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8.


《숲에서 한나절》

 남영화 글, 남해의봄날, 2020.9.15.



마당 후박나무에 지는 그림자를 살핀다. 그림자놀이나 그림자소꿉이다. 하루하루 그림자를 보서 철하고 날을 느낀다. 해가 솟다가 지는 곳을 헤아리고, 바람맛을 살갗으로 맞이한다. 겨울에도 잎을 갉은 자국이 있으면 어김없이 거미줄이 있다. 꽁꽁 얼어붙는 날씨가 며칠 이으면 잎을 갉은 자국이 그치고, 거미줄도 느슨하다. 벌레는 풀밭에서도 살지만, 나무를 파고들기도 한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쫀 자국을 훑는다. 나무는 이렇게 잔뜩 쪼인 가지를 말려서 땅으로 보낸 뒤에 새 가지를 낼는지 모른다. 저녁에는 슬슬 별바라기를 한다. 날마다 별자리를 보면 언제나 조금씩 흐르는 결을 볼 만하다. 《숲에서 한나절》을 읽고서 한참 생각해 보았다. 글님은 숲살이를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일을 하고, 펴낸곳은 시골에 있는데, 글이며 줄거리를 확 시골스럽게 매만질 만했다. 서울스러운 말씨나 줄거리가 아닌, 그저 시골스럽거나 숲다운 빛으로 펼 만했다. 자리에 앉아 붓을 쥐는 글바치인 어른이 아닌, 온몸으로 숲을 마시려는 길에 서는 어른이라면, 서울말 아닌 숲말을 살피고, 글멋이 아닌 푸른글을 헤아리면 어울리리라.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어려운 말을 하나도 안 쓴다. 아이들은 풀꽃나무하고 마음으로 속삭일 수 있다. 어른만 잊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7.


《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

 이유미 글, 철수와영희, 2021.11.22.



해마다 돌아오는 그날이 오늘이다. 어린배움터에 ‘취학유예신청’이란 종이를 쓰러 간다. 알아들을 만하지 않은 말로 쓰는 ‘취학유예신청’이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안 쓰고 이런 일본스런 한자말을 그냥 쓸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마음빛을 스스로 잃으면서 무엇이 즐거울까? “다니지 않습니다”라든지 “집에서 배웁니다”이다. 《10대와 통하는 채식 이야기》를 읽었다. 풀밥살림을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책이 태어날 만큼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 다만 조금 달라지기는 하되, 너무 서두르는구나 싶다. “채소를 먹어 채식”이라면, “풀을 먹어 풀밥”이요, “푸르게 먹어 푸른밥”이다. “푸름이한테 푸른살림”을 노래하듯 들려주려는 마음을 조금 더 가다듬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비건’하고 ‘베지테리언’이란 낯설고 날선 바깥말을 조각조각 갈라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풀살림을 푸름이가 손수 헤아리면서 나아갈 길을 짚으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본다. 어린이·푸름이는 왜 서울이나 큰고장에서 살아야 하나? 시골에서 나고자라는 어린이·푸름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글님은 시골을 무섭거나 두려운 곳이라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아 놓은 듯싶다. 그런데 풀·나물은 어디에서 자라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6.


《조선 선비의 비건 레시피 전통 채식 밥상》

 서유구 글/정정기 옮김, 샨티, 2021.11.25.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가 부른다. “나와 봐. 까마귀떼야!” 마당에서 고개를 든다. 하늘을 바라보니 까마귀떼가 둥그렇게 바람을 타면서 춤춘다. 열씩 묶어 스물을 어림하고, 스물씩 차곡차곡 헤아리니 300이 좀 넘는 듯싶다. 빙글춤을 선보이는 까마귀떼는 우리 집 마당 위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앞들로 갔다가 마을 너른들 쪽으로 갔다가 멧자락 너머로 날아간다. 《조선 선비의 비건 레시피 전통 채식 밥상》을 읽었다. 지난날 서유구 님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새롭게 엮었다고 한다. 옛사람 글결을 모두 손질했기에 옛선비 풀밥차림이라기보다 오늘날 풀밥차림이라 해도 되 만하다. 둘레에서 으레 쓰니까 책이름에까지 “비건 레시피”나 “전통 채식”이라 적을 텐데, 옛선비가 지은 밥살림이라면 우리말로 적으면 어떨까? “조선 선비 풀밥차림”이나 “조선 선비 오랜풀밥”처럼 풀어내기를 빈다. ‘풀·푸르다·풀다’는 모두 말밑이 같다. ‘푸근하다·포근하다’도 ‘품’도 말밑이 같다. 우리 살림이라면 우리말로 풀어내야 실마리를 찾고 수수께끼를 깨닫는다. 풀밥을 굳이 ‘비건·채식’이란 바깥말로만 나타내면, 이 땅에서 스스로 짓는 푸른길을 잊거나 잃기 쉽다. 파란하늘을 머금어 푸른들로 나아가는 삶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5.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글/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4.3.20.



