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마을에 화력발전소 짓지 마셔요

 


 왜 자꾸 시골에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할까요? 왜 자꾸 시골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 할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아버지로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말 시골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발전소를 지여야 하는 까닭이 무언가 깊디깊이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시골은 땅값이 쌀 테지요. 아무래도 시골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낮겠지요. 아무래도 시골에 발전소 짓겠다 하면 서울이나 큰도시에 있는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는 일도 드물겠지요.

 

 시골사람이 전기를 많이 써서 시골에 발전소를 짓는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식구도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우리 집이나 이웃 어르신들은 전기를 얼마 쓰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 시골사람은 무척 적기도 한 만큼,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서는 햇볕힘으로 고흥군 전기를 모두 댈 만큼 얻을 수 있어요. 전남 고흥은 굳이 화력발전소이든 원자력발전소이든 덧없습니다.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더 놓으면 돼요. 집집마다 지붕에 햇볕힘 전지판을 붙이면 됩니다.

 

 포스코건설에서 전남 고흥이라는 데에 2020년까지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합니다. 포스코건설은 처음에는 포항시에서 화력발전소를 지으려다가 주민 반대에 계획을 접었다고 하는데(2011년), 전남 고흥에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는다고 해요(2012년). 전남 해남에는 다른 건설회사에서 이 또한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지으려 한답니다.

 

 고흥도 해남도 전기가 모자라서 이곳에 발전소를 짓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라남도 큰도시에서 쓸 전기가 모자라다고 여길 테고, 어쩌면, 부산이나 서울에서 쓸 전기를 이곳에서 뽑아내자고 여기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보면,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대전이나 울산이나, 이곳 큰도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스스로 짓지 않습니다. 서울 초·중·고등학교 급식이나 대학교 구내식당 먹을거리는 ‘서울에서 흙을 일구어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고기’로 마련하지 않습니다. 모두 ‘서울 아닌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고기로 마련합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짓거나 길을 닦을 때에, 모래나 흙이나 자갈은 어디에서 가져올까요. 서울에서 얻을까요, 시골에서 가져올까요.

 

 지구환경이 크게 무너진다고 하면서, 쿠바에 있는 생태도시 아바나를 눈여겨본다고들 합니다. 쿠바 아바나가 얼마나 생태도시다운가는 제가 아바나를 찾아가지 못했으니 모릅니다만, 생태도시라 할 때에는 100%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더라도 웬만큼 자급자족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는 밥을 아바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텃밭을 일구어 얻는다는 뜻입니다.

 

 시골땅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아버지로서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식구들 깃든 전남 고흥이 아름다운 시골마을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는다 할 때에, ‘특별지원 가산금’이 ‘건설비 5/1000에다가 세수입이랑 초기건설비 15/1000’라 합니다. 건설회사에서 내놓은 자료에 ‘3525억 원이 고흥군에 주어지’며 ‘고용창출 연인원 432만 명’이라고 밝힌다는데, 이 어마어마한 돈과 이 어마어마한 고용창출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득 무척 궁금해요.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면서 왜 3525억 원이나 고흥군에 주는가요? 화력발전소가 얼마나 ‘좋은(?)’ 시설이기에 3525억 원을 거저로 고흥군에 준다고 하나요? 고용창출 432만 명이라면, 발전소를 짓는 막일꾼 고용창출이 432만 명이나 된다는 뜻인가요? 고흥군 사람들은 거의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데, 고작 7만 명이 될락 말락 하는 작은 군 모든 사람들이 몽땅 막일꾼으로 일하더라도 432만 명은 턱도 없는데, 1만 명 고용창출도 아닌 432만 명 고용창출이 된다 한들 무엇이 어떻게 발돋움할는지 궁금합니다.

 

 전남 고흥군에 짓는다는 화력발전소는 ‘나로도 우주센터’ 곁이요, 이곳 봉래면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입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로도 우주센터부터 국립공원에 짓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지만 짓고야 말았습니다. 고흥군 봉래면 바닷가가 국립공원이라 한다면, 군과 정부는 이곳 국립공원을 어떻게 돌보고 어떻게 지켜야 걸맞을까를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를 지어 3525억을 거머쥐면, 이 돈으로 자연 터전을 지키는 데 쓸 마음인가요.

