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살아가는 책들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하루하루 즐겁다 느끼는 나날을 누린다면, 책에 깃든 씨앗 하나는 무럭무럭 자라나며 예쁘게 꽃을 피우고 소담스레 열매를 맺습니다. 책을 하나 장만하는 사람이 언제나 좋구나 하고 느끼는 삶을 돌본다면, 좋은 넋을 좋은 말에 실어 좋은 이야기꽃과 이야기열매를 이룹니다.

 

 아름다이 꾸리는 삶에서 태어나는 책 하나는 아름다이 꾸리는 삶으로 읽습니다. 슬프거나 안타까이 떠도는 삶에서 태어나는 책 하나는 슬프거나 안타까이 떠도는 삶으로 읽습니다. 내 오늘이 뿌듯하다면 뿌듯하게 읽는 책입니다. 내 오늘이 고맙다면 고맙게 읽는 책입니다. 내 오늘이 힘겹다면 힘겨이 쓰는 글입니다. 내 오늘이 웃음꽃이라면 웃음꽃을 담는 글입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이 맑게 웃을 때에는 서로 맑게 웃으며 나누는 책입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이 골을 부리거나 떼를 부리기만 한다면 나부터 어디엔가 매이거나 굴레와 짐을 뒤집어쓴다는 뜻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삶으로 읽지, 꾸지람이나 나무람이나 다그침이나 채찍질로는 읽지 못합니다. 좋은 꿈은 좋은 사랑으로 빚지, 졸업장이나 시험성적이나 텔레비전이나 돈으로 빚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일이 내 마음과 옆지기 마음과 아이들 마음을 가로지릅니다. 걷고 싶은 대로 걷는 길이 내 다리와 옆지기 다리와 아이들 다리로 스며듭니다. 품고 싶은 대로 품는 꿈이랑 나누고 싶은 대로 나누는 사랑이 내 삶과 옆지기 삶과 아이들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꿈을 품을 때에 삶을 짓습니다. 삶을 지을 때에 글을 쓰거나 읽습니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에 찬찬히 마음을 달랩니다. 찬찬히 마음을 달랠 때에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 내가 디딘 땅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쪼그려앉아 손을 뻗어 흙을 만집니다.

 

 꿈을 품지 않는다면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꿈을 품지 않을 때에는 흙을 느끼지 않습니다. 꿈을 품지 않는 삶이라면 흙하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뒤꼍 땅뙈기에 묻힌 쓰레기를 조금 캡니다. 첫째 아이는 곁에서 일을 거들고, 둘째 아이는 내 품에 안깁니다. (4345.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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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5 : 자연을 잃은 책읽기

 


 ‘한 사진가와 살아온 14권의 사진책들’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사진책 《사진과 책》(안목)이 2011년 12월에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조용히 태어난 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어수선히 떠들지 않는 목소리를 담은 책은, 갓 태어날 무렵에도 언론사들이 어수선히 떠들며 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언론매체 소개를 널리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언론매체 소개를 거의 받지 못했어요.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박태희 님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2008)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2011)를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손수 찍은 사진을 담은 《사막의 꽃》(2011)을 내놓기도 했으며, 이제 ‘사진을 말하는 사진책’인 《사진과 책》까지 내놓으며 사진밭 이야기를 한껏 북돋우는 길을 작게 엽니다.


 로버트 아담스라는 미국사람이 일군 사진책 《The New West》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박태희 님은 “만약 그의 사진에서 단순히 환경의 위기를 일깨우는 경고성 메시지만 읽혀지거나 새로운 지형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움만 느껴졌다면, 그의 사진집은 내 책장 한켠에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의 사진집을 펴놓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 풍경을 넘어선 특별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99쪽).” 하고 말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에 읽으며 새힘을 북돋운 사진책이라고 여긴 나날이었기에, 이런 사진책 열네 권을 그러모아 새로운 이야기책 하나 내놓겠지요. 박태희 님은 로버트 아담스라는 사람을 읽고, 나는 박태희라는 사람을 읽으며 로버트 아담스를 나란히 읽습니다.

