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쓴 글을 이제서야 걸친다.


..


혼자 나서는 길



  서울을 거쳐 인천을 들러 음성에서 아버지를 뵙고는 바로 고흥으로 돌아오는 마실을 떠난다. 아이들과 갈까 하다가 너무 힘든 길이 될까 싶어 혼자 대문 열고 나오는데, 어쩐지 서운하다. 혼자 다니지 않은 지 일곱 해째이니 여러모로 낯설다. 그러나 기운을 내야지. 즐겁게 볼일 마치고 웃으며 돌아가자.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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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익 배달



  고흥에서 음성까지 케익을 나른다. 케익은 음성군 금왕읍 동큐제과에서 산다. 음성에 케익을 사들고 갈 적에는 으레 이곳을 들른다. 아버지한테 일흔한 번째 생일이다. 이제는 초를 꽂기에 많아 숫자초를 쓴다.

  나는 아버지한테 하루 늦은 생일케익을 이틀에 걸쳐 찾아가서 드리고, 아버지는 이녁 아들을 청주까지 태워 주신다. 어머니가 싸 주신 굴비꾸러미를 들고 고흥으로 돌아가자. 모두 나를 기다를 테지. 아버지도 천천히 잘 들어가시겠지. 4347.9.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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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을 멈추다



  엊그제부터 부채질을 멈춘다. 아이들을 저녁에 재우면서 부채질을 더는 안 한다. 오늘 새벽에는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아이들한테 덮어 준다. 바야흐로 가을에 들어섰다고 느낀다. 한가위가 구월 첫무렵인 만큼 올해는 가을이 이르구나 싶다. 그런데, 가을이 이렇게 이른데 비가 잦네.


  날이 덥지 않고 바람도 선선하니, 부디 한가위를 지나 구월 한 달에는 비가 더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해가 쨍쨍 나서 들마다 열매가 잘 익기를 바라고, 잘 익은 열매를 거둔 뒤 햇볕에 바짝바짝 말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가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어 아이들이 신나게 마당놀이를 누릴 수 있기를 기다린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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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다가 웃는 아이



  산들보라가 지난밤에 자면서 까르르 웃는다. 두 차례 웃는다. 자다가 까르르 웃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잠이 깬다. 벌떡 일어나서 두리번거리는데 깜깜한 밤이다. 뭔 일인가 하고 살피니, 산들보라가 자면서 웃는 소리였다. 너 참말 꿈에서 즐겁게 노는구나. 그래, 그렇게 하면 재미있지. 잠을 일찍 자면 그렇게 신나는 일이 있단 말이야. 4347.8.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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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머리카락



  머리숱이 그리 안 많은 채 태어났습니다. 우리 식구 가운데 왜 나만 머리숱이 적을까 하고 생각하며 어릴 적부터 여러모로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머리숱이 적어서 힘들 일이란 없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내가 머리숱이 적다고 해서 누가 나를 쳐다볼 일이 없으며, 내 머리카락 숫자를 셀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 적은 머리숱을 쳐다볼는지 몰라’ 하고 혼자 생각할 뿐입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숱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이렇게 빠지면 어떡하나’ 하고 여겼습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참말 머리숱이 훨씬 줄어들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머리숱 걱정으로 살던 어느 무렵, 아마 서른 살 언저리였을 텐데, 머리숱이 줄고 줄어 자꾸 줄면 ‘머리카락을 다 밀고 살면 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숱이 자꾸 줄어든다고 걱정할 일 없이, 머리숱이 줄어들면 민머리로 살면 됩니다.

  그러고는 이때부터 거울을 안 보고 삽니다. 집에도 거울을 안 둡니다. 나는 내 머리숱도 안 보지만, 내 낯도 안 봅니다. 내 몸도 안 봅니다. 머리숱이라는 데에 마음을 빼앗길수록 정작 내 모습이 무엇인지를 놓친다고 느꼈어요.

  이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알아차렸습니다. 많이 줄었구나 싶던 머리숱이 꽤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수북해지지는 않았으나, 예전에는 가까운 이웃이나 동무가 “머리숱이 많이 줄었네.” 하고 말하곤 했는데 “얘, 네 머리숱 다시 늘었네.” 하고 알려주었습니다.

  내 손등과 발등을 뒤덮은 사마귀하고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손등에 돋은 사마귀는 들여다보고 건드릴수록 늘어날 뿐입니다. 손등에 돋은 사마귀는 안 들여다볼 뿐 아니라 잊어버리면 사라집니다. 머리숱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자꾸 쳐다보니 머리숱은 차츰 나한테서 사라집니다. 머리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걸어가면 머리숱이 돌아옵니다. 4347.8.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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