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84) 함구


어떤 경로를 통해 아이가 우리에게 왔는지 우리는 끝까지 함구하기로 했다

《카롤린 필립스/유혜자 옮김-황허에 떨어진 꽃잎》(뜨인돌,2008) 77쪽


 함구하기로 했다

→ 입을 다물기로 했다

→ 숨기기로 했다

→ 감추기로 했다

→ 말을 않기로 했다

→ 말을 안 하기로 했다

 …



  한국말사전에 ‘함구’라는 한자말이 두 가지 실립니다. 첫째 ‘含垢’는 “욕된 일을 참고 견딤”이라고 나오는데, 이 한자말을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참고 견디다”라 말하거나 “참다”라 말하거나 “견디다”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緘口’는 “입을 다문다는 뜻으로, 말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말풀이처럼, 한국말은 “입을 다물다”입니다. “함구하다”가 아닌 “입을 다물다”로 써야 올바릅니다.


 사람들의 함구 그 이면의 말을 캐내려고

→ 사람들이 입을 다문 그 뒷말을 캐내려고

→ 입을 다문 사람들 뒤를 캐내려고

→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뒷말을 캐내려고

 어제 사건에 관하여 일체 함구하고 있다

→ 어제 일을 모두 입을 다문다

→ 어제 일을 놓고 모두 입을 닫는다

→ 어제 일과 얽혀 조금도 입을 벙긋하지 않는다


  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쉽고 알맞게 쓰는 한국말이 있을 적에 굳이 한자말을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 뿐입니다. 영어를 배우려 한다면 ‘shut up’을 써도 될 테지만, 영어를 배워서 써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입 다물자’나 ‘조용히 해’ 같은 한국말을 즐겁게 쓰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입다물기·입다물다’ 같은 낱말을 오늘날 새롭게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눈감다’라는 낱말을 쓰듯이 입과 얽혀서 ‘입다물다’를 비롯해서 ‘입닫기·입닫다’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떤 길을 거쳐 아이가 우리한테 왔는지 우리는 끝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경로(經路)를 통(通)해”는 “길을 거쳐”나 “길로”로 다듬습니다.



함구(含垢) : 욕된 일을 참고 견딤

함구(緘口) : 입을 다문다는 뜻으로, 말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 사람들의 함구 그 이면의 말을 캐내려고 /

     어제 사건에 관하여 일체 함구하고 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91) 우아


페르시아고양이가 샴고양이보다 우아해서 좋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소녀의 마음》(양철북,2004) 9쪽


 우아해서

→ 아름다워서

→ 멋있어서

→ 예뻐서

→ 고와서

→ 사랑스러워서

 …



  한자말 ‘우아(優雅)하다’는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를 뜻합니다. 그런데, ‘우아미(優雅美)’라는 한자말도 있으며, ‘우아미’라는 이름을 쓰는 회사가 있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말풀이처럼, ‘우아’는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미(美)’라는 한자도 ‘아름다움’을 뜻해요. 그러니, ‘우아 + 미’인 ‘우아미’는 “아름다움 + 아름다움”인 셈입니다.


 우아한 자태 → 아름다운 모습

 우아하게 걷다 → 아름답게 걷다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 백제 미술은 아름답고 빼어나다

 우아하게 낮은 목소리로 → 아름답게 낮은 목소리로


  뜻이 같은 낱말을 잇달아 붙여서 적을 적에는 어떤 뜻을 힘주어서 말하려는 생각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몹시 아름답다고 여겨서 ‘우아미’처럼 쓸 수 있고, 대단히 아름다운 어떤 모습을 빗대려고 ‘우아미’를 쓸 수 있어요.


  그러나, 몹시 아름다울 적에는 ‘몹시 아름답다’라 하면 되고, 대단히 아름다울 적에는 ‘대단히 아름답다’라 하면 됩니다. 해와 같이 하얗고 맑을 적에 ‘해맑다’라 하고, 몹시 맑을 적에는 ‘드맑다’라고 해요. 그러니, 맑으면서 아름다운 모습은 ‘해아름답다’라 할 수 있고, 몹시 아름다운 모습은 ‘드아름답다’라 할 수 있습니다. ‘드-’를 붙이는 ‘드높다·드세다·드넓다·드솟다·드날리다’ 같은 낱말이 있어요. 굳이 여러 가지 한자를 다시 엮고 거듭 붙이면서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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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22) 궁하다窮 1


이번 번역이 그 예외 중에서도 진짜 예외였던 것이, 돈벌이가 궁해지지 않았더라면 그런 엄청난 작업에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기식-지리산으로 떠나며》(지영사,2005) 14쪽


 돈벌이가 궁해지지 않았더라면

→ 돈벌이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 돈벌이가 바닥나지 않았더라면

→ 돈벌이가 어려워지지 않았더라면

→ 돈벌이가 힘들어지지 않았더라면

 …



  돈벌이가 ‘떨어졌’군요. 돈벌이가 ‘사라졌’군요. 돈벌이를 할 자리를 ‘잃었’군요. 이럴 때에는 어찌할 수 없이 싫은 일이라도 떠맡습니다.


