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119


《김현희의 하느님》

 조갑제·정호승 글

 고시계

 1990.8.1.



  조갑제 씨는 처음부터 ‘조선일보·월간조선·극우’하고 한몸이지 않았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책을 냈으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같은 책도 냈습니다. 다만 ‘조선일보’ 글밥을 먹자 휙 돌아섰을 뿐입니다. 이 조갑제 씨하고 꽤 오래 일하면서 〈월간조선〉 차장으로 있던 시인이 정호승 씨입니다. 198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뽑히고부터 1991년까지 일했다지요.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온 총칼수렁(군사독재) 한복판에서 배부르게 살았더군요. 어느 곳에 머물었든 대수롭지 않아요. 조갑제·정호승 둘이 낸 《김현희의 하느님》이란 책을 꽁꽁 숨기려 하더라도 이미 쓰고 펴낸 책이 사라질 턱이 없어요. ‘1980∼90’년대라는 총칼나라 한복판에서 ‘조선일보 기자’라는 이름쪽으로 글밥을 먹은 밑힘으로 이녁 이름을 드날리면서 무엇이 기쁨이고 사랑이고 슬픔이고 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조갑제 씨랑 함께 일한 나날’이 창피해서 숨겨야 한다면, 처음부터 함께 일할 까닭이 없었을 테지요. ‘왼오른 없이 글은 그저 글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떳떳이 ‘전두환·노태우 총칼나라 한복판에서 조선일보 기자 노릇’을 했던 일부터 글로 쓰면 되고요. 달콤하게 겉을 꾸민들 달빛이 되지 않습니다. 글에 한자를 유난히 쓰는 버릇도 조선일보스럽습니다. 정일권 씨도 이 책을 읽었네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처음에는 조갑제 단독으로 일본말로 냈다가

정호승이 글을 붙여 한글판을 새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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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숲노래 숨은책 2023.4.3.

헌책읽기 10 두 민족의 접점에서



  안 읽히거나 사라지는 책에는 안 읽히거나 사라지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지은이가 잘 쓰지 못 해서 안 읽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눈먼 종살이를 하는 탓에 스스로 안 알아보거나 못 알아볼 뿐 아니라, 허물벗기나 날개돋이를 아예 생각조차 안 하는 탓이 대단히 큽니다. 《두 민족의 접점에서》는 일본에서는 제법 읽힌 책이고, 한글판이 가까스로 태어난 책이되, 고침판이 한 벌 나오기는 했으나 까맣게 잊힙니다. 글님은 예나 이제나 꾸준히 한·일(일·한) 두 나라 사이를 마음으로 잇는 징검다리라는 길을 천천히 가꿉니다. 노래님 이상은 씨는 글님이 도와준 손길에 힘입어 새길을 걸을 수 있었다지요. 잊혀진 헌책을 2022년에 문득 장만했고, 곰곰이 읽고서 열여섯 살 큰아이하고 함께 읽었습니다. 이 책이 갓 태어난 1989년부터 2023년에 이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안 바뀌는 굴레를 엿보면서, 두 나라뿐 아니라 ‘두 나라에 깃든 사람들과 벼슬꾼과 먹물꾼’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1961년에 태어난 글님은 두 이름을 품습니다. 하나는 ‘강신자’요, 둘은 ‘쿄 노부코’입니다. 글님은 으레 한자 ‘姜信子’로 적으면서 ‘강신자’ 아닌 ‘쿄 노부코’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면서 두 나라와 두 살림과 두 마음을 하나로 어우르면서 사랑이라는 빛길을 걸어가려는 뜻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한글·한말을 익히려고 무던히 애쓰셨다는데, 적잖은 한글책을 일본글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자이니치’라는 일본 말소리를 쓰는 분이 많고, 남녘에서는 ‘재일교포’라 하고 북녘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 합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라면 ‘일본한겨레’라 하면 될 텐데요. ‘중국한겨레·일본한겨레·한국한겨레·미국한겨레’처럼 쓰면 되리라 봅니다. 뿌리를 내린 터전이 다르되, 이 푸른별에서 이루려는 뜻은 다툼질 아닌 어깨동무라면 ‘한겨레’를 넘어 ‘한사람·한사랑’으로 바라보면 될 테고요.



