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픈 마을 (2023.9.15.)

― 인천 〈오월의 제이크〉



  예전에 인천 시외버스나루가 있던 곳은 여러 마을이 맞닿았습니다. 버스나루는 용현1동이라면, 바로 옆은 용현5동이고, 기찻길 옆 사이로 숭의1동에, 길 건너 노란집이 줄지은 데는 숭의2동에, 연탄공장하고 제일제당이 깃들고 제가 살던 집이 있던 데는 신흥동3가였어요. 여기에서 나루 쪽으로 조금 가면 연안동이고, 옥련동하고 학익1동은 걸어서 가깝고, 신광초등학교 앞으로는 선화동인데, 신흥초등학교 쪽으로 건너가면 신흥동2가요, 안쪽은 신흥동1가이고, 인천여상 쪽으로 뻗으면 신생동에 사동으로 잇고, 곧이어 답동과 답동성당이고, 율목동하고 신포동이 큰길로 만나고, 싸리재를 끼고서 유동하고 인현동1가에 인현동2가가 맞물리고, 신포시장 쪽은 내동입니다. 배다리는 경동하고 금곡동하고 창영동하고 송림1동하고 맞닿습니다. 박문여고 쪽으로 가면 송림2동에 송림3동으로 잇다가 송림4동과 송림6동에 도화2동이고, 야구장 쪽으로 금곡동에 창영동에 숭의1동에 송림3동에 도원동이 맞물리고, 이윽고 수봉산 쪽으로 도화2동이고, 이윽고 널따란 주안동으로 이어요.


  이제는 옛골목이 거의 송두리째 헐렸으나, 아직 숭의1동 오랜 동무네 감나무집은 고스란합니다. 이 곁에 마을책집 〈오월의 제이크〉가 깃들었어요. 우리나라 어느 고장이 왁자지껄 허물고 부수고 올려세우지 않았겠느냐만, 인천 중·동·남구가 맞물린 골목마을은 끝없이 물결치는 아픈 마을이에요.


  책집에 깃들어 《제이크 하늘을 날다》라는 그림책을 떠올립니다. 작은책집은 작게 둥지를 틀기에 작게 빛납니다. 큰책집은 크게 터를 잡으며 크게 반짝이겠지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게 책을 만나고 읽고 새기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천천히 즐겁게, 나무가 자라듯, 해마다 풀꽃이 돋아나듯 하루를 노래하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곳에 담벼락(카르텔)이 섭니다만, 어떤 담도 사랑을 가두지 못 해요. 사랑을 담는다면 담벼락이 아닌 보금자리일 테지요. 눈먼 담벼락을 스스럼없이 치울 줄 알면서, ‘담벼락 글밭(카르텔 문단)’을 살랑살랑 거스른다면, 아니, “하늘을 나는 제이크”처럼 홀가분히 바람을 마시고 들숲을 노래한다면, 온나라에 마을책집이 골목빛에 푸른빛으로 어우러지리라 생각합니다.


  다쳐서 아픈 데는 해바람비에 풀꽃나무를 품으면서 시나브로 낫습니다. 들을 밀고 숲을 밟고 바다를 등지니 온나라가 아파요. 이제는 잿집을 허물고 부릉길을 걷어내어, 누구나 맨발로 뛰놀고 쉴 숲마을을 열어야지 싶습니다. 푸른살림을 들려주는 책을 손에 쥐면서, 푸른말로 속삭이는 마음을 가꾸어야지 싶어요. 책꾸러미를 지고서, 어릴 적에 걷던 길을 따라 용현동부터 배다리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2023.3.3.첫/2023.5.25.3벌)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사울 레이터/조동섭 옮김, 윌북, 2018.5.30.첫/2022.4.30.고침)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19.1.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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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토막 (2023.8.18.)

