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손빨래

 


  개구리 밤노래 집안으로 흘러드는 고즈넉한 오월 깊은 새벽, 자는 내내 이불 걷어차는 두 아이 이불깃 여미다가 왼손으로 작은아이 기저귀 찬 아랫도리 만지다가, 촉촉하다고 느낀다. 요 며칠 물똥을 누기에 설마 싶어 엉덩이 쪽을 연다. 냄새 훅 끼친다. 밤에 자며 또 물똥을 누었네. 옆방 불을 켠다. 다시 엉덩이 쪽을 열며 살핀다. 조금만 지렸으면 잠자리에 누운 채 닦으면 되지만 옴팡 누었기에 살몃 안아서 씻는방으로 데려간다. 자다가 안겨서 씻는방 가서 바지를 벗기니 작은아이가 운다. 굵은똥 누었으면 널 안 울리며 밑 씻기겠지만, 묽은똥 누었기에 다리를 벅벅 문질러 씻겨야 하니 어쩔 수 없어. 조금만 견디렴.


  비누로 아랫도리 문지르고 한 번 더 씻긴다. 물기 척척 훔친 다음 안아서 방으로 돌아온다. 두툼한 바지를 입힌다. 작은아이는 눈 감은 채 엉덩이만 쏙 든다. 바지 입히는 줄 몸으로 아는구나. 기저귀를 엉덩이까지 두른다. 이제 어머니 품에 가만히 안긴다. 큰아이 이불 여민다. 나는 씻는방에 가서 똥내 물씬 나는 기저귀와 바지를 빨래한다. 물똥범벅 빨래이니 여섯벌빨래를 할 무렵 비로소 똥내가 가신다.


  아침에는 어제 작은아이가 물똥 눈 이불 석 장을 빨아야 한다. 지난해에 스무 해만에 빨래기계 들여 빨래기계한테 가끔 빨래를 맡기는데, 문득 돌아보니 큰아이 자라는 동안 큰아이가 밤에 물똥 누며 날마다 이불 버렸을 적에 날마다 손발로 이불을 빨아서 널고 말리던 일 떠오른다. 빨래기계 있으면 있는 대로 쓰겠으나, 없으면 없는 대로 참 이불빨래 잘 하며 살았다. 한밤이건 새벽이건, 아이들 똥오줌 바지나 기저귀 가는 일이 아주 익숙하고, 이런 손빨래 아무렇지 않다. 내 손과 몸과 옷이란, 아주 마땅히 아이들 몸냄새와 똥오줌내 밴 어버이 손이요 몸이며 옷이지.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들아, 무럭무럭 잘 크자. 무럭무럭 크려고 밤에도 자다가 물똥을 누겠지. 뱃속에 든 모든 나쁜 기운 다 빼내렴.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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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7 09:22   좋아요 0 | URL
참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모습에
저같이 게으르고 편할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할 말이 없습니다. ^^;;;
저는 이제 갖 지어 뜸이 잘 들은, 따숩고 맛있는 밥이나
식구들 일어나게 하여 차려야겠습니다.^^

숲노래 2013-05-17 09:36   좋아요 0 | URL
게으르다니요.
게으른 사람이란 없어요.
모두들 다 다르게
삶을 일굴 뿐이에요~

저도
어제부터 불린 표고와 다시마로 국을 끓이고
밥을 지을 생각이에요~
 

유채꽃 빨래

 


  우리 집을 빙 둘러싸고 유채꽃 흐드러진다. 마당에 빨래를 널면, 빨래는 유채꽃내음 들이마신다. 마당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면 내 몸에 유채꽃내음 스며든다.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 몸짓에 유채꽃내음 감돈다. 후박나무에도 유채꽃내음 젖어들고, 마당에 세운 자전거에도 유채꽃내음 번진다. 거꾸로, 후박나무 숨결이 유채꽃한테 젖어들고, 민들레와 쑥과 돗나물 기운이 유채꽃한테 번진다. 머잖아 꽃 지고 씨앗 맺히면서 유채꽃 떨어질 때에는 다른 꽃 돋으면서 우리 집 빨래에 새로운 풀내음 베풀어 주겠지.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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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3-05-13 18:06   좋아요 0 | URL
참 예쁘네요~~

숲노래 2013-05-13 20:45   좋아요 0 | URL
참 예쁜 노란 꽃망울 가운데
유채꽃은 조금
갓꽃이 훨씬 많기는 합니다 ^^;;;
 

숨긴 빨래

 


  잠을 자는 방을 치우며 쓸고 닦다가 큰아이가 숨긴 빨래 두 점 본다. 큰아이가 마당에서 흙놀이 개구지게 한 다음 슬쩍 벗어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듯하다. 큰아이로서는 숨길 마음은 없었을 터이나, 흙옷 벗고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벗은 옷을 잊었지 싶다.


  구석퉁이에서 며칠쯤 묵었을까. 흙자국 손으로 복복 문지르고 비비지만 흙기운 잘 안 빠진다. 하는 수 없지. 오늘 빨고 다음에 더 빨 때에 흙내 가시라 하지 뭐. 날이면 날마다 흙하고 뒹굴며 노는데 흙무늬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머스마 둘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는 나와 형이 ‘숨긴 빨래’를 얼마나 자주 많이 오래도록 빨면서 하루를 보내셨을까 돌아본다. 4346.4.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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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 달거리천 손빨래

 


  작은아이 젖을 떼고부터 옆지기 다시 달거리를 한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큰아이 젖을 뗀 뒤에도 이와 같은 삶이었잖아.


