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2

하늘길을 열어 나라하고 나라를 잇는 나루, 곧 하늘나루가 공항이다. 그런데 이 하늘나루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적마다 소리가 어마어마하다. 하늘나루 곁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고, 논밭을 지을 수 없고, 학교도 마을도 설 수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늘길을 이어 서로 가까이 오가는 일은 좋은데, 그토록 끔찍하게 귀를 찢는 소리는 어찌해야 좋을까? 서로 가까이 오갈 수 있다면, 끔찍한 소리쓰레기는 눈을 감아도 될까? 민간항공보다 군수공항은 더 귀를 찢는다. 총알하고 미사일하고 폭탄을 싣고 다니는 전투기나 전폭기는 어마어마한 소리로 바람을 찢고 귀를 찢는다. 우리는 서로 죽이려고 하는 전투기나 전폭기를 굳이 거느려야 할까? 귀를 찢는 군수공항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까? 조용하게 평화를 지키는 길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우기는 어려운가?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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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깊이가 있는 말이 따로 없다. 깊이가 없는 말이 따로 없다. 깊이는 우리 스스로 마련한다. 사람들이 어느 말을 널리 써 주었기에 그 말이 깊지 않다. 우리 스스로 살아낸 숨결을 담아낸 낱말이기에 비로소 깊다고 한다. 어느 분은 ‘가령’이나 ‘전혀’가 깊이있다고 여겨 이 말씨를 붙잡는다. 누구는 ‘이를테면·그러니까·곧’이나 ‘도무지·하나도·조금도·참’이 깊이있다고 여겨 이 말씨를 보살핀다. 어느 말씨로 이야기를 편들 대수롭지는 않다. 낱말은 가리거나 고를 줄 알되, 이 낱말로 줄거리를 엮어 이야기를 들려줄 줄 모른다면, 그저 껍데기이다. ‘나’하고 ‘본인’ 가운데 어느 쪽이 깊이있다고 할 수 없다. ‘아무튼’하고 ‘하여간’ 가운데 어느 쪽이 깊이있다고 할 수도 없지. 먼저 삶이 깊이있다면, 깊이있는 삶에서는 어느 말을 쓰든 다 깊기 마련이다. 그리고 깊이있는 삶은 차츰차츰 어린이 말씨로 다가선다. 깊지않은 삶, 곧 얕은 삶은 차츰차츰 사람들 꼭대기로 올라서려고 하는 벼슬아치 쪽으로 기운다. 1995.10.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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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훌륭한 글이나 책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왜 못 알아볼까?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훌륭한가를 모르기에, 이웃 글이나 책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못 알아보리라. 사람들은 저마다 엄청나게 훌륭한데, 스스로 훌륭한 줄 까맣게 잊거나 모르기 일쑤이니, 곁에 훌륭한 이웃이 있어도 못 알아채고야 만다. 훌륭한 이는 훌륭한 이웃을 알아본다. 어느 글이 훌륭하다고 여긴다면 바로 그 훌륭한 글을 알아볼 만한 눈썰미라는 뜻이다. 어느 글이 훌륭한 줄 모른다면 아직 스스로 얼마나 훌륭한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면서 산다는 뜻이다. 때로는 다른 까닭이 있다. 훌륭한 줄은 알되 시샘하거나 미워하거나 뒷셈이 있을 적에는 모른 척하더라.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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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4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헌책집을 찾아간다. 헌책집 문간에 자전거를 세운다. 헌책집에서 장만한 책은 짐받이에 묶는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와서, 다시 바람을 가르며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간다. 한 달 벌이 16만 원으로는 새책 몇 권 사기 어렵다. 외대학보에 틈틈이 글을 보내 받는 글삯을 보태어 헌책집에서 책을 고른다. 똑같은 책이 둘 있으면 조금 더 허름에서 300원이나 500원이 눅은 책을 고른다.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싶기에 서서 열 권을 읽고 나서야 한 권을 산다. 그렇지만 다 읽은 책도 사서 다시금 읽고 싶다. 언젠가는 오늘하고 다르게 책을 맞이할 수 있겠지. 책집에 서서 부리나케 읽어치우는 길이 아닌, 느긋하게 책칸을 보금자리에 꾸며서 언제라도 되읽을 날이 있겠지. 1995.8.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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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3

“신촌엔 어디에 헌책집이 있나요?” 신촌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선배한테 묻는다. “헌책집? 웬 헌책집? 그냥 새책집에 가면 되잖아? 헌책집은 모르겠는데.” 물어본 내가 잘못일 수 있지만, 대학교에 다니는 선배를 보면 꼬박꼬박 그 대학교 앞이나 옆이나 둘레나 가까이에 헌책집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본다. 한 해 동안 오백이 넘는 선배한테 물어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헌책집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가르쳐 주지 못한 까닭은 그 대학교 곁에 헌책집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곳을 안 갔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뭐하러 헌책집까지 가? 새책집에도 책 많잖아?” 하고 대꾸한다. 그러나 다르다. 새책집하고 헌책집에 있는 책이 다르다. 갓 나온 책도 헌책집에 들어오지만, 서른 해나 쉰 해를 묵은 책이 새책집에 들어오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책, 나라밖 책도 헌책집에 들어온다. 때로는 백 해나 이백 해쯤 묵은 책도 들어오는 헌책집이요, 비매품도 어엿이 들어오는 헌책집이다. 헌책집에 찾아가서 헌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모르는 셈이다. 1994.12.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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