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1
아이와 함께 그린 빛깔 고운 그림을 셈틀 곁에 붙인다. 두 아이는 벽에 죽죽 금을 그으며 놀았다. 온통 새까맣게 된 벽에 그림을 붙이면서, 새까만 그림 아닌 빛깔 고운 그림을 늘 쳐다본다. 아이들 그림에는 아이들 마음이 드러난다. 내가 함께 그린 그림에는 내 마음이 드러난다. 기쁨도 슬픔도 웃음도 눈물도, 이 그림 하나에 고스란히 밴다. 나는 아이 마음에서 무엇이 드러나기를 바랄까. 나는 마음속에서 무엇이 샘솟아 아이들 그림에 살포시 드리우기를 바랄까. 지난밤 빗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자고, 나는 문득 일어나 자리에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비인 만큼 섬돌에 놓은 신이 젖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마루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작은아이가 타는 세발자전거가 비를 맞는다. 아차, 세발자전거는 처마 밑으로 옮기지 않았네. 그냥 둘까, 옮길까. 자다가 빗소리 듣는 사람이 있을 테고, 잠들지 않고 깬 채 있어도 빗소리 못 듣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제비 노랫소리와 다른 들새 노랫소리를 하나하나 나누어 듣는다. 그렇지만 제비인지 참새인지 박새인지 직박구리인지 멧비둘기인지 노랑할미새인지 하나도 못 헤아리는 사람이 많다. 돌이켜면, 내 어릴 적 충남 당진에 있던 어머니네 어머니 집에 마실을 갈 적에, 우리 외삼촌이요 이모인 형과 누나 들은 새소리를 낱낱이 알았고, 빗소리이며 바람소리이며 풀잎 흔들리는 소리이며 찬찬히 알았다. 메추라기 둥지를 찾아서 메추리알 꺼내기도 했고, 나무 타고 올라가 새알 구경을 하기도 했다.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어도 새소리를 차츰차츰 알아차릴 수 있는 까닭이라면, 어릴 적부터 우리 외삼촌과 이모 들처럼 새소리를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빛을 품으면 시나브로 빛이 흘러나온다. 마음속에 햇살을 품으면 천천히 따스한 햇살이 새어나온다. 마음속에 구름을 품으면 어느새 몽실몽실 피어나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잔뜩 찌푸린 채 빗물 떨구기도 하겠지. 빛을 품는 사람은 빛을 이야기한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을 글로 쓴다. 빛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들한테 빛을 물려준다. 2013.3.31.

빛 2
하늘에서는 별이
땅에서는 씨앗이
사람한테서는 노래가
빛입니다. 2019.3.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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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기
‘독서회’나 ‘북클럽’은 뭔가 어렵다. 선뜻 다가서기도 어렵고, 이런 곳에서 골라서 읽는다는 책도 어렵다. 이런 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어렵고, 다들 그냥 어렵기만 하다. 그런데 ‘함께읽기’를 하는 자리는 홀가분하다. 가벼우면서 즐겁고, 재미있으면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책을 미리 안 읽었어도 대수롭지 않다. 모인 자리에서 서로 목소리를 내어 나긋나긋 읽으면 된다. 한두 쪽을 읽어도 좋고, 몇 줄을 읽어도 좋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나눈다. 함께 읽으면서 책을 여러 눈길로 바라본다. 함께 읽는 동안 생각을 갈무리하고 말씨를 가다듬고 마음을 차츰차츰 키운다. 2018.2.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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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짐 3

1995년에 신문사지국에 쌓아 두던 책짐을 인천으로 옮기고 군대를 가야 하던 날, 용달차 한 대 가득 실어서 날랐다. 군대를 마치고서 1998년 1월에 인천집에 있던 책짐을 들어내어 다시 신문사지국으로 가져가던 날, 1.5톤 짐차를 불렀다. 신문사지국을 그만두고 출판사로 일터를 옮기고 보금자리를 새곳으로 잡던 날, 2.5톤 짐차를 하나 불렀다. 출판사를 옮겨 사전편집장 일을 하던 무렵, 3.5톤 하나하고 1.5톤 하나를 불러서 새집으로 옮긴다. 서울살이를 접고 이오덕 어른 살던 무너미마을로 책짐을 옮기려고 3.5톤을 석 대 불렀다. 무너미마을을 떠나 인천 배다리에서 도서관을 하려고 다시 책짐을 옮기던 2007년 4월에는 5톤 짐차를 석 대 불렀다. 이 책짐이 고흥으로 멀디먼 길을 떠난 2011년에는 5톤 짐차를 넉 대 불렀다. 앞으로 이 책짐을 또 옮겨야 한다면 어떤 짐차를 얼마나 불러야 할까? 아마 5톤 짐차를 열 대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2019.1.1.


