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0] 꽃과 열매

― 한 해가 흐른다



  풀이 돋습니다. 잎이 납니다. 꽃대가 오르고 꽃망울이 터집니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에는 씨가 깃들어요. 차근차근 흐릅니다. 날이 지나고 달이 가며 철이 바뀝니다.


  스스로 심는 씨앗을 들여다보든, 남이 심은 씨앗을 살펴보든,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느낍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를 바라볼 수 없다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모릅니다.


  지난해와 올해가 같지 않습니다. 올해와 이듬해가 같지 않습니다. 해마다 다른 빛이요 냄새이며 무늬입니다. 해마다 달라지는 모습이고 삶이며 이야기입니다. 올해에 핀 고들빼기꽃이랑 지난해에 핀 고들빼기꽃은 다릅니다. 올해에 돋는 돌나물하고 이듬해에 돋을 돌나물은 다릅니다.


  ‘우리 집 부추꽃’을 바라봅니다. 하얗게 터지는 꽃망울을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은 봄과 여름에 고마운 풀밥이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어여쁜 꽃내음을 베풉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새까만 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씨앗은 스스로 떨어져 이듬해에 더 넉넉히 자라고, 씨앗을 조금 받아 둘레에 조금씩 뿌리기도 합니다.


  무엇을 얼마나 먹으면 즐거울까요. 무엇을 어떻게 먹으면 기쁠까요. 어떤 꽃잔치를 누리고, 어떤 이야기마당을 누릴 때에 우리 삶이 환하게 피어날까요. 4347.9.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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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구실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날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새롭게 물려받으면서 배울 ‘사랑’을 어버이가 먼저 즐겁게 누려서, 이 즐거움을 새롭게 물려주는 데에 ‘어버이 구실’이 있지 않을까. 어버이 스스로 즐거움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즐거움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웃음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웃음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참말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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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쓴 글을 이제서야 걸친다.


..


혼자 나서는 길



  서울을 거쳐 인천을 들러 음성에서 아버지를 뵙고는 바로 고흥으로 돌아오는 마실을 떠난다. 아이들과 갈까 하다가 너무 힘든 길이 될까 싶어 혼자 대문 열고 나오는데, 어쩐지 서운하다. 혼자 다니지 않은 지 일곱 해째이니 여러모로 낯설다. 그러나 기운을 내야지. 즐겁게 볼일 마치고 웃으며 돌아가자.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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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익 배달



  고흥에서 음성까지 케익을 나른다. 케익은 음성군 금왕읍 동큐제과에서 산다. 음성에 케익을 사들고 갈 적에는 으레 이곳을 들른다. 아버지한테 일흔한 번째 생일이다. 이제는 초를 꽂기에 많아 숫자초를 쓴다.

  나는 아버지한테 하루 늦은 생일케익을 이틀에 걸쳐 찾아가서 드리고, 아버지는 이녁 아들을 청주까지 태워 주신다. 어머니가 싸 주신 굴비꾸러미를 들고 고흥으로 돌아가자. 모두 나를 기다를 테지. 아버지도 천천히 잘 들어가시겠지. 4347.9.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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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질을 멈추다



  엊그제부터 부채질을 멈춘다. 아이들을 저녁에 재우면서 부채질을 더는 안 한다. 오늘 새벽에는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아이들한테 덮어 준다. 바야흐로 가을에 들어섰다고 느낀다. 한가위가 구월 첫무렵인 만큼 올해는 가을이 이르구나 싶다. 그런데, 가을이 이렇게 이른데 비가 잦네.


  날이 덥지 않고 바람도 선선하니, 부디 한가위를 지나 구월 한 달에는 비가 더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해가 쨍쨍 나서 들마다 열매가 잘 익기를 바라고, 잘 익은 열매를 거둔 뒤 햇볕에 바짝바짝 말릴 수 있기를 바란다. 가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어 아이들이 신나게 마당놀이를 누릴 수 있기를 기다린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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