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2 (2014.8.17.)



  이틀째에 ‘한국말사전’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이 그림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적에 도마질을 하는 눈높이에 붙이기로 한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늘 ‘한국말사전’이라는 이름을 바라볼 생각이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되새기려는 뜻이다. 내 마음속에 이야기가 곱게 드리우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틀째 그리는 그림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다. 옆에서 지켜보는 네 살 산들보라가 “나 이거 좋아. 나 나뭇잎 좋아.” 하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 위쪽에 나뭇잎을 잔뜩 그려 넣었다. 온갖 빛깔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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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함께 보는 영화



  시골 고흥에는 극장이 없기도 해서 영화를 함께 보러 나들이를 갈 수 없기도 하지만, 요즈음 한국 극장에 걸리는 영화치고 일곱 살 어린이와 네 살 어린이가 함께 가서 볼 만한 작품이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영화란, 맑으면서 밝은 영화란, 착하면서 참다운 영화란, 이야기가 흐르면서 노래가 넘실거리는 영화란, 한국에서 얼마나 될까.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이를 꿈꾸는 영화를 빚어서 선보이려는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는 얼마나 있을까.


  시골집에서는 셈틀을 켜서 넷이서 함께 영화를 본다. 두 아이와 함께 보면서 어버이로서 마음속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를 고른다. 두 아이뿐 아니라 두 어버이 가슴속에 이야기빛이 자라서 삶에 무지개가 드리운 뒤, 차근차근 새로운 길을 열도록 이끌 만한 영화를 살핀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떤 영화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을까? 이 나라 방송국에서 흐르는 온갖 연속극이나 운동경기와 연예인 풀그림 들은 얼마나 아이한테 보여줄 만할까? 이 나라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흐르는 온갖 대중노래는 얼마나 아이한테 들려줄 만할까? 일본영화 〈별이 된 소년〉을 넷이서 함께 보기 앞서 생각에 잠긴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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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1 (2014.8.16.)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창 쓴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를 받아들일는지 손사래를 칠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글꾸러미를 마무리지어서 보냈다. 모든 길이 사랑스레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널찍한 나무판을 평상에 깐다. 늦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등줄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말사전’이 곱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을 그림에 담기로 한다. 다섯 글자를 쓰고 난 뒤, 글자마다 별꽃으로 둘러싼다. 사마귀, 제비, 나비, 잠자리를 하늘빛으로 그린다. 이 다음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후박나무 가랑잎이 그림종이에 톡 떨어진다. 그렇구나. 끄트머리가 벌레를 먹은 후박잎을 그린다. 후박잎 안쪽을 채우고 나서 사랑(하트)을 그린다. 사랑 곁에는 숲(별)을 그린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여는 첫 밑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1)’를 그린다. 두 글자에 노란 꽃과 빨간 꽃을 그린다. 무지개 물결이 치고 별비가 내리는 데까지 그리는데, 뒤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뭔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는데 아무래도 사람 소리이다. 누가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왔나 싶어 가 보니, 우리 집과 돌울타리 사이로 고추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아저씨가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돋은 무화과나무를 낫으로 벤다. 뭐 하는 짓인가? “뭐하세요?” 한 마디 여쭌다. 우리 집 돌울타리가 무화과나무 때문에 아래쪽으로 무너져 떨어졌단다.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다 바닥에 있던 돌이거든요? 짜증을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울타리에서 그 아저씨네 밭으로 고개를 내민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손으로 꺾는다. 무화과나무는 벤들 자른들 죽지 않는다. 외려 더 줄기가 힘차게 뻗는다. 저희 집 나무도 아니면서 함부로 낫으로 베는 이런 사람이 우리 집이든 뒤꼍이든 함부로 못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맨손으로 척척 무화과를 꺾는다. 무화과한테 마음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그런데 이웃집 밭으로 고개를 내밀지 말고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어야지.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어. 사나운 곳에 가지 말자. 예쁜 곳에서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화과나무 쉰 그루 남짓 꺾었다. 그러나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은 아이들은 모두 살렸다. 마음이 아파 그림을 마무리짓지 않고 이튿날 마무리짓기로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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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아직 잠을 깨지 않을 무렵 글을 쓰고는, 아이들이 일어난 뒤 천천히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풀을 뜯는다.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개구지게 논다. 밥을 먹고 밥상을 치우며 설거지를 한다. 노는 아이들이 밥그릇을 그대로 두면 밥상을 한참 뒤에나 치울 수 있다. 여름 막바지 햇볕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늦여름이어도 아침마다 햇볕이 뜨겁다. 그래도 늦여름이기에 해가 기울 무렵부터는 산들산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언제나처럼 맞이하는 아침이요 언제나처럼 차려서 먹는 밥이다. 그렇지만, 어느 하루도 똑같은 밥이나 이야기는 없다. 늘 다르게 맞이하는 하루요 삶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자라고, 어버이도 날마다 자란다.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서로 마주보고 사랑하면서 날마다 자란다. 날마다 자라지 않는다면 삶에 노래가 흐르지 못한다. 매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늦여름을 돌아본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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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9] 풀과 농약과 아이들

― 왜 시골에 아이들이 없을까



  풀을 싫어하는 시골이 되면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골이 되면 농약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을 시골로 다시 데려오려면 풀을 사랑해야 합니다. 농약을 멀리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늙은 할매와 할배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온통 농약바람입니다. 어느 시골에서나 끔찍하게 비닐을 쓰고 태우며 파묻습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어느 시골이든 풀을 끔찍하게 싫어해요.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앞날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온통 농약투성이로 지내면서 비닐로 온 밭뙈기를 덮다가 끝없이 태우는 시골에는 어떤 앞날이 있을까요. 이런 시골에 아이들이 얼마쯤 남는다 하더라도, 무슨 빛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지내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유기농’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유기농이란 무엇일까요? 일본 한자말 ‘有機農’은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일구는 일을 가리킵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을 쓰면 안 되고, 비닐을 쓰면 안 됩니다. 여기에 항생제나 비료를 모두 안 쓸 때에 ‘유기농’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시골이 농약과 비닐과 비료와 항생제 범벅입니다. 오늘날 여느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 여느 어버이가 ‘먹이고 싶지 않은 곡식이나 열매’입니다.


  아이들이 도시에만 몰립니다. 그러나 도시에 몰리는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도시에 가두기만 할 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도시는 빈터가 없고 쉼터가 없으며 놀이터도 일터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곳에서 모든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풀이 자라야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듭니다. 풀이 자라야 나무가 튼튼히 섭니다. 풀이 자라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포근합니다. 풀이 자라야 풀잎을 꺾어 풀피리를 불고, 풀꽃을 따서 풀꽃반지를 낍니다.


  풀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풀이 없는 데에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시골은 풀을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터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기를 바란다면, 앞으로 시골에서는 농약을 걷어치워야 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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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8-1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박한 땅에 제일 먼저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아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살아가니까 풀이 잘 자라는 시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되네요!

숲노래 2014-08-15 05:50   좋아요 0 | URL
아스팔트를 깔아 자동차가 다닐 길이 아닌,
풀이 돋으며 아이들이 뛰놀 터가 되도록
우리 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