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빨래

 


  예수님나신날 하루 앞두던 지난 12월 24일 낮, 햇살이 더없이 좋아 아주 즐겁게 빨래를 비빈다. 개운한 손맛을 노래하며 마당에 하나하나 넌다. 빨랫줄에 드리울 만한 빨래는 없어, 빨래대에 척척 널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옷걸이에 꿴 아이들 옷가지 두 벌을 빨랫줄에 얹는다. 그러고 나서 혼자 뭐가 좋은지 웃는다. 겨울볕 좋고 겨울바람 없으며 빨래는 보송보송 마른다. 나 혼자 좋아서 빨래 마르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는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마당을 뻔질나게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논다. 아버지는 빨래를 바라보며 혼자 논다. 4345.12.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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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찬물빨래 돌아오다 (대통령 뽑기 생각)

 


  겨울 찬물빨래가 돌아온다. 십이월 첫머리만 하더라도 찬물에 손을 담글 때에 ‘시리다’고까지 안 느꼈으나, 십이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어 새 추위가 찾아오니, 이제 찬물에 손을 담그며 살짝 ‘시리다’고 느낀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무얼 하고 걸레 빨고 하면서 손에 물기 마를 새 없기는 늘 마찬가지이다. 바야흐로 손 트고 발 트는 철이 돌아왔구나 싶다.


  겨울 찬물빨래는 여름 찬물빨래보다 훨씬 바쁘고 빠듯하다. 겨울에는 물을 끓여서 빨래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해가 어느 만큼 떴고, 바깥바람이 얼마나 포근한가를 살핀다. 바깥바람이 꽁꽁 얼어붙으면 해가 났다 하더라도 내다 널거나 말거나 부질없다. 바깥바람이 차면 빨래가 얼어붙으니 방에 널 때보다 못하다. 바깥바람을 살피며 ‘빨래가 안 얼 만하구나’ 싶으면 바지런히 빨래를 해서 내다 넌다. 으레 저녁나절 잠자리 들기 앞서 빨래를 해서 방에다 넌다. 밤에 아이들 밤오줌 누이려고 잠에서 깼을 때 조금 더 한다.


  새 대통령 뽑는다는 날이 밝는다. 나랑 알고 지내는 이웃 가운데 1번 후보가 훌륭하니 이녁을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분은 꼭 한 사람 있다. 내 어버이는 아마 1번 후보를 찍으실 듯한데, 이번 선거에서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씀이 없다. 내 어버이는 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아주 마땅히 1번 아니고는 될 수 없다고 말씀했고, 지지난번 대통령 뽑을 적에는 나한테 ‘여행경비’를 줄 테니 대통령 뽑는 그날에 맞추어 외국여행 다녀오라고 말씀했다.


  시골마을 택시 일꾼은 2번 후보를 뽑아야 시골도 나아지고 남북교류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옆지기 명상모임 이웃들도 2번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2002년까지는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1997년 겨울,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대통령 뽑기를 할 적에는 중대장과 행정보급관 눈치를 보며 목숨을 걸고 2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이때 ‘설마 전역이 코앞인 나를 어떻게 해코지하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마지막휴가를 나온 군대 바깥에서 정권이 바뀐 모습을 보았고,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군부대는 생각 밖으로 조용했으나, 눈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서 대대장이 나와 동기들더러 ‘눈 때문에 길이 나쁘니 며칠 쉬다(?) 전역하라’ 했는데, 이 말이 더 무서워 눈밭에서 얼어죽더라도 맨발로 전역하겠다고 외치며 깊은 멧골에서 몇 시간 걸려 허우적허우적 뛰쳐나온 일이 새삼스럽다.