 어찌나 궁한지 → 어찌나 가난한지

 궁한 살림 → 쪼들리는 살림

 일거리가 궁하다 → 일거리가 없다

 얘깃거리가 궁한지 → 얘깃거리가 없는지


  가난한 살림이다 못해 쪼들리는 살림이기도 합니다. 가난하거나 쪼들리는 살림은 ‘힘들’고 ‘고달프’고 ‘괴롭’고 ‘벅차’며 ‘힘겹’기까지 한 살림이기도 합니다. ‘어려워’ 죽을 노릇입니다.


  일거리가 떨어지거나 없어지면, 팍팍한 살림이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얘깃거리가 떨어지거나 바닥이 나면, 듣는 사람은 괴롭습니다.


 궁하다 못해 생각해 낸

→ 짜내다 못해 생각해 낸

→ 쥐어짜내다 못해 생각해 낸


  없으니 짜내려고 합니다. 쥐어짜내려고 용을 씁니다. 비틀어 짜내려고 온힘을 쏟아붓습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살펴서 나타내면 됩니다. 4338.8.18.나무/4348.5.21.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번역이 그 남다른 것 가운데에서도 참 달랐으니, 돈벌이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런 엄청난 일에 매달리지도 않았으리라


“그 예외(例外) 중(中)에서도”는 “그 남다른 것 가운데에서도”로 손보고, “진짜(眞-) 예외였던 것이”는 “참 달랐으니”로 손봅니다. ‘작업(作業)’은 ‘일’로 손질하고, “않았을 것이다”는 “않았으리라”로 손질합니다.


궁(窮) : 가난한 상태. 또는 그런 기색

   - 궁이 들다 / 궁을 떨다

궁(窮)하다

1. 가난하고 어렵다

   - 어찌나 궁한지 고리로 돈을 빌리고 있다 / 궁한 살림에 자식은 낳아서

2. 일이나 물건 따위가 다하여 없다

   - 요즘은 일거리가 궁하다 / 얘깃거리가 궁한지 같은 말을 계속하고 있다

3. 일이 난처하거나 막혀 피하거나 변통할 도리가 없다

   - 권 변호사의 말은 궁하다 못해 생각해 낸 객설이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30) 궁하다窮 2


대답이 궁해진 나에게, 아야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먼저, 1승이죠?” 하고 중얼거린다 …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 “2연승.” 아야는 말한다

《시게마츠 기요시/고향옥 옮김-졸업》(양철북,2007) 36쪽


 대답이 궁해진 나에게

→ 할 말이 떨어진 나한테

→ 할 말이 없는 나한테

→ 말할 수 없는 나한테

 …



  보기글을 보면, 옮긴이는 처음에는 “대답이 궁해진”이라고 하다가, 이내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앞과 뒤에서 다른 말로 적어 보고픈 마음이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보기글 앞쪽은 “대답이 떨어진”이나 “대답을 못하는”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또는, “할 말이 없는”이나 “말 못하는”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글뜻을 더 헤아리면, “뾰족한 말을 못하는”이나 “딱히 할 말이 없는”처럼 적을 만하고, “이렇다 할 말이 없는”이나 “뭐라 할 말이 없는”처럼 적을 만하며, “벙어리가 된”이나 “입을 다문”처럼 적을 만합니다. “말이 없어진”이나 “망설이는”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1.6.8.해/4348.5.21.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할 말이 없어진 나한테, 아야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먼저, 한 번 이겼죠?” 하고 중얼거린다 …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 “또 이겼네.” 아야는 말한다


“1승(一勝)이죠?”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한 번 이겼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2연승(連勝)”은 “또 이겼네”나 “두 번째 이김”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대답(對答)’은 ‘말’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72) 궁하다窮 3


사내는 할 말이 궁했다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소녀의 마음》(양철북,2004) 226쪽


 할 말이 궁했다

→ 할 말이 없었다

→ 할 말이 떨어졌다

→ 할 말이 바닥났다

→ 할 말이 사라졌다

 …



  할 말이 없으니 ‘없다’고 합니다. 할 말이 떨어졌으니 ‘떨어졌다’고 합니다. 할 말이 사라졌으니 ‘사라졌다’고 합니다. 없으면 없다고 하고, 떨어지면 떨어졌다고 하며, 사라졌으면 사라졌다고 합니다. 굳이 ‘窮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4348.5.2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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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495) 극極 1