― 인천 〈나비날다〉



  고흥에서 끝내지 못 한 마감글을 붙잡고 시외버스를 달려 서울에 닿고는, 이수나루 언저리 〈알라딘 중고샵〉에 가서 자리 하나를 맡았습니다. 겨우 마감글을 보내고서 숨을 돌렸고, 인천으로 달리는 칙폭길에 노래꽃을 천천히 씁니다. 오늘은 송현동 골목을 따라 걸어서 배다리로 닿습니다. 먼저 〈나비날다〉부터 찾아가는데, 젊은이가 꽤 많습니다. ‘이분들은 다 책손님인가? 오늘은 붐비네?’ 하고 여겼지만, 책손님이 아닌 ‘15분 연극’을 하러 온 멋님(배우)이로군요.


  토막판(단막극)을 하는 분들은 책집에서 판놀이를 벌여도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드물 수 있습니다. 책집에서 뭘 찍는 분들치고, 책집에 느긋이 깃드는 발걸음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노래그림(뮤직비디오)을 찍는 분들은 책시렁을 이리저리 바꾼다거나 책도 이래저래 바꿔치기를 해놓기 일쑤이더군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흐르거나 해가 나거나 별이 돋는 날씨를 고스란히 살려서 노래그림을 찍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일을 하는 사람도 없다시피 하는 오늘날이에요. 딱히 누구를 나무랄 일은 없습니다.


  이원수 님이 남긴 노래(동시) 가운데 ‘씨감자’를 읽으면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란 대목이 있어요. 토막판을 여는 젊은이는 씨감자를 알까요? 씨감자를 어떻게 묻는지 알까요?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누구나 무엇이든 다 알아보고 알아차리고 알아갈 수 있어요. 마음을 틔우고 눈을 뜨는 사람이라면, 온누리 모든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게 마련입니다. 생각해 봐요. 그리 멀잖은 옛날에는 온누리 누구나 손수 집밥옷을 짓고 나누었어요. 따로 책이나 배움터가 없더라도, 지난날 수수한 사람들은 사랑으로 짝을 맺어 아이를 낳아 오롯이 사랑으로 품고 돌보면서 말까지 알뜰살뜰 물려주었습니다.


  배다리 〈나비날다〉에서 큰판을 벌이든 작은판을 꾀하든, ‘나비’가 왜 나비인지를 알아보는 분이 늘기를 바라요. ‘날다’가 왜 날다라는 투박한 우리말인지 알아차리는 이웃이 늘기를 바라요. 냥이는 왜 나비를 그렇게 반기고 같이 놀면서 바람빛을 파랗게 머금으면서 사뿐사뿐 거닐 수 있을까요? 열두띠에 ‘고양이띠’는 없되 ‘범띠’는 있습니다. 범무늬를 담은 ‘범나비’가 있어요. 한마음 한뜻으로 사귈 줄 알 적에 ‘벗’입니다. 물가에서 살랑살랑 춤추며 푸르게 물드는 버드나무가 차츰 사라지고 버들피리를 불 줄 아는 어린이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책집에서는 책을 보고 읽고 느끼고 나누는 토막판을 토닥토닥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귀로 보고 손으로 읽으면》(호리코시 요시하루/노수경 옮김, 김영사, 2023.8.4.)

《고양이를 찍다》(이와고 미츠아키/박제이 옮김, 야옹서가, 2019.8.26.)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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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인천으로 (2023.8.18.)

― 인천 〈아벨서점〉



  인천 배다리 책골목은 어릴 적부터 으레 뛰놀거나 지나다니던 길입니다. 어릴 적에는 ‘책집마다 다른 이름’인 줄 느끼거나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거기 가면 책집 많잖아?”라든지 “거기 가면 없는 책 없을걸?” 같은 말을 또래나 동무하고 주고받을 뿐입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라며 인천 모든 책숲(도서관)을 가 보았습니다. 어린이(국민학생)일 적에는 “어린이 출입금지”로 못박기 일쑤라 1987년까지는 얼씬조차 못 했고, 푸름이(중학생)로 들어선 1988년부터 중구·동구·남구·북구·서구로 찾아다녔어요. 쉬는 날짜(요일)가 다 달랐거든요. 이제는 다르지만, 1992년까지 인천 책숲은 ‘입시 도서실’하고 똑같았고, 책도 얼마 안 갖추었어요. 슥 들러보아도 쥐고픈 책이 드물고, 이레쯤 드나들면 더는 읽을 만한 책을 못 찾았습니다.


