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쌀씻기

 


  한여름이 되고 보니, 누런쌀 씻어 물에 담그면, 아침에 담근 쌀이 낮에도 살짝 쉰내 돈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 물갈이를 자주 하지만, 엊저녁에 밥을 지어서 차린 뒤에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어차피 아이들 모두 재운 깊은 밤에 글을 쓰니까, 글을 쓰다가 쌀을 씻어서 불리자 하고.


  한밤이랄까 새벽이랄까, 세 시 반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이렇게 불린 쌀은 아침이나 낮에 새밥을 지어서 먹겠지. 엊저녁 밥이 조금 남았으니, 이렇게 남은 밥은 옥수수랑 다른 여러 가지 섞어 볶음밥을 하고, 저녁밥을 새로 지을까 생각해 본다.


  쌀을 씻을 때마다 우리 식구 모두 밥 맛나게 먹을 수 있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모두 맛있는 밥 즐겁게 먹으며 사랑스러운 기운 얻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맑은 물 서린 밥을 기쁘게 먹으며 고운 노래 부르는 하루 누리기를, 하고 빈다.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던 열 살 때부터 내 꿈을 ‘가정주부’라고 적으면서 살았는데, 참말 열 살 적 꿈처럼 서른아홉 살 오늘, 집살림꾼 되어 밥을 짓고 아이들 돌보는 나날을 누린다. 얘들아, 우리 함께 고소한 밥 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꽃노래 부르자.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구름·새 좋아 (2013.7.8.)

 


  바다에 아이들과 함께 갔는데, 모래밭 아닌 자갈밭 바닷가에 갔다. 그만 아이들과 바닷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큰아이는 몹시 서운해 하면서 그림놀이에는 그닥 재미를 안 붙인다. 돌을 주으면서 나무그늘에서 논다. 그러면 하는 수 없지. 아버지 혼자서 그림놀이를 해야지. 먼저 바닷물을 그린 뒤, 섬을 그린다. 섬 위로 드리우는 구름을 그린 다음, 해를 그리고 제비 네 마리를 그리는데, 크레파스가 굵어 제비답게 못 그렸다고 생각한다. 잠자리를 그린다. 풀포기를 그린다. 조개껍데기랑 나뭇잎을 그린다. 모두 넷씩 짝을 지어 그린다. 우리 식구는 네 사람이니 모두 넷씩 그려 본다. 그림 아래쪽에 무엇을 그려 넣을까 하다가, 사랑·꿈·빛·웃음, 이렇게 네 가지를 적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철나무꾼 2013-07-09 22:59   좋아요 0 | URL
우와~!!!!!
사진만 좋은 줄 알았더니, 그림도 판.타.스.틱.하네요.
아웅~, 맞다.
우리말 안쓴다고 혼나기 전에 도망가야쥐~=3=3=3

숲노래 2013-07-09 23:3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그림 좋아하기를 바라면서, 또 아이들이 신나게 그림 그리기를 바라면서, 저도 스스로 즐겁게 그리는 그림일 뿐이에요 ^^;;;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큰아이한테 배운 느낌이 있어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도 모른답니다 ^^;;;
 

[시골살이 일기 15] 고샅길에서
― 두 아이 함께 바라보는 마을

 


  마실을 나가려 할 적에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섭니다. 아이들은 저 앞에서 콩콩 달립니다. 우리 집 앞 고샅길에서 마을 어귀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지만, 아이들은 이 내리막이 익숙합니다. 마을 할매나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 넘어질라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걱정없이 달립니다. 가끔 이 길에서 털썩 소리 내며 넘어지곤 하지만,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고샅길이 흙길이라면 넘어져도 무릎 까질 일 거의 없지만, 이제 흙길로 된 고샅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를 모는 마을 할배로서는 시멘트길이 낫다 여기고, 또 도시로 간 이녁 딸아들이 자가용을 몰고 오니 시멘트길로 닦여야 번듯하다고 여깁니다.


  고샅길이 흙길이었을 적에는 아이들 누구나 작은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금을 그으며 놀았습니다. 도시에서도 골목길이 아직 흙바닥이었을 적에는 누구라도 조그마한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네모를 그립니다. 작은 동그라미 그리면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는 뜻이거나 땅따먹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큰 동그라미를 그리면 잡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네모를 그리면 땅밟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나 골목과 고샅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바꾸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골목과 고샅이 흙길이면서 자동차 거의 안 다닐 적에는 골목도 고샅도 온통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이를 안 가르쳐 주어도 스스로 놉니다. 아이들은 책에서 배운 적 없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도 스스로 놉니다. 흙바닥이면 놀이바닥이고, 흙길은 놀이길입니다.