책짐 4

아이들이 책짐을 대단히 잘 나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언제 보아도 참 대견하다. 인천에서 4층 옥탑집 살림을 2층 골목집으로 나를 적에 세 살 큰아이가 꽤 묵직해 보이는 짐을 같이 날랐는데, 큰아이는 이듬해에 고흥으로 살림을 옮길 적에도 어찌나 솜씨좋은 일꾼 구실을 하던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들 놀랐다. 열두 살 아홉 살이 된 두 아이는 아버지가 서울에서 실어온 책짐을 짐차에서 같이 내리고 우리 책숲으로 같이 옮긴다. 웬만한 어른 일꾼은 저리 가라 할 만큼 손이 빠르고 야무지다. 책하고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책짐을 거뜬히 부릴 줄 아는가? 어쩌면 어른한테는 짐(책짐)일 테고, 아이한테는 놀이(책놀이)가 되는구나 싶다. 2019.2.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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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짐 1

헌책집 아저씨가 책짐을 손수 꾸려서 자리를 옮기신다. “제가 뭣 좀 도울 일이 없을까요?” 하고 여쭈니 “아니야. 마음만 받을게. 책짐은 다른 사람이 도우면 안 돼. 이 책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스스로 옮겨야 해. 스스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이 책짐을 안고 살 수 없다는 뜻이야. 자네는 책짐을 어떻게 꾸리고 책꽂이를 어떻게 빼내고, 이 짐을 어떻게 나르는가를 지켜보게. 어디에서도 이 만한 가르침은 받을 수 없을걸?” 책집지기 아저씨는 매우 잽싸면서 야무진 손길로 어느새 책꽂이를 다 비우셨고, 책꽂이도 다 뜯어낸다. “책꽂이는 말이야, 돈이 들어도 가장 좋은 나무를 써야 해. 자 보게. 좋은 나무로 짰기 때문에 이렇게 떼어내어 새곳에 다시 붙여도 튼튼하지. 나무가 하나도 안 휘어졌지?” 헌책집 살림을 스무 해 넘게 하신 아저씨는 한나절이 안 되어 혼자 책집 한 칸을 고스란히 옮겼다. “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책정리는 오늘 못하나? 뭐, 오늘은 쉬지. 내일 하면 되지.” 헌책집 아저씨는 ‘책 묶는 십자매듭’하고 ‘책덩이에 어떻게 손가락을 끼워서 몇 덩이를 한꺼번에 나르는가’하고 ‘책덩이를 짐차에 차곡차곡 쌓는 매무새’하고 ‘책꽂이 뜯기 + 뜯은 책꽂이 새로 짜서 붙이기’를 한나절에 낱낱이 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1999.9.15.


책짐 2

《달팽이 과학동화》 마흔 권을 담은 전집상자를 등짐으로 나른다. 상자로 담은 책을 등짐으로 어찌 나르는가는 출판사 짐만 옮기는 일을 하는 분들이 알려주었다. 이분들은 책을 등짐으로 나르는 연장도 손수 짜서 쓴단다. 책등짐에 쓰는 책지게는 가냘픈 가로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위로 길쭉은 널빤인데, 가냘파 보이는 가로대에 책덩이 하나를 놓으면, 이 책덩이에 다른 책덩이를 서넛쯤 거뜬히 올려서 가볍게 나를 만하단다. 이분들이 등짐 나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책지게 없이 어떻게 등짐을 날라야 좋을까를 배운다. 하루는 마흔 권들이 전집상자 200 꾸러미를 등짐으로 계단을 타고 땅밑으로 날라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안 나온다. 혼자 네 상자씩 등짐으로 계단을 날듯이 오르내린다. 두 시간 즈음 헉헉대며 오르내려서 다 옮기니 그제서야 끌신을 직직 끌면서 한 사람이 기웃거리더니 “어머, 다 날랐어? 혼자?” 하고 묻는다. 힘들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아무 말이 안 나왔다. 2000.5.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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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

냇물은 흐르는 물. 흐르는 물은 산 물, 살아숨쉬는 물. 먹는샘물이라는 생수는 이름만 ‘샘물’일 뿐 안 흐르는 물이자 페트병, 곧 플라스틱덩이에 갇힌 물. 수돗물도 댐에 갇히다가 시멘트덩이를 흐르며 시달리는 물, 이리하여 죽은 물. 페트병 생수나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면 죽은 물을 몸에 집어넣는 셈. 죽은 물로 밥을 짓는다면 죽음덩이를 몸에 욱여넣는 셈. 살아숨쉬는 물이자 흐르는 물인 냇물이나 샘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살아숨쉬거나 흐르는 물을 가까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숨쉬는 넋이 아닌, 갇히거나 억눌리거나 고달픈 채 허덕이는 셈. 물이 물답게 흘러서 밥을 밥답게 누리는 삶이 아니라면, 삶이 삶답다 할 수 있을까? 냇물을 죄다 망가뜨리는 나라지기만 있다고 한다면 그런 나라지기가 있는 곳을 삶터로 삼을 수 있을까? 1998.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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