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사람이 짓는 (2021.10.3.)

― 부산 〈우리글방〉



  우리나라 책골목은 부산 보수동 한 곳입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책거리는 여럿 있되, 책집으로 마을을 이룬 데는 그야말로 부산 보수동뿐입니다. 일본 도쿄에 ‘간다’가 있습니다만, 도쿄 간다도 ‘책거리’일 뿐, ‘책골목’이지는 않습니다. 온누리에 참으로 드문 책골목인 부산 보수동인데, 정작 부산시·부산 중구청·보수동사무소·부산문화재단은 이러한 책터를 알뜰살뜰 여미는 길에는 하나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채 2021년까지 흘렀습니다.


  여러 나라 책거리 이야기를 들며 부산 보수동이 얼마나 엄청난 곳인지 밝히면, 둘레에서는 “아니, 그런데 부산시는 왜 그래요?” 하고 물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울에 ‘청계천 책거리’가 있을 적에도 마음을 쓴 적이 없습니다. 청계천이 스러져 갈 적에 비로소 ‘얼굴갈이(간판 교체)’만 여럿 했고, 제대로 책살림을 북돋우는 길은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그나마 ‘책집 길그림(책방 지도)’에 돈을 조금씩 댄 고장(지자체)이 차츰 생겼고, 서울에는 〈서울책보고〉를 열었습니다.


  부산에는 부산다우면서 부산에만 있는 아름빛이 꽤 많습니다. 다른 고장도 매한가지인데, 정작 고장지기(지자체장)나 벼슬아치(공무원)는 이 대목을 거의 모릅니다. 고장지기는 줄서기로 뽑혔고, 벼슬아치는 ‘책읽기 아닌 셈겨룸(시험)’으로 자리를 꿰찼을 뿐이거든요. 책을 읽은 사람이 고장지기 자리에 앉지 않고, 벼슬아치 일을 맡지 않으니, 부산뿐 아니라 다른 고장도 엇비슷합니다.


  보수동 헌책집이 똘똘 뭉쳐서 2005년부터 책잔치를 꾀할 적에 쉰 곳이 넘던 책집이지만, 해가 갈수록 확 줄어들 뿐 아니라, 책골목 한켠은 막삽질(재개발)로 무너졌고, 끔찍하게 시끄럽고 어지럽습니다. 이동안 부산 벼슬아치는 팔짱을 꼈어요.


  모든 글은 사람이 짓습니다. 모든 옷밥집은 사람이 짓습니다. 모든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 짓습니다. 글도 책도, 집살림도 나라살림도 ‘수수한 사람’이 짓습니다. 힘·돈·이름이 있는 사람이 글을 짓거나 책을 짓지 않아요. 힘·돈·이름이 있는 이들은 돈장사(상업주의)만 짓습니다. 힘·돈·이름으로 태어난 잘난책(베스트셀러)에 사람들이 쏠릴수록 책마을도 책골목도 빛을 잃습니다.


  멀리 보거나 숲을 모르는 이를 안 부르기를 바라요. 곁에 아름다이 흐르는 숨빛을 읽는 이웃하고 마주할 적에 책빛이 피어납니다. 〈우리글방〉을 둘러보며 생각합니다. 이곳을 찾아와서 찰칵놀이만 하고 나가는 젊은이가 많아도 안 나쁩니다. 어디나 구경꾼은 있어요. 구경꾼한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책사랑이한테 마음을 기울이면서 어린이 눈빛으로 이곳을 손수 돌보면 부산은 되살아날 만합니다.


ㅅㄴㄹ


《the Changing face of TIBET》(Pradyumna P.Karan,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76)

《즐거운 우표수집》(김갑식, 한국우취연합, 2006.3.27.)

《조중사전》(편집부 엮음, 조선외국문도서출판사·중국민족출판사, 1993.2.28.)

《마산시가도》(정일지도, 2000.4.)

《양산시》(정일지도, 2003.)

《縣別道路地圖 46 鹿兒島縣》(昭文社, 1996.1.)

《裝幀談義》(菊地信義, 筑摩書房, 1986.2.25.)

《インテリア》(田中健三, 保育社, 1971.1.5.첫/1975.5.1.두벌)

《藥草裁培》(박재희·정용복, 화학사, 1972.2.5.)