  이러던 1992년 8월 28일에 배다리 책골목 가운데 〈아벨서점〉에서 드문책(절판본)을 두 자락 찾아냈고, 이날 처음으로 ‘책이 들려주는 말소리’를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책소리를 들은 이날 “그런데 여기 이름은 뭐지?” 하고 책집 알림판을 쳐다보았어요. 1992년 가을하고 1993년 한 해 내내 배다리 책골목하고 〈아벨서점〉은 앳된 푸름이가 어질게 철드는 눈빛을 북돋우는 샘터였습니다.


  1994년 3월 2일부터 서울 이문동 열린배움터(대학교)로 먼길을 달려가야 했고, 이레에 하루나 이틀 겨우 〈아벨서점〉을 찾아가서 눈귀를 씻고 마음을 다독였어요. 서울은 훨씬 큰 고장이지만 〈아벨서점〉보다 작고 책이 적은 책집이 수두룩합니다. 〈대창서림〉이나 〈창영서점〉보다 작고 책이 조금인 책집도 많더군요. 그런데 서울은 인천보다 책값이 눅어요. 드문책을 찾기도 수월합니다. “이래서 다들 ‘서울타령’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책도 많고 책집도 많을 뿐 아니라, 헌책값도 눅고 사람도 많고 일거리도 많고 돈도 많이 도는 서울인데, 서울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고을일까요? 땅값이 어마어마하지만 막상 나무 한 그루 설 틈이 없고, 들풀 한 포기를 만날 골목조차 드문 서울은 얼마나 살갑거나 포근한 터전일까요?


  싸움터(군대)를 다녀오고 제금난 1998년 1월 6일부터 집(주소)을 서울로 삼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작은 헌책집을 품은 골목마을’에서 숨통을 텄어요. 달포 만에 인천으로 찾아갈 적에도 ‘인천이라는 골목마을을 품은 작은 헌책집’에서 숨길을 열었어요. 북한산도 인왕산도 청계천도 아닌 ‘서울 골목골목 작은 헌책집’이랑, 관교동도 연수동도 송도도 영종도 아닌 ‘인천 배다리 책집’이 키워 주었어요.


ㅅㄴㄹ


《참마음 샘터 5 영원한 행복》(편집부, 진화당, 1986.5.30.)

《노을》(김원일, 문학과지성사, 1978.11.10.첫/1979.7.15.2벌)

《崔仁勳全集 11 유토피아의 꿈》(최인훈, 문학과지성사, 1980.1.25.첫/1983.11.15.3벌)

《한국의 조류》(원병오, 교학사, 1993.5.30.)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에버하르트 뫼비우스/김라합 옮김, 보리, 2000.10.25.)

《가난이 사는 집》(김수현, 오월의봄, 2022.10.24.)

《모여라 꼬마과학자》(박종규 외, 태창출판사, 1992.5.15.)

《늙은 떠돌이의 詩》(서정주, 민음사, 1991.11.10.)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훈 할머니》(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엮음, 아름다운사람들, 2004.2.24.)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F.엥겔스/김대웅 옮김, 아침, 1987.11.30.)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유신선포에서 민청학연까지》(岩波 엮음/편집부 옮김, 한울림, 1985.1.30.)

《실록 친일파》(임종국 글·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돌베개, 1991.2.27.)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정주영, 제삼기획, 1991.10.5.첫/1991.10.10.6벌)

《새벽편지》(정호승, 민음사, 1987.9.30.첫/1997.6.30.신장판)

《파로호반의 여름》(김구연, 동아사, 2009.3.20.)

