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와 이불



  아이들이 아직 기저귀를 댈 무렵, 밤마다 기저귀갈이를 하느라 삼십 분이 한 차례씩 잠을 깨었는데, 두 아이 모두 기저귀를 뗀 뒤에도 밤잠이 느긋하지 않다. 요즈음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번쩍번쩍 잠을 깬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눌 적에 언제나 아버지를 깨운다. 아니, 아버지를 깨우지는 않는데, 큰아이가 너무 졸린 탓에 밤오줌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기에 곁에서 얼른 잠에서 깬 뒤 쉬를 누인다. 때로는 잠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기에 문득 알아채고는 후다닥 일어나서 쉬통으로 데려간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구나 하고 느끼면서 잠을 깬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지 어느 만큼 흐르면 꼭 잠이 깬다. 그래서 두 아이 이불깃을 새로 여민다. 이불깃 여미기는 거의 한 시간에 한 차례쯤 한다.


  조금 더 크면, 두 아이가 더 자라면, 앞으로는 밤에 이불깃 여미느라 잠을 깰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빈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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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을 끓이다가



  아침에 함께 먹을 밥으로 미역국을 끓이다가 거의 다 끓을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찬찬히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고 무채무침을 하면서 ‘다 잘 되는데 무엇 하나를 아직 안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역국 간을 볼 즈음 비로소 깨닫는다. 미역을 안 자르고 끓였네. 부랴부랴 가위로 석석 자른다. 팽이버섯도 썰어서 넣는다. 국그릇에 된장을 푼다. 미역국 불을 끄고 난 뒤 된장국물을 붓는다. 된장국물을 고루 섞은 뒤 다시 간을 본다. 아, 내가 끓인 된장미역국이면서도 참 맛있네. 나는 이 맛과 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을까. 우리 할머니한테서? 더 먼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서?


  밥도 알맞게 뜸이 들었고 국도 맛나다. 무채무침을 먼저 밥그릇 바닥에 깔고 나서 밥을 얹고, 달걀을 네 조각으로 갈라 밥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밥상에 차곡차곡 옮긴다. 국을 뜨고 아이들을 부른다.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저쯤은 스스로 놓아야지.


  미역국을 끓인 날은 괜히 즐겁다. 예부터 미역국은 아주 뜻있게 끓였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리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를 기리면서,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즐거움을 기리면서, 미역국을 으레 끓였을 테니, 여느 날에 미역국을 끓일 적에도 오늘도 내 새로운 생일로 여길 만하다. 즐거운 밥잔치이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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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팔베개



  새벽에 작은아이가 뒹굴다가 내 왼팔에 머리를 파묻는다. 문득 잠에서 깬다.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살핀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이불을 걷어찼다. 팔베개를 한 몸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써서 아이들 이불을 집어들어 살살 덮는다. 아버지 팔을 베개로 삼은 작은아이는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폭 눕는다. 네 살짜리 아이 팔베개는 한두 시간 있어도 그리 힘들지 않다. 아이들한테 베개 노릇을 하다 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작고 따스한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4347.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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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아이들



  가을로 접어들어 동이 느즈막하게 트는데, 이러한 날에도 아이들은 새벽 일찍 일어난다. 한 녀석이 일어나면 다른 녀석이 이내 일어난다. 아이들 몸에도 시계가 있을는지 모른다.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봄이건 날마다 거의 비슷한 새벽에 잠이 깨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롭게 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 언제나 즐겁게 놀 생각을 하니 일찍 일어난다. 참말 그렇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일찍 일어날 수 없다. 놀고 싶지 않다면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노는 아이들은 즐거울 테지. 신나게 놀면서 꿈꾸는 아이들은 하루가 아름답겠지. 지겨운 아이들이라면 늦잠을 자리라. 아침부터 또 수험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면 아이들은 일어나기 싫으리라. 단꿈에 젖어 그예 꿈밭을 거닐고 싶으리라. 4347.9.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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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1] 종이비행기 잔치

― 삶자리



  마당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흙으로 된 운동장을 넓게 누리던 예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오늘날에는 ‘더러’ 흙운동장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빠르게 흙운동장이 사라집니다. 흙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아이들도 사라지고, 공을 차거나 치는 놀이가 아닌 스스로 온몸을 쓰면서 놀 줄 아는 아이들도 사라집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을 날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들판이 있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연을 만들 수 있자면 대나무를 베어서 깎아야 할 테니, 들판 한쪽에는 대나무가 자라야겠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며 놀면 한결 즐거울 테니 들한 다른 한쪽에는 온갖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야겠습니다.


  모든 땅에 남새를 심어 길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들이 논으로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에는 빈터가 있어야 하고, 시골에는 숲과 들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하루 내내 땀을 흘리면서 뛰놀 자리가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느긋하게 드러누워 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놀 수 있을 때에 일할 수 있어요. 일할 수 있을 때에 놀 수 있어요.


  시골에서 아이들이 자꾸 줄어들지만, 시골에 아이들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까닭을 시골사람 스스로 깨달아야지 싶습니다. 도시에 아이들이 아주 많지만, 도시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못할 뿐 아니라 싱그럽거나 착한 마음으로 자라기 어려운 까닭을 도시사람 스스로 알아차려야지 싶습니다. 삶자리가 놀이터이자 일터가 되지 못한다면, 삶자리가 쉼터이나 만남터이자 이야기터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도 어른도 모두 힘듭니다.


  너른 들이 있어야 씨름도 하고 술래잡기도 합니다. 너른 숲이 있어야 숨바꼭질도 하고 새랑 다람쥐하고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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