 

 《사진과 책》이 태어나던 즈음, 모처럼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독립문 영천시장 어귀에 자리한 헌책방 〈골목책방〉을 들르는데, 마침 《한국의 발견》(뿌리깊은 나무,1983) 열한 권이 첫판으로 예쁘게 꽂힌 모습을 보았습니다. 낱권으로 하나씩 사서 읽다가 그예 짝을 못 맞추었는데 참 반갑구나 하고 인사하며 장만했습니다. 짐이 무거워 택배로 부쳐 주십사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즐거이 받아서 읽습니다. 열한 권 가운데 전라남도 책을 먼저 뽑아서 고흥군 이야기부터 살핍니다. 1983년 통계로 고흥군은 19만이 넘게 살았고 외국사람은 열둘뿐이었답니다. 2012년 고흥군은 7만을 살짝 넘고 외국사람은 오백 안팎이에요. 1983년에 서울이나 다른 큰도시는 몇 만에 이르는 사람이 살았고 2012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까요. 이 숫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까요.

 

 서른 해 사이에 거의 1/3로 줄어든 고흥사람 숫자는 앞으로 더 줄어들밖에 없습니다. 이동안 도시사람 숫자는 차츰 늘어날 테고, 도시에서는 집이며 물이며 일자리이며 모자라다 하겠지요. 도시에서는 집을 새로 짓고 길을 새로 내며 자동차 새로 늘어나느라 자연이 더 무너져야 합니다. 자연을 더 파헤치고 아파트와 높은 건물 잔뜩 늘려야 해요.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삶이고 맙니다. 스스로 자연을 잃는 넋이 되고,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사랑으로 흐릅니다. 돈과 문명을 얻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잃고, 돈과 문명을 읽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4345.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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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는 지나갑니다

 


 제아무리 꽁꽁 얼리던 추위라 하더라도 지나갑니다. 사흘 이레 보름 달포를 꽁꽁 얼린다 하더라도 추위는 물러섭니다. 추위가 물러서면 더없이 싱그러우며 해맑은 바람과 하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포근하며 폭한 날씨가 내 몸에 반갑다면, 나 또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포근하며 폭한 마음씨로 마주할 때에 훨씬 반가우며 좋은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후덥지근 숨막히는 더위라 하더라도 지나갑니다. 사흘 이레 보름 달포를 후끈후끈 달군다 하더라도 더위는 물러섭니다. 더위가 물러서면 그지없이 시원하며 빛나는 바람과 하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원하며 빛나는 날씨가 내 몸에 반갑다면, 나 또한 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시원하며 빛나는 마음결로 마주할 때에 참말 기쁘며 고마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차가운 목소리는 얼마나 차가울까요. 마구 성을 내는 몸짓은 얼마나 무섭고 딱딱할까요. 추위를 겪으면서 비로소 내 차가운 바보짓을 헤아립니다. 더위를 치르면서 시나브로 내 어리석은 골부림을 깨닫습니다. 좋은 날씨가 그야말로 좋다면, 좋은 사랑이 그야말로 좋습니다. 좋은 사랑 담은 글이 한결 좋다면, 좋은 이야기로 넉넉한 품을 나누는 책이 한결 좋습니다. (4345.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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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2-03 12:52   좋아요 0 | URL
골부림이라는 낱말이 눈에 띄네요!
골을 부린다, '아마 성질을 낸다거나 짜증을 낸다는 뜻일거야'
하며 찾아봤더니 진짜로
[+골+부리-ㅁ]함부로 벌컥 화를 내는 일.
이라고 나오는군요^^

짧은 글짓기)나는야 골부림 대장.(사실에 근거한 짧은 글짓기죠..ㅡ.ㅡ;;)

