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머니 돌아오는 날



  곁님이 미국으로 람타공부를 하러 떠난 지 며칠쯤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곁님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집이랑 도서관을 치우자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곁님이 보름쯤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어설프게 치운 채 맞이한다. 그래도 이럭저럭 치우고 갈무리를 했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더 치우고 갈무리를 하면 한결 말끔한 살림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제쯤 소금이 떨어졌다. 소금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비가 그치지 않아 마실을 못 간다. 오늘 아침에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오락가락하면서 빗줄기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영화를 하나 틀어 주고 혼자 빗길을 자전거로 달려서 면소재지에 다녀와야 할까.


  곁님이 군내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리면, 아이들은 깜짝 놀라겠지. 서로 어떤 얼굴이 될까. 스무 날 만짓만에 만나는 어머니를 아이들은 어떻게 맞이해 줄까. 4347.8.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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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8] 왜 시골에 왔느냐 하면

―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려고



  엊그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합니다. 태풍이 올라오니 모두들 집단속과 문단속을 잘 하랍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 없도록 하라는 얘기가 흐르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얘기가 떠돕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면사무소에서 두어 차례 더 방송을 합니다. 참말 태풍이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태풍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태풍은 한 해에 한두 차례쯤 이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풀도 나무도 드센 바람을 한두 차례쯤 맞으면서 한결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더욱 씩씩하게 줄기와 가지를 뻗거든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가 몇 해만 살다가 꺾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를 비롯해 감나무도 모과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매화나무도 탱자나무도, 모두모두 천 해쯤 너끈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천 해쯤 살아가자면, 드센 비바람을 해마다 한두 차례 맞이하면서 더욱 튼튼하면서 야무진 넋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줄기가 짧고 알곡이 많이 달리는 나락’을 심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입니다. 농협에서는 이런 나락을 ‘개량종’이라 말하지만, 이 볍씨는 개량종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할매와 할배가 ‘개량종 나락 볍씨’를 거두어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거든요. 해마다 농협에서 볍씨를 새로 사다가 심어야 비로소 알곡을 맺습니다.


  ‘개량종’이라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한 뒤 이듬해에 다시 심어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은 한 번 심으면 새로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하지 못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온 나라 들판에서 자라는 나락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인 대목이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라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이 자라는 들에다가 농약을 엄청나게 많이 치는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태풍은 한 차례 휘몰아치다가 지나가요. 그렇지만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고 땅을 망가뜨립니다. 들에 뿌리는 농약은 우리 몸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땅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살고 싶기에 시골로 와서 살아가면서, 도서관을 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들자면 여럿 있을 텐데, 맨 첫째로 꼽는 까닭은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고 싶다’입니다.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내 넋을 파랗게 밝히고 싶습니다. 내 사랑을 파랗게 가꾸고 싶습니다. 내 가슴속에 파란 별이 자라도록 돌보고 싶습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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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좋아요



  작은아이가 곧잘 아버지 무릎에 안긴 뒤 나즈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졸려서 저녁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기 앞서, 읍내로 군내버스를 타고 마실을 가는 길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노래를 하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들기 앞서, 작은아이는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 이야기한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아버지 옆에 누우며 곧잘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두 아이는 함께 말하는 일이 없다. 서로 눈치를 보지는 않을 테지만,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따로 말하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따로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에 있을 적에도 어머니 귀에 대고 “어머니가 좋아요.” 하고 속닥속닥 말하곤 한다.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인 아이들인데, 두 아이 모두 다리에 힘이 붙는다면서 마실길에 늘 멀찌감치 앞장서서 달리는데, 멀리 앞장서서 달리면서도 저 앞에서 “아버지 얼른 와요!” 하고 부른다. 쳇, 아버지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니 얼른 못 가잖니. 너희가 기다려 주어야지.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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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마중하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마중한다.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에서 아침에 놀다가 마을 어귀로 간다. 읍내에서 군내버스가 들어오는 때에 맞추어 간다. 빗방울이 조금 듣는다. 두 아이더러 손과 낯을 샘터에 가서 씻으라 얘기한다. 다른 날보다 5분쯤 늦게 버스가 들어온다. 아이들은 군내버스에서 내리는 손님이 누구인지 아직 알아보지 못한다. 이렇게 마을 어귀에서 마중을 나온 일이 드물기 때문일까. 앞으로 여러 손님을 마중하고 보면,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차츰 알아보거나 알아챌 수 있겠지.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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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솜노래 (2014.7.24.)



  솜씨를 사랑하는 이웃한테 주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 솜씨란 솜씨이고, 솜과 씨이다. 두 손을 모두어 실타래를 엮고, 두 손으로 엮는 실타래 따라 파랗게 별이 빛난다. 별이 빛나는 두 손으로 실타래를 엮으니 알록달록 어여쁜 별빛이 이 땅에 드리운다. 새가 날고 나무가 자라며 나비가 춤춘다. 이곳에서 짓는 삶이란 어떤 꿈이 될 수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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