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을 줍다

 


  순천 시내 어느 놀이터에 갔다. 큰아이가 문득 은행잎 하나 줍는다. 어, 얘는 어쩜 벌써 노랗게 물이 들었지? 잎 끝자락은 푸른 기운 조금 남았지만,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다. 이 잎빛이 예뻐서 주웠구나. 네가 눈이 밝아서 주웠을는지 모르지만, 네 마음속으로 예쁜 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니까, 이런 은행잎 알아차리며 줍는구나.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14] 빨래순이 되어
― 마을빨래터라는 곳

 


  마을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마을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 마을 이웃은 이제 없기에, 마을빨래터를 아이들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합니다. 집집마다 따로 물꼭지를 내고, 집집마다 빨래기계 들였으니, 마을빨래터는 모양만 남은 셈입니다. 마을에 젊은 사람 없고, 할매들은 손빨래를 하기 벅차겠지요. 주말이나 명절에 젊은 사람 찾아오더라도 손으로 빨래를 거들 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마을빨래터는 들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매나 할배가 손발을 씻고 연장을 닦는 곳일 뿐입니다.


  지난날 마을사람 복닥복닥 모여 손으로 옷가지를 비비고 헹굴 적에는 마을빨래터에 물이끼 낄 날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전기 없어도 물이 흐르고, 기계 없어도 몸으로 움직이며, 아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쉬던 빨래터는 시나브로 휑뎅그렁하게 바뀝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다른 마을도 빨래터는 휑뎅그렁합니다. 빨래를 하지 않는 빨래터는 차츰 빛을 잃습니다. 빨래를 할 사람이 사라지고, 물놀이를 할 아이들 없는 빨래터는 쓸쓸합니다.


  집안에 빨래기계 들여놓고 단추 한 번 척 누르면 되는 오늘날입니다. 문화가 발돋움했는지, 문명이 뻗어 나가는지, 빨래를 맡아서 해 주는 기계는 집안일을 크게 덜어 준다 할 만하겠지요. 그런데, 빨래기계 나타나 전기와 물을 듬뿍 쓰는 한편 화학세제 널리 퍼지면서, 땅도 물도 더러워집니다. 빨래기계 나타나 마을사람들 빨래터에 모일 일 사라지면서, 마을에 이야기와 노래가 사그라듭니다. 아이들이 더는 빨래터에서 놀지 않으면서, 아이들은 따로 수영장에 갑니다.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마을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어냅니다. 아이들과 함께 솔로 빨래터 바닥을 박박 문지릅니다. 한참 쓸고 문지르니 맑은 물이 졸졸 흐릅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빨래터를 너른 놀이터 삼아 온몸 흠뻑 적시며 놉니다. 배가 고프도록 놀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합니다. 아이들이 조물딱조물딱 비비고 헹구는 시늉을 하고서 “빨래 다 했어.” 하고 말하면 이 옷가지를 받아 내가 다시 비비고 헹군 다음 물을 죽죽 짭니다. 빨래를 다 마친 옷가지를 작은 통에 담습니다. 청소 연장을 잔뜩 짊어지니, 큰아이가 빨래바구니를 들어 줍니다. 아버지는 빨래돌이 되고, 큰아이는 빨래순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 빨랫줄에 척척 넙니다.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작은아이 밤기저귀 떼기

 


  사내는 가시내보다 똥가리기와 오줌가리기에다가 말하기 모두 늦다고 한다. 사내와 가시내를 나란히 키우고 보니 이러한 얘기를 잘 알 만하다. 큰아이(가시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고 온 집안 살림살이 들쑤시더니, 돌쟁이 즈음에는 혼자 단추를 꿸 줄 알았고, 옷도 스스로 입을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세 살이지만 아직 단추를 못 꿸 뿐더러, 말도 제대로 못하고, 똥오줌도 잘 안 가린다. 스스로 오줌을 누거나 스스로 똥걸상에 앉아 누지 않는다. 작은아이는 옷을 혼자서 챙겨 입지 않는다.


  그래도 세 살 작은아이(사내)는 요즈음 밤오줌을 누지 않는다. 밤에 바지나 이불이나 기저귀에 쉬를 거의 안 눈다. 어느 날은 밤부터 아침까지 오줌을 안 누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한꺼번에 누기도 한다. 밤에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면서 자는데, 낑낑거리면 쉬가 마렵다는 뜻이요 안 낑낑거리면 쉬 안 누고 아침까지 내처 잘 만하다는 뜻이다. 밤에 자장노래 한참 부르며 재웠는데 작은아이가 안 자고 자꾸 깨면 쉬를 한 번 더 누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작은아이가 말문을 트고 “쉬 마려.” 하고 말하면 한결 수월할 텐데, 작은아이는 말문을 참 늦게 트려고 하는 듯하다. 그래도 곁에서 누나가 언제나 수다쟁이 되어 조잘조잘 말을 거니까 이 말 저 말 누나한테서 많이 배운다.


