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차림 (2022.1.20.)

― 군산 〈마리서사〉



  서울에서는 어디나 가깝습니다. 서울에서는 모든 시골로 길을 뚫어요. 시골에서는 어디나 멉니다. 시골에서는 이웃 시골로조차 길이 없곤 합니다. 서울살이란 모든 새살림(현대문명)을 듬뿍 누리는 길입니다. 시골살이란 웬만한 새살림을 등지면서 숲살림을 느긋이 누리는 길입니다.


  이쪽이 낫거나 저쪽이 나쁘지 않습니다. ‘낫다·나쁘다’는 말밑이 ‘나’로 같고, ‘너·나’로 가르면서 ‘나·남’으로도 가르며, ‘날다·남다’를 이루는 말밑이에요. 아주 마땅히 ‘나’란 말밑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고, 오롯이 ‘나’라는 숨결을 그립니다. ‘나누다·노느다’ 말밑도 ‘나’인걸요.


  서울은 서울대로 재미납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신나요. 서로 다르면서 새롭게 어우러지기에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이따금 서울마실을 합니다. 저한테 아직 아이들이 안 찾아오던 지난날 혼자 날마다 책집마실로 살아가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던 무렵에 제 등짐이며 손짐은 온통 책입니다. 걸으면서 읽고, 자전거를 달리다가 다리를 쉬며 읽고, 자다가 읽어나서 읽고, 먹으면서 읽습니다. 일터에서 일하다가 읽고, 모임(회의)을 할 적에도 으레 책을 펴고, 이야기(강의)를 듣는 자리에서도 노상 딴 책을 펴서 함께 듣고 읽었습니다.


  군산을 밝히는 〈마리서사〉는 조촐하면서 가볍게 짠 책주머니를 내놓았고, 겉에 “패션의 완성은 손에 책”이란 글씨를 새겼습니다. “책차림은 멋차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늘 읽어서 멋스럽지 않습니다. “책읽기 = 이웃 생각을 귀담아듣기 + 동무 마음에 눈빛 틔우기 + 푸른별 새길을 사랑으로 찾기”를 밑바탕으로 놓는다고 여겨요. 문득 《남성복을 입은 여성들》을 읽습니다. 옷이란 그저 옷이요, 우리말 ‘바지·치마’는 순이나 돌이가 입을 옷으로 안 가릅니다. 발을 넣고 여미기에 바지요, 통으로 두르기에 치마입니다. 오랜 우리말을 곰곰이 읽으면 ‘순이돌이 어깨동무 발자취’를 물씬 익히면서 새길을 찾을 만해요. 우리말은 ‘어버이(어머니 + 아버지)’에 ‘가시버시’입니다. 늘 순이가 앞입니다.


  이른바 ‘사내옷(남성복)’은 그저 사내가 입는 옷이라기보다 ‘사내힘(남성권력 + 가부장권력 + 통치권력)’이지 싶습니다. 순이가 굳이 멋없는 사내차림을 한 까닭은 사내끼리 바보스레 울타리를 세운 그악스런 가시울타리를 허물려는 뜻이라고 느껴요. 저는 곧잘 치마차림을 합니다. 돌이로서 ‘순이차림’ 아닌 ‘치마차림’을 하면서 “옷이란 모두 옷일 뿐, 껍데기 아닌 알맹이에 흐르는 사랑어린 삶을 보자”는 뜻을 보이는 셈입니다. 오늘 작은아이하고 군산마실을 처음으로 하면서 높다란 잿빛집하고 다르게 조촐히 여미는 골목집에 깃든 책빛을 듬뿍 누렸습니다.


《오직 하나뿐》(웬델 베리/ 배미영 옮김, 이후, 2017.9.7.)

《womankind vol 14》(나희영 엮음, 바다출판사, 2021.2.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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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2021.10.29.)

― 서울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람마다 다르니 마을이 다르고, 살림집이 다르고, 책집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다르니 글씨가 다르고, 말결이 다르고, 몸짓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다르니 너랑 나랑 이름이 다르고, 노래가 다르고, 춤사위가 다릅니다.