《新版 標準 國語 四年上》(文部省 엮음, 敎育出版株式會社, 1981.4.10.)

《新しい國語 6上》(大石初太郞·阪倉篤義, 東京書籍株式會社, 1972.7.10.)

《동녘 7호》(임우근 엮음, 부산문화회, 1988.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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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2021.8.11.)

― 구례 〈섬진강 책사랑방〉



  두 다리로 살아가기에, 늘 때를 살핍니다. 마을 앞에 언제 시골버스가 지나가는가를 살피고, 이 시골버스로 읍내에 간 다음, 어떤 탈거리로 마실을 다녀올 만한가를 어림합니다. 부릉이를 몰지 않으니 늘 때를 보고, “이러다가 놓치겠구나” 싶어 아슬아슬하게 서두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고작 1분을 못 맞추는 바람에 한나절을 꼼짝없이 길에서 서성여야 하거든요.


  낱말책을 지으니, 밑글로 삼을 책을 자꾸자꾸 살핍니다. 여태 건사한 책으로도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지만, 으레 “글쎄요?” 하고 시큰둥히 대꾸합니다. 여태 읽거나 건사한 책보다는 앞으로 읽거나 건사할 책이 많은 줄 느끼거든요.


  여태까지 쌓은 책꾸러미가 많은들 안 대수롭습니다. 오늘까지 이룬 열매가 커다랗더라도 안 대단해요. 그저 그럴 뿐이고, 늘 새롭게 한 발짝을 디딥니다. 많이 읽었기에 더 잘 알아차리지 않아요. 배움끈이 긴 이웃 가운데에는 외려 눈이 멀거나 눈가림을 하는 분도 꽤 있습니다.


  많이 읽기에 눈이 밝지 않아요. 많이 알기에 눈이 높지 않아요. 많이 했기에 눈이 맑지 않아요. 스스로 밝고 싶다는 마음을 심기에 밝습니다. 스스로 바람이 되어 높이높이 날고 싶기에 높아요. 스스로 빗물이며 샘물처럼 맑고 싶다고 꿈꾸기에 비로소 맑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린이를 살며 놀기에 어린이로서 맑고 밝으며 높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움을 잃거나 잊으면 ‘애늙은이’ 소리를 들으면서 안 맑고 안 밝으며 안 높습니다. 어른·어버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책을 더 읽거나 더 살피거나 더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손발로 지으며 즐거이 나누기에 아름답습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는 이제 집어치웁시다. “즐겁게 아름답게 사랑스럽게”로 오늘부터 함께 천천히 걷기를 바라요. 시골집에서 고흥읍을 거쳐 순천을 지나 구례에 닿아 신나게 걸어 〈섬진강 책사랑방〉에 닿습니다. 닿자마자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서 “얼마쯤 남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구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느긋이 둘러보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살짝 걸치더라도 고마우면서 즐거워요. 오늘 이곳에서 만난 책을 한아름 짊어지고서 새길을 느긋이 갈고닦자고 생각합니다.


  더 크지 않아도 누구나 책숲(도서관)입니다. 종이(사서 자격증)가 없어도 누구나 책숲지기(도서관 사서)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웃는 어른이라면 모두 책숲이요 책숲빛이자 책숲지기입니다. 오랜 책을 되넘기며 새로운 오늘을 그립니다.


ㅅㄴㄹ


《소년세계위인전기전집 9 안데르센》(루우머 고덴/장경룡 옮김, 육영사, 1975.1.1./1981.1.1.7벌)

《古代의 滿洲關係》(이용범, 한국일보사, 1976.4.25.)

《颱風》(셰익스피어/김재상 옮김, 서문당, 1974.10.1.)

《透明人間》(H.G.웰즈/박기준 옮김, 서문당, 1973.2.10.)

《맑은 눈 고운 마음》(김한룡 엮음, 명성사, 1981.5.10.)

《韓國의 書誌와 文化》(모리스 쿠랑/박상규 옮김, 신구문화사, 1974.5.1.)

《韓國의 山水》(문일평, 신구문화사, 1974.5.1.)

《삼국유사》(일연/김영석 옮김, 학원사, 1989.5.20.)

《비계덩어리》(모파상/방곤 옮김, 서문당, 1972.6.5.)

