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울리는 소리 기다린다

 


 전화기 울리는 소리 기다린다. 지난주 화요일에 나온다고 하던 내 열한째 책을 우리 시골집으로 몇 부쯤 부치면 좋을까요, 하는 이야기 담은 전화를 거는 출판사 일꾼 목소리 실릴 전화기 울리는 소리 기다린다.

 

 내가 먼저 전화를 걸까, 싶다가도 기다리자 기다리자 하면서 하루 흐르고 이틀 지나 이레가 된다. 며칠 뒤면 설인데 설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을까. 인쇄소에는 지난 12월에 넘겼다는데 새해 1월 17일이 되도록 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찌된 셈일까.

 

 아마, 책마을 일꾼도 눈이 빠지게 기다릴 테지. 눈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영 깜깜해서 도무지 전화를 걸 수 없겠지. 인쇄소 일꾼은 너무 바빠 스무 날 넘도록 책을 찍을 수 없을까. 인쇄소 일꾼은 너무 바쁘니 집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땀을 뻘뻘 흘릴까.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조마조마 기다리는데, 낮 네 시, 드디어 전화가 온다. 출판사 일꾼 목소리가 썩 좋지 않다. 지난 12월 끝무렵부터 올 1월 17일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을까. 반가운 책이 나와 기쁠 테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속이 끄응 탔겠지. 이렇게 오래 기다린 보람을 부디 예쁘며 신나게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5.1.17.불.ㅎㄲㅅㄱ)

 

..

 

 아무튼, 아직 책방에는 안 들어갔고, 이번 주말에는 책이 들어가리라 믿어요... 이궁...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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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볼 수 없는 눈

 


 나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나는 내 바깥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눈이 어떠한 모습이고 빛깔이며 무늬인가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는 내 앞이나 옆이나 둘레에 있는 무언가를 살펴볼 수 있지만, 정작 내 몸뚱아리를 찬찬히 살피거나 훑거나 가늠하지 못합니다.

 

 나는 바라봅니다. 나는 나 아닌 남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나는 살펴봅니다. 나는 나 아닌 어딘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남들을 바라보는 나는 남들을 거울처럼 비추며 나를 되새기는 삶일까요.

 

 머리에 달린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없다면, 마음에 깃든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으로도 내 눈 내 몸 내 삶을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온몸과 온마음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발바닥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살갗으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귀로 소리와 결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입과 혀로 맛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가슴이 콩콩 쿵쿵 뛰면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는 아무런 삶도 사랑도 사람도 보지 못하는 꼴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에, 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깊은 밤 달빛이 좀 여리구나 싶어 생각해 보니, 곧 설이기에 아직은 그닥 밝지 않겠구나 싶으면서, 시골마을에도 곳곳에 등불이 있어 달빛을 가리는구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환한 보름달은 등불마저 잠재울 만큼 밝지만, 오늘은 달빛이 전기불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니, 이기지 못하는 달빛이 아니라, 전기불빛에 스러지거나 가립니다.

 

 달빛이 비추는 마당이 좋습니다. 달빛이 잠자며 캄캄한 마당이 좋습니다. 전기불빛 스미는 마당은 슬픕니다. 전기불빛이 우리 마당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까지 흘러들면 슬픕니다.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때에 빛입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닭알이든 오리알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깝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목숨을 잇습니다. 나는 햇빛을 마시고 달빛을 먹으며 햇빛을 바라보고 달빛을 누리고 싶습니다. (4345.1.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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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일 수 없는 마음

 


 어린이문학 한 권 느낌글을 다 쓰고 나서 한숨을 쉰다. 이 어린이문학 한 권을 읽으며 조금도 기쁘지 않았고, 이 어린이문학을 우리 아이한테 읽혀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둘레에서 이 어린이문학을 읽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가 재미있어 할까 싶어 너무 슬펐다. 느낌글을 써야 하나 망설이다가 느낌글을 쓴다. 느낌글을 쓰면서 ‘그래도 영 꽝이라 한다면 아예 안 써야 낫지 않겠니?’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쁘다는 말은 굳이 안 해도 되잖니?’ 하고 되뇌지만, 막상 글을 쓰고 보니, 내 마음에서 술술 흐르는 이야기를 도무지 어찌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낱말, ‘감동’이라는 한자말을 빌어서 말할밖에 없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내려 하면 몹시 슬프다. 왜 억지로 감동을 만들어야 할까. 왜 억지로 사람들을 웃기거나 울려야 할까. 참말 눈물이 날 만한 이야기라서 눈물이 나면 될 텐데. 참말 웃음이 날 만한 이야기라서 웃음이 터지면 될 텐데.

 

 나는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기쁠 때에 기쁜 마음을 속일 수 없다. 슬플 때에 슬픈 마음을 속일 수 없다.

 

 좋은 사랑을 하면서 좋은 낯빛으로 좋은 말을 나누고 싶다. 좋은 삶을 일구면서 좋은 꿈을 좋은 살붙이하고 함께하고 싶다. 속이지도 감추지도 덮지도 내동댕이치지도 않는 좋은 나날이고 싶다.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운 내 넋이요 몸뚱이가 되고 싶다. 있는 그대로 좋아할 우리 옆지기이면서 아이들이고 싶다.