  우리는 이름이 있기에 스스로 새로운 줄 깨닫습니다. 우리한테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빛을 잃고 숨결을 잊습니다. 꽃이름도 풀이름도 나무이름도 함부로 지은 적이 없는 모든 겨레입니다. 먹물붙이나 임금붙이가 지은 풀꽃나무 이름이 아닙니다. 손수 살림을 지으면서 숲을 품은 수수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붙인 풀꽃나무 이름입니다. 풀벌레한테도, 헤엄이한테도, 새한테도, 뭇짐승한테도, 수수한 숲사람(시골사람)은 사랑을 오롯이 기울여 이름을 지어 주었어요.


  오늘날에는 겨레마다 다르고 고장마다 다르고 마을마다 다른 이 풀꽃나무 이름을 ‘배움이름(학명)’에 맞추곤 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을 깎아내리지요. 우리 스스로 먹물붙이가 다시 매긴 배움이름에 휘둘려요.


  일본은 총칼로 우리나라로 쳐들어오고 배움터를 새로 열면서 아이들한테 1·2·3 같은 셈값(번호)을 붙였습니다. 아이들 이름을 지우고 셈값으로 불렀는데, 이 굴레는 일본이 물러난 뒤에도 오래도록 이었어요. 1970년부터는 ‘주민등록번호’를 내밀어 사람들을 가두는 틀을 짰습니다. 나라(정부·정치권력)는 들꽃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억누르거나 다스릴 셈값(번호)’으로 여겼습니다. 나라일꾼을 뽑는다는 자리에 가면 ‘선거인명부’란 셈값이 줄줄이 붙어요.


  영천시장 곁에서 책빛을 밝히는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를 찾아갑니다. 작은아이는 책집 앞골목이 비탈이 져서 재미있습니다. 영차영차 올라갔다가 바람처럼 화다닥 내리달립니다. 한참 달리기놀이를 하다가 책집에 다락이 있는 줄 알아채고는 다락놀이를 잇습니다.


  우리가 손에 쥐는 책은 모름지기 놀이하는 숨결에서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부터 누린 놀이를 이야기로 옮깁니다. 어버이란 이름을 얻어 아이하고 소꿉살림을 지으면서 돌본 하루를 글로 적습니다. 옛사람이 풀꽃나무한테 붙인 이름을 되새기면서 오늘에 맞게 새이름을 헤아립니다.


  이름은 말입니다. ‘이르다 + ㅁ = 이름’이니, 마음에 담은 생각을 소리로 터뜨려 말로 피어나면 비로소 이름으로 퍼집니다. 서울 곳곳을 밝히는 마을책집은 ‘마을 + 책 + 집’이란 이름으로 작은별입니다. 작은별은 작은씨앗이요, 작은씨앗은 작은손길이요, 작은손길은 잿빛나라를 푸르게 바꾸는 즐거운 사랑입니다.


《Town Mouse·Country Mouse》(Jan Brett, G.P.Putnam's sons, 1994.)

《Blueberry Girl》(Neil Gaiman 글·Charles Vess 그림, HarperCollins, 2009.)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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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무 (2021.7.8.)

― 인천 〈삼성서림〉



  7월 9일에 서울에서 일거리가 있었으나 일거리를 맡긴 분이 말없이 미루어 하루가 비었습니다. 아니, 그 일을 보고서 바깥마실을 하려는 길이었으니 모든 일이 뒤틀렸습니다.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그분만 보았으니, 저는 저대로 제가 나아갈 길을 바라보기로 합니다. 빠진 하루는 그만큼 여러 마을책집을 넉넉히 찾아다니는 날로 삼고, 미리 일그림을 잡은 대로 오늘은 인천으로 날아가서 〈시와 예술〉에 들르기 앞서 〈삼성서림〉에 들릅니다.


  배다리 〈삼성서림〉으로 들어서니 노랫가락이 그윽합니다. 어느 책집이든 노래나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이곳은 더 그윽합니다. 왜 그러한가 했더니 나무로 짠 소리판(전축)을 돌리셨더군요.


  소리판을 살짝 만져 봅니다. 소리판에 손을 대면 노랫가락이 손가락을 타고서 몸으로 찌르르 흐릅니다. 마치 책을 쥘 때 같습니다. 종이로 지은 책을 손에 쥐면, 이 책에 얹은 줄거리가 어떠하든 ‘숲에서 우람하게 자라며 바람을 마시고 해를 그리던 나무’ 숨결이 손가락을 타고서 온몸으로 짜르르 번져요.