《꽃 속에 묻힌 집》(이오덕·이종욱 엮음, 창작과비평사, 1979.1.25.)

《이티 E.T.》(윌리엄 코츠윙클/공문혜 옮김, 한벗, 1982.12.5.)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유은실, 창비, 2013.2.15.)

《꿀벌 마야의 모험 외》(본젤스/정성환 옮김, 금성출판사, 1984.1.30.개정신판)

《6학년 3반 청개구리들》(최승환, 편암사, 1988.10.1.)

《현대일본사진가》(와따나베 쯔도무/홍순태 옮김, 해뜸, 1988.3.30.)

《美術과 生活 2호》(이용철 엮음, 미술과생활사, 1977.5.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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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짓기 (2021.11.3.)

― 서울 〈서울책보고〉



  사람이 적고 들숲바다가 너른 고흥 같은 곳은 푸른들하고 파란하늘을 누리는 터전으로 다스리면 아름답습니다. 들숲바다는 드물고 사람이 많은 서울이라면 북적이는 사람물결이 즐거이 어우러지는 길을 살피면 아름답습니다. 이 나라가 갈 길은 ‘돈바라기’가 아닌 ‘아름바라기’이기를 바라요. 아름답지 않다면 쳐다보지 않아야지 싶습니다. 빛(전기)을 써야 한다면 집집마다 스스로 조촐히 쓰는 길을 펴야 제대로 나라길(국가정책)이라고 느낍니다. 빛터(발전소)를 우람하게 세우고 빛줄(전깃줄)을 길다랗게 이어서, 빛터·빛줄을 건사하는 데에 돈·품을 쓰지 말고, 집집마다 스스로 빛을 지어서 쓰도록 살림길을 펴면 돈이며 품이 매우 적게 들고 온나라가 깨끗할 테지요.


  모든 책은 바탕이 나무인 터라 푸른숨을 머금습니다만, 종이에 아름답게 이야기를 얹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럴밖에 없는 나라 얼개이거든요. 배움수렁(입시지옥)을 걷어내지 않는 나라요, 우리 스스로입니다. 이는 일수렁(취업지옥)으로 잇고, 서울하고 시골이 나란히 고단한 길입니다. ‘즐겁게 살기’가 아닌 ‘살아남기’로 치닫는 나라이니, 마음을 살찌우는 아름책보다는 그때그때 살아남는 길을 찾는 책(처세책·자기계발서)이 잔뜩 팔리고 읽힙니다.


  서울 한켠에 〈서울책보고〉가 섰습니다. 여러 해 되었습니다. 2004년 3월 18일에 박원순 씨 곁일꾼(비서)이 저한테 찾아와서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마스터’를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무렵 저는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그만두고서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는데, 제가 맡은 다른 일이 있기에 손사래치면서 ‘북마스터’란 얼어죽을(?) 이름은 걷어치우기를 바란다고 먼저 여쭙고,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도 그런 틀로 하면 이 나라 마을책집을 다 죽이는 꼴이라고 보탠 다음, 우리나라 헌책집을 살리고, 그대들(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이 참다운 두레(시민단체)라면, 작은 헌책집마다 ‘책을 조금씩 받아서 한자리에 모으는 너른터’를 꾸려 보라고 한나절에 걸쳐 낱낱이 이야기했습니다.


  그 뒤로 잊었는데, 박원순 씨는 서울시 일꾼이 되고서 제가 그동안 엮은 ‘서울 헌책집 길그림·연락처’를 슬쩍 가져다가 쓰고 〈서울책보고〉를 열었어요. 아무튼 잊지 않고 잘 살렸구나 싶은데, 잘 살렸으면 넉넉하겠지요. 마침 〈서울책보고〉에서 ‘헌책집 빛잔치(헌책방을 찍은 사진으로 여는 전시회)’를 펴고 싶다고 하기에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갑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구석이 많지만, 아쉬운 곳은 헌책집지기가 천천히 책살림을 여민 손길처럼 천천히 가다듬으면 될 테지요.


ㅅㄴㄹ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만큼 기다렸다》(이생진, 동천사, 1991.12.15.)

《사람구경》(박상우, 고려원, 1988.6.1.)

《孔子 논어》(박기준, 아이큐박스, 1989.1.30.)

