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못할 짓


 자동차가 선 곳으로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서 자가용에 아이를 태운 다음,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다니는 일이란 아이한테 참으로 못할 짓이라고 느낀다. 아이는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 곁에서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을 배우지 못한다. 어버이는 아이 손을 잡았으면 나란히 걷거나 함께 달리거나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내려다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워야 한다.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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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06-05 08:23   좋아요 0 | URL
내가 이 글을 왜 쓰는지 한 사람이라도 부디 잘 알아듣고 헤아려 주면 좋겠다...

hnine 2011-06-05 09:46   좋아요 0 | URL
알아듣겠습니다.그리고 공감해요.

숲노래 2011-06-05 13: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이 키우는 분들이 어쩔 수 없다 싶을 때라도 자가용을 타지 않으면서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느끼면 좋겠어요...
 



 나무책


 백 살을 먹은 느티나무에서 꽃을 피웁니다. 이백 살을 먹은 느티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삼백 살과 사백 살과 오백 살을 먹은 느티나무에서 꽃을 피웁니다. 육백 살을 먹은 느티나무 밑에는 지난해에 떨군 씨앗이 뿌리를 내려 싹을 돋은 새로운 어린나무가 자랍니다. 이제 막 한 살이 된 어린 느티나무 줄기는 갓난쟁이 손가락보다 가느다랗습니다. 몇 백 살을 먹은 우람한 느티나무 줄기는 가장 키가 크거나 가장 몸집이 크다는 어른이 팔을 벌려 안아도 안을 수 없을 만큼 굵습니다.

 한 살 난 어린나무는 백 살 먹은 느티나무 밑에든 이백 살 먹은 느티나무 밑에든 마음껏 자라납니다. 햇볕을 더 듬뿍 쬐지 못하고 물을 더 실컷 마시지 못하지만, 우람한 어른 느티나무 곁에서 어린 느티나무는 즐겁게 자라납니다.

 느티나무는 느티꽃을 피우고 느티씨를 맺습니다. 느티나무가 피우는 느티꽃에서 맺는 느티씨는 새로운 느티나무를 낳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느티나무를 키워서 이곳저곳에 심기도 하지만, 사람이 심는 숫자와 품하고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어른 느티나무는 한꺼번에 수백 수천 새끼나무를 낳습니다.

 수백 수천 새끼나무 모두가 어른 느티나무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얼마쯤 자라다가 꺾이거나 밟히기도 하고, 말라죽기도 합니다. 풀을 먹고 살아가는 멧짐승이 잎을 뜯어먹어서 죽을 수 있고, 풀약을 치는 사람들 때문에 타죽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 손길 때문에 우람한 어른 느티나무 한 그루만 언제까지나 살아남고, 어른 느티나무 둘레에서 새로 자라나려 하는 어린 느티나무는 한 그루도 못 살아남을는지 몰라요.

 지난해에 모두 죽고 지지난해에 모조리 죽었어도 올해에 새로 씨를 맺습니다. 올해마저 몽땅 죽는다 하더라도 이듬해에 새롭게 씨를 맺으며,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느티나무는 느티꽃을 피우면서 느티씨를 맺습니다. 먼먼 앞날, 어른 느티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진다든지, 또는 벌레가 파먹는 바람에 죽는다면, 해마다 수없이 맺고 떨군 느티씨 가운데 몇몇이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면서 새롭게 어른 느티나무가 되겠지요. 사람은 느티나무한테 느티나무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만,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붙든 안 붙든 제 목숨을 고이 사랑하면서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립니다. (4344.6.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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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자장노래


 새벽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안 자려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누구보다 아이 몸이 힘들 텐데 걱정스럽습니다. 아이가 낮잠을 한두 시간 새근새근 잔다면 한결 즐겁고 신나게 놀 텐데, 좀처럼 낮잠을 안 자려 합니다.

 해가 길어진 이른여름, 아이를 불러 자전거마실을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좋아서 뜁니다. 마실을 가는 길에 아이는 노래노래 부릅니다. 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꾸벅꾸벅 좁니다. 집에 거의 다 올 무렵 비로소 고개가 폭 꺾입니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시 잠이 깰까 싶습니다.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마을을 조금 돌아보기로 합니다. 멧자락에 깃든 우리 집 둘레에는 아직 모내기가 멀었으나, 멧자락 아랫녘인 마을은 벌써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갓 모를 심은 논둑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아이는 살랑이는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살랑이는 바람은 논자락 어린 모를 살살 건드립니다.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빼고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한 논둑을 한창 달리다 보니 수레에 탄 아이가 옆으로 폭삭 쓰러집니다. 수레 한쪽에 머리를 기대어 잠듭니다.