 

 오늘 낮, 마을잔치를 한다며 발포 바닷가 쪽에 있는 어느 고기집에 마을 어르신들 모두 찾아가서 밥과 술을 즐길 때에, 둘째 갓난쟁이 안은 옆지기가 앉은 자리 뒤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마른 풀줄기 모습을 보며 참 예쁘다고 느꼈다. 억새도 옆지기도 아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이곳 살림살이도 참 예쁘다고 느꼈다. (4345.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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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책 다시 사서 간직하기

 


 어린이놀이 이야기를 펼치며, 손수 나무한 장작으로 불을 때면서 살림을 함께 꾸리는 경상북도 안동 시골마을 편해문 님이 있습니다. 편해문 님은 지지난해부터인가 사진달력을 내놓습니다. 나는 지지난해부터 편해문 님이 내놓는 사진달력을 하나씩 장만하는데, 편해문 님은 사진쟁이가 아니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를 다루는 일을 하니, 어린이들 놀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아주 보드라이 사진으로 찍습니다.

 

 옆지기랑 딸아이랑 셋이 나라밖 마실도 다니는 편해문 님이 내놓은 사진책은 《소꿉》(고래가그랬어,2009). 나는 이 사진책을 읽으면서 편해문 님이 한국 어린이를 담은 사진책도 언젠가 내놓아 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나, 한국 어린이놀이를 사진으로 담든, 나라밖 어린이놀이를 사진으로 담든, 똑같이 어린이를 사랑하는 넋을 담고, 놀이를 아끼는 꿈을 실어요.

 

 애써 인도나 네팔이나 티벳이나 중동까지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굳이 한국땅 시골 곳곳 누벼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 만나 가장 살가운 손길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거워요. 2009년 처음 나왔을 때에 곧바로 장만한 《소꿉》을 2012년에 한 권 더 장만합니다. 올해에 두 권째, 몇 해 뒤에 세 권째, 앞으로 몇 해 더 지나 네 권째를 장만하더라도 즐겁습니다. (4345.1.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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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고흥 박지성운동장

 


 읍내마실을 다녀오다가 군내버스에서 ‘박지성운동장’ 길알림판을 보았습니다. 어? 고흥 읍내에 있는 운동장 이름이 ‘박지성운동장’이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합니다. 박지성 선수 고향을 놓고 여러모로 말이 많았는지, 박지성 선수가 태어난 곳을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래저래 한참 뒤적인 끝에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고, 어릴 적 경기도 수원으로 집을 옮겼다고 나옵니다. 2002년 세계축구대회와 얽힌 짤막한 기사 하나도 봅니다. 그무렵 국가대표 축구선수 가운데 박지성 선수와 김태영 선수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자랐다며, 두 선수 고향마을에서는 마을 어귀에 두 선수가 잘 뛰라는 응원글을 적은 걸개천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박지성 선수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에서 뛰는 프로선수가 되지 않았어도 박지성 선수 고향 이야기가 말밥으로 불거졌을는지 궁금합니다. 그저 한국에서, 또는 일본에서 축구선수로 살았으면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경기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며 컸다고만 이야기하지 않았으랴 싶어요.

 

 나라안에 이름난 사람 많고 이름 안 난 사람 많습니다. 이 고을에 이름난 사람이 이래저래 있다 한다면, 저 고을에 이들 못지않게 이름난 사람이 여러모로 많아요. 전남 고흥에서 화가 천경자 님이 태어났다면, 강원 양구에서 화가 박수근 님이 태어났습니다. 전남 고흥에서 프로레슬링선수 김일 님이 태어났다면, 서울에서 권투선수 홍수환 님이 태어났어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나는 내가 태어난 고향 인천을 떠올립니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 님은 1948년에 인천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열며 책을 만나고 사귀며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경리 님한테 인천은 ‘고향’이 아닐 뿐더러 ‘오래 되새기는 터’는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젊은 날 인천 배다리에서 헌책방을 꾸리면서 당신 옆지기와 아이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키웠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오늘도 헌책방거리를 지키는 분들은 이러한 박경리 님 발자취를 고마우며 애틋하게 여겨요.

 

 박지성 선수한테 전남 고흥과 경기 수원은 어떠한 터일까 궁금합니다. 전남 고흥과 경기 수원은 박지성 선수를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박지성 선수한테 고향이 어디면 어떠하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데가 어디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꿈을 살찌우고 사랑을 꽃피우면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노릇 아니랴 싶어요.

 

 전남 고흥은 박지성 선수가 태어난 곳인 만큼 박지성운동장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습니다. 경기 수원은 박지성 선수가 살아가던 곳인 만큼 박지성길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어요.

 

 박경리문학공원은 통영도 인천도 아닌 원주에 있습니다. 박경리 님은 원주에서 살아가며 글을 쓰셨어요. 통영에서는 박경리 님을 기리는 무언가를 세울 수 있어요. 인천에서도 박경리 님을 그리는 무언가를 지을 수 있어요.

 

 아름답다 여기는 꿈과 사랑이라 한다면, 통영도 인천도 원주도 아닌 어느 곳에서든 박경리 님을 헤아리는 무언가를 꾸릴 수 있어요. 춘천에서든 곡성에서든 양양에서든 제주에서든, 기리며 아끼고픈 누군가를 마음껏 기리며 아낄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읽어 한 사람한테만 뜻있는 책이란 없어요. 책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면, 사람마다 이 책을 집어들어 펼치면서 저마다 다 다른 꿈과 사랑을 길어올려요. 한 사람한테만 값있거나 빛나지 않아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만 누리는 빛이 아니에요. 누구나 스스럼없이 맞아들이며 누리는 빛이에요. (4345.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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