《月蝕》(김명수, 민음사, 1980.7.10.)

《목숨을 걸고》(이광웅, 창작과비평사, 1989.3.25.첫/1994.5.10.2벌)

《통영별곡》(이국민, 토방, 1992.6.15.)

《木賊 內二十二ノ三》(觀世元滋 訂正, 檜大瓜堂, 1923.8.15.)

《the bible story in the bible words 1 the Story of Genesis》(Adele Bildersee 엮음, the Union of American Hebrew Congregations, 1924)

《一和 社報 : 생명의 뿌리 32호》(홍성균 엮음, 주식회사 일화, 1989.11.1.)

《진리와 자유 4호》(홍성렬 엮음, 진리와자유사, 1989.9.1.)

《홈닥터 133호》(김조형 엮음, 한독약품공업주식회사, 1995.1.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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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언덕받이에서 (2021.11.6.)

― 서울 〈카모메 그림책방〉



  10월 끝자락에 살짝 서울을 들르고서 고흥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서울로 마실을 가서 이제 마지막날입니다. 오늘 돌아가면 한 달 즈음 시골에서 숨죽인 채 지낼 생각입니다. 이레 동안 서울에서 장만한 책으로 한 달을 누린달까요.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더라도 책은 틈틈이 살 텐데, 낮에 버스를 타기까지 틈이 비어 어떻게 할까 망설이니 방배동에서 금호동으로 슬쩍 건너가면 〈카모메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이러고서 전철로 버스나루로 오면 돼요.


  어제그제 책집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미처 시골로 못 보내었기에 등짐도 꽉 차고, 손짐으로도 가득합니다. 한가을에 땀을 쪽 빼면서 책짐을 안고 진 채 버스에 전철을 탑니다. 이음목(환승역)이 너무 길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금호동에 닿아 언덕받이를 천천히 오릅니다. 멀잖은 언덕받이여도 걷다가 쉬고 다시 걷다가 쉽니다. 이제 책집을 만납니다. 등짐하고 책짐은 앞에 부리고서 마을을 둘러봅니다. 마을이 감싼 책집을 보고, 책집이 품은 마을을 헤아립니다. 포근하고 볕이 잘 드는 한켠에 곱게 자리를 잡았다고 느낍니다.


  그림책집에는 그림책을 보러 옵니다. 이미 읽거나 아는 그림책이 있고, 미처 못 읽거나 지나친 그림책이 있습니다. 다 다른 그림책은 다 다른 손빛으로 태어났고, 다 다른 눈빛이랑 만나면서 이야기로 자라납니다.


  온누리를 새롭게 가꾸는 밑힘은 호미 한 자루에서 나오고, 곁에 놓는 그림책에서 나란히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삽자루 아닌 호미이기에 들숲을 돌보는 손길로 잇는다고 느낍니다. 딱딱한 책(인문책)이 아닌 부드러운 그림책이기에 누구한테나 마음을 틔우는 씨앗을 문득 묻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푸름이도 그림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도 어르신도 그림책을 펴기를 바랍니다. “백 살까지 읽는 책”이기보다는 “누구나 읽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나이를 따지기보다는 살림을 헤아리는 그림책으로 마주하기를 바라요.


  마을에 책집이 있어 이 마을이 빛난다면, 마을에 그림책집이 있어 이 마을이 사랑스럽지 싶어요. 마을에 그림꽃책집(만화책집)이 있으면 이 마을은 신바람이 날 테고, 마을에 빛꽃책집(사진책집)이 있으면 이 마을은 맑게 노래가 흐를 만하지 싶습니다. 저마다 다른 책집이 저마다 새롭게 마을을 밝힙니다.


  아기하고도 읽을 그림책이면서, 고을지기(지자체장)나 나라지기(대통령)한테도 건넬 그림책입니다. 젊은이가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에 곁에 놓을 그림책이요, 두 어른이 사랑으로 눈을 빛내면서 어버이로 거듭나는 길에 함께 누릴 그림책입니다.


ㅅㄴㄹ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글·존 클라센 그림/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4.8.15.)

《숲의 요괴》(마누엘 마르솔·카르멘 치카 글·그림/김정하 옮김, 밝은미래, 2021.10.30.)

