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고마운 아이들



  하루 내내 신나게 뛰논 아이들이 곧 곯아떨어진다. 오늘은 저녁 여덟 시가 안 되어 두 아이 모두 바로 잠든다. 팔과 다리와 몸과 머리를 꾹꾹 주무른다. 작은아이는 한참 주무르는 사이에 꿈나라로 간다. 큰아이는 쉬를 누고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이내 잠든다. 이 아이들 사이에서 함께 누워서 자고 싶기도 하지만, 새롭게 기운을 내어 책상맡에 앉는다. 이 아이들 앞날을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엮는 ‘새 한국말사전 원고’를 쓴다. 요 며칠 사이 ‘어리석다’와 ‘멍청하다’라는 낱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실마리를 푼다. ‘멍하다’와 ‘맹하다’를 함께 떠올리면서 차근차근 느낌과 쓰임새를 가누어 본다. 이렇게 한 뒤, ‘어설프다’와 ‘엉성하다’와 ‘설다’와 ‘서툴다’와 ‘섣부르다’를 한묶음으로 다루어 새롭게 실마리를 연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혼자 절집이나 외딴집에 틀어박혀서 머리를 싸맨다면 ‘새 한국말사전 원고’를 더 빨리 더 알차게 더 힘껏 엮을 수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볼 일이 많고 쳐다볼 일이 많으면 더 느리거나 더 엉성하거나 더 힘이 들까?


  나는 아무래도 아이들 목소리를 먹으면서 기운을 내지 싶다. 아이들 웃음과 노래를 들으면서 기운을 차리지 싶다.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차리는 밥을 먹고, 아버지가 씻기며,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히고, 아버지가 이불깃을 여미는데다가, 아버지가 자장노래를 부르지만, 내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뿌려서 가꾸는 몫을 아이들이 싱그럽게 북돋아 주는구나 싶다. 언제나 고맙다.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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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졸업장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분이 쓴 책이나 글을 거의 안 읽습니다. 어쩐지 나한테는 안 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쓴 책이 새로 나와도 궁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책이 새로 나온 줄 아예 모릅니다.


  엊그제인데, 이웃 한 분이 한 가지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이 1980년대에 ‘전두환 찬양 기사’를 무척 많이 썼고, 2000년대가 넘은 뒤에는 ‘여성비하’와 ‘인종차별’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놓았다고 알려줍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전두환 찬양 기사’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참으로 그악스러운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놓고 소설쓰는 김훈을 비판하거나 나무라거나 꾸짖은 사람은 매우 드문 듯합니다.


  그나저나,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은 2000년 10월 5일치〈한겨레21〉하고 만난 자리에서 아마 처음으로 ‘전두환 찬양 기사 자기고백’을 했지 싶습니다. 이 때문에 〈시사저널〉 편집장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다는데, 2002년에 〈한겨레〉 사회부 기자로 특별채용이 되어요. 조금 더 알아보니, 소설쓰는 김훈은 〈한겨레〉에 특별채용으로 들어간 일을 나중에 이야기하는데, 신문사에 들어가니 이녁더러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증명서’는 없고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는 있으니 그것을 주면 되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소설쓰는 김훈은 대학교에 살짝 발을 담근 적이 있으나 그만두었기에 ‘고졸 학력’입니다.


  이 대목을 알아보고 나서 문득 내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나도 ‘고졸 학력’입니다. 나는 1999년 2월에 〈한겨레〉 이사 한 분한테서 ‘특별채용’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무렵까지 〈한겨레〉에 없던 특별채용이라고 했는데, ‘신문배달을 하던 젊은이를 기자로 채용’하려고 했어요. 그때에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나한테 ‘대학교 졸업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교육이 너무 부질없고 제대로 학문을 닦지 않는다고 여겨 자퇴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한겨레는 학력제한을 두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겨레〉에 못마땅하게 여긴 대목이 있었어요. 특별채용을 한다니 무척 기뻤습니다만, 입사시험 자격으로 토익 점수를 내라 했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여쭈었지요. 학력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면서 토익 점수를 내라고 한다면, 지원자는 처음부터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는 셈 아니냐고, 영어 시험을 보려 하면 ‘1:1 면접’으로 영어 시험을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여쭈었습니다. 특별채용이니 입사시험을 안 치러도 되지만, 나처럼 ‘고졸 학력’으로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테니, 그런 조항이 사라져야 한다고 느꼈어요. 졸업장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은 솜씨로 서류를 내고 입사시험을 치를 수 있어야 올바르니까요. 그때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젊은이 말이 맞는데, 회사 규칙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마운 제안을 받고 나서 곰곰이 헤아렸습니다. 신문배달을 이제 그만두고 신문기자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었습니다. 엉성한 회사 규칙은 회사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 대목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토익 점수’를 바라는 일은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학력제한이 없다는 말은 허울입니다. 허울을 스스로 없애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신문이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신문이 될 수 없다면, 〈한겨레〉가 아무리 올바른 목소리로 ㅈㅈㄷ신문을 나무라거나 꾸짖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올바른 삶이나 넋이 못 됩니다.