  셈틀로 글을 많이 쓰곤 하지만, 굳이 붓을 쥐어 종이에 자주 씁니다. 저는 글판하고 다람쥐(마우스)를 나무살림으로 씁니다. 나무로 짠 글판하고 다람쥐를 매만지면, 어느 숲 어느 골에서 어떻게 하루를 누린 나무였는가 하고 느낄 만합니다.


  아무리 누리책이 나오더라도 애써 종이에 이야기를 담는 뜻이 있어요. 새로 나오는 책도 빛나지만, 오랜 손때가 묻은 책도 빛나요. 새책은 갓 종이로 거듭난 나무라면, 헌책은 일찌감치 종이로 거듭나고서 오래오래 사람 곁에서 함께 푸르게 숨쉬는 나무입니다. 책은 나무입니다. 붓도 종이도 나무입니다. 책집은 서울·큰고장 한복판을 푸른 숨결로 보듬는 숲터입니다.


  새책집은 마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숲터라면, 헌책집은 마을에 오랜빛을 퍼뜨리는 숲터라고 느낍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다른 나무가 저마다 다른 숨결로 거듭나면서 우리 곁에서 새삼스레 너울거리는 푸른씨앗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눈으로 책을 마주하기에 누구나 푸르게 피어납니다. 나무를 돌보며 품는 마음으로 책을 장만해서 아끼기에 누구나 푸릇푸릇 자라납니다. 나무를 심듯 책을 곁에 놓기에 보금자리에 푸르게 싹트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이 아닌, 나무로 살아온 책을 눈여겨본다면 사뭇 다릅니다. 줄거리가 아닌, 사람이 스스로 사랑한 삶을 차곡차곡 여미어 아이들한테 물려주어 숲하고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길을 밝히는 이야기를 읽으면 언제나 즐겁습니다.


《2분간의 녹색운동》(M.램/김경자·박희경·이추경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91.6.10.)

《찰리 채플린》(이와자끼 이꾸/박필규·최금화 옮김, 분도출판사, 1987.8.25.)

《돌길의 풀꽃》(최형, 산하, 1991.5.15.)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4.3.20.)

《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최준렬, 문학의전당, 2020.2.27.)

《기능사를 위한 도장기술》(이우성 엮어 옮김, 대광서림, 1964.6./1974.7.1.)

《‘진보의 새시대’는 오는가》(편집부, 새벽별, 1993.2.13.)

《우리문학의 넓이와 깊이》(김윤식, 서래헌, 1979.11.25.)

《농인, 우리들의 이정표》(이준하·박지영·최정화·김민주, 부크크, 2015.11.11.)

《행복은 그대 속에》(루드비히 마르쿠제/황문수 옮김, 범우사, 1979.11.25.)

《실존들의 모습》(김흥호, 풍만, 1984.10.5.)

《템플 그랜든》(사이 몽고메리/공경희 옮김, 작은길, 2012.9.25.)

《타고르 暝想錄》(타고르/김인환 옮김, 오성출판사, 1980.1.10.)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김진경, 푸른나무, 1988.3.20.)

《나는 농부란다》(이윤엽, 사계절, 2012.7.10.)

《혼자 집을 보았어요》(이진수 글·김우선 그림, 웅진문화, 1991.12.15.)

《Official Guide to Raising Better Rabbits》(편집부, American Rabbit breeders association, 197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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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2021.10.1.)

― 진주 〈동훈서점〉



  서울에서 혼자 살던 때에는 날마다 두서너 곳씩 책집마실을 다녔습니다. 서울은 어디를 가든 책집이 많았고, 이 책집에서 장만한 책을 저 책집으로 가는 길에 읽고, 저 책집에서 산 책을 그 책집으로 가는 길에 읽고는, 그 책집에서 맞이한 책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보리술 두어 병을 챙겨요. 책벗하고 노는 날도 있으나 혼자서 책하고 수다를 떨며 즐거웠습니다.


