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하고 이야기하듯이



  나무 곁에 서서 나무하고 이야기하는 아이처럼, 우리 어른도 나무하고 이야기하며 맑은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나무노래를 부른다면, 우리 노래는 모두 동시가 되고 문학이 되며 삶노래가 될 테지요. 나무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줄 모른다면, 우리 어른이 쓰는 글은 동시도 문학도 삶노래도 되지 못합니다. 나무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쓰는 글은 그저 혼잣말입니다.


  꽃 한 송이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풀 한 포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 한 줄기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햇볕 한 줌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별빛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어요. 우리는 돌멩이나 모래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쌀알이나 종이 한 장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님’은 우리가 살가운 손길로 사랑스레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립니다.


  ‘의인법’ 같은 어려운 말은 안 써도 됩니다. 그저 나무하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저 벌레하고 이야기하고, 새와 잠자리와 나비하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리고 살피고 가누고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엮으면, 동시가 되고 동화가 됩니다. 4348.6.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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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그림책



  재미나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 《금붕어의 숨바꼭질》을 보면, ‘조그마한 어항’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물고기가 두 마리 나옵니다. 얼핏 보기에 조그마한 어항에서 무슨 숨바꼭질을 하느냐 싶지만, 얼마든지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할 만합니다. 게다가 작은 어항에서 뿅 튀어나와서 어디에서든 춤을 출 만합니다. 물고기가 고양이하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림책이 아닌 우리 지구별을 헤아릴 적에도 이 같은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서는 ‘조그마한 어항’이고, 사람으로 치자면 ‘동그랗고 작은 지구별’입니다. 얼핏 보기에 지구라는 땅덩이는 무척 큰 듯하지만, 수많은 별이 함께 있는 온누리를 헤아린다면 지구별은 그야말로 조그맣디조그마한 곳입니다.


  조그마한 어항에서 물고기가 사이좋게 놉니다. 조그마한 지구별에서 사람은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서로 사이좋게 아끼고 북돋우면서 지낼 적에 춤과 노래와 웃음이 샘솟겠지요? 그러니까, 작은 그림책 한 권은 평화를 노래합니다. 물고기가 누리는 숨바꼭질을 넌지시 빗대면서 ‘사람이 나아갈 길’을 아이들한테 쉽고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물고기가 고양이하고 얼마든지 손을 맞잡고 춤을 출 수 있다고 보여줍니다. 물고기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고양이는 물고기를 ‘잡아먹을 밥’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는 동무로 여기고, 서로 사랑스러운 동무로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은 ‘평화’ 이야기를 무척 어려운 말을 빌어 두툼한 인문책으로 밝힙니다. 아이들은 평화이든 사랑이든 꿈이든 과학이든 무엇이든, 쉽고 재미난 글하고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을 보면서 즐겁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함께 나눕니다. 아이들도 평화를 그림책 한 권으로 배우면서 누리고, 어른들도 평화를 그림책 한 권을 아이와 함께 즐기면서 새롭게 배우면서 누립니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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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게 일어서는 문학



  저녁 늦게까지 뛰논 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이면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밤 늦도록 힘들게 일한 어른도 잠자리에 누우면 어느덧 곯아떨어지지요. 아이는 아이대로 몸에 새로운 기운을 담아야 하고, 어른도 어른대로 몸에 새로운 힘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아침이 됩니다. 아이가 먼저 일어날 수 있고, 어른이 더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하는 아이는 오늘 하루도 새롭게 놀자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어제 하루 그렇게 신나게 뛰어놀면서 기운을 다 쓴 아이는, 오늘 하루 새롭게 뛰어놀면서 새 기운을 그야말로 마음껏 다 씁니다.


  어른도 새 하루에 새로운 힘을 몽땅 씁니다. 아이하고 함께 누리는 하루는 서로서로 온힘을 내고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온몸으로 가꾸는 삶으로 거듭납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씩씩합니다. 전쟁이 불거져서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곳에서도 어린이문학은 참으로 씩씩합니다. 배가 가라앉고 비행기가 떨어진 곳에서도 어린이문학은 그야말로 씩씩합니다. 입시지옥이 서슬 퍼렇고 핵무기는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지구별에서 어린이문학은 더없이 씩씩합니다.