《절정의 노래》(이성선, 창작과비평사, 1991.9.20.)

《산정묘지》(조정권, 민음사, 1991.7.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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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염통 마음 (2022.8.27.)

― 제주 〈노란우산〉



  시골에서 살더라도 숲을 잊으면 바보로 나아갑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숲을 품으면 어진 눈빛을 틔웁니다. 삶터도 대수롭되, 삶터를 가꾸는 마음이 더없이 대수롭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운데에 있어서 ‘가슴’입니다. 생각을 빛으로 맑게 틔우며 가꾸는 곳인 ‘마음’입니다. 옛말로는 ‘슴·음’이 ‘삼·움’에 ‘살·알’로 같습니다.


  이제는 ‘염통’을 짐승한테만 써야 하는 듯 치지만, ‘옆구리’처럼 ‘옆’이라는 자리이면서 ‘여미’는 몫을 하는 속을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여기다’라는 낱말도 있습니다. ‘여기 + 다’인 ‘여기다’인데, 말밑인 ‘여’는 ‘열다’하고 맞물려요. 열고 엮어서 여미고 여기는 동안 마음이 자라고 몸이 깨어납니다.


  빗방울이 노래하는 날, 제주 〈노란우산〉에서 조촐히 이야기꽃을 폅니다. 말 한 마디가 어떤 씨앗으로 우리 숨결로 깃드는가 하고 나누는 자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반가우면서 즐겁습니다. 눈을 틔우려면 눈치 아닌 눈길일 노릇이에요. 눈치를 보기에 움츠리고, 눈길을 열기에 움직입니다. 눈여겨볼 수 있다면 웅크릴 까닭이 없어요. 눈빛을 밝혀 눈꽃으로 피어나려고 움트면서 일어나요.


  우리 힘으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 내딛습니다. 신나게 펼치는 자리입니다. 일부러 왁자지껄해야 하지 않고, 붐비거나 북적거려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북새통이라면 돈은 모일는지 모르나, 마음이나 꿈이나 사랑이 싹트기 어려워요. 아니, 북새통에서는 오히려 씨앗이 밟히고 나무뿌리도 밟혀서 아파요.


  서울 한복판을 봐요. 풀싹이 날 틈이 없습니다. 나무가 가지를 뻗을 틈바구니가 없습니다. 새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을 틈새란 어디 있을까요?


  가슴을 여는 글로 여민 책도 널리 팔리거나 읽힐 수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드뭅니다. 마음을 밝히는 글로 엮은 책도 두루 팔리거나 읽힐 만한데, 아직 우리나라 마을책집에서는 이 대목에 덜 마음을 기울입니다.


  탓을 하고 타박을 놓고 투정을 부리기는 매우 쉬워요. 하나씩 해보는 길도 아주 쉽지요. 어느 ‘쉬운길’을 갈는지 스스로 고를 노릇입니다. 여태 써온 말도 스스로 돌아보자면 ‘쉬운말’일 테지만, 먼 옛날부터 숲사람이 스스로 지은 말도 ‘쉬운말’이요, 오늘 우리가 숲빛으로 새롭게 지을 말도 ‘쉬운말’입니다.


  눈에 띄는 책은 ‘뜨일’ 뿐입니다. 손에 잡히는 책은 ‘잡힐’ 뿐입니다. 그들을 탓할 틈이 있으면, 우리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 즐거워요. 그들을 타박할 짬이 있으면, 멧새랑 바닷새를 보금자리 곁으로 불러서 함께 노래하면 사랑스럽습니다.


ㅅㄴ


《오늘이》(이성강, 한솔수북, 2017.3.29.)

《오름나그네 1》(김종철, 다빈치, 2020.4.15.)

《오름나그네 2》(김종철, 다빈치, 2020.4.15.)

《오름나그네 3》(김종철, 다빈치, 20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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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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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나와 너 (2023.4.22.)