  “말씀이 무척 고맙지만, 아무래도 고졸 학력을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직이지 싶어서, 이사님 제안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한겨레〉 기자가 되는 꿈은 접어야겠습니다. 오늘 술이나 한잔 사 주셔요. 신문배달 월급으로는 술도 못 사 마십니다.”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은 ‘고졸 학력’이면서 어떻게 신문기자 노릇을 했을까요? 1970년대 신문사에서는 학력제한이 없었을까요? 소설쓰는 김훈은 그무렵에 특별채용으로 뽑혔을까요? 글을 잘 쓰기만 하면 누구라도 신문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


  졸업장은 사람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자격증은 사람을 밝히지 못합니다. 졸업장은 학교를 마친 증명일 뿐입니다. 학교를 마쳤기에 더 많이 배우거나 잘 알지 않습니다. 자격증이 있기에 기계를 더 잘 다룬다든지 어떤 지식이 더 빼어나지 않습니다.


  아기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졸업장을 묻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어버이한테 자격증을 묻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있어야 문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자격증이 있어야 신문을 만들어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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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뜨개옷 자랑



  2014년 9월 8일 아침, 밥상을 차리느라 부산한 아버지는 부엌에서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뚝딱뚝딱 밥을 짓는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는 마루와 부엌과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면서 논다. 이러다가 문득 일곱 살 누나가 동생을 보며 “(내 옷에) 하트 있다!” 하면서 자랑을 한다. 이때 네 살 동생은 제 옷을 내려다보고 돌아보며 살짝 생각을 한 끝에, “나는 구멍이 있다!” 하면서 자랑을 받아친다.


  그래, 산들보라야, 네 옷에는 구멍이 있구나. 네 어머니가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라고 구멍이 숭숭 난 뜨개옷을 마련해 주었구나. 너한테는 뜨개옷이 ‘구멍옷’이네. 가을이 무르익는 요즈음에도 네 살 산들보라는 이틀이나 사흘마다 구멍옷을 챙겨 입는다. 빨아서 말리는 동안에만 구멍옷을 못 입는다.


  가만히 보면, 구멍옷, 그러니까 뜨개옷은 여러모로 입기에 좋다. 여름에는 시원할 뿐 아니라, 빨래를 하면 가장 먼저 마른다. 다만, 뜨개옷은 겨울이 되면 가장 늦게 마른다. 겨울에는 따뜻한 뜨개옷인 터라 실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두껍기도 하니까, 따뜻한 겨울볕을 이틀 먹여야 비로소 뜨개옷 한 벌이 다 마른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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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와 이불



  아이들이 아직 기저귀를 댈 무렵, 밤마다 기저귀갈이를 하느라 삼십 분이 한 차례씩 잠을 깨었는데, 두 아이 모두 기저귀를 뗀 뒤에도 밤잠이 느긋하지 않다. 요즈음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번쩍번쩍 잠을 깬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눌 적에 언제나 아버지를 깨운다. 아니, 아버지를 깨우지는 않는데, 큰아이가 너무 졸린 탓에 밤오줌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기에 곁에서 얼른 잠에서 깬 뒤 쉬를 누인다. 때로는 잠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기에 문득 알아채고는 후다닥 일어나서 쉬통으로 데려간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구나 하고 느끼면서 잠을 깬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지 어느 만큼 흐르면 꼭 잠이 깬다. 그래서 두 아이 이불깃을 새로 여민다. 이불깃 여미기는 거의 한 시간에 한 차례쯤 한다.


  조금 더 크면, 두 아이가 더 자라면, 앞으로는 밤에 이불깃 여미느라 잠을 깰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빈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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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을 끓이다가



  아침에 함께 먹을 밥으로 미역국을 끓이다가 거의 다 끓을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찬찬히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고 무채무침을 하면서 ‘다 잘 되는데 무엇 하나를 아직 안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역국 간을 볼 즈음 비로소 깨닫는다. 미역을 안 자르고 끓였네. 부랴부랴 가위로 석석 자른다. 팽이버섯도 썰어서 넣는다. 국그릇에 된장을 푼다. 미역국 불을 끄고 난 뒤 된장국물을 붓는다. 된장국물을 고루 섞은 뒤 다시 간을 본다. 아, 내가 끓인 된장미역국이면서도 참 맛있네. 나는 이 맛과 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을까. 우리 할머니한테서? 더 먼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서?


  밥도 알맞게 뜸이 들었고 국도 맛나다. 무채무침을 먼저 밥그릇 바닥에 깔고 나서 밥을 얹고, 달걀을 네 조각으로 갈라 밥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밥상에 차곡차곡 옮긴다. 국을 뜨고 아이들을 부른다.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저쯤은 스스로 놓아야지.


  미역국을 끓인 날은 괜히 즐겁다. 예부터 미역국은 아주 뜻있게 끓였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리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를 기리면서,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즐거움을 기리면서, 미역국을 으레 끓였을 테니, 여느 날에 미역국을 끓일 적에도 오늘도 내 새로운 생일로 여길 만하다. 즐거운 밥잔치이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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