  옆지기 달거리천을 손빨래한다. 아이들 오줌기저귀는 물에 헹구고 담근 뒤 복복 비벼서 빨면 될 뿐더러, 집일에 많이 치인다 싶으면 빨래기계를 빌어서 빨 수 있다. 그러나, 옆지기 달거리천은 오직 손빨래로 핏기를 빼야 한다.


  달거리천 빨랫감 나오면 뜨거운 물 부어 핏기 조금 더 잘 빠지도록 기다린다. 뜨거운 물에 붉은 물이 들 무렵 복복 비벼서 물을 버린다. 비누질을 한다. 다시 뜨거운 물 붓는다. 달거리천은 뜨거운 물로 헹구고 비벼야 하는 만큼 다른 빨래를 할 때보다 살가죽이 쉬 튼다. 손가락 살짝 뜨겁다 느끼지만, 이만큼 느끼는 뜨거운 물로 빨아야 한다. 아 뜨거 하면서 손가락 뺄 만큼 뜨거우면 빨래를 못한다.


  달거리천을 비누질 하고 다시 뜨거운 물 받은 스텐대야에 둔 뒤, 다른 빨래를 복복 비빈다. 다른 빨래를 어느 만큼 하다가 달거리천 비눗물을 복복 비벼서 두 차례쯤 헹군다. 이러고서 다시 비누질을 하고 뜨거운 물 부어 불린다. 다른 빨래를 다시 하고, 빨래를 마친 다른 옷가지 서너 점쯤 나오면, 세벌비누질을 하고, 또 한 번 뜨거운 물에 담근다. 다른 빨래를 이럭저럭 마칠 무렵, 달거리천을 다시금 헹구고 비누질 한 번 더 하고서, 이제부터 다른 빨래 맑은 헹굼물로 달거리천을 헹구기만 한다.


  물을 펄펄 끓여 달거리천을 삶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을 수 있다. 그런데, 달거리천을 삶아서 빤다고 하더라도, 비누질을 하고서 한동안 뜨거운 물에 담가 불려야 핏기가 말끔히 빠진다. 곧장 삶으면 핏기가 제대로 안 빠진다. 마지막으로 달거리천은 아침에 빨아서 아침해가 낮해 되고 저녁해 될 즈음까지 해바라기 시키면 그야말로 보송보송 보드라운 천으로 돌아온다.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며 지낸 여섯 해에다가 옆지기 달거리천 빨래하며 보낸 예닐곱 해를 곰곰이 돌아본다. 나는 앞으로도 옆지기 달거리천을 손빨래 하면서 살겠지. 다른 빨래도 도맡아서 하니까. 머스마인 작은아이는 아직 똥을 가리지 않아 하루에 두세 차례 똥바지를 내놓는다. 종이기저귀 안 쓰는 우리 삶이니, 아이들은 마음껏 바지에 똥을 누며 큰다. 아버지는 아이들 똥바지이고 오줌바지이고 신나게 손빨래를 한다. 궂은 날씨 아니라면 으레 해바라기 시켜 옷가지를 말린다.


  손빨래란, 손을 놀려 집식구 옷가지를 만지면서 서로를 더 살가이 느끼도록 돕는다. 손빨래 마친 옷가지를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 시키면, 고운 햇살은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 나누어 준다. 마당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와 꽃도 우리 옷가지에 맑고 싱그러운 빛 베풀어 준다.


  빨래란 무엇일까. 손빨래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 사내들은 왜 손빨래를 거의 안 할까. 우리네 사내들은 왜 집일을 가시내한테 거의 떠넘긴 채 살아갈까.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는 즐거움과 재미를 왜 이 나라 사내들은 살갗 깊이 받아들이는 사랑하고 자꾸 동떨어지는 길을 걸을까. 옆지기 달거리천 손빨래를 사내들이 할 적에 가시내를 바라보는 눈길이 찬찬히 거듭난다. 아이들 기저귀와 옷가지를 아버지들이 손수 복복 비비고 헹구며 해바라기 시킬 적에 사람을 마주하는 눈매가 하루하루 새롭다. 사내들은 집일을 많이 해야 예쁘다. 아버지들은 집살림 알뜰살뜰 아기자기 꾸려야 웃는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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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떠나는 빨래

 


  서울로 볼일 보러 떠나는 날 이른새벽에 빨래를 한다. 옆지기가 느긋하게 빨래를 할 수도 있으나,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옆지기가 홀가분하고 즐겁게 아이들하고 놀 수 있기를 바라며, 집일 이렁저렁 추스른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아침나절 군내버스 때를 헤아린다. 일곱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일곱 시 이십 분에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내다 넌다. 사월 십구일 시골마을 아침볕 맑고 따사롭다. 겨울에는 아침 아홉 시는 되어야 비로소 빨래를 마당에 널 만했고, 봄에는 아침 일곱 시에도 빨래를 널 만하다. 곧 다가올 여름에는 새벽 여섯 시에도 빨래를 널 만하겠지.


  한여름에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만에 빨래가 보송보송 마르곤 한다. 빨래가 다 말랐어도 안 걷고 그대로 두곤 한다. 좋은 볕 듬뿍 머금으며 햇살내음 옷가지마다 스미기를 바란다. 사람도 집도 마을도 옷가지도 풀도 나무도 햇살을 먹으며 언제나 새롭게 빛난다. 햇살 먹으며 뛰노는 아이들은 흙빛 살결 되고, 햇살 마시며 마르는 옷가지는 해맑은 무늬 눈부시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누구나 햇살 머금는 옷을 입으면 서로 환하게 웃지 않을까. 햇볕 한 줌은 흙을 살린다. 햇살 한 자락은 풀을 살찌운다. 햇빛 한 줄기는 마을 곳곳 보듬는다. 4346.4.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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