  곰곰이 생각한다. 큰아이 밤기저귀를 뗀 때가 언제였던가.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앞서 비로소 큰아이는 밤기저귀를 오롯이 떼었다. 그러니까, 큰아이 나이 세 살(꽉 찬 세 살은 아니고)에 밤기저귀를 떼었고, 이제 작은아이도 얼추 비슷한 나이가 되니, 밤기저귀를 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밤부터 작은아이 바지에 기저귀를 안 대 볼까 싶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여는데, 작은아이가 마루에서 아버지를 부른다. “똥 다 누었어요.” 누나가 똥걸상에 앉아 아버지를 부를 적에 “똥 다 누었어요.” 하고 말하는데, 이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며 아버지를 부른다. “응?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는데 똥내가 난다. 아, 참말 똥을 누었나 보네. 그런데 왜 똥걸상에서 안 누고 마룻바닥에다가 누니. 똥 다 누었으니 치워 달라 하려면, 이제부터는 똥걸상에 앉아서 시원하게 눈 다음 아버지를 불러 주렴. 4346.7.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5분

 


  엊저녁 아이들 밥을 차려서 먹이고 난 다음 만화책 《은빛 숟가락》 셋째 권을 읽는데, 딱 15분이면 어떤 밥감(식재료)가 있어도 한 끼니 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살짝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가? 그래,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15분이면 밥차리기에 넉넉하다. 때로는 5분만에 후딱 차릴 수 있기도 하다. 밥차리기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 기울이기에 따라 다른 노릇 아닌가.


  칼질 한 번에 달라지고 손질 한 번에 바뀐다. 물 한 번 끓이면서 밥차림이 바뀌고, 접시에 어떻게 얹느냐에 따라 참말 모든 것이 달라진다. 냄비로 밥을 끓일 적에는 처음에 불을 좀 세게 하면 더 빨리 밥을 지을 수 있다. 조금 센 불로 하면서 밥뚜겅 틈틈이 열어 나무주걱으로 슬슬 뒤집으면 더 빨리 밥을 짓기도 한다. 다만, 밥뚜껑 열며 밥을 뒤집으려면 물을 좀 넉넉히 붓고 끓여야 하는데, 물이 모자라다 싶으면 더 부어도 된다.


  밥이란 몸을 살찌우는 먹을거리이면서, 마음을 북돋우는 기운이 된다고 할까. 밥이란 몸을 돌보는 먹을거리이면서, 마음을 사랑하는 빛이 된다고 할까. 밥 한 끼니 차리는 데에 꼭 15분이면 넉넉하기도 하지만, 밥을 차리느라 한 시간 십오 분을 써도 아깝지 않다. 그만큼 즐겁게 웃으면서 차리면, 한 시간 아닌 두 시간을 들여도 기쁘다.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숫돌 쓰기

 


  부엌칼을 갈아서 쓴다는 생각을 한 지 몇 해 안 된다. 이러고도 집살림 맡아서 한다니 참 어설픈 사람인데, 칼이 무디면 무딘 대로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겨울쯤 비로소 숫돌을 하나 장만해서 부엌에 두었는데, 막상 아침저녁으로 칼질을 할 적에 숫돌을 꺼내어 칼을 갈아서 쓰지 못했다. 1∼2분쯤 들여 칼을 갈고서 쓰면 될 노릇이나, 이렇게 마음을 쓰지 못했다.


  어제 아침을 차리며,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이 밥 달라 칭얼거리더라도 칼부터 갈자고 생각한다. 숫돌을 꺼내 개수대에 기대고는 칼을 간다. 낫을 갈듯 칼을 간다. 한 번 갈고서 무를 써니 예전보다 조금 낫다. 무를 썰어 국냄비에 넣은 다음 칼을 또 간다. 감자를 썰고서 다시 한 번 간다. 고구마를 썰어 본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칼을 간다.


  칼을 갈아서 쓰니 꽤 낫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한다. 누가 잡아가지 않고, 누가 등을 떠밀지 않는다. 느긋하게 칼을 갈면서 밥을 차리자.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