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좋아요



  작은아이가 곧잘 아버지 무릎에 안긴 뒤 나즈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졸려서 저녁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기 앞서, 읍내로 군내버스를 타고 마실을 가는 길에 아버지 무릎에 안겨 노래를 하다가 어느새 까무룩 잠들기 앞서, 작은아이는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 이야기한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아버지 옆에 누우며 곧잘 “아버지가 좋아요.” 하고 말한다. 두 아이는 함께 말하는 일이 없다. 서로 눈치를 보지는 않을 테지만,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따로 말하고,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따로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에 있을 적에도 어머니 귀에 대고 “어머니가 좋아요.” 하고 속닥속닥 말하곤 한다.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인 아이들인데, 두 아이 모두 다리에 힘이 붙는다면서 마실길에 늘 멀찌감치 앞장서서 달리는데, 멀리 앞장서서 달리면서도 저 앞에서 “아버지 얼른 와요!” 하고 부른다. 쳇, 아버지는 짐을 잔뜩 짊어지고 가니 얼른 못 가잖니. 너희가 기다려 주어야지.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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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마중하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마중한다.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에서 아침에 놀다가 마을 어귀로 간다. 읍내에서 군내버스가 들어오는 때에 맞추어 간다. 빗방울이 조금 듣는다. 두 아이더러 손과 낯을 샘터에 가서 씻으라 얘기한다. 다른 날보다 5분쯤 늦게 버스가 들어온다. 아이들은 군내버스에서 내리는 손님이 누구인지 아직 알아보지 못한다. 이렇게 마을 어귀에서 마중을 나온 일이 드물기 때문일까. 앞으로 여러 손님을 마중하고 보면,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차츰 알아보거나 알아챌 수 있겠지.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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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솜노래 (2014.7.24.)



  솜씨를 사랑하는 이웃한테 주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 솜씨란 솜씨이고, 솜과 씨이다. 두 손을 모두어 실타래를 엮고, 두 손으로 엮는 실타래 따라 파랗게 별이 빛난다. 별이 빛나는 두 손으로 실타래를 엮으니 알록달록 어여쁜 별빛이 이 땅에 드리운다. 새가 날고 나무가 자라며 나비가 춤춘다. 이곳에서 짓는 삶이란 어떤 꿈이 될 수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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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알아보는 책



  아이한테 어떤 책을 던져 준다고 해서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함께 읽고 즐기려고 하는 책인지, ‘좋은 이야기 담았으니 이런 책을 보라’는 뜻으로 건네는 책인지 아이도 알아채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름다운 책을 알아볼까? 아이는 제 눈을 갑작스레 사로잡는 대중문화나 가벼운 상업만화에 더 이끌릴까, 아니면 시나브로 아름다운 책에 손을 뻗으면서 마음 가득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짓는 길로 접어들까?


  나는 믿는다. 믿을 뿐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서재이자 도서관에 아름다운 책을 차곡차곡 갖추면, 아이가 자라는 흐름에 따라 차근차근 아름다운 책에 손을 뻗으리라 믿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책을 놓고 보면 서재와 도서관을 아름답게 가꿀 노릇이다. 집을 놓고 보면 방과 마루와 부엌과 마당을 아름답게 가꿀 노릇이요, 우리 보금자리가 숲이 되도록 돌볼 노릇이다.


  달리 할 일은 없다. 밑틀을 갖추면 된다. 달리 해야 할 일은 없다. 푸르게 우거진 숲을 가꾸고, 푸른 사랑으로 빛나는 책을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읽어서 건사하면 된다. 아이가 알아보는 책이란, 삶을 사랑하는 빛이 흐르는 이야기이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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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7] 우리가 있는 곳

― 천등산 꼭대기를 오르면서



  어른들은 멧길을 타고 오르면서 가슴을 활짝 틔운다고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멧길을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푸른 바람을 마시고 푸른 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멧길을 타고 오르내릴 적에 가슴을 활짝 틔우면서 푸른 마음이 될 수 있을 테지요. 독일에서는 이러한 대목을 잘 헤아려 ‘숲 유치원’을 만듭니다. 한국도 일본을 거쳐 ‘숲 유치원’을 받아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겨레는 예부터 언제나 ‘숲마을’이었고 ‘시골마을’입니다. 굳이 ‘숲 유치원’이나 ‘숲 학교’를 만들지 않아도, 늘 숲을 타고 멧길을 오르내렸어요. 나무를 하러 숲에 깃들지요. 지게를 짊어지고 멧길을 타고내렸습니다. 참말 예전에는 어른도 아이도 언제나 숲에서 살거나 놀았어요.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에서든 숲을 누리고 멧자락을 품에 안으며 살거나 놀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등산장비를 갖춘 어른들만 멧길을 오릅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숲이나 멧자락을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가 숲과 멧자락을 가로지르거나 구멍을 내면서 지나갑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아 숲이든 멧자락이든 쳐다볼 겨를이 없이 바삐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움직이기만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멧길을 오릅니다. 고흥에 뿌리를 내린 지 네 해째 되는 올해에 드디어 아이들과 천등산 꼭대기까지 가 보자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더 어릴 적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이제 이 아이들과 멧길을 오르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 작은아이가 많이 어리니까 자전거를 끌고 오르고 나서, 내려올 적에는 씽 하고 달립니다.


  멧꼭대기에 이르러 자전거를 눕히고 아이들이 뛰놀도록 한 다음, 나는 지친 몸을 추스르려고 길게 뻗었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지게에 두 아이를 앉히고 멧길을 걸어서 올라올 때가 한결 수월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멧길을 천천히 자전거를 끌면서 올라오는 동안, 아이들은 숲노래를 듣습니다. 멧빛을 바라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터가 어떠한 무늬이고 소리인가 하고 온몸으로 느낍니다. 풀벌레가 울고 새가 날며 골짝물이 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숲을 생각합니다. 멧골에서 지내는 사람은 늘 멧자락에 마음을 둡니다. 그러니까, 숲사람은 사랑과 꿈을 생각할 뿐, 전쟁이나 경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멧사람은 이야기와 노래를 헤아릴 뿐,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도시와 문명을 이루는 사회에는 끔찍하도록 피가 튀기는 다툼(경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공장에서도 ‘어깨동무’ 아닌 ‘경쟁’이 도사립니다. 도시와 문명을 이루더라도 숲과 멧자락이 함께 있을 노릇입니다. 시골에서 살자면 마을과 집이 제대로 숲이랑 멧자락하고 어울려야 합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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