《두 민족의 접점에서》(강신자/송일준 옮김, 밝은글, 1989.10.10.)



대학을 1년간 더 다녔다. 소위 ‘취직차별’이 원인이다. 최초로 나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로 ‘차별’이 대두된 것이다. 아직 젊고, 일본에서 살아갈 일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나에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에서 거부되었다는 사실이 생사를 가름하는 문제로 다가왔다. (18쪽)


조선반도에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갖고 한글공부를 하고 있던 그 사람조차도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국과 재일한국인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뭘 알고 있겠는가. (27쪽)


“소중히 여겨 주어야 할 것이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시 친척들 사이에서 이 아이가 고통스런 입장에 서게 될지도 몰라. 자네밖에 없어. 그런 때에 딸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철저하게 지켜주어야 해.” 조용하게 천천히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말씀하셨다. (31쪽)


“하지만 우리들은 일본인, 한국인을 말하기 전에 같은 인간 아닌가요?” 내 물음에 차별철폐운동을 하고 있는 40세 정도의 남성은 대답했다. “넌 너무 어수룩해. 그런 건 현실도피의 말에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조선인이다.” (37쪽)


시어머니는 참으로 평범한 일본 여인. 줄곧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 분으로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가정주부보다 시야는 넓을지도 모른다. 매일 신문을 읽고 있어서 사회에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재일한국인의 지문날인거부를 눈여겨본 적도 없고 그 의미도 알 바 아니다. 원래 재일한국인을 본 적도 없는데다 말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참으로 미지의, 아들과 결혼할 여자로서 ‘나’라는 재일한국인이 나타난 것이다. (43쪽)


“왜 우리 집에서는 하나마츠리를 안 해, 엄마?”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습관이 없단다.” 참 시시하다고 생각하면서 언니들과 셋이서 손으로 히나사마를 만들었다 … 어린 마음에 ‘이건 손해잖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론 한국인 어린이를 위한 즐거운 행사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 없었다. (55쪽)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셨다. “선생은 안 돼. 공무원도 안 되고 보통 회사 같은 데도 안 되는 거야. 기술이라도 지니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어.” 냉정하게 설명해 주셨다. (61쪽)


이것으로 세 번째의 실수였다. 밖에 나갈 때는 외국인등록증을 잊지 말 것. 이것은 재일한국·조선인에게는 상식이다. (102쪽)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 그 두 개의 마이너스도 서로 곱셈을 하면 플러스가 된다. ‘민족’과 같은 딱딱한 의식이 아니라 ‘재일한국인다움’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149쪽)


아버지는 가와사끼고를 나와 쥬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법조인이 되려는 꿈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사법시험을 치를 자격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본 기업에서 재일한국·조선인을 고용하려는 곳은 없었다. (156쪽)


미싱기름 냄새가 나는 작업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어머니, 손톱이 기름에 까맣게 물든 채 반제품을 나르고 차를 운전하시던 아버지. (161쪽)


“저는 한국 국적입니다만, 입사 때 무슨 지장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가진 분이 입사한 예는 없읍니다. 귀화한 분은 있읍니다. 다만 전례가 없을 뿐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176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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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숲노래 숨은책 2023.4.3.