  시멘트 부은 논밭에서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흙으로 된 논밭일 뿐 아니라, 곱고 고소한 흙으로 이루어진 논밭일 때에 쌀이든 보리이든 감자이든 무이든 배추이든 싱그럽고 알뜰하게 거두어들입니다. 시골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고 시골 밭둑을 시멘트로 덮더라도, 논바닥과 밭바닥은 언제까지나 흙바닥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멘트로 덮인 고샅길과 골목길도 흙길로 돌려놓아야겠지요. 앞으로는 이 나라 어른들이 바보스러움을 깨닫든, 이 나라 아이들이 자라 ‘어른들 바보스러움’을 무너뜨리거나 달래면서, 지구별에 아름다운 흙길, 흙터, 흙밭, 흙누리 이루는 사랑을 펼쳐야겠지요.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과 다닌다

 


  아이들과 어디이든 다닌다. 그런데, 아이들 데리고 읍내마실만 다녀오더라도 온몸에 기운이 많이 빠진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재우기까지 기운을 참으로 많이 쓴다. 아이들 고단히 잠들고 나서 혼자서 느긋한 겨를을 누릴까 싶으나, 아이들 재우고 나면 내 몸에 있던 마지막 기운까지 함께 빠져나가서 도무지 버티지 못하기 일쑤이다.


  아이들하고 순천에 있는 책방으로 마실을 다녀온다. 이달 끝무렵에 순천에 있는 책방에서 사진잔치를 열기로 해서 이것저것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책방에서도 잘 놀고, 놀이터에서도 개구지게 논다. 한참 놀고 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오는 길에 둘 모두 깊이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는 내 무릎에 누이고, 큰아이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자도록 했다. 그러니까, 이러면서 나는 잠들 수 없다. 이날 따라 순천으로 놀러갔다가 고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 많아서, 맨 끄트머리 자리 겨우 얻었기에, 나는 힘들게 아이들 보듬으면서 고흥읍으로 돌아왔다.


  읍내에서 아이들 가볍게 먹을것 챙겨서 먹이고, 몇 가지 밑감을 장만한다. 그러고서 시골집 돌아가는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다시금 버스역 맞이방을 이리저리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이렇게 놀고도 집에 가서 더 논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자리에 눕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 잘 낌새가 없다. 가까스로 불러서 살살 달래며 재운다. 이듬날 아이들은 새로운 기운을 뽐내며 또 신나게 논다. 나는 기운이 돌아오지 않아 오늘 하루 내도록 드러누운 채 기운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많이 어렵다. 아침에도 낮에도 그저 드러눕기만 하고, 아이들하고 놀 힘을 못 낸다. 저녁을 앞두고 섬돌에 앉아서 비를 구경한다. 아이들 빗물놀이 시키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옷 젖도록 놀게 하고는 씻겨서 밥 먹이면 잘 잠들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실컷 빗물놀이를 하고도 기운이 넘쳐서 마루를 이리저리 달리면서 논다. 참 대단하구나. 그러나, 이토록 기운이 넘쳐야 아이답지. 기운이 못 넘치면서 자꾸 픽픽 쓰러지는 나는 아이다움이 하나도 없는 셈이지. 잘 노는구나. 너희 아버지도 얼른 기지개를 켜고 말끔히 일어서야겠다.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은 어른입니까 26] 놀이터읽기
― 아이하고 놀고 싶다면

 


  아이하고 놀고 싶다면 놀면 됩니다.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아이 손을 잡으며, 아이랑 나란히 뒹굴면 됩니다.


  놀이공원에 가는 일이 놀이가 아닙니다. 놀이공원에 간다면 ‘놀이기구 타러 나들이’를 가는 셈이지, 놀이가 아닙니다. 바깥밥을 먹으러 나간다든지, 놀이터에 간대서 놀이가 아니에요. 함께 놀아야 놀이입니다.


  내가 1975년에 태어나 자란 인천에도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무렵 인천에 있던 놀이터는 제법 컸습니다. 아이들이 많으니 놀이터도 클밖에 없을는지 모르지만, 예전과 요즈음은 놀이터를 마련하는 어른들 생각이 사뭇 다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전에는 이런저런 놀이기구가 많이 없더라도 좋아요. 널따란 모래밭이나 흙땅이기만 하면 놀이터입니다.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 아닌 데라면 놀이터예요.


  아이들은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조차 바닥에 분필이나 돌로 금을 그으며 온갖 놀이 즐기기도 하지만, 참으로 빛나는 아이들 놀이는 바로 모래밭이나 흙땅이나 숲이나 들이나 냇가에서 이루어집니다.