  겨울날 찬물빨래가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빨래를 할 적에는 다른 생각을 잊는다. 내 마음을 무척 차분히 다스릴 수 있다. 나는 올 2012년 대통령 뽑기에서 누구한테 내 표를 줄까 생각한다. 나는 2002년이 지나고서 한 표 권리를 쓸 적에 5번이나 7번 후보한테 내 표를 주었다. 올해에도 5번 후보한테 내 표를 줄 생각이다. 5번 후보를 기리거나 떠올리는 이웃은 아직 내 곁에 한 사람뿐이지만, 아줌마 대통령이고 노동자 대통령이고를 떠나, 가장 믿음직하며 씩씩한 ‘심부름꾼’ 노릇을 할 사람은 이녁 하나 아닌가 생각한다.


  내 둘레 사람들이 하나같이 ‘2번 후보한테 표를 주지 않으면 투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들려준다. 나는 곰곰이 듣다가 묻는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 맞나요? 나는 내가 믿을 만하며, 심부름 잘 하겠구나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겠어요.’ 이런 말을 듣는 분들은 ‘그래도, 될 사람과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으니, 되어야 할 사람한테 표를 주어야지요.’ 하고 말한다. 그래, 나는 찬찬히 듣다가 ‘나는 5번 후보가 될 만하다고 여겨 5번 후보한테 표를 주어요.’ 하고 말한다. 더 하고픈 말이 있으나, 더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느껴 입을 다문다.


  내 책읽기를 돌아보면 내 삶읽기하고 같다. 나는 아무 책이나 읽지 않는다. 나는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읽지 않는다. 이른바 ‘한 해 마무리’라 하면서 ‘올 한 해 사랑받은 책 투표’ 같은 무언가 한다 할 적에도, 나는 어느 책에도 내 표를 주지 않는다. 내가 올 한 해 사랑한 책이 ‘한 해 마무리’하는 자리에 끼는 적이 아직 없으니까.


  내 마음을 움직일 만한 책이어야 내가 기꺼이 장만해서 읽는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내놓은 ‘이럭저럭 읽을 만한 책’이라서 읽지 않는다. 백 해 천 해 두고두고 즐길 만하다 싶을 때에 즐거이 장만해서 읽는다.


  나는 내 온 사랑을 실어 빨래를 하고 밥을 지으며 비질을 한다. 이맛살 찡그리면서 밥·빨래·청소를 할 수 없다.


  나로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리 아랑곳할 일이 없다. 1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또 5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 대목을 내 이웃들한테 들려주고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대서 우리 삶이 나빠지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니까 우리 삶이 좋아지지 않아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좋게 가꾸려고 힘쓸 때에 좋아져요. 내 삶은 나 스스로 손을 놓거나 마음을 놓을 때에 나빠져요. 독재자가 대통령이 된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제국주의자가 우리 나라를 총칼로 쳐들어온대서 나빠지는 내 삶은 아니에요. 내 삶은 내가 일굴 뿐이에요. 내 삶은 ‘공무원 삶’도 ‘회사원 삶’도 아니에요. 내 이웃인 당신이 공무원이거나 회사원이라 하더라도 다를 구석 없어요. 당신이 살아가는 밑바탕은 ‘사람’이지, 어떤 신분이나 계급이나 직위가 아니에요.


  가슴속을 들여다보셔요. 당신 가슴속에서 어떤 빛이 밝게 비추는가를 들여다보셔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군수이든 구청장이든 면장이든, 어느 누구한테도 기대지 마셔요. 내 삶은 내가 빚어서 내가 누려요. 아이들을 낳아 보살핀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저희끼리 아이들 삶을 빚어서 누려요. 어버이가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삶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빚는 삶이에요. 내 어버이가 나를 낳기는 하지만, 내 삶을 만들어 줄 수 없어요. 나는 내 어버이 뜻이 아닌 내 뜻에 따라 내 삶을 빚는걸요.