 

 아무래도, 해가 갈수록 전기가 모자라기에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싶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이렇게 걱정할 만합니다. 그러면, 왜 전기가 모자란지를 생각해야겠어요. 우리는 전기를 왜 이토록 많이 써야 하나요. 발전소를 더 지으려고 애쓰기보다, 전기를 덜 쓰고 석유를 덜 쓰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자가용을 줄이거나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하지 않나요. 자꾸자꾸 도시로 몰려들어 돈만 더 벌어들이는 삶길이 아니라, 내 사랑스러운 식구들 먹을거리부터 내 손으로 땀흘려 일구는 착한 삶길을 찾아야 하지 않나요.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는 7조 원은 7조 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땔 석탄값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올 매연과 쓰레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를 짓는 중장비와 짐차가 내뿜을 배기가스를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실어나를 배가 오가며 바다에 흘릴 석유와 매연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가 한 번 서면 7조 원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기를 얻는다며 들여야 하는 돈과 뒷치레가 너무나 큽니다. 7조 원이면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몇 개쯤 붙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 화력발전소에 들일 자원값에다가 환경피해분담금을 햇볕힘 얻는 전지판을 집집마다 붙이는 쪽으로 쓴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얼마나 깨끗하며 환하게 빛나는 삶터로 거듭날까요. 고흥군이 눈먼 3525억 원이 아니라, 공장도 고속도로도 골프장도 기차역도 없이 정갈한 삶터로 이어가도록 더 힘쓴다면, 지구별 사람들은 쿠바 아바나만 생태도시로 바라보지 않고, 전남 고흥 또한 아름다운 생태마을로 여겨 숱한 사람들 발길이 찾아들어 저절로 지역살림을 발돋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돈에 홀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돈에 파묻히지 않으면 좋겠어요. 돈을 바라보며 우리 보금자리를 망가뜨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랑스레 살아갈 터전을 사랑스레 보살피면 좋겠어요. 사람은 종이돈이든 쇠돈이든 우걱우걱 씹어먹을 수 없고, 국을 끓여 먹지도 못해요. 사람은 맑고 기름진 흙에 씨앗을 심어 얻은 열매와 푸성귀와 곡식을 먹을 뿐이에요. 맑고 기름진 흙을 화력발전소로 더럽히고, 맑고 파란 바다를 화력발전소 매연과 쓰레기로 더럽힌다면,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부터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요. 한국땅 깨끗한 삶터에는 끔찍한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를 끝없이 지은 다음, 깨끗하다 하는 머나먼 나라에서 거둔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값싸게 사들여서 돈을 치러 사먹어야 하나요.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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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좀 많이 벌어요.”

 


 옆지기가 말한다. “돈 좀 많이 벌어요.” 돈을 좀 많이 벌어야, 당근 신나게 심어 거둘 땅뙈기를 장만하고, 집숲을 일굴 5000평 폐교를 사들이며, 사람들 예쁘게 어우러지며 살아간다는 부탄이라는 나라에 마실을 가거나 아예 부탄으로 옮겨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돈을 좀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한 권째 새로 나온 내 책이 올 한 해에 15만 권쯤 팔리면 될까. 나는 다른 일자리를 얻어 살아가지 않으니까, 내가 써서 내놓는 책이 쏠쏠하게 팔려야 돈을 번다. 또는, 내 사진을 다달이 백만 원어치 사 주는 사람이 열 사람 있다면 돈을 좀 많이 버는 셈이 될까.

 

 당근밭 장만할 돈, 집숲을 일굴 5000평 폐교를 사들일 돈, 우리 네 식구 부탄으로 여러 달 마실을 다닐 만한 돈, 이렇게 쓸 수 있게끔 올 한 해 돈 좀 많이 벌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내 글이 나부터 내 살붙이와 내 이웃들한테 고운 사랑 불러일으켜 저마다 스스로 고운 살림을 일구는 밑돌이 될 수 있게끔 바지런히 땀흘리며 살아가자고 꿈꾼다. (4345.1.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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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2-01-26 14:23   좋아요 0 | URL
된장님 오천평 폐교 사들이시면 놀러가고 싶네요.
새해 뜻하신바 모두 이루시길 바래요.

숲노래 2012-01-26 16:58   좋아요 0 | URL
하루빨리 사들여
널리널리 좋은 이웃들
모시고 싶어요~~~ @.@
 


 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사람이 새끼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스스로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시골마을에서 일거리를 찾아 시골마을에서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못한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까지만 시골에서 다니고, 중학교부터는 이웃한 큰도시로 가기 일쑤이다. 곧, 전남 고흥 시골마을 아이들 가운데 적잖은 아이들은 이웃한 큰도시 순천으로 가고, 광주로 가며, 때로는 경기도 수원이나 아예 서울로 간다. 어느 시골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일찌감치 서울로 간다. 전남 고흥에는 대학교가 없으니 어차피 가르친다면 더 일찍 더 빨리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가도록 내몰아야 좋다고 여긴다.