헌책읽기 9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98년 무렵, 둘레에서 신영복 님 책을 읽으라고 하기에 문득 집었다가 놀랐습니다. ‘한자말’ 아닌 ‘한문’이 그득하더군요. 《엽서》(너른마당, 1993)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도 영 손이 안 갔습니다. 이분 책을 찾아 주기를 바란 이웃이 많아 커다란 《엽서》이든 처음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든 헌책집에서 찾아 주기는 하되 여러모로 껄끄러웠습니다. 책을 찾아서 건네며 늘 여쭈었어요. “이분 글이 뭐가 좋나요?” “응? 글이 안 좋아?” “이분 글을 누가 읽을 수 있나요?” “왜? 글이 어려워?” “잘 보셔요.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먹물붙이가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이런 글을 어떻게 좋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줄거리가 좋다고 한들 이런 낡은 한문결을 그대로 종이에 찍어도 되나요?” “그건 좀 그러네. 그 대목은 생각해 보지 못 했네.” 얼추 스무 해 만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펼치지만, ‘천수고 불감불국(天雖高 不敢不局)’이라느니 ‘막견어은 막현어미(莫見於隱 莫顯於微)’라느니 ‘일우(一隅)’나 ‘필신기독(必愼其獨)’이나 ‘모필 서간문(毛筆書簡文)’이라느니, 누가 읽으라고 쓴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스럽고 일본스러운 낡은 말씨를 안 버린다면, 이 나라 이 땅 이 터 이 마을을 새롭게 가꾸면서 어린이한테 물려주는 길을 어질거나 슬기롭거나 참하거나 아름답게 일구지 못 하겠다고 느낍니다. 더구나 ‘구정·설’이란 낱말을 나란히 쓰면서 ‘민속의 날’이란 이름을 나무라는 대목은 좀 어이없습니다.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던 노태우만 겨레얼이 빠진 짓일까요? ‘신정·구정’이라는 뜬금없는 한자말이야말로 겨레얼이 빠진 먹물잔치 아닐까요? 책이름에 깃든 ‘-으로부터의 + 사색’은 그냥 일본말입니다. 우리말이 아닙니다. 우리말 ‘생각’을 쓸 생각이나 엄두나 마음이나 빛이나 넋이나 얼을 틔우지 않는다면, 아무리 뜻만 좋은 글을 쓰더라도 스스로 굴레(감옥)에 갇히고 이웃도 가두는 셈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햇빛출판사, 1988.9.1.첫/1993.6.1.중판1쇄)



천수고 불감불국(天雖高 不敢不局), 하늘이 비록 높아도 머리룰 숙이지 않을 수 없으며, 막견어은 막현어미(莫見於隱 莫顯於微), 아무리 육중한 벽으로 위요(圍繞)된 자리라 하더라도 더 높은 시점에 오르고 더 긴 세월이 흐르면 그도 일식(日食)처럼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인 것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일우(一隅)가 비록 사면이 벽에 의하여 밀폐됨으로써 얻어진 공간이지만, 저는 부단한 성찰과 자기부정(自己否定)의 노력으로 이 닫힌 공간을 무한히 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감으로써 벽을 침묵의 교사로 삼으려 합니다. 필신기독(必愼其獨), 혼자일수록 더 어려운 생각이 듭니다. (227쪽/1977.10.15.)


그뿐만 아니라 어머님께서 전에 써보내 주시던 모필 서간문(毛筆書簡文)의 서체는 지금도 제가 쓰고 있는 한글 서체의 모법(母法)이 되어, 궁체(宮體)와는 사뭇 다른 서민들의 훈훈한 체취를 더해 주고 있읍니다. 어머님은 붓글씨에 있어서도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280쪽/1983.9.21.)


오늘은 구정입니다. 달력은 29일 밑에다 ‘민속의 날’이라 적어 놓아서 설이란 이름에 담기어 오던 민중적 정서와 얼이 빠져버리고 어딘가 박제(剝製)가 된 듯 메마른 느낌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296쪽/1987.1.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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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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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36 손글씨



