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 뜨개옷 자랑



  2014년 9월 8일 아침, 밥상을 차리느라 부산한 아버지는 부엌에서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뚝딱뚝딱 밥을 짓는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는 마루와 부엌과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면서 논다. 이러다가 문득 일곱 살 누나가 동생을 보며 “(내 옷에) 하트 있다!” 하면서 자랑을 한다. 이때 네 살 동생은 제 옷을 내려다보고 돌아보며 살짝 생각을 한 끝에, “나는 구멍이 있다!” 하면서 자랑을 받아친다.


  그래, 산들보라야, 네 옷에는 구멍이 있구나. 네 어머니가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입으라고 구멍이 숭숭 난 뜨개옷을 마련해 주었구나. 너한테는 뜨개옷이 ‘구멍옷’이네. 가을이 무르익는 요즈음에도 네 살 산들보라는 이틀이나 사흘마다 구멍옷을 챙겨 입는다. 빨아서 말리는 동안에만 구멍옷을 못 입는다.


  가만히 보면, 구멍옷, 그러니까 뜨개옷은 여러모로 입기에 좋다. 여름에는 시원할 뿐 아니라, 빨래를 하면 가장 먼저 마른다. 다만, 뜨개옷은 겨울이 되면 가장 늦게 마른다. 겨울에는 따뜻한 뜨개옷인 터라 실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두껍기도 하니까, 따뜻한 겨울볕을 이틀 먹여야 비로소 뜨개옷 한 벌이 다 마른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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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와 이불



  아이들이 아직 기저귀를 댈 무렵, 밤마다 기저귀갈이를 하느라 삼십 분이 한 차례씩 잠을 깨었는데, 두 아이 모두 기저귀를 뗀 뒤에도 밤잠이 느긋하지 않다. 요즈음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번쩍번쩍 잠을 깬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눌 적에 언제나 아버지를 깨운다. 아니, 아버지를 깨우지는 않는데, 큰아이가 너무 졸린 탓에 밤오줌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기에 곁에서 얼른 잠에서 깬 뒤 쉬를 누인다. 때로는 잠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기에 문득 알아채고는 후다닥 일어나서 쉬통으로 데려간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구나 하고 느끼면서 잠을 깬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찬 지 어느 만큼 흐르면 꼭 잠이 깬다. 그래서 두 아이 이불깃을 새로 여민다. 이불깃 여미기는 거의 한 시간에 한 차례쯤 한다.


  조금 더 크면, 두 아이가 더 자라면, 앞으로는 밤에 이불깃 여미느라 잠을 깰 일이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빈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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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을 끓이다가



  아침에 함께 먹을 밥으로 미역국을 끓이다가 거의 다 끓을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찬찬히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고 무채무침을 하면서 ‘다 잘 되는데 무엇 하나를 아직 안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역국 간을 볼 즈음 비로소 깨닫는다. 미역을 안 자르고 끓였네. 부랴부랴 가위로 석석 자른다. 팽이버섯도 썰어서 넣는다. 국그릇에 된장을 푼다. 미역국 불을 끄고 난 뒤 된장국물을 붓는다. 된장국물을 고루 섞은 뒤 다시 간을 본다. 아, 내가 끓인 된장미역국이면서도 참 맛있네. 나는 이 맛과 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을까. 우리 할머니한테서? 더 먼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서?


  밥도 알맞게 뜸이 들었고 국도 맛나다. 무채무침을 먼저 밥그릇 바닥에 깔고 나서 밥을 얹고, 달걀을 네 조각으로 갈라 밥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밥상에 차곡차곡 옮긴다. 국을 뜨고 아이들을 부른다.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저쯤은 스스로 놓아야지.


  미역국을 끓인 날은 괜히 즐겁다. 예부터 미역국은 아주 뜻있게 끓였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리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를 기리면서,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즐거움을 기리면서, 미역국을 으레 끓였을 테니, 여느 날에 미역국을 끓일 적에도 오늘도 내 새로운 생일로 여길 만하다. 즐거운 밥잔치이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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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팔베개



  새벽에 작은아이가 뒹굴다가 내 왼팔에 머리를 파묻는다. 문득 잠에서 깬다.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살핀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이불을 걷어찼다. 팔베개를 한 몸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써서 아이들 이불을 집어들어 살살 덮는다. 아버지 팔을 베개로 삼은 작은아이는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폭 눕는다. 네 살짜리 아이 팔베개는 한두 시간 있어도 그리 힘들지 않다. 아이들한테 베개 노릇을 하다 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작고 따스한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4347.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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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아이들



  가을로 접어들어 동이 느즈막하게 트는데, 이러한 날에도 아이들은 새벽 일찍 일어난다. 한 녀석이 일어나면 다른 녀석이 이내 일어난다. 아이들 몸에도 시계가 있을는지 모른다.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봄이건 날마다 거의 비슷한 새벽에 잠이 깨기 때문이다.


  날마다 새롭게 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 언제나 즐겁게 놀 생각을 하니 일찍 일어난다. 참말 그렇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일찍 일어날 수 없다. 놀고 싶지 않다면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노는 아이들은 즐거울 테지. 신나게 놀면서 꿈꾸는 아이들은 하루가 아름답겠지. 지겨운 아이들이라면 늦잠을 자리라. 아침부터 또 수험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면 아이들은 일어나기 싫으리라. 단꿈에 젖어 그예 꿈밭을 거닐고 싶으리라. 4347.9.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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