《다시 그곳에》(나탈리아 체르니셰바 그림, 재능교육, 2015.9.21.)

《칠기공주》(파트리스 파발로 글·프랑수와 말라발 그림/윤정임 옮김, 웅진주니어, 2006.6.26.)

《아기 오는 날》(이와사키 치히로/편집부 옮김, 프로메테우스, 2003.7.30.)

《개가 무서워요!》(볼프 에를브루흐/박종대 옮김, 사계절, 1993.12.10.)

《바깥은 천국》(로저 메인 외/김두완 옮김, 에이치비 프레스, 2021.4.15.)

《비행기 모자》(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0.)

《우산 버섯》(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0.)

《부엉이 탑》(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7.)

《얼음 거인》(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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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21-12-1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숲노래 2021-12-17 04:05   좋아요 1 | URL
기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즐거이 글꽃 지피시기를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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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2021.3.13.)

― 순천 〈책방 심다〉



  쌀을 어떻게 불려서 물을 맞추고 얼마나 끓이면 밥이 되어 먹을 만한가도 수수께끼입니다. 여러 풀열매 가운데 나락을 밥으로 삼은 길도 수수께끼입니다. 저절로 나고 자라는 들풀을 살펴서 밥으로 삼다가 땅을 일구어 심은 살림도 수수께끼입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사냥하든 비바람을 마시든 저마다 달리 목숨을 잇는 하루도 수수께끼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날은 수수께끼입니다. 우리말 ‘수수께끼’는 ‘수수하다’하고 맞닿습니다. 뭔가 벼락을 치듯 갑자기 크게 찾아들거나 대단하거나 엄청나야 수수께끼이지 않아요. 수수한 하루라는 삶이 모두 수수께끼입니다.


  어려우면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어려우면 고비나 벼랑이에요. 수수하기에, 쉽기에, 수월하기에, 숲처럼 푸르기에 수수께끼입니다. 어린이가 수수께끼를 왜 반길까요? 어른은 수수께끼를 내면서 왜 슬기롭거나 어진 마음으로 나아갈까요? 이 대목도 수수께끼일 테지만, 스스로 어버이나 어른이란 자리에 서서 어린이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면,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놀고픈 마음이 바로 수수께끼인 줄 느껴요.


  순천 〈책방 심다〉는 틈틈이 책을 여밉니다. 누리책집까지 들어가는 책도 여미고, 마을책집에서만 나누는 책도 여밉니다. 《날마다 한 줄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는 마을책집에서만 나누는 즐거운 이야기살림입니다. 〈책방 심다〉에서 여민 이야기꾸러미를 누리려고 순천마실을 합니다. 《다줄께》 곁에 있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쓰는 글도 다 수수께끼입니다. 글이름을 감추고서 글을 읽어 볼까요? 우리가 읽은 글은 이름이 뭘까요? 지은이랑 펴낸곳을 가리고서 책을 읽어 볼까요? 우리가 읽은 책은 어느 곳에서 펴내고 누가 썼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지은이 이름’하고 ‘펴낸곳 이름’을 먼저 보면서 책을 고르고 사고 읽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이름을 보고서 고릅니다. 지은이나 펴낸곳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이름을 먼저 보고, 몸글을 죽 읽고서 장만할 만한가 아닌가를 살핍니다. ‘어느 지은이가 새로 낸 책’이든 ‘어느 곳에서 새로 낸 책’이든 쳐다볼 마음이 터럭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맹이(줄거리)로 살 뿐, 허울(이름값)로는 안 살거든요. 밥을 먹을 적에도 밥알을 먹을 뿐, 수저질이나 그릇을 먹지 않습니다. 맑은 물이어야 몸을 살릴 뿐, 값비싼 그릇에 담아야 몸을 살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수수께끼입니다. 껍데기 아닌 속내를 살피며 손에 쥐고 읽을 적에 스스로 빛날 텐데, 왜 우리는 자꾸 이름값에 사로잡히며 스스로 빛바랠까요.


ㅅㄴㄹ


《살자편지》(정청라와 여덟 사람, 니은기역, 2021.2.3.)

《날마다 한 줄 수수께끼 동시집 다줄께》(김영숙·광양 마로초 3학년 2반 24명, 심다, 2021.3.1.)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소토리, 20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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