  숲노래 씨는 ‘손글씨’를 말한다. 영어로 ‘사인·캘리그래피’를 말하지 않고, 한자말로 ‘서명·수결·필기체’를 말하지 않는다. 손으로 글씨를 쓰니까 ‘손글씨’일 뿐이다. 달리 까닭이 없다. 손으로 글을 쓰는 삶을 고스란히 말로 옮기니 ‘손글씨’이고, 단출히 ‘손글’이라 하거나 ‘손글꽃’처럼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읊기도 한다. 숲노래 씨는 골목을 거닐기에 “골목을 걷는다”고 말한다. ‘골목여행’이나 ‘골목탐방’을 하지 않는다. ‘어반(urban)’을 다니는 일이 아니다. ‘어반스케치’를 하는 이들을 보면 이들은 모두 구경꾼인 줄 알아챈다. 왜냐하면, 골목사람은 ‘골목그림’을 그릴 뿐이거든. 시골에 살기에 ‘시골살이’를 한다. 시골사람은 시골사람일 뿐, ‘촌사람(村-)’이 아니다. ‘농촌’도 아니다. 그저 ‘시골’이다. 숲을 품기에 ‘숲’을 품는다고 말한다. ‘자연(自然)’도 아니고, ‘내추럴’도 아니다. 그런데 둘레를 보면 온갖 꾸밈말(미사여구)을 붙이려고 한다. 가만히 보면, 골목사람으로서 골목을 거니는 이들은 ‘골목’을 말할 뿐, ‘어반’이나 ‘구도심’을 말하지 않는다. 마을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마을’을 말할 뿐, ‘공동체·단체·집단·사회·국가’를 말하지 않는다. 시골이며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숲·시골숲’을 말할 뿐, ‘촌·자연·농촌·전원’을 말하지 않는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기에 나쁘거나 잘못일 까닭이 없다. 다만, 한자말이나 영어는 우리말이 아닐 뿐이다. 우리말은 수수하게 사랑으로 짝을 만나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서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수수하게 쓰는 말이다. 한자말이나 영어는 우두머리나 윗자리에 선 벼슬아치나 글바치가 쓰는 말이다. 자리에 따라 달리 쓰는 말이니 좋거나 나쁜 말은 아니다. 그저 ‘자리가 다른 말’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좋을까, 나쁠까? 이런 길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아무런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없다. 왜냐하면 ‘어깨동무’나 ‘손잡기’나 ‘두레’나 ‘품앗이’나 ‘함께살기’처럼 수수하게 오늘 이곳에서 살아내려는 말을 안 쓰고서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허울스러운 일본 한자말에 갇혔거든. 우리말 ‘왼·오른’이 있으나 굳이 ‘좌·우’나 ‘레프트·라이트’를 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잘못을 하거나 나쁘지 않다. 그저 한자하고 영어를 그들 혀나 손에 얹으면서 힘·이름·돈을 거머쥐려 할 뿐이다. 힘·이름·돈을 거머쥘 마음이 없이 삶·살림·사랑을 함께하려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왼·오른’을 이야기한다. 어린이를 보라. 어린이 가운데 누가 힘·이름·돈을 따지거나 붙잡으려 하는가? 힘·이름·돈을 움켜쥐거나 내세우려 하는 이들이 ‘우리말’을 안 쓸 뿐이다. ‘우리말’은 ‘순수한 우리말’도 ‘토박이말’도 아니다. ‘우리말 = 삶말·살림말·사랑말’일 뿐이고, 삶·살림·사랑은 숲에서 깨어난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려는 마음이라면 ‘숲말’을 쓰게 마련이요, ‘숲말 = 바람말·하늘말·바다말·들말·마을말·보금자리말(집말)’이다. 이리하여 숲노래 씨는 손글씨를 쓴다. 손으로 천천히 글씨를 그린다. 마음으로 스며드는 바람줄기를 글로 옮긴다. 마음으로 깃드는 햇볕을 글로 담는다. 마음으로 퍼지는 꽃내음에 풀빛을 글로 얹는다. 마음으로 품을 숲을 글로 고스란히 풀어낸다. 손이 아닌 손전화나 셈틀로만 글을 쓰려는 분이 둘레에 있으면 으레 붓(연필)하고 종이(수첩)를 내민다. “숲에서 온 종이랑 숲에서 온 붓으로 글을 그려 봐요. 그러면 누구나 스스로 꿈을 마음에 심어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을 가꿀 수 있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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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

