 깔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과 만나는 자리가 대수로울 일은 없습니다. 아이들과 놀거나 아이들한테 동시를 읊어 주거나 아이들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주는 일이 안 대수로울 수 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할까요? 이름난 작가나 명사가 추천한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할까요? 많이 팔린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할까요?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크게 알리는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을 살찌울 만할까요?


  어느 책을 읽든 내 마음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다만,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살찌우려고 생각하면서 찬찬히 살피고 고른 책을 읽을 때에만 내 마음을 살찌웁니다.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다기라고도 불리는 각발은, 발견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 농민 집에서 닭 모이를 담아 두는 그릇이었다고 나카니시 씨한테서 직접 그 사연을 들었다(256쪽).”와 같은 이야기를 날마다 아이들과 나눕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읽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이러한 마음을 함께 나눕니다. 나뭇가지 하나를 오랫동안 놀잇감으로 삼으면서 함께 놉니다. 하얀 종이에 함께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인 뒤 두고두고 즐깁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하루를 사진으로 찍어서 함께 바라보며 웃습니다. 노랫말을 아이들과 함께 지어서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그리는 이야기를 기쁘게 노래로 부릅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거짓말을 가르친다면 아이도 거짓말을 하지만, 어버이가 아이한테 참말을 들려주고 보여주면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값비싼’ 수저나 밥그릇을 딱히 좋아하거나 반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내 것’으로 삼을 만하도록 마음에 드는 수저나 밥그릇이면 다 좋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사랑으로 차려서 주는 밥이면 다 맛납니다. 비싼 과자나 초콜릿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빙그레 웃으면서 함께 먹는 과자나 초콜릿이면 다 좋아합니다.


  마당에 심는 나무는 대단해야 하지 않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나무를 심거나 몇 억 원짜리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어서 싹을 틔우고 찬찬히 가꾸어도 됩니다. 어린나무 한 그루를 삼천 원에 장만해서 심어도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서른 해를 지켜보고 쉰 해를 사랑하면 됩니다. 일흔 해를 지켜보고 백 해를 아끼다가 아이들한테 나무를 물려주면 됩니다. 아이들은 또 이녁 아이한테 나무를 물려줄 테지요. 수수한 삶이 가장 빛나는 삶입니다.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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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7 06:12   좋아요 0 | URL
읽고싶은 책을 고르고 살피는 과정 자체도 독서겠지요?

수집이라는걸 어렸을 때는 제법 했던것 같아요. 지우개, 메모지 모으기가 한창 유행이었거든요.

파란놀 2015-01-07 07:19   좋아요 0 | URL
하양물감 님 말씀처럼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모습이 다 `수집`이구나 싶어요.
생각을 모으고 사랑을 모으면서 꿈을 이루는
삶이로구나 싶어요.

어릴 적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모으고,
철이 들면서 `마음으로 보는 것`을 모아서
사랑이 된다고 차츰 깨닫습니다.

[그장소] 2015-01-07 07:29   좋아요 0 | URL
와..와!^^ 함께살기 님! 저 반했어요~
(^o^)/ 안목. 이라는 것이 있어 제
가진 성질을 얼마나 잘 살려 주변과 어우러져 조화있게 자리잡았는가..를 알아주는 일. ㅡㅡ무엇보다 자연스러울
것들...!

파란놀 2015-01-07 07:37   좋아요 0 | URL
누구한테나 그 눈썰미(안목)가 있다고 느껴요.
사람마다 눈썰미는 다 다를 테지요.
다 다른 눈썰미를 살리면
우리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는 길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그장소] 2015-01-07 07:42   좋아요 0 | URL
음~^^ 다들 각자 좋아서 파고 있는 책들 일
테죠...배울게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아침부터 좋은 글로 시작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파란놀 2015-01-08 18:58   좋아요 0 | URL
서로 즐겁게 배우고 가르치면서
삶도 아름답게 가꾸는구나 하고 느껴요
 

산들보라는 언제나 자동차를



  누나가 그림책을 읽어 주는데, 옆에서 찬찬히 듣던 산들보라는 아무래도 손이 아쉬운 듯하다. 베개맡에 놓은 장난감 자동차로 손을 뻗는다. 누나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도 듣고 싶으나, 손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쥐고 싶다. 둘 다 해야 한다. 그래, 그러면 넌 둘 다 하렴.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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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44. 2014.11.14. 이부자리 책놀이



  추워도 옷을 꿰려 하지 않는 아이들은 아버지를 닮았지 싶다. 옷을 더 입기보다는 이불을 뒤집어쓰겠노라 하는 두 아이는 그림책을 하나 챙겨서 논다. 누나가 글을 읽어 주고, 동생은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 쥔다. 누나가 구성지고 맛깔스레 읽는 목소리를 받아먹으면서 동생은 즐겁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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