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안경 - 아웃케이스 포함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이치카와 미카코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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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めがね Glasses, 2007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골짝마실을 하면, 아이들은 일찌감치 알아챈다. 굳이 ‘골짜기에 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 자전거가 달리는 곳이 자동차는 들어서지 못하는 길이요, 오직 자전거로 천천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는 멧길일 적에 아이들은 빙그레 웃는다.

  골짝마실은 여름과 가을에 한다. 골짝마실을 하면 아이들은 옷이 젖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물을 끼얹고, 그예 물과 하나가 된다. 물이 돌을 간질이면서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가 숲에서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멧새가 풀벌레 곁에서 빚는 노래를 듣는다.

  골짜기에서는 손전화를 쓸 일도, 컴퓨터를 쓸 일도 없다. 그렇지만, 가방에 책을 한 권 챙겨서 읽을 수 있다. 아이들과 웬만큼 복닥거리면서 놀다가 혼자 살그마니 옆으로 빠져나와서 몸을 말린 뒤 책을 손에 쥔다. 아이들은 서로 물놀이를 한다. 나는 골짝물과 숲과 바람과 구름과 하늘과 풀벌레와 새가 빚는 교향곡을 들으면서 책을 한 쪽 두 쪽 펼친다. 이러다가 골짝물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몸을 살리는 풀을 손수 가꾸어서 뜯으면 몸이 튼튼하다. 마음을 살리는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부르면 마음이 맑다. 무엇을 할 때에 즐거울까? 무엇을 손에 쥘 때에 웃음이 날까? 삶이 빛날 적에 사랑이 빛날 테지. 삶이 넉넉할 적에 꿈이 이루어질 테지. 영화 〈안경〉을 보면 차분한 빛이 흐른다. 영화 〈안경〉에는 눈과 귀와 마음과 몸을 고요하면서 따사롭게 감싸는 소리가 감돈다. 그래, 영화이름이 ‘안경’이로구나. 안경을 끼고 빛을 더 잘 살펴본다. 안경을 벗고 눈이나 몸이 아닌 마음으로 빛을 그득 껴안는다. 4347.6.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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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6-28 22:08   좋아요 0 | URL
오! 저도 <안경>을 오래전에 보고는 너무나 좋아서, 아직도 가끔 파일을 열어 이 영화를 봅니다.
그렇게 고요하게,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다시금 그려봅니다~*^^*

숲노래 2014-06-28 22:10   좋아요 0 | URL
이 영화는 '느리'거나 '게으른' 모습이 아닌데, 어떤 영화평론가는 이런 말을 함부로 쓰더군요. appletreeje 님 말씀처럼 '고요하'게 흐르는 영화요, '즐거움'을 노래하는 영화이니, 이러한 빛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영화와 함께 삶을 가꾸는 길을 잘 헤아릴 만하지 싶어요~
 
포레스트 검프 (2disc) - 할인행사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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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본다. 영화에 나오는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이 아이는 사회나 학교나 정부나 군대에서 보자면 덜 떨어진 사람일는지 모르나, 이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서 다른 빛을 본다.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한테 첫 동무가 된 아이도 이 아이한테서 다른 빛을 본다. 포레스트 검프한테 말을 걸면서 함께 새우잡이를 하자고 하던 사람도 이 아이한테서 다른 빛을 보았고, 베트남전쟁에서 다리가 잘린 장교도 끝내 이 아이한테서 다른 빛을 본다.


  무엇을 바라보려 하는가. 사람을 앞에 두고 무엇을 바라보려 하는가. 그리고, 내 삶을 앞에 두고 무엇을 바라보려 하는가.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려 하는가. 스스로 내 삶을 어떤 빛으로 눈부시게끔 가꾸려 하는가.


  포레스트 검프는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걷고, 스스로 생각을 하고 다시 하면서 시나브로 철이 든다. 포레스트 검프는 ‘어른’이 된다. 이와 달리, 포레스트 검프 둘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편견과 선입관만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나이를 먹을 뿐이다. 나이만 먹는대서 어른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나이를 먹되 철이 들지 않으면 철부지이기 때문에, 포레스트 검프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은 어른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와 처음 동무가 된 아이는 나중에 이르러서야 포레스트 검프를 제대로 바라본다. 제대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느낀다. 제대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느끼기에,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포레스트 검프는 철이 들면서 삶과 사랑을 새롭게 느끼고, 이처럼 새롭게 느낀 삶과 사랑을 ‘새 아이’와 함께 씩씩하게 일구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운 빛이 흐르는데, 포레스트 검프가 태어나서 자란 숲과 시골이 곱다. 그런데, 포레스트 검프와 첫 동무가 된 아이도 숲과 시골에서 자랐으나, 그 아이한테 어릴 적 보금자리는 안타깝게도 즐거운 빛이 되지 못했다. 숲과 시골이라 하더라도 늘 즐거운 빛이 되지는 못한다. 숲과 시골은 무척 대단한 터이기는 하지만, 숲과 시골에 있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삶과 사랑이 달라진다. 몸만 숲과 시골에 있어서는 모자라다. 몸만 숲과 시골에 있다면 철부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함께 숲과 시골에 있어야 하고, 넋을 차근차근 가다듬어 스스로 빛날 수 있어야 한다. 4347.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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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괴물 - 할인행사
봉준호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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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2006