  대통령 뽑는 자리에 다녀올 당신이 신문을 내려놓고 방송은 끄고 인터넷은 좀 닫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삶을 돌아보아 주셔요. 이런저런 새소식 챙긴다면서 스스로 ‘마음읽기’하고 멀어지지 마셔요. 자, 나랑 같이 손빨래를 해요. 빨래기계 하루쯤 쉬라 하고, 다른 일 모두 잊으며 홀가분하게 ‘우리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요. 나 스스로 어떻게 일굴 때에 아름다울 내 삶인가를 생각해요. 내가 빚을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아이들하고 누릴 예쁜 나날은 어떤 그림인지를 생각해요.


 

  저마다 찍고 싶은 사람한테 표를 주면 돼요. 민주주의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하면 끝이에요. 한 표 권리를 썼으니, 우리는 우리 삶으로 돌아가야지요. 아직 5번 후보가 대통령 된 적 없어 모를 노릇이라고도 하지만, 1번이나 2번 후보가 대통령이 된대서, 이 나라에 골프장이 줄어들지 않더군요. 1번이든 2번이든 한결같이 ‘토목공사 대통령’ 노릇만 하더군요.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공해덩어리만 잔뜩 만들 뿐, 슬기로운 길을 걷지 않아요. 1번이든 2번이든 군대를 없애거나 줄이겠다고 밝히지 않아요. 둘 다 전쟁무기 더 많이 만들고 군부대 더 키운다고 하더군요. 1번이고 2번이고 ‘회사원·노동자·공무원’이 일터에서 적게 일하며 집에서 아이들과 더 오래 보내도록 할 마음이 없기도 해요. 어린이집을 더 많이 세운다고 하지만, 우리한테는 어린이집 아닌 ‘일자리 나누기’와 ‘내 집에서 내 식구랑 더 오래 사랑을 빚는 삶’이 즐겁고 아름다울 텐데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국가보안법 없어질 낌새는 없구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자유무역협정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경제성장율에 목 매다는 슬픈 모습이 사라질 듯하지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한들 새만금이고 4대강이고, 또 끝없는 막개발이고, 고속도로이고 고속철도이고, 이제 그만 때려짓겠다 하는 다짐은 없어요.”

 


  이제 아침이 밝고 햇살 따사롭게 내리쬔다. 아침빨래 바지런히 마치고, 아침밥 맛나게 차려서 먹어야지. 네 식구 손 잡고 시골 들길을 걸어 면소재지 투표하는 데에 가야겠다. 4345.12.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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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묻이

 


  고흥집에서는 마당에 빨래를 널다가 집안으로 들여 옷걸이에 꿰어 널면 어느새 보송보송 마르는 겨울빨래인데, 옆지기 어버이 지내는 일산집에서는 방바닥 이불 밑에 어느 만큼 마른 빨래를 판판하게 깔아야 비로소 보송보송 마른다. 이레째 일산집에 머물며 한밤에 틈틈이 깨어 이불 밑 빨래를 뒤집는다. 빨래 때문에 일부러 깨지는 않는다. 옆에 누운 아이들이 자다가 자꾸 이불을 걷어차니까 이불을 다시 여미느라 부시시 깨어 이불을 덮어 주고는 빨래를 뒤집는다. 바깥마실 하느라 아이들 옷가지는 몇 벌 안 챙겼기에, 아이들 모두 잠들고 나서 아이들 이듬날 입을 옷을 바지런히 빨아서 말린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 앞서 아이들이 새 아침에 입을 옷이 모두 마른다. 잘 되었다. 잘 되었어. 4345.1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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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빨래가 힘들다는 거짓말

 


  손빨래를 늘 하면서 손빨래가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적은 없다. 그런데, 둘레 사람들은 마치 손빨래가 힘든데 굳이 그 짓을 왜 하느냐고 말하기 일쑤이다. 몸소 손빨래를 해 본 적 없기 때문일까. 손수 손빨래를 한 적은 있으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했기 때문일까.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기계는 속옷이든 양말이든 겉옷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저귀이든 아이 바지이든 아이 웃옷이든 달리 주무르지 않는다. 빨래하는 기계는 모든 옷가지를 똑같이 흔들고 섞으면서 빨고 짠다. 이와 달리, 사람은 모든 옷가지를 다르게 비비고 헹구고 짠다. 사람이 손빨래를 할 적에는 기저귀는 기저귀대로, 겉옷은 겉옷대로, 속옷은 속옷대로 찬찬히 주무르고 비비며 헹군다.