수다꽃, 내멋대로 35 돈



  돈을 벌기는 쉽다. ‘나’를 버리면 ‘돈’은 쉽게 들어온다. ‘나’를 안 버리면 ‘돈’은 안 들어온다. 돈을 잔뜩 번 사람 가운데 ‘나를 안 버린 사람’이 있을까? 하나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돈을 벌려면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다운 ‘나’를 찾으려고 하는 이들은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쓰려는 길에 마음을 기울인다. 아무 데에나 돈을 뿌리는 이는 ‘나’를 버리면서 모은 돈이면서도 막상 ‘나’를 되살리는 길에조차 돈을 못 쓰는 셈이다. ‘나’를 나답게 가꾸려는 이들은 ‘나를 버리면서 모은 돈을 이녁 삶자리에서 치우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비로소 나를 되찾’는다. 아무렇게나 아무 데에나 뿌리는 돈으로는 나를 못 찾는다. 오직 스스로 사랑을 느끼는 자리에 돈을 써야 비로소 나를 되찾는다. 숲노래 씨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다만, ‘일’을 할 뿐, ‘직업·직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숲노래 씨가 어떤 일을 맡아서 해내고 나면 둘레에서 돈을 건네기도 하는데, 숲노래 씨는 일을 할 적에 오직 ‘나’로서 맡는 ‘일’을 바라볼 뿐이라, 일삯을 코딱지만큼도 안 쳐다본다. 숲노래 씨가 생각하는 일삯은 그저 하나이다. “저한테 일삯을 주시려면 1초에 1억 원을 주셔요.”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탠다. “1초에 1억 원이 비싸면 저한테 일을 맡기지 마셔요. 그리고 종이뭉치로도 1억 원이 있을 테지만, 마음으로도 1억 원이 있습니다. 일한 값을 돈으로 치르실 적에 종이돈으로 1만 원을 주셔도 좋고, 마음돈으로 1억 원을 주셔도 좋습니다.” 사랑을 값으로 헤아릴 수 없다. 사랑은 꽃 한 송이일 수 있고, 하늘에 드리운 구름무늬일 수 있다. 사랑은 웃음 한 자락일 수 있고, 노래 한 가락일 수 있다. 숲노래 씨는 일삯으로 때때로 노래나 춤을 바란다. “저한테 뭘 해주시고 싶으시면, 돈 말고 노래 한 가락 뽑아 주셔요. 춤 한 판 추어 주셔도 고맙고요.” 밑일삯(최저임금)을 값으로 매기는 일은 안 나쁘다고 여기지만, 오직 값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스스로 종살이에 갇힌다고 느낀다. ‘메시·김연경’한테 밑일삯만 주고 일을 맡길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메시·김연경’이다. 누구나 저마다 다른 ‘메시·김연경’이다. 셈값(숫자)으로만 바라보면 사람을 못 보고 사랑을 놓친다. 고마이 느끼는 마음을 셈값으로 돌리지 말자. 고맙다고 느끼면 언제나 사랑으로 헤아리면서 풀 적에 스스로 즐겁고 홀가분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빚은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나 여태 한 자락도 안 팔았다. 돈값으로만 바라보려는 분한테는 손글씨도 손그림도 건넬 마음이 없다. 사랑으로 바라보려는 분이라면 숲노래 씨도 나란히 사랑으로 바라본다. 다만, 돈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돈은 오직 돈일 뿐이다. 똥이 나쁜가? 아니다. 똥이 좋은가? 아니다. 똥은 오직 똥이다. 똥은 얼른 흙으로 돌아가려는 숨결일 뿐이요, 똥오줌은 잘 삭이고서 보내든 바로 땅한테 보내든 하면 될 숨결이다. 돈은 ‘돌다’라는 말밑을 품은 말결 그대로 ‘돌멩이처럼 뎅구르르 돌고돌면서 동글동글 동무로 만나는 자리에 주고받으면 되는 빛’ 가운데 하나이다. 돌고돌아야 할 돈을 돌리지 않고서 혼자 움켜쥔다면 ‘딱딱한 돌’로 굳는다. 돈을 못 벌어서 걱정하는 이들은 돈벼랑이나 돈수렁에 잠긴 채 스스로 뻣뻣하게 굳는다. 돈을 내칠 까닭은 없되, 움켜쥘 일도 없다. 흐르도록 돌릴 적에 빛나는 돈이다. 돈을 움켜쥐기에 ‘돌아(미쳐)’버린다. 돈을 돌리기에 서로 ‘동무’이다. 아주 쉽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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