 

 시골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 이렇게 사람 새끼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도록 하니, 우리 네 식구 시골마을로 깊디깊이 보금자리를 찾아 삶터를 옮긴 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알쏭달쏭하다고 여길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이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칠 때에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더’라고 한결 일을 잘 하고, 생각이나 말이 또릿또릿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시골마을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말은 조금도 옳지 않다. 시골마을에서는 꿈을 키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 말 또한 하나도 맞지 않다. 시골마을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시골마을뿐 아니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사람들이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짓는다. 시골마을 일거리가 아니라면 사람들 모두 굶어죽거나 헐벗거나 추위에 떨어야 한다. 시골마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며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시골마을은 돈벌 구멍이 없다고 말해야 조금 맞을 동 틀릴 동 하다. 그러나, 돈벌 구멍이라고 해 봐야, 크고작은 도시는 공무원 일거리라든지 회사원 일거리가 있다뿐, 사람들 스스로 어버이한테서 받은 고운 목숨을 어여삐 북돋우는 착한 일거리가 참말 있다고 할 만한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패션디자이너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여행가이드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대학교수나 스튜디어스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버스기사나 기술자나 정비사나 연구원이나 공장 임노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의사나 검사나 판사나 약사나 간호사나 변호사나 법무사나 회계사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좋고 어여쁜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좀처럼 못 느끼는구나 싶다.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흙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흙을 먹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보람찬가를 제대로 못 느끼는 나머지, 자꾸자꾸 흙에 비료를 치고 풀약을 뿌리며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며 기계를 부리는구나 싶다.

 

 밤하늘 별과 미리내를 밀어내고 전깃불을 밝혀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될까. 낮하늘 구름과 무지개를 몰아내고 자가용을 싱싱 달려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나.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또각이며 가죽가방을 한손에 들어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는가.

 

 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마당에, 우리 네 식구는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자락으로 들어갔다. 멧골자락에서 한 해를 지낸 뒤 큰도시 서울이랑 한참 더 멀어지는 전라남도 시골마을로 들어왔다. 시골마을로 들어온 뒤 어린 두 아이 건사하랴 집일 하랴 여러모로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이다 보니, 나 또한 좀처럼 흙 밟으며 아이들이랑 못 놀고 만다. 이런 나날이라면, 시골로 온 보람이 무엇 있으랴 싶지만, 보금자리를 찬찬히 손질하고 가다듬느라 몇 달은 이럭저럭 견디자고 생각해 본다. 차근차근 우리 네 식구 일머리와 살림살이를 추스르며 시골마을 흙바람 흙내음 고이 누리자고 생각한다. 아침에 신나게 빨래를 마치고 이모저모 토닥거리고 나서는, 뒤꼍 땅뙈기를 돌보고 흙길 밟는 마실을 즐기자고 생각한다. 풀을 밟고 풀을 뜯고 풀을 먹고 하늘과 구름과 멧등성이와 바다를 바라보고 큰숨 들이마시자고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이고, 꿈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일이란, 돈이란, 사람이란, 삶터란, 집이란, 옷이란, 밥이란, 이야기란 무엇일까.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낸다.’ 하고 읊는 말마디가 참 못마땅했다. 사람을 왜 서울로 보내야 하나.

 

 하루하루 자라면서 바라보면, 이 나라에서는 사람만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람을 비롯해 좋다 하는 먹을거리이든, 샘물이든, 종이이든, 물고기이든, 나물이든, 모조리 서울로 보낸다고 느꼈다. 온통 서울로 쏠린다. 무엇이든 서울로 빨려든다. 그러고는, 서울에서는 이 모두를 아무렇게나 휘저어 쓰레기를 만들고는 이 쓰레기를 시골로 ‘내려보낸’다. 서울은 시골에서 받아들인 온갖 열매 알맹이만 살짝 빨아먹고는 찌꺼기를 된통 시골로 ‘내다 버린’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을 서울로 보내면 쓰레기만 만드는 바보를 만든다’고 느꼈다. 나부터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서울에서 살아가던 나는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바보로 지냈다고 깨닫는다.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을 낳은 어버이가 저희 새끼하고 오붓하게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틀어야 아름답고 즐거우며 착한 나날을 누릴 수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는다. 어른들 또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아이들만 착하게 살아야 하지 않아. 어른들 또한 착하게 살아야지. 아이들만 곱게 살아야 하나. 어른들 또한 곱게 살아야지.