  식구들 옷가지를 날마다 여러 차례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손빨래란, 손으로 밥을 짓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밥을 짓는 일이란, 손으로 씨앗을 심어 흙을 돌보는 일하고 같다. 손으로 흙을 돌보는 일이란, 손으로 아이들을 살살 어루만지며 아끼는 일하고 같다.


  나이 스물이 되도록 손빨래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나이 서른이 된대서 손빨래를 할 수 있으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를 하지 않던 아이들이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 훔칠 줄 알리라 느끼지 않는다. 손빨래 한 적 없는 아이들이 혼인을 해서 갓난쟁이를 낳은 다음, 똥기저귀나 똥바지를 어떻게 빨래할까 하고 걱정하거나 갈팡질팡할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식구들 옷가지를 기계한테만 맡겨 빨래할 적에는, 스스로 즐거운 삶을 놓칠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아무런 삶을 못 보여주고 못 가르치며 못 물려주리라 느낀다. 손으로 씨앗을 흙에 심어 먹을거리를 거둔 다음, 손으로 밥을 지어 함께 먹듯이, 손으로 옷가지를 건사한다. 손으로 바느질을 한다. 손으로 빨래를 하고, 손으로 갠다. 손으로 옷을 꺼내어 입는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비질하고, 손으로 서로를 따사로이 어루만지며 사랑한다. (4345.1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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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마 밑에 들이지 못한 빨래

 


  아침 일찍 마실을 다녀와야 해서 부랴부랴 일찌감치 밥을 짓고 나물을 헹구어 무치느니 달걀을 삶느니 밤을 삶느니 하느라, 가방을 꾸려 아이들과 대문 밖으로 나갈 적에 빨래를 처마 밑으로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깜빡 잊는다. 아침에 해가 높다라니 걸렸으니, 낮이나 저녁에 돌아와도 걱정없으려니 하고 여겼달 수 있지만, 요즈음 늦가을 날씨를 떠올리면 어쨌든 저녁에는 이슬이나 찬기운 안 맞게 처마 밑으로 들이든 마루로 올려놓든 해야 했다. 일찌감치 마실을 나가기에 빨래도 일찌감치 해서 밖에 널었으니, 따사로운 아침볕 받은 빨래는 마실을 나갈 무렵 만져 보았을 때 거의 다 말랐다. 기저귀는 다 말랐고.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먹기를 바라며 그대로 두었는데, 그대로 두었다가 가을비를 옴팡 뒤집어쓴다.


  비에 젖은 빨래는 모두 다시 헹구어 집안에 넌다. 저녁에 나온 새 옷가지는 미처 빨래하지 못한다. 헹군 빨래가 말라야 비로소 새 빨래를 할 수 있다. 아이들 모두 재운 깊은 밤에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긴다. 바보스럽군, 바보스럽네, 바보스럽잖아,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지 않았으면서, 오늘은 또 왜 이렇게 했니.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고, 1분 마음을 기울이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내 마음쓰기가 어딘가 꼬였다고, 아무래도 나 스스로 삶짓기를 한결 슬기롭게 가다듬는 길을 제대로 못 찾는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제 이 빨래가 그럭저럭 말랐으니, 이듬날 볕에 보송보송 말리기로 하고, 새롭게 밤빨래를 하자. 아이들 깊이 잠든 맑은 이마를 살살 어루만지고, 밤하늘 환하게 빛나는 미리내를 웃으면서 바라보는 가을날 밤이 예쁘다. (4345.11.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빨래순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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