  어린이문학은 무릎을 꺾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등을 돌리거나 고개를 젓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씩씩하게 모든 바람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이 땅에 씩씩하게 서서 아름다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꿈으로 나아가는 똘망똘망한 이야기꽃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모든 아픔과 슬픔을 삭여서 사랑스러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밭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눈물을 씻어 주고 웃음을 다시 짓도록 곁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이야기숲입니다. 어린이문학은 너와 내가 사이좋게 얼크러져서 춤추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이야기잔치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어른은 한결같이 푸른 마음이 됩니다. 어린이문학을 읽는 어른은 언제까지나 어린이하고 삶벗이자 길동무가 되려는 파란 넋이 됩니다. 어린이문학을 이루는 바탕은 바로 ‘씩씩한 숨결’입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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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를 다루는 문학



  어른문학이든 어린이문학이든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문학에서 다룰 수 없는 이야기란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든,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는 사랑을 짚거나 건드리면서 슬기로운 생각을 스스로 짓도록 북돋울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린이문학을 살펴보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를 으레 ‘문학이라는 틀’에 담거나 다루기는 하지만, 막상 ‘삶을 짓는 사랑’을 짚거나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슬기로운 생각을 스스로 짓도록 북돋우는’ 몫도 못 하기 일쑤입니다. 글을 쓰는 짜임새에 맞추어 ‘머리말·몸말·맺음말’이라든지 ‘기승전결’이라는 얼거리에 따라서 가벼운 재미만 들려주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굳이 사건이나 사고를 어린이문학으로도 다루려 한다면, 글을 쓰는 어른은 깊고 넓게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수수한 이야기이든 떠들썩한 사건이나 사고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야기나 수수께끼이든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글로 담아야 합니다. 슬기롭게 바라보면서 사랑으로 녹이는 글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막에 ‘이혼한 집’이 늘고 ‘가정폭력·학교폭력·사회폭력’이 떠들썩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건과 사고만 짚거나 건드릴 뿐이라면, 문학도 못 되고 어린이문학도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짐더미나 숙제가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오직 사랑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숨결을 북돋울 수 있는 이야기꾸러미가 되어야 합니다. 4348.5.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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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5-20 08:15   좋아요 0 | URL
최근 어린이문학의 소재나 인물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어두운 면을 애써 밝게 표현한 것도 불편합니다.

숲노래 2015-05-20 08:29   좋아요 1 | URL
하양물감 님 말씀처럼
애써 밝게 그리려 한다고 해서 읽을 만하지 않아요.

모든 문학은 바탕이 `사랑`이 되어야 해요.
소재는 대수롭지 않아요.
소재에만 파묻혀서 반짝하고 인기를 끌어서
책을 팔고 이름을 얻으려 하다 보니...
요즈음 수많은 어린이문학이... 불편하고 재미조차 없기도 하구나 하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왜 책을 읽힐 수밖에 없는가



  오늘날에는 수많은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책을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명작이라는 동화나 동시를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옛이야기·전래동화)도 책으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오늘날에는 여느 어버이가 이녁 아이와 만날 겨를이 매우 적고, 아이와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틈도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닙니다. 이런 시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내기 일쑤인데, 이런 시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도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말을 섞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나 게임 아니고는 할 만한 ‘놀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집에서 놀이와 이야기를 물려받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부터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럭저럭 고전명작이라든지 옛이야기라든지 어린이문학이라든지 이것저것 몇 가지 책을 받아서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갈 때를 앞두면 입시공부 틀로 바뀌지요. 오로지 대학교바라기만 해야 합니다.


  이 얼거리를 제대로 살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깨달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끝없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마음을 살찌웁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제 꿈을 키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는 수많은 여느 어버이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아이한테 보여줄 수 있는 삶’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한테 들려줄 수 있는 말과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 ‘말(한국말)’조차 물려받지 못합니다. 말조차 물려받지 못하니, 아이들은 교과서와 인터넷과 동화책에 떠도는 ‘틀에 박힌 표준 서울말’만 받아들이는데, 책과 사회와 교과서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은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한국말’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제 보금자리에서 어버이한테 물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여러 가지 책이라도 살펴서 먹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이야기밥을 받아먹을 수 있다면, 책은 굳이 많이 안 읽어도 되고, 때로는 아무 책조차 안 읽어도 됩니다. 아이와 어버이 모두한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로 ‘삶’이라는 책, ‘삶책’이요, 이 삶책은 ‘말로 빚는 이야기’로 이루어집니다. 4348.5.6.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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