 

 좋은 넋, 좋은 꿈, 좋은 말을 아리따이 어우르는 좋은 삶을 누릴 좋은 사람으로 지내며 좋은 사랑을 빛내야 바야흐로 좋은 글이 태어나고 좋은 그림이 태어나며 좋은 사진·좋은 노래·좋은 춤·좋은 문학이 태어나겠지. (4345.1.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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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26 10:37   좋아요 0 | URL
일본의 경우 지역학교를 나오서 지역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우린 너무 경제 활동이 서울로만 집중된것이 큰 문제지요ㅜ.ㅜ

숲노래 2012-01-26 10:59   좋아요 0 | URL
우리는 공무원도 지역 공무원이 안 돼요.

다들 고향하고 먼 데에서 자취하거나 하숙하면서 공무원이 되고... 참 얄딱구리합니다..
 


 ‘노동시 평가’에 나 혼자 괜히 골을 부리며

 


 지난 2005년부터 내 마음에 오래도록 감도는 시집이 있다. 2005년에 이 시집 느낌글을 하나 쓰기는 했으나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이 느낌글을 썩 제대로 썼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2012년 설을 맞이해 음성까지만 다녀왔다. 음성을 거쳐 일산까지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고흥을 떠나는 새벽까지 옆지기 몸이 어떠한가를 살피느라 음성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막상 미리 끊지 못했다. 돌이켜 보니, 못 간다 하더라도 표는 미리 끊어야 하지 않았으랴 싶다. 왜냐하면, ‘간다 10% 못 간다 90%’인 채 광주에서 청주 가는 시외버스표 하나는 끊었으니까.

 

 살림돈 후덜거리기에 음성에 간다 하면 음성에서 서울로 갈 기차표 끊을 돈을 걱정할 만하지만, 그래 봤자 10만 원 안팎일 텐데, 정 못 간다면 집에서 취소하면 되니까 그리 근심할 일이 아니었구나 싶은데, 늘 이렇게 때가 지나고서야 뒤늦게 땅을 친다. 아마, 표를 미리 끊었다면 우리 네 식구 음성을 거쳐 일산 옆지기 어버이까지 뵙고 돌아왔겠지.

 

 후줄근하고 초라한 살림집이라 하더라도 어여쁘며 좋은 보금자리이다. 못난 어버이는 없다. 나와 옆지기한테 우리 어버이가 못난 어버이가 아니듯,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가 못난 어버이가 아니다. 서로 꾸밈없이 어여쁜 사람들이다. 조그맣고 조그마한 이 시골집에 할머니 할아버지 두 다리 뻗고 즐거이 주무시고 돌아가셔요, 하고 인사할 만하다. 한 지붕에 한 이불 덮고 잠자리에 드는 일이 기쁨이요 아름다움이지, 꼭 호텔 방 같은 데에서 묵어야 보람이거나 즐거움이 아니다.

 

 아주 찌뿌둥한 몸으로 새벽에 일어난다. 오래도록 마음에 담은 시집 하나를 헤아리다가, 이 시집에 하나 달린 ‘서평’을 읽다가, 이 시를 내놓은 분 삶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괜히 골이 난다. 어느 분이 별 다섯 만점에 별 둘을 붙이면서 ‘노동시’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는다고 적은 짧은 ‘서평’을 읽다가, 울컥 하고 무언가 치민다. 노동시란 뭐지? 사랑시란 뭐지? 문학이란 뭐지? 시란 뭐지? 글이란 뭐지?

 

 시골마을 시골집에서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이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 읽으라고 시를 쓰는 도시사람은 없다. 아무도 없다.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예쁘게 나누려고 시를 쓰는 문학쟁이란 없다. 아무도 없다. 연필 쥐기보다 호미 쥐기를 좋아한 박경리 님이라지만, 막상 박경리 님이 쓴 시조차 시골자락 흙을 밟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읽도록 쓴 시이지는 않다.