  2006년에 영화 〈괴물〉이 나왔을 때에,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나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할는지 너무 잘 알았다. 한달음에 가슴에 확 꽂혔다. 영화에 흐르는 빛을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2006년은 나한테 힘들면서 새로운 해였고, 이해에는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에 이르도록 자전거만 타고 움직였다. 자전거로 이 나라를 찬찬히 달리는 데에 기운을 쓰느라, 마음으로 와닿은 영화를 볼 겨를을 내지 못했다.


  2014년에 영화 〈괴물〉을 본다. 괴물은 참말 괴물이다. 사람들이 괴물이라 여기니 괴물이고, 사람들이 괴물을 만들었으니 괴물이다.


  괴물은 누가 만들었나? 주한미군이 만들었을까. 어쩌면 주한미군이 만들었달 수 있다. 그러면 주한미군은 왜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는가. 바로 한국사람이 불러들였다. 권력자가 불러들였나, 여느 시골사람이나 도시내기가 불러들였는가. 모두 불러들였다. 권력자는 권력을 거머쥐려고 주한미군을 불러들였고, 여느 사람들은 독재자를 몰아내지 못한 채 독재자한테 엉겨붙거나 독재자와 한통속이 되거나 쉬쉬하거나 고개를 돌리면서 주한미군을 불러들였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은 ‘영화에서 한강에’ 독극물을 쏟아부었다고 나오는데, 참말 주한미군은 한강이건 서울 한복판이건 매향리이건 곳곳에 갖은 쓰레기와 독극물을 버렸다. 그리고,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사람도 한강이건 서울 한복판이건 한국 곳곳이건 쓰레기와 독극물을 버린다. 온 나라에 가득한 공장에서 나오는 물을 사람이 손수 떠서 마실 수 있을까? 온 나라에 가득한 골프장에서 뿌리는 농약이 섞이는 바람을 즐겁게 들이켤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 또는 영화가 아닌 우리 사회를 보면, 경찰이 하는 일이나 군인이 하는 일이나 방송국이 하는 일이나 정치꾼이 하는 일은 똑같다. 아름다운 길로 가지 않는다. 마땅한 길로 가지 않는다. 사회에 가로막힌 울타리가 대단히 높다. 사회를 억누르는 정치 얼거리이다.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교육 틀거리이다.


  영화에서 괴물은 죽는다. 화살에 맞고 불에 타며 쇠꼬챙이에 찔려서 죽는다. 그렇지만, 또 다른 괴물은 버젓이 있다. 수많은 괴물은 청와대에 있고 국회의사당에 있으며 학교에 있다. 법원에도 신문사에도 방송국에도 괴물은 있다. 이 괴물들은 어찌해야 할까. 이 괴물들한테도 화살을 쏘거나 불을 붙이거나 쇠꼬챙이로 찌르거나 해야 할까. 4347.6.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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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공명
지율 스님 지음 / 삼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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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는 <모래가 흐르는 강> 영화를 내려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데에서도 없고, 예스24 한 군데에서만 내려받기가 됩니다. 안타깝지만, 한 군데라도 있으니, 그곳에서 내려받기를 하셔서 '참과 거짓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시면 좋겠습니다. 지율 스님 책이 널리 읽히고, 제대로 읽히기를 바라면서 <초록의 공명>이라는 책에 이 영화비평을 걸칩니다.


..


모래가 흐르는 강

2013



  마음을 닦던 스님이 밥을 굶으면서 싸웠다. 밥을 끊고 물조차 마시지 않으면 스무 날이나 서른 날을 버티기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밥과 물을 모두 끊은 스님은 백 날이 넘도록 살았다. 스님은 어떻게 살았을까. 스님은 어떻게 안 죽었을까. 스님 한 분은 ‘죽을 마음’이 없었다고 느낀다. 스님 한 분은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 있었다고 느낀다. 우리와 함께 오랜 나날 살아온 숲이 앓는 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우리와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던 냇물이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느낀다.