  곁님을 만나 아이를 낳고 보니 책집마실은 고개 너머 고개입니다. 살면서 ‘책집마실을 안 하는 날’이 생겼고,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고 보니 ‘책집마실을 하는 날’은 손으로 꼽을 만큼 줄어듭니다. 시골엔 책집이 없으니까요.


  바깥일을 보러 나갈 적에 어떻게든 쪽틈을 내어 책집을 찾았습니다. 곁님·아이·풀꽃나무·해바람비한테서도 삶을 새롭게 읽는 눈을 뜨는 길을 맞아들이지만, 이곳에서 몸뚱이를 입고 사는 동안에는 책집을 동무하고 싶거든요. 어느덧 작은아이가 열한 살을 넘어서는 2021년부터 집일을 아이들한테 맡기고서 이따금 느긋이 책집마실을 나섭니다. 이튿날 대구에 갈 일을 앞두고 여수책집을 먼저 찾고, 진주로 건너와 〈형설서점〉을 들르고서 〈동훈서점〉으로 넘어옵니다. 꼭두새벽에 길을 나선 몸은 뉘엿뉘엿 해질녘이 되니 꽤 고단합니다. 녹초가 되도록 걷고 책짐을 이고 온갖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밤을 맞이합니다. 책은 우리한테 어떻게 이바지하면서 삶을 헤아리도록 북돋울까요?


  마음을 틔우는 사람이라면 곁님 눈빛에 아이 눈망울을 지긋이 마주하면서 날개를 펼 줄 압니다. 마음을 여는 사람이라면 풀꽃나무한테 깃드는 벌나비랑 동무하면서 춤출 줄 압니다.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해바람비에 서린 숨빛을 고이 누리면서 스스로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를 터뜨릴 줄 압니다.


  곁님하고 아이를 마주하듯 책을 살핍니다. 풀꽃나무하고 벌나비랑 동무하듯 책을 읽습니다. 해바람비가 푸른별을 어루만지듯 새책도 헌책도 나란히 품습니다.


  스스로 별빛이 되는 사람이라면 손에 쥐는 책도 빛난다고 느껴요. 스스로 햇빛이 되는 사람이라면 손수 쓰는 글마다 반짝인다고 느껴요. 이름난 책을 찾으려고 책집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잘팔리는 책을 읽으려고 책집마실을 하지 않아요. 새롭게 마음으로 사귈 숨결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퍼져서 이곳을 노래하는가 하고 알아보려는 뜻으로 책집마실을 합니다. 한 손에 저녁놀을 담고, 다른 손에 붓을 쥡니다. 한 귀에 이야기를 담고, 다른 귀에 바람소리를 놓습니다. 책집을 찾아갈 틈을 내는 마음이라면, 살림집을 아끼는 손길을 뻗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1929, 미국대공황》(F.L.알렌/신범수 옮김, 고려원, 1992.5.10.)

《아이러니》(D.C.Muecke 글/문상득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4.15.첫.1983.1.30.셋)

《笑劇》(Jessica Milner Davis/홍기창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5.12.20.)

《中國秘傳 形意拳》(佐藤金兵衛 글/구송령 옮김, 대아출판사, 1979.3.30.)

《표류교실 1》(우메즈 카즈오 글·그림/장성주 옮김, 세미콜론, 2012.12.28.)

《통일비빔밥》(신현득 글·이호백 그림, 재미마주, 2019.6.15.)

《한국 傳來 ‘옛날 이야기’ 集》(한국고전연구회 엮음, 지하철문고사, 1980.12.10.)

《음운론》(J.L.Ducher/오원교·이승대·양영숙 옮김, 신아사, 1983.10.30.

《익살꾼 성자 나스룻딘》(이드리스 샤아 엮음/이아무개 옮김, 드림, 2010.10.1.)