 이제 아버지는 자전거를 더 천천히 달립니다. 수레가 덜 흔들리도록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당에 자전거를 세웁니다. 아이 신을 벗깁니다. 안전띠를 풀고 영차 하고 아이를 안습니다. 갓난쟁이 둘째가 잠든 곁에 첫째를 눕힙니다. 첫째는 새벽 한 시 반까지 내처 곯아떨어집니다. 이러다가 새벽 한 시 반부터 새벽 다섯 시 이십오 분까지 잠들지 않고 놉니다. 이거야 원, 낮잠을 재우려고 자전거마실을 했다가, 아버지는 낮잠도 밤잠도 못 자며 눈자위가 벌겋습니다. (4344.6.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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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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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책


 청바지를 빨고 이불을 빨아야 한대서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손으로 빨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식구가 늘고 아이가 여럿 있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맞다. 그러나 여러 아이와 큰식구가 버스나 기차로 오가다 보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내 옷, 옆지기 옷, 아이 옷을 손으로 빨래한다. 이불을 빨래하고 청바지를 빨래한다. 이불 한 채를 빨면 기운이 폭 빠진다. 청바지 한 켤레를 빨면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물을 듬뻑 머금은 이불을 낑낑 들고 빨래줄에 널어 물짜기를 하면 등허리가 결린다. 청바지를 탕탕 털어 물방울이 흩날리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아기수레도 싣고, 기저귀도 실으며, 젖병도 싣고, 이렁저렁 옷가지를 챙겨 실어야 하니까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여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까 고단해서 자가용에 몰아넣으면 한숨을 덜면서 골 아픈 일이 적단다. 책방마실이라도 해서 책을 잔뜩 장만한다면 낑낑 끙끙 들고 오기 힘들지만, 자가용에 실으면 거뜬하단다.

 차츰 더운 날이 된다. 찬물로 북북 비비고 밟으며 이불을 빨아서 넌다. 빨래를 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 헹굼물로 쓰기 앞서 낯을 씻고 팔다리에 끼얹는다. 몸씻이를 하며 이불을 빨래한다. 해바라기 하는 마당에 이불을 널면서 눈을 살짝 찡그린다. 이불과 기저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한참 마실하다 보면 어느덧 다리가 아프다며 안아 달라는 아이를 덥석 안는다. 장마당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장만하느라 가방이 꽤 무겁다. 뒤로는 가방이, 앞으로는 아이가 무게를 서로 버틴다. 첫째는 아기수레 없는 채 즐거이 네 살 어린이로 자랐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씩씩한 몸뚱이가 있기에, 첫째는 제 다리로 이 땅을 당차게 박차며 함께 뛰논다.

 몸이 고단하니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려우니 책 한 권 펼치기 만만하지 않다. 어버이부터 책읽기를 제대로 못하니까 아이한테 책읽기를 하라고 이르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버이가 쉴새없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이 심부름을 하고 저 일을 거든다. 나는 아이한테 집살림이나 집일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저 우리 집 살림과 일을 바삐 하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줄 뿐이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어떤 이름이 붙는지 낱낱이 알지 못할 뿐더러, 낱낱이 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아이한테 늘 “벼리야, 꽃이나 풀이나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 꽃이나 풀이나 나무가 예쁜 줄 느끼면 돼. 고마운 꽃이고 어여쁜 풀이며 사랑스러운 나무야.” 하고 말한다. 멧자락에서 날마다 듣는 수많은 멧새 소리를 하나하나 가누지 못하지만, “우리 집 둘레에 새가 참 많이 살지? 아버지는 새 이름을 잘 몰라. 그러나 이 새들 목소리가 다 다르구나 하고 느껴. 다 다른 새들 목소리를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말한다.

 앞마당 빨래줄에 널어 나부끼는 기저귀 사이사이로 뜀박질을 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벼리야, 네 동생처럼 네가 어릴 적에 네 아버지는 이렇게 네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을 쬐어 주었단다.” 아이는 햇볕을 머금으면서 자란다. 둘째가 태어나서 집일이 곱배기로 느는 바람에 집안 비질이나 걸레질조차 거의 못하며 지내지만, 첫째는 착하게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자란다. 밥상을 차리면 행주질을 맡으려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행주질을 해 보려 애쓴다. 착한 아이야, 너한테는 책이 따로 없어도 된다. 집안과 집밖이 모두 고우며 맑은 책이란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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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4   좋아요 0 | URL
아이쿠,빨래와 청바지를 직접 빠신다니 힘이 많이 드시겠네요.가끔은 문명의 이기를 좀 이용하셔도 좋을듯 싶습니다^^

숲노래 2011-05-30 22:54   좋아요 0 | URL
세탁기 파는 데를 한번 가 보았는데, 이불을 빨 만한 녀석을 사려면 100만 원은 있어야 하더군요... 그냥 이대로 잘 살아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