  스님 한 분은 2004년에 《초록의 공명》이라는 글책을 선보인다. 2010년에는 《낙동강 before and after》라는 사진책을 작게 선보인다. 마음을 닦으며 살려고 하던 스님은 어느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된다. 스님한테 찾아오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냇물이 스님한테 말을 걸고 숲이 스님한테 말을 건다. 풀잎이, 벌레가, 작은 짐승이 스님한테 말을 건다. 스님은 이 모든 소리를 귀여겨들은 뒤 글과 사진으로 엮는다. 그리고 영화를 찍어 2013년에 〈모래가 흐르는 강〉을 선보인다.


  스님이 쓴 글을 담은 책은 아직 새책방에 있다. 스님이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은 조금만 찍어 새책방에서는 안 다루는 책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스님이 찍은 영화는 0원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려받아서 볼 수 있다(http://vod.yes24.com/MovieContents/MovieDetail.aspx?did=M000043941). 스님이 한 일을 놓고 ㅈ신문이 비틀린 거짓을 일삼았기에 ‘1원 소송’을 건 적이 있다. 이에 앞서 ‘10원 소송’을 건 적이 있고, 10원 소송에서는 이겨서 ‘10원을 ㅈ신문한테서 받았’으나, 뜻밖에 1원 소송에서는 졌다(이에 항소를 했다). 법원은 왜 이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ㅈ신문은 왜 이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닫을까.


  생각해 보면, ㅈ신문뿐 아니라 법원에다가 대통령과 온갖 정치인과 지식인은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 풀과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여는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얼마나 되는가. 숲과 냇물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활짝 여는 ‘여느 회사원’이나 ‘여느 학생’이나 ‘여느 한국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냇물에는 모래가 흘러야 마땅하다. 냇물에 시멘트가 흐르면 모두 죽는다. 냇물은 모래밭에서 흘러야 깨끗하다. 냇물이 시멘트바닥에서 흐르면 모두 죽는다. 그런데, 남녘나라 모든 냇물과 가람과 시내는 시멘트로 덮이고 말았다. 이를 끔찍하다고 느끼는 한국사람이 참 드물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독재정권 군화발과 함께 휘몰아쳤을 적에, 모두들 풀지붕을 없애고 석면지붕을 올렸다. 이제 석면지붕은 나라에서 돈을 들여 거두어들이고 없앤다. 오늘날 온갖 곳에 퍼붓는 시멘트를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 어떻게 할는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해야 살고,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뒷사람한테 어떤 바보짓을 했는지 땅을 쳐도 한참 늦다.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은 누구라도 0원이 있으면, 그리고 마음이 있으면, 언제나 볼 수 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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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한국어 더빙 수록
벤자망 르네 외 감독, 장광 외 목소리 / 올라잇픽쳐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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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와 셀레스틴

Ernest & Celestine, 2012



  1928년에 태어나 2000년에 숨을 거둔 가브리엘 벵상 님이 빚은 그림은 여러모로 아름답다. 까만 빛깔로 그린 그림은 까만 빛깔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무지개빛으로 그린 그림은 무지개빛이 온누리를 촉촉히 감싸면서 아름답다. 가브리엘 벵상 님은 창가에 앉아서 창밖으로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웃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숨결을 마주하면서 이녁 그림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이러한 빛은 만화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도 살그마니 녹아든다. 가브리엘 벵상 님은 쥐와 곰 두 마리를 사이에 놓고 둘이 빚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노래와 웃음을 꾸준히 그림책으로 선보였는데, 이 그림빛이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림책을 영화로 빚는다니 얼마나 멋진가. 그림책을 영화라는 새 옷을 입혀 선보인다니 얼마나 재미있는가.


  쥐는 쥐대로 삶을 사랑하고 싶다. 곰은 곰대로 삶을 꿈꾸고 싶다. 사랑하고 싶은 삶과 꿈꾸고 싶은 삶을 찾던 둘은 저마다 다른 삶터에서 고단하게 지내야 했는데, 홀가분하게 고향을 떠나면서 바야흐로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곰은 곰일 뿐 아무것이 아니다. 쥐는 쥐일 뿐 아무것이 아니다. 그리고 곰과 쥐는 몸피도 먹성도 말씨도 모두 다르지만, 둘은 똑같이 밝은 넋이 가슴속에 있다. 겉으로 살피는 몸피나 먹성이나 말씨가 아닌, 속눈으로 들여다보는 넋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벗이 된다. 우리는 모두 벗이 되어 서로를 아끼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나를 참다이 깨닫는 길을 걸을 수 있다.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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