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라는 이름

 


  정부통계로는 2011년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91.1퍼센트라던가 하는데, 나는 이 숫자가 그다지 놀랍다고 느끼지 않는다. 진작부터 시골사람 숫자는 아주 줄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랍다 싶은 대목은 왜 아직도 도시사람 숫자가 91퍼센트밖에 안 되나였다. 이제 한국에서 도시사람은 99퍼센트나 99.9퍼센트라고 해도 맞지 않을까.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온 우리 식구는 그예 시골사람이다. 시골로 주소와 주민등록을 옮기고 ‘내 집’을 마련하면서 마을 어르신들 말씀을 듣는데, 또 앞으로 몇 차례 더 나가야 끝나는 민방위훈련을 나가며 이런저런 말을 듣는데, 막상 도시에서 살지만 주소와 주민등록은 시골로 둔 사람이 꽤 있다. 더욱이, 대학생으로 지내는 젊은이는 주소나 주민등록은 시골이라지만, 살아가기로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이래저래 따지면, 참말 시골에서 살아가는 ‘시골사람’은 매우 적다. 군대에 간 사내들 빼고, 부재자투표를 하는 사람은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인구통계에서는 시골사람 숫자로 잡히는’ 셈 아닌가.


  우리 마을 이웃집에 여름휴가로 찾아온 분들이 있다. 그 집 아들이 고흥사람으로 고흥에서 나고 자랐으나, 이제 서울에서 혼인하고 아이 둘을 낳아 살아간다. 올해에 경기도 의정부인가 집을 옮겨 지내신다고 들었는데, 이제 이분들은 시골사람 아닌 도시사람이다. 명절이나 휴가나 제사 때를 맞이해 시골로 찾아오지만, 말 그대로 ‘시골 나들이’를 할 뿐, 시골에서 일을 하거나 살지 않는다. 이 집 첫째 아이하고 우리 집 첫째 아이랑 동갑이라, 둘을 내 자전거수레에 함께 태우고 면소재지까지 한 바퀴 도는데, 수레에 앉아 둘이 조잘거리다가 이웃집 아이가 문득 읊는 ‘시골’이라는 낱말이 퍽 낯설다고 느낀다. 그래, 이 아이는 도시 아이야. 우리 아이는 시골 아이야.


  그런데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군이나 읍이나 면이라 해서 모두 시골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낀다. 군에서 읍내나 면내는 도시하고 똑같다. 읍내와 면내는 도시를 닮으려 한다. 읍내와 면내에서 일하는 분들은 도시에서 일하는 모습하고 똑같다. 곧, 시골로 치는 군·읍·면이라 하지만,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는 시골마을에 깃들어 살아가지 않는다면 ‘시골사람’이라 할 수 없겠구나 싶다. 읍내 피자집이나 통닭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시골사람인가? 면내 동사무소 아저씨와 면내 우체국 아줌마는 시골사람인가? 읍내 고등학교 교사는 시골사람인가? 면내 초등학교 교사는 시골사람인가?


  99.9퍼센트, 또는 99.99퍼센트는 도시나 ‘도시가 된 땅’에서 살아간달 수 있다. 도시나 ‘도시가 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사람’, 곧 ‘시민’이라 할 수 있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을 나란히 놓고서, 누가 좋거나 누가 아름답다거나 하며 가리거나 따질 수 없다. 다만, 오늘날 이 나라 목소리를 곰곰이 살피자면, 99.9퍼센트나 99.99퍼센트는 참말 ‘도시사람 목소리’일 뿐이라고 느낀다. 아니, 99.999퍼센트나 99.9999퍼센트는 온통 ‘도시사람 목소리’로 가득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바야흐로 ‘시골’이라는 이름은 으레 등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떠올리는 모습이 되고 보니, 우리 식구 같은 시골사람으로서는 ‘시골’이라는 낱말을 누군가 입에 올리면 귀가 참 간지럽다. 시골이 뭔데.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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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들판

 