― 서울 〈다시서점〉



  요새는 어린이집부터 아이들을 일찌감치 가르치려 들면서 ‘위인’을 알려주고, ‘존경할 인물 소개’까지 합니다. 그림숲(미술관)·박물관(살림숲)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일찍부터 ‘입시공부’에 이바지할 밑동을 닦으려 하더군요. 어른이란 이름인 자리에서 아이들한테 으레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하고 묻는데, 저는 어릴 적에 으레 ‘어머니’라고 대꾸했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 여섯 해를 ‘어머니를 높일 만하다’고 밝혔습니다.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로 옮긴 뒤에는 ‘높이 여길 사람’으로 ‘헌책집지기’를 더 꼽았습니다. ‘그냥 책집’이 아닌 ‘헌책집’으로 콕 집었어요. ‘그냥 책집’은 ‘팔 책’을 손쉽게 시키고, ‘안 팔리는 책’은 손쉽게 물립니다. ‘헌책집’은 ‘팔 책’을 먼지더미를 헤치면서 캐내고서 하나하나 손질하고 말린 뒤에, ‘안 팔리는 책’을 내내 끌어안다가 눈물바람으로 외려 돈을 더 치러서 내놓아야 합니다. ‘그냥 책집’은 이미 둘레에 알려진 책을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맞춰 주면 됩니다만, ‘헌책집’은 둘레에 잊히거나 안 알려진 책을 새롭게 캐내고 알아내고 찾아내어 겨우 한 자락을 갖춥니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지으면 저마다 하루가 별빛으로 나아갑니다. 안 높은(존경)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높고, 누구나 너울거리고, 누구나 하늘하고 바다(바닥) 사이를 가만히 춤추듯 오르내립니다. 낮이 있으니 밤이 있고, 해가 뜨니 별이 돋습니다. 어머니 곁에 아버지가 어질게 있으니 보금자리를 일구는 어버이로 거듭나고, 어른 두 사람이 온삶으로 보여주는 사랑을 아이들이 물려받아 새롭게 가꾸기에 온누리가 아름다울 수 있어요. 이 얼거리가 틀어지면 온누리는 그저 싸움판입니다.


  서울 하늬녘 〈다시서점〉을 찾아갑니다. 어느 모로는 ‘서쪽 끝’이라 여기지만, 푸른별에는 끝이 딱히 없이 모든 곳이 ‘가운’입니다. 가운데요, 가운터요, 가운숲이요, 가운자리요, 한복판이에요.


  나라지기(대통령)를 맡는 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합니다만, 여느 벼슬꾼(공무원)은 얼마나 읽을까요? 여느 길잡이(교사)는 얼마나 읽을까요? 겨우 읽는 책은 품이나 갈래가 얼마나 넓거나 깊을까요? 뻔한 책조차 안 읽는다지만, 뻔한 책만 똑같이 읽는 나라가 오히려 더 외곬이기 쉬워요. 나라가 무너져도 되면, 책집이 무너져도 되겠지요. 나라가 사라져도 되면, 숲이 사라져도 될 테고요. 나라가 죽어도 되면, 말글이 죽어도 되겠고요.


  ‘나’를 잊는 ‘나라’는 없어도 됩니다. ‘나’를 스스로 사랑할 때라야 ‘너’를 알아보며 서로 빛나요. 저마다 날개를 달면서 함께 너머로 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영등포 시장한 요리》(고미랑, 플랜포히어, 2020.11.첫./2021.11.15.2벌)

《문화재 탐방》(김민혜, 1994.8.첫/2022.9.22.고침)

《어느 바보의 일생》(아쿠타가와 류노스케/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1.8.7.)

《강서뭉클 백과도감》(강서는뭉클뭉클, 강서구, 2023.)

《안부, 21명의 문학 작가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김경현 엮음, 다시서점, 2021.11.9.)

《엄마방 아빠방》(김경현, 다시서점, 2016.3.30.)

《더러워진 옷에 웃으며 우아하게 대처하는 법》(신수철, 무모한 스튜디오, 202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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