《DrangonBall Z 1》(Akira Toriyama/Lillian Olsen 옮김, VIZ media, 2008.3.첫/2016.4.여덟)

《디즈니 그림명작 20 길 잃은 뱀비》(신동운·장수철 글, 계몽사, 1982/1986.3.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42 용감한 사냥군 히아와타》(유겨환 글, 계몽사, 1982/1986.5.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44 사랑스런 딱정벌레차》(이종욱 글, 계몽사, 1982/1986.5.3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54 더크 할머니와 게으름장이들》(석용원 글, 계몽사, 1982/1986.5.20.중판)

《디즈니 그림명작 55 행복한 퐁고와 퍼디》(이종욱 글, 계몽사, 1982/1986.5.20.중판)


글.사진 : 숲노래(최종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리고 숲살림을 짓습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이 쓰고 남긴 글을 갈무리했고, 공문서·공공기관 누리집을 쉬운 말로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곁책》,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내가 사랑한 사진책》, 《골목빛》, 《자전거와 함께 살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책숲마실》 같은 책을 썼습니다. hbooklo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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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2021.7.9.)

― 인천 〈문학소매점〉



  일본이 총칼로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억누를 적에, 고장마다 ‘중구·동구·서구·남구·북구’로 가른 이름을 썼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으레 ‘중구’였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나라에서 어느 고장에 밀려들어 마을을 바꾸려 하며 ‘총칼잡이를 가운데에 둔’ 셈입니다. 인천이나 부산을 가만히 보면 ‘중구가 가운데가 아니라 할’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인천도 부산도 그리 안 넓었습니다. 조그마한 고장이 차츰 넓게 뻗자 ‘가운데 아닌 왼쪽’에 치우친 자리인데 ‘중구’요, 오른쪽 아닌 왼쪽이나 가운데에 있는데 ‘동구’란 이름입니다.


  ‘동서남북’도 ‘구(區)’란 이름도 걷어치울 만합니다. 일본 총칼(제국주의) 찌꺼기이거든요. 인천 남구는 ‘미추홀’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인천 동구라면 ‘배다리’로, 인천 중구라면 ‘싸리재’로 고칠 만합니다. ‘미추홀골·배다리골·싸리재골’ 같은 이름이 어울려요. ‘골←區’입니다.


  동쪽이 아닌 ‘동인천역’하고, 밑쪽이 아닌 ‘하인천역(인천역)’ 사이에 깃든, 가운데 아닌 ‘중구청’ 곁에 〈문학소매점〉이 태어났습니다. 인천은 이 둘레를 ‘문화관광특구’처럼 내세우지만, 막상 중국집하고 장삿집을 빼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더구나 일본스러운 껍데기로 꾸미고서 ‘근대문화유산’이라 하더군요.


  우리는 새마을바람이 일기 앞서까지 인천조차 ‘풀집(초가)’이 있었습니다. 일본 총칼잡이가 세운 집도 ‘근대문화유산’에 넣을 만하지만, 이 작은고장에서 손수 집을 짓고 살림을 돌본 수수한 사람들이 돌본 골목마을하고 골목집이야말로 ‘근대문화유산’이라고 느껴요. 하루에 대여섯 벌씩 골목을 슥슥 쓰는 할매할배 몽당빗자루야말로 ‘근대문화유산’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골목집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습니다. 그리고 작고 좁아요. 골목아이는 여름겨울 안 가리고 ‘덥고 추운 집’에서 빠져나와 골목을 달리면서 놉니다. 인천 벼슬꾼(공무원)이 책상맡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골목사람으로 살며 골목빛을 헤아린다면, 이곳은 천천히 빛나는 살림터로 나아갈 만합니다. 책도 이와 같아요. 글보람(문학상)을 받아야 글꽃이지 않아요. 오늘 이 터전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가다듬은 글을 차곡차곡 여미기에 글꽃입니다.


  글(문학)도 살림(문화예술)도 없이 시끌벅적한 허울뿐이던 인천 가운데(중구) 아닌 싸리재골 한켠에 조촐히 골목꽃을 돌보며 골목책집으로 이어가는 〈문학소매점〉이리라 생각합니다. 책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만, 숲하고 사람 사이에 살그머니 있는, ‘사이’라서 얼결에 ‘가운데’에 있는, 멋스런 이야기꾸러미입니다.


ㅅㄴㄹ
















《모던인천 시리즈 1 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김용하·도미이 마사노리·도다 이쿠코 엮음, 토향, 2017.8.15.)

《소설가의 사물》(조경란, 마음산책, 2018.8.25.)

《살려고 서점에 갑니다》(이한솔, 이한솔, 2020.1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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