  바람 부는 들판 사이를 자전거로 달린다. 바람은 논자락 볏포기를 이리저리 눕힌다. 바람은 논둑 들풀을 이리저리 눕힌다. 볏포기와 들풀은 이리저리 눕지만, 바람이 잠들면 다시 꼿꼿하게 선다. 바람이 오래오래 불면 볏포기와 들풀은 그저 누워 버리는구나 싶지만, 바람이 잠들고 햇살이 방긋거리면 볏포기와 들풀은 모두 해를 바라보며 씩씩하게 선다.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들을 불러 들판을 함께 바라본다. 볏포기를 눕히는 바람을 느낀다. 아이들은 바람과 들판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사르르 잠든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은 바람을 시원하게 쐰다. 한동안 이대로 있다가 다시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밟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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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줄과 제비

 


  어미 제비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들을 한참 먹여 키울 적에도 빨래줄에 앉아 둥지를 바라보고, 새끼들을 모두 키워 스스로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도록 이끈 뒤에도 곧잘 옛 둥지 있는 집으로 찾아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 제비는 저희가 태어난 둥지로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미 제비만큼은 저희 새끼를 낳아 키운 둥지 있는 곳으로 날마다 한두 차례쯤 찾아와 빨래줄이나 전기줄에 앉아 한동안 옛 둥지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 기저귀를 넌 빨래줄 한복판에 어미 제비가 앉는다. 마침 기저귀 위에 앉는다. 제비로서는 기저귀인지 무언지 알 턱이 없을 수 있고, 굳이 알 까닭이 없겠지. 처음에는 나한테 등을 보이며 앉더니, 이내 머리를 보이며 앉는다. 이러다가 다시 등을 보이며 돌려 앉는다.


  맑은 햇살과 맑은 날갯짓과 맑은 빨래가 얼크러진다. 내 눈을 맑게 틔우고 내 마음을 맑게 다스린다. 나한테는 제비와 같은 날개가 없어 제비와 같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나, 제비를 바라보면서 제비가 날아다니며 바라보았을 이 땅 모습을 가만히 머리로 그린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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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없다

 


  1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거의 몽땅 서울에 몰린다. 이들 서울에 거의 몽땅 몰린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서울이나 서울 언저리에서 찾아서 채운다. 서울 바깥으로 이야기를 찾아 나들이를 다닌다거나 서울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이야기를 느끼려는 마실을 다니는 일은 몹시 드물다. 때때로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나라밖으로 다니기는 하지만, 정작 한국땅 골골샅샅, 아니 한국땅 이웃마을을 즐거이 찾아다니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이웃마을은 맛집이나 멋집이 아니다. 이웃마을은 관광지나 여행지가 아니다. 이웃마을은 사랑스레 꿈꾸는 사람들 좋은 터전이다.


  생각해 본다. 신문사가 서울 아닌 충청도 옥천에 있다면, 방송사가 서울 아닌 전라도 구례에 있다면, 출판사가 서울 아닌 강원도 고성에 있다면, 이들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는 이야기를 찾아 어디로 다닐까. 이들 신문사와 방송사와 출판사 일꾼은 어떤 이웃을 사귀면서 어떤 마음을 나누려 할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린 서울에서 넘쳐나는 이야기는 어떤 꿈이나 사랑을 보여준다 할 만한가.

 


  2
  신문사 기자나 방송사 기자는 국회의사당 같은 데에서 하루 내내 정치꾼을 지켜보곤 한다. 신문이나 방송을 채우는 이야기를 정치꾼 말 한 마디로 담곤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신문사 기자 가운데 시골마을 모내기 이야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만히 지켜보거나 함께하면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은 적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시골마을 김매기나 가을걷이 이야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함께하면서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실은 적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기자들은 법원에서 무슨 이야기를 찾으려 할까. 기자들은 큰회사 대표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려 할까. 기자들은 주식시세표와 방송편성표에서 어떤 이야기를 얻으려 할까. 기자들은 경기장과 길거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느끼려 할까.


  나무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기자는 나올 수 없는가. 풀이랑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자는 태어날 수 없는가. 꽃하고 무지개하고 구름하고 바다하고 냇물하고 벌레하고 들새하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자는 있을 수 없는가.