숲노래 2012-02-03 14:28   좋아요 0 | URL
오오, 국어사전에 이 낱말이 실렸네요! @.@
저는 그냥 말 나오는 대로 적은 낱말이었거든요~

오호~
 


 궁금한 책

 


 책방에 배본이 된 지 이틀 겨우 된 내 열한 번째 책이 ‘헌책’으로 떴다. 몹시 놀랍다. 어떻게 이 책을 벌써 누군가 헌책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 책방에 배본이 된 지는 이틀이 되었으나,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린 지는 아마 이레쯤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아마 어느 언론사에서 이 책을 보도자료로 받고 나서 곧장 다른 사람한테 주었다든지, 어느 언론사에서 딱히 소개할 값어치가 없다고 여겨 헌책방에 내다 팔았거나, 재활용쓰레기로 버린 뒤 샛장수가 헌책방에 팔았다 할 텐데, 어찌 된 영문일까. ‘신간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받은 이들이 하루 만에 후다닥 ‘서평쓰기 숙제’를 마치고는 곧바로 ‘헌책’으로 파는 ‘개인 헌책방’에 ‘나온 지 며칠 안 되는 책’을 띄우는 일을 본 적이 있는데, 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신간평가단을 모으지 않을 뿐더러, 내 책이 신간평가단이나 서평단 손에 들어간 일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참으로 궁금하다. 책이 돌아가는 흐름이 궁금하고, 새책을 헌책으로 바꾸어 내다 파는 사람이 궁금하며, 책을 손에 쥐어 읽는다는 사람들 매무새가 궁금하다.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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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가 걷는 길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닌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실을 간다. 택시를 불러 탈 수 있지만, 바닷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탄다. 그런데 버스는 포구로 갈 뿐, 모래밭 있는 바닷가로는 가지 않는다. 포구에서 내리니 바닷가까지는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한단다.

 

 옆지기는 둘째를 업고 나는 첫째 손을 잡고 걷는다. 첫째는 요리조리 장난스레 걷다가 졸린 나머지 안아 달라 말한다. 첫째를 안고 걷자니 처음에는 괜찮으나 이내 아이 무게가 꽤 묵직하다고 느낀다. 참 많이 컸구나, 참 튼튼히 자라는구나, 앞으로 네가 안길 날은 얼마 안 되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아이들과 걸을 만한 흙길이 너무 적다. 모든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깐다. 사람들은 밑창 두툼한 신을 신는다. 멧자락을 오르든 논둑이나 밭둑을 걷든, 온통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곱고 넓게 깔린다. 흙과 풀을 밟으며 바닷가를 거닐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릴 수 없을까. 꼭 이렇게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온누리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뿌려야 할까.

 

 모든 목숨이 살아갈 수 있는 밥을 얻자면 흙땅이 있어야 한다. 풀은 흙땅에서 돋는다. 풀 먹는 짐승을 잡아먹는 큰 짐승은 ‘흙에서 나는 풀을 먹는 짐승’이 있어야 살아가니까, 큰 짐승도 흙을 밟고 누려야 목숨을 잇는다.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소나 돼지나 닭 또한 풀이 있어야, 풀이 돋는 흙이 있어야 목숨을 잇는다. 풀을 즐겨먹을 사람이든 고기를 즐겨먹으려는 사람이든, 풀이 돋는 흙을 누려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누빌 풀 돋는 흙땅이 자꾸 줄어든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씽씽 재빨리 달릴 길만 신나게 새로 닦는다. 새 다리를 놓고, 새 굴을 뚫는다. 새 기찻길을 놓고 새 찻길이 뻗는다. 자전거 달릴 길이라서 아스콘을 깔 까닭이 없다. 흙길을 반반하게 다지면 된다. 걸을 만한 길이면 자전거로 달릴 만한 길이다. 빨리 달리는 내기를 해야 하지 않으니, 아늑하거나 푸근하게 돌보면 좋은 길이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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