  놀이기구 아닌 흙을 만지고 나무와 나뭇가지를 만지며, 풀잎과 꽃잎을 만지면서 아이들이 놉니다. 놀이기구라 한다면, 철봉에 매달리고 그네를 밟으며 미끄럼틀과 구름사다리를 원숭이처럼 척척 붙어서 옮겨다니면서 놉니다.


  넘어지거나 자빠지더라도 머리가 안 깨질 흙이나 모래로 이루어진 터가 놀이터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풀밭과 숲에서 아이들이 넘어진들 머리가 깨질 일 없습니다. 냇가에서라면 돌에 머리를 박을는지 모르는데, 잘 살피면 아이들은 냇가에서 외려 잘 안 넘어집니다. 냇가에서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지가 젖겠지요.


  손과 발이 흙과 모래와 풀을 느끼면서 아이들이 자랍니다. 손과 발로 나무를 타고 그네 줄을 붙잡으며 아이들이 큽니다.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면서 아이들이 자랍니다. 저희끼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이 아이들이 큽니다.


  놀이터쯤 되려면, 아이들이 서너 시간 쉬지 않고 놀 만한 데여야 놀이터입니다. 너덧 시간 대여섯 시간,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잊고, 배고픔마저 잊으면서 폭 빠져들 만한 데일 때에 놀이터입니다.


  그럴듯한 놀이기구 덩그러니 놓는대서 놀이터가 되지 않아요. 이런 데는 ‘놀이기구터’예요. ‘놀이터’라 말할 수 없어요. 놀이기구 잔뜩 놓은 놀이기구터에서 아이들이 놀지 못합니다. 궁금하다면 놀이터와 놀이기구터에 아이들을 풀어놓아 보셔요.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부를 때’까지 하염없이 새 놀이를 빚으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터에서 몇 분쯤 이것저것 만지고 타고 하다가 이내 따분해 합니다.


  놀이기구터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놀이기구터에는 아이들 스스로 생각날개 펼치도록 이끌 새로움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꽉 짜 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놀이기구터에서 아이들이 할 놀이란 없습니다. 무엇을 새로 빚을 수 있나요. 아이들이 놀이기구터에서 무엇을 새로 빛낼 만한가요.


  들판에 나뭇가지 굴러다녀도 이 나뭇가지를 놀잇감 삼아 수많은 놀이를 새롭게 빚는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놀이기구터에는 나뭇가지 없어요. 돌멩이도 없어요. 시늉으로만 바닥에 깐 모래밭에 아무나 아무렇게나 들락거리면, 이런 모래밭에서 아이들이 모래놀이 할 수 없어요. 게다가 놀이기구터 바닥을 모래조차 아닌 인공소재로 깔면, 이런 데에서 아이들이 맡거나 느낄 냄새는 화학약품이 되고 맙니다.


  어른들 스스로 즐겁게 놀며 어울리는 삶이라 한다면, 아이들 놀이터를 엉터리로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 스스로 즐겁게 놀 줄 모르고, 즐겁게 놀지 않는 탓에, 아이들 놀이터를 바보스레 만드는구나 싶어요.


  아이하고 놀고 싶다면 아이하고 신나게 뛰놀아요. 아이들하고 놀이기구터에 엉금엉금 찾아가지 말고, 놀이기구터에 갔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놀이기구를 만지도록 하셔요. 이건 어떻게 타고 저건 어떻게 타라고 하나하나 말하지 마셔요. 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서 타도록 하셔요. 그나마 놀이기구터에서조차 아이들 스스로 생각을 짓도록 이끌지 못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야 하나요. 놀이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놀이를 찾아내어 개구지게 몸을 놀리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이끄는 배움터요 삶터이자 만남터예요. 이 놀이터에 어른들 섣불리 끼어들지 말 노릇이에요. 아이와 똑같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할 마음이 아니라면, 놀이터에 어른들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마셔요.


  걸리적거린답니다. 다른 아이들 노는데, 어른들이 당신 아이 손을 붙잡고 그네를 태우느니 미끄럼틀을 태우느니 하면, 참 걸리적거린답니다. 아이들과 ‘놀아’야지, ‘주말에 놀아 준다’는 생각으로 놀이기구터에 찾아가지 마셔요. 아이들도 재미없어요. 어른인 당신도 재미없지요? ‘아이들과 놀아 주려’고 하니 얼마나 따분하겠어요?


  놀이는 놀이터나 놀이기구터에 가야 할 수 있지 않아요. 놀이는 언제 어디에서나 할 수 있어요. 집에서도 방에서도 이부자리에서도 하지요. 방바닥에서도 마룻바닥에서도 얼마든지 하는 놀이예요. 아이들과 즐길 놀이를 어른들도 생각해야지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며 노래하도록 북돋우는 놀이를 어른들도 생각을 빛내어 하나하나 새롭게 일구어야지요.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