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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주 마을책집 〈잘 익은 언어들〉 지기님한테 드립니다.


지난 2022년 4월 7일 새벽에

‘어울길’이란 낱말을 문득 짓고

꾸러미(수첩)에 적어 놓았는데,


이날 낮에 전주 〈잘 익은 언어들〉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다가,

잘익지기님이 제 꾸러미에 적힌 낱말을 보시더니

“이거 내가 써도 돼요?” 하셔서

기꺼이 쓰시라고 했습니다.


잘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울길’ 이야기를

엮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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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숲노래 곁노래 2022.4.10.

곁말 44 어울길



  푸른배움터에 들어가는 1988년 즈음에 ‘문화의 거리’란 말을 처음 들었지 싶어요. 더 앞서부터 이런 이름을 썼을는지 모르나 서울에서 놀이마당(올림픽)을 크게 편다면서 나라 곳곳에 ‘문화·예술’을 붙인 거리를 갑작스레 돈을 부어서 세웠고, 인천에도 몇 군데가 생겼어요. 그런데 ‘문화의 거리’나 ‘예술의 거리’란 이름을 붙인 곳은 으레 술집·밥집·옷집·찻집이 줄짓습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길거리이기 일쑤예요. 즐겁게 먹고 기쁘게 마시고 반갑게 쓰다가 푸른빛으로 돌아가도록 내놓으면 나쁠 일은 없되, 돈이 흥청망청 넘치는 노닥질에 ‘문화·예술’이란 이름을 섣불리 붙이면 안 맞기도 하고 엉뚱하구나 싶어요. 먹고 마시고 쓰며 노는 곳이라면 ‘놀거리’나 ‘놀잇길·놀잇거리’라 하면 됩니다. 우리 삶을 밝히면서 이웃하고 새롭게 어우러지면서 차근차근 살림을 북돋우는 길거리를 펴고 싶다면 ‘어울길·어울거리·어울골목’이나 ‘어울림길·어울림거리·어울림골목’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해요. 살림하고 삶이 어우러지는 어울길이에요. 춤이며 노래가 어우러지는 어울골목이에요. 책이며 그림을 아이어른 누구나 즐기며 어우러지는 어울거리예요. 곁에 멧새랑 풀벌레랑 숲짐승이 나란히 있으면 짙푸를 테고요.


어울길 (어울리다 + 길) : 어울리는 길. 여러 이야기·살림·삶·이웃·놀이·노래·춤·책·그림 들을 한자리에서 누구나 함께 누리면서 어울리거나 어우러지는 길. (= 어울거리·어울골목·어울림길·어울림거리·어울림골목. ← 문화의 거리, 문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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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곁말》, 《곁책》,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우리말 동시 사전》,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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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4.8.

곁말 43 윤슬



  서울에 바깥일이 있어 나들이한 어느 날 체부동 〈서촌 그 책방〉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날 책집지기님한테서 ‘윤슬’이란 낱말을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느낌도 뜻도 곱다면서 무척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진작부터 이 낱말을 듣기는 했으나 잊고 살았는데, 이튿날 천호동 마을책집을 찾아가려고 골목을 헤매다가 ‘윤슬’이란 이름을 붙인 찻집 앞을 지나갔어요. 사람이름으로도 가게이름으로도 조곤조곤 퍼지는 ‘윤슬’이요,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뒤적이면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달빛’이란 ‘없는 빛’입니다. 햇빛이 달에 비추어 생길 뿐이니 ‘달빛’이란 ‘튕긴 햇빛·비친 햇빛’입니다. 곰곰이 ‘윤슬’을 생각해 보는데, 이 낱말이 어떻게 태어났거나 말밑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때에 여러 우리말결을 나란히 놓으면 실마리를 어렵잖이 찾을 만합니다. 먼저 ‘유난’이 있고, ‘유들유들·야들야들’에 ‘여릿·여리다’로 잇는 말씨가 있고, ‘구슬·이슬’에 ‘슬기·스스로’ 같은 낱말이 있어요. 해나 별이 비출 적에 작고 가벼이 일렁이는 물이 빛을 받아들여 남다르게(유난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본 옛사람이, 어우러지는 빛물결에 이름 하나 붙였겠지요.


윤슬 : 햇빛·별빛을 받아서 유난히 반짝이는 작고 가벼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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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4.4.

곁말 42 바닷방울



  낱말책에 실린 말도 많지만, 안 실린 말도 많습니다. 우리말에 있는 말도 많고, 없는 말도 많아요. 우리나라는 숲이며 멧골도 깊으면서 바다를 두루 끼는 삶터요, 냇물이 곳곳에 뻗고 못도 퍽 많은 살림자리입니다. 더구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 철이 뚜렷하니 해바람비하고 얽힌 낱말이 꽤 많습니다. 더위를 가리키는 낱말도 추위를 나타내는 낱말도 두루 있고, ‘따스하다·포근하다’처럼 갈라서 쓰기도 해요. 철을 밝힐 적에는 겨울에만 쓰는 ‘포근하다’예요. 물을 보면 ‘물방울’이고, 이슬을 보면 ‘이슬방울’이고, 비를 보면 ‘빗방울’입니다. 딸랑딸랑 소리를 내는 ‘방울’은 물이며 비이며 바다에서 마주하는 ‘방울’에서 따온 낱말이에요. 그런데 ‘물방울·이슬방울·빗방울’에 ‘눈물방울’은 흔히 말해도 막상 바닷물을 놓고는 ‘바닷방울’이라 말하는 사람이 드물고, 낱말책에 아직 없기도 합니다. 작고 동글게 이루는 물이라면 물방울이듯, 바닷물 한 톨을 작고 동글게 손바닥에 받으면 ‘바닷방울’이에요. 바닷방울이 출렁출렁 튀면서 반짝여요. 바닷방울이 뺨에 닿으며 간질간질해요. 바닷방울을 혀로 받으며 짭쪼름한 맛을 느껴요.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서 바닷방울을 서로 튕기며 놀아요.