 


  3
  서울에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많고 어떤 이야기가 많을까. 서울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에는 어떤 사랑이 어떤 꿈결과 숨결로 있을까.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숲이 없는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들이 없는 서울에는, 멧자락과 바다와 구름과 별이 없는 서울에는, 해와 무지개와 새와 개구리가 없는 서울에는 무엇이 있을까. (4345.7.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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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마을과 송전탑

 


  경상남도 밀양 시골마을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못 놓도록 가로막은 시골 할아버지 세 사람한테 자그마치 ‘손해배상 10억’ 원을 물도록 해 달라는 고소장을 한국전력이 법원에 냈다고 한다. 한국전력은 시골에서 논밭을 부치는 할아버지한테 ‘하루 100만 원’씩 손해배상을 하라고 말했다는데, ‘법률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송전탑을 지으려 할 때에는 ‘땅을 강제수용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골마을 할아버지들은 당신 논밭을 지킬 뿐 아니라, 송전탑이 설 때에 생기는 무시무시한 전자파가 무서워 송전탑을 못 놓게 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 피를 말리고 죽음으로 내모는 법이요 한국전력이며 송전탑일 뿐 아니라, ‘도시에 모자라는 전기를 시골에 발전소를 지어 멀디먼 길을 송전탑을 세워 실어나르는 도시 문명사회 오늘날 얼굴’이라고 하겠다.


  밀양에 발전소가 있을까? 밀양에 발전소가 있다면 이 발전소는 전기를 어디로 보내려 하는가? 밀양 시골마을을 지나도록 한다는 송전탑은 왜 세워야 할까? 왜 도시에 발전소를 안 지어서 시골을 망가뜨리려 하나? 아니, 시골 논밭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멍에와 굴레를 뒤집어씌우는가? 흙을 일군 사람은 알 텐데, 논으로 삼거나 밭으로 삼을 만한 흙이 되도록 하려고, 흙일꾼은 열 해나 스무 해 땀을 흘린다. 때로는 더 긴 나날을 삽과 곡괭이와 괭이와 호미와 가래로 일구고 갈아서 기름진 땅으로 만든다. 논 한 뙈기나 밭 한 자락 공시지가는 무척 싸다 하겠으나, 이 값싼 땅이 논이나 밭이 되기까지 얼마나 살가운 숨결과 땀방울이 배었는지를 헤아릴 노릇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고, 돈으로 따지지 않는 사랑이 깃들었으니까.


  포스코 회사에서 전남 고흥 나로도에 지으려 하는 발전소를 떠올린다. 고흥군수는 발전소를 받아들이려 하는지 안 받아들이려 하는지, 하는 생각을 여덟 달이 지나도록 아직 안 밝힌다. 발전소를 지으면 발전소 둘레뿐 아니라, 송전탑이 설 마을도 망가지고,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 흐르는 마을도 망가질 뿐더러, 발전소에서 내보내는 열폐수가 흐를 바닷마을도 망가진다.


  전남 고흥 나로섬은 안쪽 나로와 바깥 나로, 한자로 ‘내나로’와 ‘외나로’가 있는데, 안쪽 나로 한쪽에 있는 예쁜 시골, ‘소영마을’ 바닷가를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송전탑이 이 마을을 가로지르면, 또는 이 마을 옆 삼암산을 지나면, 이 예쁜 바닷마을은 어떻게 망가져야 할까. 발전소 매연과 열폐수에다가 송전탑이랑 전자파까지, 더더구나 발전소를 들락거릴 끝없는 자동차들이 뿜을 매연이랑 시끄러운 소리는, 고요하고 예쁜 바닷마을을 얼마나 무너뜨릴까. (4345.7.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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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9 22:53   좋아요 0 | URL
사진이 참 아름답네요.
그러게요, 얼마나 망가져야 할까요. 아휴.

숲노래 2012-07-10 03:04   좋아요 0 | URL
사진이 아름답다기보다,
사진으로 담긴 마을이 아름답습니다...

너무 커져 버린 도시가 작아지면서
시골로 바뀌지 않는다면,
더 커지려는 도시를 먹여살려야 하니
시골이 더 망가져야 해요...

책읽는나무 2012-07-13 17:57   좋아요 0 | URL
이쪽 시골도 버스 타고 지나다보니 큰 송전탑이 우뚝 우뚝~
밀양도 이쪽과 가까워 그송전탑들이 밀양과 연결될 것인가?
생각이 드는군요.ㅠ

숲노래 2012-07-14 05:00   좋아요 1 | URL
밀양이 아니더라도
송전탑은
한국 곳곳에 지나치게 아주 많답니다...

모두들 시골 논밭을 망가뜨리며 세운 녀석들이에요...

http://www.g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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