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선물



  아이를 둔 이웃님한테 《가장 멋진 크리스마스》(풀빛,2002)라는 그림책을 선물합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 집 아이들한테 선물하려고 장만했으나, 마침 서울에서 이웃님을 만나면서 이 이웃님 집에 있는 아이가 떠올라서 기쁘게 선물합니다. 우리 집 아이한테는 나중에 새로 장만해서 선물할 생각입니다. 우리 집에 기쁘게 두면서 두고두고 읽을 만하다고 여기니 장만한 그림책이요, 우리 집에 두고두고 건사하면서 기쁜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하다고 여기니 이웃님한테 선물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어떤 그림책을 아이들하고 읽으면 즐거울까?’ 하는 대목이 궁금한 분이 있다면 ‘이웃님한테 기쁘게 기꺼이 선물할 수 있는 그림책’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면 되지 싶어요. 우리 집 아이한테 아무 책이나 선물할 수 없듯이, 이웃집 아이한테도 아무 책이나 선물할 수 없어요. 두고두고 좋아하면서 오래도록 사랑할 만한 ‘따사로운 선물’로 스며들겠네 싶은 느낌이 피어나는 그림책을 살피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2016.12.1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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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쓰기



  우리가 저마다 일구는 삶하고 살림에는 언제나 모두 다르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다고 느낍니다. 아주 남다른 어떤 일을 겪어야 이야기가 태어나서 글을 쓸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늘 부대끼거나 겪거나 누리는 삶하고 살림을 스스럼없이 풀어낼 수 있으면, 이는 모두 이웃하고 즐겁게 나눌 만한 이야기가 된다고 느낍니다. 치레하거나 꾸며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 삶을 일구면서 쓰는 이야기이면 되고, 살림을 지으면서 쓰는 이야기이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말솜씨가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반갑고, 글솜씨가 수수하면 수수한 대로 즐겁습니다. 뭔가 톡톡 튀거나 남보다 도드라져 보여야 하는 말솜씨가 글솜씨가 아니라, 늘 웃음꽃으로 누리는 삶하고 살림을 꾸밈없이 담아낼 줄 아는 이웃님이 어린이문학을 펼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삶을 사랑으로 가꾸면서 쓰는 어린이문학이 어린이한테 마음밥이 될 만하리라 느낍니다. 살림을 사랑으로 지으면서 쓰는 어린이문학이 어린이한테 꿈을 심어 주는 씨앗 구실을 하리라 느낍니다. 2016.7.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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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오는 문학



  모든 문학은 말에서 오지 싶습니다. 이 말은 삶에서 오지 싶습니다. 이 삶은 스스로 생각을 지어서 가꾸는 살림에서 오지 싶습니다. 이 살림은 사랑스러운 손길에서 오지 싶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손길은 새롭게 여는 하루에서 오지 싶습니다. 말에서 오는 문학이지만 말만 동떨어지지 않을 테니, 삶도 살림도 사랑도 손길도 새로움도 즐거이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품을 적에 비로소 태어날 만한 문학이지 싶습니다. 2016.7.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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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는 뜻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읽는’ 책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린 사람 눈높이와 마음결’에 맞추어 이야기를 펼칩니다. 군더더기도 지식도 모두 덜어내어 ‘삶을 사랑하는 살림’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생각을 북돋우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이 그림책이라고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식 그림책’이나 ‘과학 그림책’은 그림책 결하고 어긋나는 셈이고, 지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을 내세우는 그림책은 어린이 눈높이나 마음결이나 삶하고는 동떨어지기 쉽다고 느낍니다. 살아가고 사랑하며 살림하는 이야기에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꿈이라고 하는 노랫가락을 담는다고 할 만한 그림책이기에, 이 그림책을 언제나 아이들하고 함께 읽고 즐깁니다. 2016.5.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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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물려주면서 가르치는 어른



  한국말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문법하고 시험공부만 가르치지요. 어쩌면 학교는 말을 가르칠 수 없는 곳이라 할 만할는지 모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로 다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헤아려 보면, 학교교육이 보통교육으로 퍼지기 앞서까지 온 나라 모든 마을에서는 다 다른 말을 썼어요. 자그마한 마을마다 말이 달랐고, 이 마을이 모인 고을마다 말이 달랐으며, 또 이 고을이 모인 고장마다 말이 달랐어요. 이를테면 ‘리’라는 행정구역으로 묶는 마을마다 말이 달라요. 다음으로 ‘면’이나 ‘읍’이나 ‘동’이라는 행정구역에 따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면’하고 ‘읍’ 사이도 말이 다르며, ‘군’이나 ‘시’라는 행정구역마다 말이 달라요. 또한, ‘도’로 끊는 행정구역마다 말이 다른데, ‘남도’하고 ‘북도’가 또 말이 다르지요.


  이처럼 다른 말을 크게 ‘사투리’라 하고 ‘고장말·고을말·마을말’로 더 잘게 가릅니다. 게다가 집집마다 다 다른 살림을 꾸리기에 ‘집말’도 조금씩 달라요. 이처럼 다른 말이던 살림인데, 모두 똑같은 교과서로 배워야 하면서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추는 말’로 지식을 가르치는 얼거리로 바뀌었어요.


  표준말은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의사소통 도구’입니다. ‘말’이라기보다 ‘의사소통 도구’예요. ‘말’이라고 할 적에는 집이나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마다 그곳 터전과 날씨와 바람과 물과 흙과 숲에 맞추어 다 달리 짓던 살림이 깃든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이리하여 오늘날 학교교육이나 사회문화는 ‘의사소통 도구’로 수많은 ‘지식·정보’를 주고받는 얼거리로 나아갑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은 ‘말’로 보이는 표준말이지만, 막상 말다운 말은 아닌 셈이에요.


  그러니, 어른이 된 사람들도 한국말을 몽땅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으면, 한국말이 아닌 한국말을 쓸 뿐입니다. 마음을 싣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는 ‘의사소통 도구’에 얽매인 채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살림을 짓는 사람이 생각을 가꾸는 슬기’인 ‘말’을 좀처럼 못 물려줄 수 있어요.


  의사소통 도구를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어수선하고 까다로운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의사소통 도구가 없으면 안 됩니다. 다만, 이러한 의사소통 도구로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수 있고, 때때로 마음을 잘못 읽거나 넘겨짚으면서 다툼이 생겨요. ‘이야기가 흐르는 사랑스러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읽거나 넘겨짚는 일이 생기지요.


  어른이나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말을 가르친다고 할 적에는 ‘의사소통 도구’는 이러한 ‘의사소통 도구’대로 알맞게 일러 주면 됩니다. 그리고, 늘 되새기면서 생각할 대목은 ‘삶을 짓는 말’하고 ‘살림을 가꾸는 말’하고 ‘생각을 밝히는 말’하고 ‘사랑을 나누는 말’을 ‘슬기로운 마음’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기틀을 닦아 주어야지 싶어요.


  ‘말 배우기’는 ‘삶 배우기’라고 느낍니다. ‘말 가르치기’는 ‘살림 가르치기’라고 느낍니다. ‘말 나누기’는 ‘사랑 나누기’라고 느낍니다.


  아이하고 ‘의사소통’만 하겠다면 ‘지식·정보’를 주고받는 ‘도구’만 써도 됩니다. 아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겠다면 ‘생각을 슬기롭게 짓는 살림으로 누리는 삶’을 한껏 북돋우는 ‘말’을 우리 어른과 어버이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즐겁게 쓸 수 있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2016.3.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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