바닷방울 (바다 + ㅅ + 방울) : 바다를 이루어 흐르는 물에서 작고 동글게 이루는 하나.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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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곁말 41 타는곳



  이제는 ‘타는곳’이라는 우리말을 널리 쓰지만, 처음 이 말씨를 기차나루에서 받아들이던 2000년 어귀에 “잘 쓰던 ‘승차장·승차홈·플랫폼’을 왜 안 쓰느냐?”고 따지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안 따졌어요. 나이든 분하고 글바치(지식인)만 따졌습니다. 이분들은 익숙한 말씨를 버리고 새말로 나아갈 마음이 얕았어요. 자라나거나 새로 태어날 어린이를 헤아려 ‘갈아타는곳(← 환승역)’이며 ‘내리는곳(← 하차장)’이며 ‘들어오는곳(← 입구)’이며 ‘나가는곳(← 출구)’으로 하나하나 고쳐쓰자는 글을 꾸준히 썼고, 이러한 뜻이 널리 퍼지기를 바랐습니다. 한자말이 나쁘기에 고쳐쓰자는 글을 쓰지 않았어요. 쉽고 상냥하게 쓸 우리말이 있고, “우리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 새말을 지을 적에 앞날이 밝다”는 이야기를 펴려고 했습니다. 말을 어른한테 맞추기보다 아이한테 맞출 적에 삶터가 넉넉하다고 느껴요. 아이부터 쉽게 받아들일 말씨를 삶터 곳곳에서 쓸 적에, 앞으로 새로 생길 살림(문화·문명)을 가리킬 우리말을 쉽고 빠르게 스스로 짓는 밑틀이 된다고 생각해요. ‘타는곳’이란 이름이기에 서너 살 아이부터 알아들어요. ‘승차장·승차홈·플랫폼’ 같은 이름이면 아이부터 낯설고 어렵습니다.


타는곳 : 어디에 가거나 오려고 몸을 어느 곳에 놓거나 옮기거나 맡기려고 있는 곳. (← 승강장·승차장·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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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숲노래 곁말 2022.3.24.

곁말 40 우리말꽃



  ‘우리’를 소리내기 참 힘들었습니다. 혀짤배기에 말더듬이인 몸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돌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어른이나 동무도 없는 터라, 말을 않거나 짧게 끊기 일쑤였습니다. 소리내기 힘든 말은 안 하려 했습니다. 열여덟 살로 접어들 즈음 우리 아버지는 새집으로 옮겼고, 여태 어울리던 동무랑 이웃하고 모두 먼 낯선 데에서 푸른배움터를 다녀야 했는데, 논밭하고 동산을 밀어내어 잿빛집(아파트)만 한창 올려세우려는 그곳은 스산하고 길에 사람이 없다시피 했어요. 이때부터 혼자 한나절씩 걸으며 목청껏 소리내기를 했어요. 꼬이거나 씹히는 말소리를 천천히 외치며 또박또박 말하려 했어요. 스무 살부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새벽에 큰소리로 노래하며 말소리를 가다듬었어요. 양구 멧골에서 싸울아비(군인)로 이태 남짓 지내며 혼자 멧길을 한나절을 오르내리는 나름이(전령)를 하는 길에는 숲길을 가르며 큰소리로 말결을 추슬렀어요. 서른세 살에 큰아이를 낳고서 자장노래를 날마다 끝없이 불러 주었는데, 아직 모든 소리를 따박따박 내지는 못 하나 조금은 들어줄 만하게 다듬었으려나 싶습니다. 말을 더듬어 놀림받았기에 ‘우리말꽃’을 짓는 길을 걸었나 싶습니다. 꽃노래로 나눌 말을 누구나 품기를 바라면서.


우리말꽃 (우리 + 말 + 꽃) : 우리가 쓰는 말을 차곡차곡 모아서 엮은 꾸러미.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말을 하나하나 돌보고 가꾸고 북돋아서 나누려는 마음으로 뜻풀이·보기글·쓰임새·결·밑뿌리를 고루 짚으면서 엮은 꾸러미. 우리가 예부터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쓴 말을 발자취와 흐름과 숨결을 고루 헤아리면서 엮은 꾸러미. 우리가 스스로 삶을 짓고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나누고 하루하루 즐겁게 일군 말을 누구나 쉽고 즐겁고 슬기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레 쓰도록 돌아보거나 익히도록 이끄는 꾸러미. 우리 스스로 생각해서 쓰는 말을 알뜰히 담아서 엮은 꾸러미. 우리 나름대로 삶을 가꾸고 지으면서 나란히 가꾸고 지어서 쓰는 말을 알아보고 익히도록 엮은 꾸러미. (←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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