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38. 나무하고 함께 있는



  나무하고 함께 노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무하고 함께 놀았습니다. 내가 살던 마을에 꽤 커다랗게 잘 자란 나무가 있어서, 내 또래 어린이가 여럿 올라타도 거뜬했습니다. 어디만큼 올라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높이 높이 올라가서 ‘아 좋다!’ 하다가, 밑으로 내려갈 때쯤 되어 ‘어라, 어떻게 내려가지?’ 하는 생각에 까마득한 적이 잦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수백 해 묵은 나무는 언제나 아이들한테 고마운 놀이터가 되고 따스한 품을 베풉니다. 우리 고장 읍내에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곧잘 나무한테 찾아가서 인사합니다. 오랫동안 짙푸른 바람을 베푼 숨결을 함께 느낍니다. 4348.8.2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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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씨앗



수박 먹고 싶어

노래하면

네가 수박씨 심어

그러고


능금 먹고 싶어

외치면

네가 능금씨 심어

그러더니


옥수수 먹고 싶어

말하니

함께 옥수수씨 심을까

하는 아버지.


옥수수알을 하나씩 떼어

이틀을 불리니

하얗고 작은 싹이 튼다.


싹이 튼 옥수수씨는 

흙으로 옮기니

다시 이틀 만에

길쭉하게 푸른 줄기 오른다.


아침 낮 저녁으로

옥수수싹 돌아보며

흙바닥 마를 적마다

물을 주며 속삭인다.


“예쁜 옥수수야 사랑해.

  무럭무럭 자라렴.”



2015.8.16.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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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33] 책을 기다리며



  풀내음 땀내음 섞인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풀내음이랑 땀내음이 섞이면 흙내음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흙내음에 살내음이 섞이면 볕내음이 나는구나 싶습니다. 볕내음에 비내음이 섞이면 밥내음이 나는구나 싶고, 밥내음에 노래와 웃음이 섞이면 이야기꽃으로 거듭나지 싶어요. 책 한 권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삶내음이 풀내음하고 땀내음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고이 풀어내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은 뒤 책을 묶는구나 싶습니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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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37. 저만치 멀리 가는구나



  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뗀 뒤부터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걸음마를 떼기 앞서 바닥을 볼볼 기듯이 다닐 적에도 뒤를 보지 않습니다. 아이는 처음 이 땅에 태어난 날부터 언제나 앞을 바라봅니다. 한 걸음을 딛고 두 걸음을 딛으면서 늘 새로 나아갑니다. 몸이 자라고 키가 크면서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내딛습니다. 어느새 저 앞으로 달려가니 개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 앞으로 멀리 내달린 뒤 돌아옵니다. 제 어버이 품을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 여깁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나는 아이들이야말로 나한테 고요하며 포근한 보금자리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8.8.1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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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삶노래 94. 서울마실



아버지는 서울에

으레 혼자서

일하러 마실을 간다.


“나도 데려가요.”

“넌 여기서 놀아.”

쳇 쳇 쳇

같이 가고 싶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서울에 같이 가면


거기에서는

전철에서 뛰어도 안 돼

버스에서 큰소리로 노래해도 안 돼

길에서 신나게 달려도 안 돼


‘안 돼’투성이

서울서는 얌전만 떨어야 한다.



2015.6.19.쇠.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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