안 그래도 콩쿨 피로가 극에 달할 때인데

《니노미야 토모코/서수진 옮김-노다메 칸타빌레 8》(대원씨아이,2004) 184쪽


 콩쿨 피로가 극에 달할 때인데

→ 콩쿨 피로가 하늘을 찌를 때인데

→ 콩쿨로 몸이 아주 힘들 때인데

→ 콩쿨로 몹시 고단할 때인데

 …



  외마디 한자말 ‘극(極)’을 빌어서 “極에 達하다”처럼 말할 적에는 “하늘에 닿다”나 “하늘을 찌르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에서는 콩쿨을 치르면서 몸이 매우 지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대로 “몸이 아주 지쳤다”고 하거나 “지쳐서 쓰러지려 한다”나 “매우 고단하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횡포가 극에 달하다 → 몹쓸 짓이 아주 끔찍했다

 슬픔이 극에 다다르다 → 슬픔이 하늘에 다다르다

 극과 극을 달려서 → 이 끝과 저 끝을 달려서


  ‘극(極)’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끝’이나 ‘벼랑’인 셈입니다. “극과 극을 달린다”는 말은 “끝과 끝을 달린다”는 소리요, “이 끝과 저 끝을 달린다”는 뜻입니다.


  “극에 달하다”와 비슷하게 ‘극단(極端)’이라는 한자말을 쓰는 분이 제법 있는데, 이 낱말은 “맨 끝”을 뜻합니다. 말뜻을 제대로 살피면 한국말로 어떻게 써야 올바르거나 알맞은가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4339.4.25.불/4348.5.21.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안 그래도 콩쿨 때문에 몹시 고단할 때인데


‘피로(疲勞)’는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듦”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힘들다’나 ‘지치다’로 손질한 낱말입니다. 글흐름을 살펴서 ‘고단하다’나 ‘고달프다’나 ‘힘겹다’를 넣어도 됩니다. ‘달(達)하다’는 ‘이르다’나 ‘닿다’나 ‘찌르다’로 다듬습니다.



극(極)

1. 어떤 정도가 더할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

   - 횡포가 극에 달하다 / 슬픔이 극에 다다르다 /

     그의 감정은 극과 극을 달려서 종잡을 수가 없다

2. 전지에서 전류가 드나드는 양쪽 끝

3. 자석에서 자력이 가장 센 양쪽의 끝

4. 구(球)에 그린 대원(大圓)이나 소원(小圓)의 중심을 지나고, 이 원이 만드는 평면에 수직인 구의 지름의 양 끝

5. 지축(地軸)의 양쪽 끝

6. 지구의 자전축이 천구(天球)와 만나는 점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70) 극極 2


그무렵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불편함 때문에 생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타이라 아이린/김남미 옮김-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판미동,2015) 154쪽


​ 극에 달해 있었다

→ 하늘을 찔렀다

→ 아주 대단했다

→ 끔찍하도록 컸다

→ 그지없이 끔찍했다

 …



  짜증이 나고 다시 짜증이 나면, 짜증이 쌓입니다. 또 짜증이 나는데 더 짜증이 나면, 그야말로 짜증이 커다란 짐덩어리처럼 어깨를 누릅니다. 마치 짜증덩이가 터질 듯하다고 할 만합니다.


  짜증이 하늘을 찌른다고 할 수 있고, 짜증이 아주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이 끔찍하도록 컸다고 할 만하고, 짜증으로 하루가 그지없이 끔찍했다고 할 만해요. 4348.5.21.나무.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무렵 말을 잘 나눌 수 없어 괴로웠기 때문에 늘 짜증이 하늘을 찔렀다


이 보기글에서 “말이 잘 통(通)하지 않는 불편(不便)함 때문에”는 글쓴이가 다른 나라에 있느라 서로 ‘다른 말’을 쓰느라 말을 나누기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살펴서 “말을 잘 나눌 수 없어 괴로웠기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생활(生活) 스트레스(stress)”는 “생활 짜증”이라는 소리인데, ‘살면서, 또는 지내면서 짜증만 있다’는 뜻인 만큼, “늘 짜증났다”나 “언제나 짜증스러웠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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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61 ‘일’과 ‘직업’