시골에서는 책 하나를 만나려고 누리집을 들락거릴 수 있고, 하루를 온통 들여 먼 마을책집으로 다녀올 수 있다. 날마다 새롭게 흐르는 하늘·바람을 누리고 싶다면 가볍게 누리책집에 맡길 테지만, 이웃을 만나 얼굴을 보며 말을 섞다가 슬그머니 책 한 자락을 챙기고 싶다면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거쳐 시외버스나 기차로 갈아탄다. 집에 잔뜩 쌓은 책을 차곡차곡 읽고 갈무리한다. 바깥마실을 할 적에는 달포쯤 읽을 책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시골엔 책집이 없으니 목돈을 들이고 밤에 길손집에서 쓰러질 때까지 바지런히 책집을 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지난해 7월에 장만해 놓았고 이제서야 읽었다. 아니, 이제서야는 아니지. 느긋이 읽을 때를 기다려 쟁여 놓았을 뿐이다. 낮밥을 차려 아이들을 먹이는 곁에서 웃으며 읽었다. “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똑같네?” 글님이 그린 일본 시골이나 우리 시골이나 거의 같다. 미국이나 덴마크나 태국도 이럴까? 일본하고 우리는 유난히 바보짓이 흔하지 싶다. 그리고 참하며 사랑스러운 이웃도 많다. 아이들은 바보짓이 춤추는 시골·서울을 볼 적마다 툴툴거린다. 곁에서 속삭인다. “그래, 우린 툴툴거릴 수도 있지만, 우리부터 스스로 아름이웃으로 숲을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어.”


ㅅㄴㄹ


마루야마 겐지 님 글은

여러모로 재미있다.

다만 온누리를 더없이 시큰둥히

바라보는 눈빛이지 싶다.

나도 꽤나 시큰둥하게 살지만

이 아저씨는 그야말로 시큰둥꾸러기이다.


시큰둥하지만

할 말을 잊지 않고 제때제때

찬찬히 펴는 몸짓이란

글바치다운 삶길이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4.


《민중만화》

 장진영 글·그림, 정음서원, 2020.10.12.



고흥읍 하나로가게에 전화를 걸어 ‘백신패스’를 미리 물어보았다. 가게일꾼은 ‘백신패스’도 ‘방역패스’도 못 알아듣는다. 시골에까지 무슨 ‘패스’이냐고 시큰둥하다. 새해에 나라지기를 비롯해 고을지기(군수)를 새로 뽑고, 배움지기(교육감)도 새로 뽑는다. 그동안 지기로 뽑힌 이들은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 같은 말을 내세웠는데, 정작 지난 여러 해를 보면 이들이 참말로 ‘한 사람도’란 말을 함부로 혀에 얹어도 되나 아리송하다. 전남교육감이 하도 ‘학교밖 청소년’ 타령을 하되 ‘학교밖 청소년’을 뒷배하는 틀을 마련하지 않아서 세 해째에 “벌써 세 해나 되었는데 뭘 하시나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학교밖’에 있지 않습니다. ‘숲’하고 ‘집’에서 스스로 배웁니다. ‘스스로 푸름이’입니다.” 하고 따진 적이 있는데, 새 배움지기를 뽑는 올해까지 이렇다 할 대꾸가 없다. 《민중만화》를 읽으니 그림님은 모든 곳에 ‘민중’이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여긴다. ‘들풀’이나 ‘들꽃’이나 ‘풀꽃’이나 ‘숲’이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은 왜 못 할까? 그림꽃(만화)은 ‘민중만화’가 아닌 ‘풀꽃그림’이 되어 어린이하고 먼저 어깨동무하고 시골에서 살림을 순이돌이가 함께짓는 길로 갈 적에 아름답다고 본다.


ㅅㄴㄹ


‘민중’을 외치는 분들이

다 잘못한다고는 느끼지 않되

‘민중이 안 쓰는 이름하고 말’을

참으로 오래도록 질기게 붙잡으면서

막상 ‘민중 속으로 스미지’ 않고

‘민중 밖에서 외치기’만 해왔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스스로 들꽃이요 풀꽃이요 숲이라면

‘민중’이나 ‘인민’이나 

‘백성’이나 ‘국민’이나

‘시민’이란 말을 다 안 쓰고

그저 ‘사람’ 한 마디에

‘들꽃·들풀·풀꽃’이란 이름을

수수하게 쓸 뿐이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