 

 노동시라면 누가 읽으라는 시일까. 노동자라는 사람이 읽으라는 시인가. 그러면, 노동자라는 사람은 어떤 시를 읽고 어떤 ‘노동자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좋아하거나 즐기다가는, ‘노동자 삶을 꾸리며 낳은 아이들’한테 이 ‘노동자 일과 삶’을 물려줄 만할까.

 

 새벽바람에 찌뿌둥한 바람으로 골을 부리며 글을 쓴다. 글을 다 쓰니 기운이 폭 빠진다. 울컥 하고 치미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부질없다. 그런데, 찌뿌둥할 뿐 아니라 눈이 절로 감기는 마당에 울컥 하고 치밀다 보니, 없는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책상맡에 무릎 꿇고 앉아 글을 쓴다. 책상맡에 걸상을 놓고 앉아 글을 쓸 수 있는데, 옆지기하고 한살림 꾸리던 때부터는 낮은 책상 앞에 가만히 무릎 꿇고 앉아 글을 쓴다. 일부러 이렇게 글을 쓰지는 않는데, 무릎이 시릴 때까지만 책상맡에서 무릎 꿇고 글을 쓰니 나한테 아주 좋구나 싶다.

 

 내가 즐겨읽던 시집 하나를 누군가 애틋하게 사랑하는 손길로 쓰다듬은 글을 붙여 주었다면, 나는 어떤 넋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때에도 이 시집에 느낌글 하나 쓸 만했을까. 다른 이가 고운 사랑으로 느낌글 하나 썼다면, 나는 애써 내 사랑을 담는 느낌글을 쓰려 했을까.

 

 나는 새해 설날부터 아이한테 잔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마음이나 다짐과 달리 잔소리를 하고야 만다. 잔소리를 하고 난 뒤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또 속을 긁는다. 이 바보스러운 아버지는 얼마나 바보스러운 티를 풀풀 내며 철부지로 살아야 하느냐고 스스로 속을 긁는다. 나는 좀 사랑어린 손길로 우리 집식구를 보듬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살아갈 수 없을까. 자꾸자꾸 이렇게 뉘우치기만 하지 말고, 사랑어린 삶을 누려야 하지 않나.

 

 슬프구나 싶은 서평 때문에 괜히 골을 냈다. 괜히 골을 내면서, 나는, 나부터, 나야말로 골을 부리지 않는 삶을 일구며, 사랑을 돌보는 삶을 누리자고 또 다짐한다.

 

 누군가 나한테 거울이 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달갑잖은 거울은 그야말로 달갑잖다. 아름다운 거울이 좋다. 눈물 흘리는 거울이 좋고, 웃음꽃 흐드러진 거울이 좋다. 새벽에 코피 쏟은 아이 곁으로 돌아가서 더 드러누워야겠다. 아이 손을 살며시 잡고 아이 이불을 여미고 아이 머리칼을 쓸어야겠다. (4345.1.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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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만두 빚는 할머니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왔다. 시외버스 여섯 시 반 걸린 먼길, 모두들 지치지만 어찌 되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아 한 시간 지나고 두 시간 지나며 아이들은 기운을 싱그러이 되찾아 뛰고 기고 달리고 노래하고 논다.

 

 모두 잠든 깊은 밤, 둘째는 어김없이 으앵 하고 자지러지듯 운다. 옆지기가 오줌기저귀를 가는 내내 아주 서럽게 운다. 옆지기도 쉬를 누고 내가 아이를 안으며 어르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옆지기가 돌아와 안으니 비로소 울음을 그친다. 옆지기는 할머니가 혼자 만두를 빚는다고 이야기한다. 응? 이 말에 잠을 퍼뜩 깨고 일어난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는다. 시계를 본다. 새벽 세 시. 부엌으로 가서 어머니 곁에 앉는다. 어머니는 들어가서 아이들하고 자라 말씀한다. 나는 부엌에서 어머니 곁에 쪼그려앉는다. 얇게 편 만두살을 집는다. 숟가락으로 속을 퍼서 담는다. 나란히 만두를 빚는다. 내가 빚는 만두는 어머니가 빚는 만두하고 모양이 같다. 다만, 어머니 만두가 아들 만두보다 조금 더 예쁘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아들보다 만두를 훨씬 오래 더 많이 빚었으니까.

 

 새벽 세 시 사십 분. 만두빚기를 끝낸다. 만두속은 많이 남는다. 나머지는 이듬날 더 빚기로 한다. 어머니는 잠이 오지 않아 혼자 만두를 빚으려 하셨단다. 참말일까? 참말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도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이 되기로 했다. (4345.1.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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