  한국말사전에서 ‘일’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으로 풀이하고, ‘직업(職業)’이라는 낱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로 풀이합니다. 아마 오늘날 사회에서는 이렇게 풀이할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직업’은 모르되, ‘일’을 “대가를 받으려고 하는 활동”으로 풀이를 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일’이라는 낱말은 여러 곳에서 씁니다. 이 낱말을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만, ‘일’은 처음부터 ‘직업’을 가리키는 자리에는 안 썼습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써서 움직이는 모든 삶을 가리켜 ‘일’이라 했어요. 이리하여, 아이한테는 ‘놀이 = 일’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네, 심심하구나.” 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생기지 않거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거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 때에도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흐름과 움직임이나 몸짓이 나타날 때에 비로소 ‘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스스로 움직여서 무엇을 이루면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직업’이나 ‘노동’이기 때문에 ‘일’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어떤 것을 이루거나 지을 적에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일’이나 ‘옛 일’을 돌아봅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도울 일’을 찾습니다. ‘기쁜 일’을 함께 기쁘게 여기고, ‘슬픈 일’을 같이 슬프게 삭입니다. 꾸짖거나 나무랄 일이 있을 테고, 북돋우거나 살릴 일이 있을 테지요. ‘네가 다녀오면 될 일’이라든지 ‘손수 나무를 심으면 될 일’이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이 있어’야 삶이 있습니다. 노동을 하거나 직업이 있어야 삶이 있지 않아요. ‘일이 있어’서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일 때에 삶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야 삶이 있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면 돈이 있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가 일을 할 적에는 돈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삶 때문에 일을 하고, 오로지 삶을 가꾸고 지어서 아름답게 하루를 누리려는 뜻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즐거우면서 돈도 저절로 따라옵니다. 기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기쁘면서 돈도 찬찬히 따라오지요. 고되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고될 뿐 아니라 돈도 고되게 들어와요. 힘겹게 일하는 사람은 삶이 힘겨운데다가 돈도 힘겹습니다.


  일을 찾으려 한다면, 먼저 삶을 어떻게 가꾸려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고 하는 삶을 먼저 찬찬히 생각해서 알뜰살뜰 가꾸어야 합니다. 삶을 그림으로 아름답게 그릴 때에, 내가 할 일이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삶을 그림으로 즐겁게 그리기에, 내가 할 일이 즐겁게 나타납니다. 삶을 그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는다면, 직업이나 노동은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이리하여 돈은 좀 벌거나 만질는지 모르나, 막상 ‘무엇을 해야 내 삶이 기쁘거나 아름답거나 보람이 있는지는 모르는’ 모습이 되고 말아요. 생각이 없이 돈만 벌어서 무엇을 할까요? 삶을 그리지 않고 돈만 많이 모은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하는 옛말은, 생각을 해서 삶을 그리는 사람만 ‘삶을 누리’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고되거나 벅찬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 일이 고되거나 벅찹니다. 지겹거나 따분한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꿈이 없으니 지겹거나 따분합니다. 귀찮거나 성가신 일이란 없습니다. 아무런 사랑이 없으니 귀찮거나 성가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그리고, 꿈을 지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 삶을 그려서 담고, 꿈을 지어서 놓으며, 사랑을 길어올려서 가꾸어야 합니다. 이때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름다운 손길을 타면서 따사롭고 넉넉하게 이루어집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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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12) 정원사적


그토록 소설가적이었던 나는 남쪽의 부드러운 바람을 따라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금세 정원사적인 내가 되어 오랫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초목 하나하나에 다시 시선을 던지고

《마루야마 겐지/이영희 옮김-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2015) 43쪽


 정원사적인 내가 되어

→ 정원사인 내가 되어

→ 정원사 같은 내가 되어

→ 정원사다운 내가 되어

→ 정원사가 되어

→ 나는 정원사가 되어

 …



  ‘정원사적’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소설가적’이라는 낱말도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일본사람은 글을 쓰면서 어디에나 ‘-的’을 붙이는데, 한국사람은 글을 쓸 때에 ‘-다운’을 붙이거나 ‘같은’을 덧달면 됩니다. 4348.5.19.불.ㅅㄴㄹ



* 보기글 새로 쓰기

그토록 소설가로 살던 나는 부드러운 남쪽 바람을 따라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곧 나는 정원사가 되어 오랫동안 쳐다보지도 않던 푸나무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고


“남쪽의 부드러운 바람”은 “남쪽에서 부는 부드러운 바람”이나 “부드러운 남쪽 바람”으로 다듬고, ‘금세(今時)’는 ‘곧’으로 다듬으며, ‘초목(草木)’은 ‘푸나무’로 다듬습니다. “시선(視線)을 던지고”는 “바라보고”나 “보고”나 “쳐다보고”로 손봅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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